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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예술(외부자료)/아카이브 리뷰

[리뷰] 청년예술가, 우리의 다른 모색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0. 12. 14.

청년예술가, 우리의 다른 모색

 

권수빈(문화연구자/ksubinn@hanmail.net)

 

이번 리뷰는 문화예술 관련 국가기관 및 광역 문화재단이 아닌 다른 지원 기관의 청년정책을 검토하고 그 가운데 청년예술가들에 대한 지원 사례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그와 함께 서울문화재단의 서울, 쓸데없는 일을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인터뷰집과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웹진의 지난 작업들도 검토했다. 그럼으로써 청년예술가의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다른 모색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의 직업-활동은 새로운 모색이 될 수 있을까

서울, 쓸데없는 일을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인터뷰집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청년예술가들에게 전해진 청년예술가의 방에 대한 물음과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2019 서울을 바꾸는 예술 지원사업 일환으로 제작된 이 프로젝트는 외부로부터의 호명이 아닌, 스스로의 정체로서 청년예술가에 대한 탐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물음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아카이브 리뷰에 앞서 이를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여기에 등장하는 20인 청년예술가들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내용이 이번 리뷰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집에서 청년예술가들은 어떻게 예술이라는 장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지금 활동은 어떻고 앞으로의 고민은 무엇인지, 예술가로서 자기 존재에 대한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내가 여기에서 주목한 점은 이 이야기가 예술이든 아니든 창작으로 노동하며 살아가는”(145)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들은 누군가가 그건 예술가가 아니지’(35)라고 말하는 기준이 아니라 자신들만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작업, 노동, 예술, 행위, 활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 방법은 무수하며 무한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 발화를 통해 드러낸다. 물론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순간순간 들이닥치고(137), 그 과정은 녹록지 않다. 그렇더라도 이 인터뷰집은 청년예술가로 살기를 계속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가며’(161) 새로운 접점을 찾아내는 형태의 활동을 만들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청년예술가로 살며 여러 가지 방식으로 활동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을 생각해보기 위해, 나는 이번 리뷰에서 서울시 청년허브의 청년정책 가운데 2019 청년직업실험지원사업 청년-, 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이하 AYARF)사업을 살펴봤다. 그리고 이 사업에 참여한 청년예술가들의 사례를 검토했다. 먼저 청년-은 다양한 진로와 삶의 경로 탐구 및 변화하는 직업 생태계에 대한 청년의 적응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사업이다. 청년들이 관심 분야에서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고, 청년 직업실험의 다양한 사례 발굴 및 확산을 사업 목표로 한다. 사업의 내용은 직업실험 지원, 역량 강화 지원, 파트너십 구축, 사업 결과 확산으로 구분된다. 다양한 진로 모색을 돕거나, 효과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교육과 멘토링을 운영하고, 이것이 전문가와 유관기관과 함께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그 결과를 확산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 사업에는 다양한 청년들이 참여했고 그 가운데는 예술활동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청년예술가들도 있었다.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갖지 않더라도 문화-예술적 방법론이 새로운 모색의 중요한 방향점이 되는 경우가 다수다. 직업실험과 새로운 경로 모색에 중점을 두는 이 사업의 중심 생각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라는 질문에 왜 그러면 안되는가?”라는 질문을 덧붙이는 것이다(청년허브, 2019: 14).

이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직업을 정의한다. 그러나 대개 직업이라는 단어는 생활과 생계의 문제를 관통한다. 이 사업에 참여한 예술활동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청년은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생계 해결을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42)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청년(예술가) 집단은 동그란 자취’, ‘멋질’, ‘무치’, ‘일요일의 사람들’, ‘piece of peace’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직업 실험은 예술활동 외에 생계를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시작된다. 먹고 사는 문제로서 일, 나를 대변하고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일의 경계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직업 실험은 어떤 특정한 틀에 규정되지 않는 것들이다. 하나의 정답 대신 여러 방법을 택해보는 것이 이들이 내놓은 직업 실험이다. 그럼으로써 직업은 한 가지로 고수되는 것이 아니며 여러 개 직업을 한 번에 갖는 게 가능해지고, 여러 개의 직업들은 주-부로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활동을 하며 비건가족제품을 생산하는 무치는 이제 직업이라는 게 다른 의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른 단어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56).

