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빈(문화연구자/ksubinn@hanmail.net)
청년예술가에 관한 학술적 담론은 무엇을, 어떻게 말해왔을까? 학술 담론 안에서 청년예술가가 어떻게 주목되어왔는지 살펴보기 위해 관련 연구를 모았다. 일련의 연구물들은 청년예술정책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때문에 연구자들이 청년예술정책에 대해 고민해온 지점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고 연구자들의 이론적, 방법론적 접근 방식을 고려하여 그들이 짚어낸 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을 검토했다.
청년예술(가)의 개념과 정책적 시사점을 논의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했다. 설문조사를 실시하거나 심층면접의 방식을 활용하는 양적, 질적인 조사와 분석을 통해 연구자들이 파악한 주요한 논점은 청년예술가의 위기, 즉 ‘자립’의 문제다. 청년예술가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으며 연구 배경으로 생계곤란, 취업문제, 예술계 진입장벽 등에 따른 사각지대로의 내몰림 상황이 전제되었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어떻게 청년예술가가 안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이를 구조적인 차원에서 논의한다. 대다수 연구가 대안 제시를 위해 청년예술가 ‘지원의 당위성’에 주목하며 세부적으로 1)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정책 방안 제시 2) 정책 수혜 경험을 통한 지원사업의 한계 파악 3) 청년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 강조로 구분될 수 있다.
정책과 담론 사이, 연구자들이 파악하는 청년예술가의 현재
청년예술지원사업 참여경험에관한 연구로 윤나영(2018)의 ‘청년 무용가의 창작지원사업 수혜 경험에 관한 연구’, 김미연‧김인설(2019)의 ‘지역문화생태계와 청년예술가’ 연구가 있다. 김미연‧김인설(2019)의 연구는 그동안 청년예술 지원에 관한 논의에서 어떤 방법이 적합하고 일자리가 과연 어떻게 창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못한 이유로 청년예술가의 필요, 욕구, 어려움, 지향, 관점에 대한 다각적 접근의 부족을 지적했다. 그러므로 청년예술가의 정책 수혜 경험에 관한 질적 인터뷰를 하여 지원 사업의 한계를 짚어내려 했다. 서울문화재단 무용 분야 최초예술지원사업에 관해 연구한 윤나영(2018)은 청년예술가들이 무용계 내부 평가와 심사의 편협한 시각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심사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김미연‧김인설(2019)은 광주라는 지역문화생태계 속 청년예술가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혼란, 자기 전문성 의심이라는 저해요인을 갖는 한편 지원 대상이 되는 장르의 분절과 제한, 소액다건의 형식적 분배와 같은 지원사업의 구조적 위기에 처해있음을 읽어냈다. 두 연구물 모두 청년예술가의 경험과 삶의 언어를 통해 정책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있지만, 그 대안은 김선애‧강주희(2015)의 ‘청년예술가 일자리 실태에 대한 메타분석을 통한 지원 방안 연구’에서 일자리를 중점으로 하여 내놓은 대안들과 크게 결이 다르지 않다. 예술대학 교육과정 개선, 예술분야 취창업모델 개발, 예술가 지원제도와 정책의 효율적 활용, 예술시장의 저변확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제고다.
정책이나 제도 개선과 함께 제안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제고의 필요는 정민경‧남영희‧이순욱(2019)의 ‘청년문화예술의 공공적 역할 연구’에서 강조되었다. 이들은 청년예술에 대한 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청년예술가에 예술의 공공적, 사회적 역할 담론을 접합한다. 이들은 청년예술가를 새로운 사회문화적 요구를 담지하는 주체로 호명한다. 이를 위해 청년예술 지원의 근거를 1970년대 청년문화 담론에서 찾고자 했다. 지배적 문화에 대해 거부하는 운동으로서 1970년대 청년문화 담론에 근거를 두고, 청년예술가의 활동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가능성,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의는 청년예술을 경제적 차원으로만 환원하고 관련 정책이 일자리 정책으로만 수렴되는 데에 대한 한계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청년예술(가) 담론을 풍부하게 하기 보다는 자칫 특정 이미지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청년예술에 대한 대상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한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청년예술가-당사자 연구하기의 힘
아카이브를 통해 청년예술가 담론을 ‘추적’하고 ‘축적’하려는 시작점에서 검토할 수 있는 연구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동안 청년예술의 미학과 실태에 대한 논쟁 자체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기대어보자면(정진세, 2019), 이는 청년예술이라는 정의의 모호함과 경직된 담론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축적된 연구물 역시 청년예술가를 협소하게 정의하거나 모호하게 개념화하려는 시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반가운 사실은 청년예술가에 관한 연구물 가운데 연구자이자 당사자로서의 시각을 반영한 논문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지 연구자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연구 문제의식과 관련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연구는 ‘곡해’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해석하기 위한 성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의미 있다.
