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빈(문화연구자/ksubinn@hanmail.net)
청년예술정책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포럼, 토론회, 회의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자리’들이 마련되었다. 이번에는 청년예술정책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2017년 청년예술포럼에서부터 청년예술인 협치 구조를 구체화하기 위한 첫 번째 자리였던 2019년 서울청년예술인회의까지의 청년예술 담론을 톺아보았다. 자료 목록은 아래와 같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청년예술 담론의 흐름
2016년 서울예술인플랜 발표 이후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 서울시의 서울청년예술단 등이 도입됨에 따라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의 다양한 세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2017년 청년예술포럼에는 해당 지원사업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련된 당사자로서 청년예술가들의 발언이 포함되었다. 여기에는 지원사업의 확장에 대한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가 얽혀있다. 그들이 판단하기에, 청년예술가에 대한 지원을 크게 확장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지만 부족한 준비 기간으로 인해 생겨난 시행과정에서의 미흡함, 모호한 지원기준이 만들어낸 제약 등의 한계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주로 문제제기된 것은 지원사업에서 ‘청년’예술가의 범위와 ‘청년예술’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하는가다. 구체적으로 ‘지원사업 수혜경력이 없는’ ‘~세에서 ~세까지의’ ‘학부생은 제외한’ 등의 지원대상 선발기준이 과연 적절한가를 의미한다. 청년예술정책의 실행이 정책 당사자인 청년예술가를 빼놓은 채 운영되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대상화된다는 점도 지적했다(2017-①, 15쪽). 예술가의 행정/회계에 대한 장벽, 심사과정의 투명함 역시 중요한 이슈였다. 지원사업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과 함께, 앞으로의 지원정책 실행 방안 모색을 위한 새로운 전환도 요청되었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청년예술정책 거버넌스에 대한 요구, 협의와 자기결정에 대한 의지, 지속가능한 예술 생태계 마련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청년예술가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긴급구호가 아니라, 정책에 대한 참여 욕구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장이라고도 강조했다.
2018, 2019년에도 포럼을 통해 청년예술정책의 흐름, 개념, 실태에 대한 논의들이 꾸준히 이어졌다. 2017년의 목소리는 이후의 담론을 어떻게 이끌었을까? 청년예술정책은 얼마나 자기결정, 자기책임의 방식으로 옮겨왔을까? 2018년과 2019년 포럼을 통한 청년예술가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특정 지원사업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청년예술정책에 대한 담론을 꺼내놓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특정 지원사업의 개선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정책 방향성 자체가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데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2019년 서울 청년예술인 정책포럼은 ‘청년예술인은 누구인가’에서 ‘왜 청년예술정책인가’로의 질문의 전환을 제안했다(2019-19쪽). 청년예술가 당사자 협치에 대한 요청 및 마련의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예술가에 대한 일종의 규명으로서 개념 합의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예술정책에 대한 비판과 개념 재정립이라고 보았다. ‘청년예술가가 누구인가’를 논의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지만, 이 질문으로부터만 출발한 정책/지원사업은 자칫 청년예술을 또 하나의 장르예술로 실체화함으로써 몇 개의 사업단위로 환원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에 따라 정책의 지속가능성 보장이 어렵고 정책 의제 역시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2019-19쪽).
따라서 2019년에는 어떤 지원사업을 설계할지의 차원이 아니라, 청년예술정책 마련을 위한 새로운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 논의의 중심을 이루었다(2019-37쪽). 그러면서 앞으로 청년예술정책은 청년예술가 스스로 미래를 설계, 합의, 결정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의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자기결정의 범위 및 권한의 제한 문제와 기회 균등 및 역할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2019-24쪽). 자기결정은 정책결정 과정이나 지원사업의 가부를 좌우하는 다수 위원회에서 학력, 경력에 따라 제한된 참여조건에 의해 배제되었던 다양한 입장과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2019-24쪽).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은, 비단 당사자의 정책 참여 폭을 넓히는 일일 뿐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고 청년예술가에 대한 제도적 조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렇게 될 때, 청년예술가에 대한 지원과 지지 간의 괴리를 줄일 수 있다(2019-25쪽). 이를 바탕으로 청년예술정책 담론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주체로서 역할도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예술정책의 전문가는 누구인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청년예술 담론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결정’의 문제였다. 당사자 참여와 자기결정에 대한 숙고의 필요성은 ‘청년예술정책에서의 전문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될 수 있다. 김선기(2020)는 청년정책의 형성 과정은 ‘누가 전문가로 인정받는가’ ‘인정의 기준은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가’라는 발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온 시간이기도 했으며, 지자체 곳곳에서 이미 운영되고 있는 청년정책 관련 심의기구들에서 이미 당사자와 전문가라는 이분법은 도전받았고 종종 다른 차원을 열어젖혔다고 언급했다.
청년예술 담론 내에서도 이 ‘전문가’의 문제는 중요했다. 2017년 포럼에서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으로 참여한 경험에 관한 청년예술가 당사자의 발표는 지원사업의 대상자가 아니라 직접 심사할 수 있거나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당사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을 드러냈다(2017-①, 18-21쪽). 예술가에 대한 특정 지원사업이 지원금만 주고 끝나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그들을 이해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청년예술가 당사자의 참여가 포함된 공동운영 방식은 새로운 모색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2017년에는 당사자 직접 참여 형태의 심사 방식을 통해 표결권을 행사할 수 있고, 수평적 관계를 확보하고 투명성을 담보하며 동료 예술가를 지원하고 지지하는 협력구조의 필요성도 강조된 바 있다(2017-①, 17쪽).