이렇게 다른 의미와 단어로 모색될 예술가들의 직업-활동은 대개 사회적인 것과 긴밀하게 관련을 맺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AYARF에서 활동한 콜렉티브 뒹굴의 사례를 들 수 있다. AYARF는 청년허브의 사업으로, 기술, 환경, 도시 디자인을 주제로 활동하는 연구-활동 플랫폼 역할을 함으로써 아시아 도시 공통의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청년-연구-활동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구체적으로는 기후 위기, 팬데믹, 기술혁명 등 국경을 넘어 펼쳐지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전환, 실험을 위한 플랫폼으로 작용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다. 연구와 활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청년을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비판적 연구와 창의적 제안을 실험하도록 돕는다. AYARF를 통해 시도한 콜렉티브 뒹굴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예술가가 공동체 속에서 일할 수 있을까, 그래서 관계를 바탕으로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미술작가들의 재료 비용을 절감하고 전시 이후의 폐기물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사회적 이슈와 가까운 관계 맺기를 통해 피해자로서 예술가를 구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후의 문화적 전환을 준비하는 입장으로서 예술가 위치 찾기를 모색했다고 밝혔다. 문화예술이라는 장에서 혹은 그 장의 경계선 위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작업은 AYARF를 넘어, “우리가 얼마나 일을 하고 얼마를 버는가, 우리는 얼마나 구체적인 방법론과 언어로 작업 내에서 소통하고 있는가, 이러한 지점들을 포착할 수 있다면 창작 활동을 예술 노동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성지수, 2020)라는 생각, 실험, 발화 속에서 이어진다.

 

예술과 사회, 예술과 생계

정진세(2020)는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웹진 숨은참조의 연구릴레이에서 서울청년예술단의 문제를 되짚어보면서 청년예술정책의 방향성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책의 목적은 예술가의 복지를 위한 것인지, 성장을 위한 것인지, 일자리를 장려하기 위한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특히 이것이 활동비지원과 맞물릴 때, 청년예술가에 대한 긴급구호의 성격이 과하게 부각되는 방식으로 선심형 복지정책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기존의 신진 유망사업을 연상시키기도 했다고 본다(정진세, 2020). 여기에는 청년 예술가가 긴급구호와 긴급성장을 원할 것이라고 섣부르게 전제함으로써 청년 예술가의 진로를 단순하게 일반화했음이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새로운 담론의 방향점을 제안하기 위해 정진세(2020)는 청년예술가의 일을 노동, 행위, 작업의 다양한 언어로 불러낸다. 이는 한나 아렌트의 저서 󰡔인간의 조건󰡕활동적 삶개념을 참고하며 내놓은 단어들이다. 나는 아렌트가 제시한 이론적 의미로서 노동, 작업, 행위의 층위들을 면면이 살펴보는 일은 뒤로 남겨두고, 우리가 이미 정책과 연구, 담론의 여러 층위에서 청년예술가의 일로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노동, 작업, 행위, 그리고 활동이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써왔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청년예술가의 일을 부를 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이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와 공통된 무엇은 예술과 사회, 예술과 생계의 주제를 교차한다. 이 주제들은 앞서 짚은 직업의 문제와도 맞닿는다. 즉 앞선 절에서 언급한 청년예술가의 직업-활동의 새로운 모색을 포함한 청년예술가가 활동을 계속하는 문제는 예술과 생계, 그리고 예술과 사회라는 문제와 부닥친다. 예술로 돈을 번다는 것의 문제, 생계를 위한 일과 예술을 위한 일 사이에서의 고민은 아주 오래, 여러 차례 공론장에서 또 개인의 삶 영역에서 화두가 되어온 문제다. 그리고 이와 관계하여 예술과 노동, 복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도 오랜 세월 예술 장에 존재해왔다. 지난 아카이브 리뷰에서 검토한 많은 청년예술 지원사업이 이러한 논의 기반 위에서 청년예술가에 대한 지원 당위성을 가지며 전개되어왔고, 그것의 또 다른 출발점이자 도착점으로 청년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호명해왔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지속가능한 활동의 문제는 예술과 생계, 예술과 사회라는 두 문제의 양면을 공유한다.

