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년+예술(외부자료)/아카이브 리뷰

[리뷰] '청춘'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청년예술가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0. 10. 7.

‘청춘’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청년예술가

권수빈(문화연구자/ksubinn@hanmil.net)

 

이번 리뷰는 흔히 4대 중앙 공공 문화예술 지원기관이라 불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아르떼),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진행한 ‘청년예술가’ 대상의 사업을 살펴보았다. 이들 지원기관의 사업은 예술가, 행정가, 정책가들에게 국가 문화정책의 기조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많은 경우 광역 및 기초문화재단과 기관들의 롤모델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4대 기관의 최근 5년간 사업 공고, 학술 포럼, 행사 등을 살펴보며 다소 의문이었던 것은 청년예술(가)를 기표로 하는 사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르떼에서 2015년에 진행한 ‘청년 기획자 프로젝트’,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2017년에 진행한 ‘문화예술 청년단체 창업캠프’ 등의 일회성 사업이 몇 개 진행된 바 있지만, 서울, 부산, 인천 등 광역문화재단들이 적극적으로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을 운영한 것과는 달리 이벤트성으로 운영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청년예술가는 국가 문화정책 프레임 안에서 과연 예술가로 존재하였는지(또는 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역사회와 밀착된 복지 대상이나 가용한 자원으로 여겨진 것은 아닌지라는 의문, 혹은 미학적 관점에서 ‘청년예술(가)’는 새로운 범주가 될 수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문화진흥원의 <청춘마이크 사업>

일단 이런 의문은 잠시 뒤로 접어두고 4대 기관의 사업 중 ‘청년’의 기표를 가장 꾸준히, 두드러지게 사용한 ‘청춘마이크 사업’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청춘마이크 사업은 2016년 문화융성위원회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2018년부터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년예술가와 관련된 국가 문화정책 중 가장 오래된, 그리고 지속적인 사업이다. 이 사업의 대상, 목적, 추진체계는 상당히 간결하고 명확하다.

추진방향: 청년예술가들이 전문성을 가진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권역별 주관단체와 협력하여 활동 기반 형성을 지원하며, 권역별 주관단체의 지역 내 문화플랫폼 역할 강화를 지원하여 참여자 간 관계망 형성 및 가치 확산을 도모합니다.

청춘마이크 사업을 소개하는 지역문화진흥원 홈페이지 문구를 그대로 가져온 위의 설명을 보면 이 사업에 연관된 핵심 주체는 ‘권역별 주관단체’와 ‘청년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지역문화진흥원은 연초 10팀의 권역별(지역별) 주관 단체를 선정하고, 다시 주관 단체는 만 19-34세 청년문화예술인을 선발하여 팀당 연간 총 5회의 정규 공연비를 지원하는 구조다. 공연물품, 장소섭외, 음향 및 조명 장비, 영상촬영 등은 모두 권역 단체에서 주관하고, 팀은 공연을 하여 1회 평균 160만원 내외의 공연비를 받게 된다. 수치상으로 보여지는 이 사업의 성과와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하다. 2019년 기준 42.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약천여명의 예술인이 무대에 올랐고 1,500여회의 공연에 참여한 시민의 숫자는 18만 명이다. 투여된 예산, 참여한 예술인, 공연 횟수, 참여 시민의 수 등으로 측정되는 이 사업의 성과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아래 그래프 참조).


때문에 청춘마이크 사업을 통한 공연은 오히려 가장 편하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상술한 바와 같이 창의적인 자극이 함께하는 무대가 아니더라도 무대란 기회는 공연예술인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 맞지만, 과연 이런 일회성 공연 지원이 청년예술가들을 전문성을 가진 예술가로 키워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청년예술인과 시민 참여자들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최소의 인건비/인력 투입을 통해 최대(또는 최다)의 효과를 보려는 가성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들로 볼 때, 청년예술가 대상의 사업 의도와 목표를 제대로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그런데 이 사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연 이 사업의 ‘주요 대상’이 누구인지 반문하게 한다. 지난 정부에서 발족한 문화융성위원회의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은 대표적인 공리적 관점의 시민 대상 사업이다. 최대 다수의 시민에게, 가장 많은 수의 문화예술 행사를, 더 싸고 간편하게 제공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화가 있는 날’과 결합되어 운영되는 청춘마이크 사업의 공연 지원은 청년예술가들에게 질적으로 보다 나은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데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물론 청년 공연예술인에게 무대는 산소와도 같은, 예술활동의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외부에 의해 주어진 장소, 랜덤한 관객, 짧고 규격화된 공연 시간의 제약 아래에서 새로운 창작 작업이나 기획을 하리란 만무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바라보는 청년예술가