‘누가 청년예술가에 대해 말하고 평가하는가’라는 2019년 포럼의 질문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 질문에는 기성세대나 기존의 전문가들이 청년예술가의 삶을 예상하거나 미래상을 기대하면서 정책을 설계하고 창작활동을 평가하는 중심역할을 수행해온 것에 대해, 과연 기성세대와 기존의 전문가 집단이 청년예술인의 창작활동에 대한 다층적 비평과 장기적인 방향 제시가 가능한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2019-34쪽). 전문성에 대한 이러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기존의 방식으로 청년예술을 활성화, 지속화, 안정화한다는 것이 계속해서 청년예술인의 삶과 동떨어진 피상적 논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2019-34쪽).
청년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비롯해 ‘예술가로서의 지속된 삶’에 관련된 청년예술정책에는 다른 전문성의 기준이 필요하고, 이 다른 기준의 전문성이란 ‘청년 문제는 청년이 잘 안다’ 식의 당사자성의 무기화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청년예술정책의 설계를 위한 고민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김선기, 2020). 이러한 고민들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지자체별 행정이 제시한 연령대 안에서 시도된 창작활동 정도로 청년예술이 해석되고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청년예술가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는 협의 구조를 마련하고 새로운 비평언어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2019-37쪽). 그런 의미에서 2019년 포럼은 기존 전문가 집단의 평가와 판단 이전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책체계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관점과 방식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최소한의 원칙을 마련하는 것이다(2019-37쪽). 청년예술정책의 전문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청년예술가 주체 형성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다(2019-37쪽).
당사자의 말과 청년예술-이후의 예술가-시민
2017-2019년의 포럼에서 청년예술가 당사자들이 요구한 것은 지금 청년예술정책을 지배하는 언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언어’, 정책에 참여하며 주도하고 협의하는 ‘당사자로서의 말’이다. 이는 단순히 정책의 실행에 발언권을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협의하며 책임질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의미했다. 즉 청년예술 담론이 주장한 것은 지원사업의 대상자가 아니라 정책의 당사자이자 참여자로서의 위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언어를 바꾸는 일이고 다른 차원으로 성과를 증명하거나 이전의 문법으로 익숙하지 않은 성과와 가치를 기록하고 해석하며 설득할 수 있는 시선을 구체적인 언어로 발화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를 논의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방향으로 국한되지 않으면서 ‘다양한 언어’가 가능한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2019년 포럼은 청년예술정책에 질문 혹은 의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이란 ‘무엇일지 당장은 모르겠다는’ 어려움을 내비쳤다(2019-41, 53쪽). 이들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것, 즉 ‘이러한 방향성은 어떨까’라며 제안해보는 것, 불평과 불만을 통해서라도 무엇인가를 함께 말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작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청년예술 담론은 이제 새로운 당사자의 말들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해야 할 것은 당사자의 말은 과연 어디까지를 포함하는가, 당사자들의 위치는 얼마나 서로 다른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담론 장을 흩트리고 재조직할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포럼을 통해 강조된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점은 ‘청년예술 이후의 예술가-시민’이다. 2018년 지속가능한 안전망으로서 예술 생태계의 구축을 위한 자립구조와 2019년 예술인의 삶에 대한 다층적 논의 과정에 대한 요청은 예술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지속’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즉 청년예술가의 예술계 ‘진입’이 아니라 ‘지속’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019년 포럼에서는 그동안 당장 시급한 불을 끄느라 진입과 관련된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청년예술가 지원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그리고 진입과 지속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을 설계하기 위해서 ‘청년예술은 무엇인가, 청년예술은 어떤 미래상을 전제하는가, 청년예술인은 어떤 창작을 하고 있는가, 청년예술인의 삶은 어떠한가, 청년예술인은 어떤 지원을 필요로 하는가’ 등의 질문들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2019-36쪽). 2019년 포럼에서 사용된 ‘예술가-시민’이라는 단어는 지금, 여기의 청년예술에 대한 관점 이후의 관점이 필요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방향점이다. 이것은 이후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한다. 청년예술정책의 필요성 이후, 청년예술정책의 범람 이후, 청년예술정책의 지원 이후, 그리고 청년 이후 사회 속에 여전히 예술가로 살아갈 예술가-시민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다. 이러한 고민 위에서 청년예술정책이 마련될 때 기계적인 행정행위로서의 정책이 아니라, 정책의 언저리 혹은 그 너머에서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의 삶에 대한 지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김선기(2020). 누가 전문가로 인정받는가. 한겨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6753.html)
서울문화재단(2017). 청년예술포럼-청년예술가 지원정책의 새로운 모색 자료집.
___________(2017). 청년예술포럼-지속가능한 청년예술 자료집.
___________(2017). 청년예술포럼-서대문 예술마을을 상상하다 자료집.
___________(2017). 청년예술포럼-서울시 청년예술인 지원정책 개선방안 연구결과공유포럼 자료집.
___________(2018). 청년예술가 연-결 포럼 자료집.
___________(2019). 서울 청년예술인 정책포럼 자료집.
___________(2019). 제1회 서울청년예술인회의 1인칭 주인공시점 자료집.최선영(2020). 서울청년회의의 웹진 ‘숨은 참조’를 준비하며. (https://seoulartist.tistory.com/pages/%EC%9B%B9%EC%A7%84-%EC%88%A8%EC%9D%80%EC%B0%B8%EC%A1%B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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