그 예로,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2014)의 ‘장애청년예술정책-욕망과 표현을 위한 실천과 정책론’, 권아람‧이동경‧이세연‧장수정‧허원(2017)의 ‘청년 퀴어 예술가의 생존과 활동의 지속가능성’ 연구가 있다. 이 연구들은 하나의 측면으로 수렴되지 않는, 청년예술가의 다종, 다층, 다중, 다양성을 드러냈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2014)은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장애청년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복지 차원에서 장애정책이 별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청년예술정책 내에서 장애청년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을 지적하고 장애청년들은 청년예술정책에서도 장애인문화예술지원정책에서도 적절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권아람‧이동경‧이세연‧장수정‧허원(2014) 역시 복잡한 레이어가 쌓여 빚어진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기존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청년퀴어예술가들을 고려한 정책의 부재를 짚어내며, 청년예술정책 내 다양한 소수자예술정책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두 연구는 모두 청년허브의 ‘청년,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다’ 연구사업의 결과물이다. 이론적 논의나 방법론적 치밀함 등의 면에서 다소 투박할지라도 이 연구물들이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는, 당사자의 눈으로 다양한 맥락을 놓치지 않으며 청년예술가의 다층적 현실을 짚어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청년예술정책의 틈새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연구’가 유용함을 보여준다. 청년예술가들이 처해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논의와 함께, 정책적 실천이 과연 이 다양성에 걸맞게 진행되고 있는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즉 포괄적인 프레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거나, 일반적인 청년예술정책에서 별도의 카테고리가 형성되지 못한 채 배제된 청년예술가들이 존재함을 주목하고 제도와 정책의 틈새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새로운 당사자성에 대한 상상을 위해
예술 생태계 내 청년예술가가 놓인 구조적 위치에 대한 다층적 논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청년예술이 크게 주목되고 있다는 사실과 별개로, 청년예술가 내 ‘무수한 당사자’가 있다는 사실은 연구와 정책 담론에서 쉽게 간과되어왔기 때문이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2014), 권아람‧이동경‧이세연‧장수정‧허원(2017)의 연구와 같이 교차적인 관점에서 당사자를 주목하고 써내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청년예술가의 당사자성에 관한 논의가 가능하도록 해서다. 이는 당사자만이 가장 잘 안다 식의 논리를 주장하는 것과 다르다. 청년예술이라는 단어의 그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생활고, 일자리, 기회, 도전(..,)’ 등 일종의 고착화된 조어를 반복해온 과거와 단절하기 위함이다. 또한 다양한 결을 주목함으로써 청년예술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논쟁점으로 옮겨갈 시작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청년세대를 향해 부과된 빈곤과 곤란의 이미지에 갇힌 것이 아닌, 기성예술가에게 밀려나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설 자리를 잃어버린 채 주저앉은 것도 아닌, 도전과 진취와 실험이라는 단어를 대표하며 새로운 예술성을 담보해야만 하는 것도 아닌, 어떤 것으로도 고정되거나 구분되지 않는 다성적 삶의 풍경을 갖는 청년예술가 당사자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김미연‧김인설(2019)은 연구를 통해 드러난 청년예술가의 목소리가 문화예술정책의 발전과 청년예술가 지원 철학 사이의 부재한 고리를 연결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청년예술가에 대한 연구나 정책이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경직된 담론을 넘어서고, 또 다시 담론에 침투하며, 새롭게 담론을 엮어내는, 일종의 경계 넘기의 작업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청년예술가를 특정 이미지에 가두기보다 다양하게 펼쳐진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담론 장을 느슨하게 확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공통에 대한 믿음 대신 차이에 대한 흔들리는 질문이 필요한 이유다. 이러한 질문들이 풍부해질 때 지금, 여기 ‘다르게, 또 함께’ 존재하는 청년예술가‘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권아람‧이동경‧이세연‧장수정‧허원(2017). 청년 퀴어 예술가의 생존과 활동의 지속가능성. 청년허브.
김선애‧강주희(2015). 청년예술가 일자리 실태에 대한 메타분석을 통한 지원 방안 연구. 한국예술연구, 11, 165-191.
김미연‧김인설(2019). 지역문화생태계와 청년예술가. 예술경영연구, 51, 5-34.
윤나영(2018). 청년 무용가의 창작지원사업 수혜 경험에 관한 연구. 무용역사기록학, 50, 35-58.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2014). 장애청년예술정책-욕망과 표현을 위한 실천과 정책론. 청년허브.
정민경‧남영희‧이순욱(2019). 청년문화예술의 공공적 역할 연구. 인문사회21, 10(6), 1485-1500.
정진세. 2019.9.20. “청년예술인 담론 혹은 토론에 대하여.” 『2019 서울 청년예술인 정책 포럼』. 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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