4개 지원기관 중에서도 더욱 국가 문화예술정책을 대변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의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은 그런 점에서 다시금 국가가 어떤 렌즈로 청년예술가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아르코는 2019년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사업을 신설했다. 이 사업에서 규정한 청년예술가의 정의는 a) 만39세 이하, b) 문화예술진흥기금 비수혜자이다. 기존 창작지원사업이 주로 단체를 선발하고, 연령대가 높고, 이런 단체들이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매년 반복적으로 수혜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신선한 지원사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최소 3회 이상의 문화예술 행사(공연/전시/등단 등) 경력을 요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씬에서 기회 또는 네트워크를 확보한 예술가들이 우선 선발될 확률이 많기 때문에 이름에서 보이듯이 진정한 ‘생애 첫 지원’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이유인지, 이후 2020년 <아르코청년예술가지원>으로 변경되면서 생애 첫 지원이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아르코의 또 다른 사업인 <청년예술가해외진출지원> 사업은 청년예술가 국제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네트워크구축형과 진출기반마련형으로 구분된다. 지원 자격은 a) 만39세 이하의 연령, b)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 전문가로 쓰인다. 전문가라는 단어의 사용은 예술과 협업하는 엔지니어, 번역가, 기획자 등의 전문가 참여가능 조건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즉 이 사업은 글로벌 예술 기획 아이템을 개발하여 리서치, 워크숍, 라운드테이블, 발간의 형태로 네트워크를 구성하도록 한다. 기존에 작품을 완성해 결과물로 제시해야 하는 방식에서는 벗어나 진행 중인 작품 내용을 결과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교적 청년예술가들의 입장에서 사업 수행에 수월한 듯 보인다. 하지만 성과나 결과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청년예술가들로 하여금 작품 활동에 관한 연구, 방법론 개발, 계획의 구체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청년예술가들은 이 사업을 통해 자신의 글로벌 이동에 대해 기획하고, 수행하며, 또 성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기획자이길 요청받는다.

일례로, 이 사업은 2019년에 <청년예술네트워크구축>, <청년예술교류역량강화>라는 이름으로 44개 단체를 선정하여 운영했고 지난 2020년 2월 성과공유회를 개최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청년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글로벌 이동의 경험 속에서 어떤 것들을 목격했는지 그것들이 자신들의 예술 작업 안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었고 또 변화될 것인지를 공유했다. 그 자리에서 청중으로 참여했던 나는 청년예술가에 대한 ‘해외진출지원’이 예술계에서 자리 잡지 못한 이름없는 청년예술가들을 또 다른 기획에 포섭하고, 그들로 하여금 글로벌 이동의 기획성을 증명하고, 이동을 가치 있는 성과로 치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예술가이자 기획자로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증명하고, 또 그 무대를 기꺼이 제공하는 정책 담론의 결합은 성과 공유회라는 이름으로 매끄럽게 제공되었다. 물론 그들이 이동 중에 경험한 타자와의 마주침, 환대에 대한 고민들과 활동들은 의미 있게 내게 전달되었지만, 몇 번의 발표 속에서 등장하는 사회적 이슈와 고민들, 그것을 예술가들이 풀어내고 또 다시 정책과 언론이 이를 담론화해나가는 방식은 ‘예술가와 사회적인 것’의 연결점을 고민하게 한다. 때문에 청년예술가들에게 요구되고 또 그들이 발휘하는 ‘기획성’에 대한 질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청년예술가는 왜 사회적이어야 할까? 