신민준(2020)은 예술대학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예술이 가지는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 단편적인 예시로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들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이것이 현장에 진입해서야 처음 보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다, 지원을 받기 위해 요구사항화 되어버렸다는 지적이다. 지난 아카이브 리뷰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했듯, 특히 청년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예술가의 다양한 활동성을 제약받게 하고 정치/정책이 유도하는 대로 예술가의 작업이 구축화된다는 점에서 비판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실 예술과 사회의 관계성은 단지 지원사업의 요구사항이나 기대효과 정도로 축소되기에는 매우 중요하다. 사회와 관계 맺기는 예술 실천에 있어 중요한 화두였고, 그만큼 사회적 실천의 연장선에서 다양한 예술적 활동들이 전개되어왔다. 즉 삶의 흐름 속에서 사회의 다양한 화두와 결합한 다양한 예술 실천 사례들이 존재해왔고, 그 실험들로 이루어진 예술과 사회의 긴밀한 관계성은 예술을 사회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변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왔다(권수빈, 2016). 그렇기에 예술과 사회의 새로운 접점을 찾는다는 것은 사회적인 것으로서 청년예술가를 호명해내는 일과 분명하게 구분되며 그 실천의 의미는 다르게 적혀야 한다.

 

불완전한거나 불안정한 채로

예술과 사회의 관계성을 다르게 적는 문제는, 어쩌면 청년예술가에 대한 호명을 뒤집어엎거나 청년예술이라는 기표를 다른 방식으로 의미화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두 가지 문제, 예술과 사회 그리고 예술과 생계의 질문들을 진지하고도 유쾌하게 엮어내며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예로, 서울청년예술인회의의 구성원들은 미술 기획자이자 작가, 혹은 극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그와 함께 사회운동, 페미니즘, 지역, 장애, 소수자, 인문학, 권리 등의 다양한 키워드를 활동의 다른 방향점으로 갖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실천 감각을 체득한 이들에게 예술가라는 이름 외에도 다른 직업을 일컫는 이름들, 예컨대 기획자, 창작자, 활동가의 이름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은 김선기(2020)가 언급한 대로 다른 논리와 방식을 경험하고 따라서 1~2도라도 기존과는 다른 예술 하비투스를 가지고 활동하게 될 주체들이 생겨났음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 서울청년예술가는 이렇게 질문한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예술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그 언저리의 어디까지를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서울생, 2019: 76)” 이러한 질문은 오히려 어디까지를 예술이라 말해야 한다는 일종의 경계 짓기가 아니라, 반문으로서 쓰일 필요가 있다. 과연 예술을 어디까지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 언저리에서 이전과는 다른 감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기를 택해온 청년예술가들의 활동에 주목할 때가 아닐까. 청년-업 사업을 통한 직업실험을 수행하며 한 청년예술가는 제가 하는 일 중 무엇이 직업일지, 또는 무엇이 직업이 될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청년허브, 2019: 58)’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작업은, 노동은, 활동은, 일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채로 계속해서 표현해줘야 하는 것(서울생, 2019: 68)’으로 정의되기도 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정의 내릴 수 없음, 어떤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불완전과 불안정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틈은 투잡을 꾸려 가든, 지원사업형 인간이 되든 간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소득과 경력을 관리하는 삶의 방식’(김선기, 2020)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 방식은 예컨대 좁게는 이번 리뷰를 통해 살펴본 청년허브와 같은 관련 기관의 지원사업 내에서의 변화 모색이 될 수도 있으며 나는 그것이 역시 공적 지원 내의 변화라는 한계를 문제를 넘어선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되었든 무언가가 다른 경로를 통해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 정책, 지원사업 역시 청년예술이라 이름 불리는 생태계의 일부이고, 그 생태계를 청년예술가 주체가 끊임없이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납작한 논의가 아니라 펼쳐놓고 다양하게 경로를 재모색하는 일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참고자료

권수빈(2016). 실천 공동체에 함의된 연대 그리고 로컬리티-커뮤니티 아트를 중심으로. 로컬리티 인문학, 15, 269-302.

김선기(2020). 새로운 예술인세대의 등장은 가능할까.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웹진 숨은참조. https://seoulartist.tistory.com/67?category=917556

서울문화재단(2020). 서울: 쓸데없는 일을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들-호모디페랑스.

성지수(2020). 말한다칼럼: 예술노동에 관한 어떤 생각.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웹진 숨은참조. https://seoulartist.tistory.com/38?category=917554

신민준(2020). [말한다] 미니포럼<문화예술 생태계적 관점에서 포스트 예술대학 만들기 공론장> 리뷰.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웹진 숨은참조.

https://seoulartist.tistory.com/33?category=917554

정진세(2020). 읽는다연구릴레이: 청년예술을 폐기하더라도.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웹진 숨은참조. https://seoulartist.tistory.com/50?category=917556

청년허브(2019). 2019 청년 직업실험 지원사업 청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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