마지막으로 아르코의 또 다른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예술단체가 직접 찾아가서 공연이나 워크숍, 행사 등을 여는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는 <신나는 예술여행>이 있다. 여기에는 매칭형/기획형/청년형의 세 가지 부류가 존재한다. ‘청년’의 기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청년형이 어떤 점에서 매칭형, 기획형과 다른지 살펴보니, 청년형은 또다시 ‘일자리/일거리’와 ‘사회문제해결’의 두 가지 트랙으로 나누어진다. 매칭형이 지역의 특정 기관과 연결해서 예술여행을 추진하고 기획형이 특정한 컨셉을 추구한다면, 청년형은 청년예술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그들이 직접 지역으로 파고들어가 사회문제를 예술로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더 세부적으로 보면, <신나는 예술여행> 청년형 내에 일자리창출형, 사회문제해결형의 유형구분은 청년예술가가 의미화되는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청년예술에 대한 지원의 정당성을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나 기대로 두고, 이를 청년예술가가 수행하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문제시되어온 청년일자리 창출까지 함께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청년예술가해외진출>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사업 역시 청년예술가에게 사회적인 역할을 요구한다. 그런데 짚을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성장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공적/사적 교육 과정에서 예술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받아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예술이 어떤 점에서 사회의 한 요소로 존재하는지 조차 제대로 학습해 본 적 없는 상황에서 왜 유독 청년예술가의 작업만이 사회적이기를 기대하는 걸까? 또한 그러한 요구가 예술가 전반에, 또 특히 청년예술가에게 더욱 많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기대와 요구 속에서 청년예술가들은 때때로 기획자이길 요청받고, 예술가와 기획자라는 서로 다른 정체성 모델의 줄다리기 속에서 지금의 청년예술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기 직업정체성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논의하기 위해 다시 지역문화진흥원의 사업으로 돌아가보자. 2019년 <문화가 있는날 청년문화우리>로 진행했다가 2020년 현재 <지역문화우리>로 변경된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의 내용을 간략하게 보면, 청년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의 다른 ‘자기화’를 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 사업의 슬로건은 ‘청년 문화, 우리 지역에 스며드는 힘’으로, 서울 관악, 종로, 경기 이천, 충북 청주, 전남 순천, 경남 남해, 경남 거제의 7개 단체를 선정하여 청년 자율기획 프로그램을 지원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 선정된 7개 단체는 흔히 아르코가 지원하는 예술창작 단체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인데, 관악-동네책방, 종로-쇼케이스, 이천-농부, 청주-공간, 순천-팟캐스트, 남해-영화제, 거제-텃밭 등 다양하고 일상적인 지역문화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업 진행을 위한 멘토링 과정에서 참여자 중 한 사람은 ‘가장 좋았던 건 우리가 지원 서류에 썼던 걸 그대로 맞춰서 하려는 강박이 있었는데 그 부담에서 자유로워졌고, 멘토링을 통해 왜 이 연합(참여자집단)이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얻고 싶은지, 사람들에게 무얼 말하고픈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하게 되어 좋았다’며 ‘지원 사업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할 수 있게 인지했다’고 언급했다(지역문화진흥원, 2019: 43).

물론 성과 자료집의 일환으로 발행된 자료만을 두고 이 사업이 청년예술가로 하여금 의미있는 사업 수행일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이고, 또한 이 사업을 두고 무엇이 문화이고 예술이냐는 출구 없는 논쟁을 반복하고 싶은 것 역시 아니다. 하지만 이 사례를 놓고 지금 동시대의 청년예술가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토론하고 싶다. 거창한 일자리나 사회적 가치 담론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에서부터 기획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것보다, 청년예술가들이 진짜 하고 싶은 기획을 촘촘하게 구성하면 그런 기획은 자연스럽게 지역의 사회적 이슈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그런 과정의 탄생을 느리게, 꾸준히 지켜보고 응원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참고자료

 

지역문화진흥원 홈페이지(http://www.rcda.or.kr/2020/)

지역문화진흥원(2019), 청년문화, 우리 지역에 스며드는 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 사업공모(https://www.arko.or.kr/board/view/4013?bid=463&page=2&cid=1602444&searchValue=%EC%B2%AD%EB%85%84&searchOperator=or&searchField=title,body&sf_icon_category=cw000000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