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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타격감 : 오프라인 모임 기록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12. 21.

타격감 : 오프라인 모임 기록

 

예술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이따금 무기력하다.

이 작업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돌아오는 날엔 더욱 그렇다. 골몰한 시간만큼 머무르는 이가 없으면, 세상을 향했던 주먹은 허공을 지나 어느새 내 관자놀이에 꽂힌다. 예술은 종종 가혹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주먹이 허공을 지나지 않기 위해 닿고 돌아오는 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공감으로 채워본다. 작품을 내어놓고 서로가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평가가 아닌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작품을 만나본다. 세상에 내놓은 주먹이 닿고 돌아오는 경험. 타격감이다.

 

서울청년예술인회의는 4월부터 운영단 구성을 위한 스터디 그룹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잡담회 타격감도 구성원을 모아 앞으로 이어나갈 작업에 대해 공유하고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화모임을 목표로 타격감스터디 그룹에 참여한 분들과 2회에 걸쳐 타격감을 진행했다. 그 첫 번째 모임에 대한 기록이다.

 

#1

 

 

지규

 

저는 그림을 그리는 시각예술가예요. 예술가라는 말이 아직 어색한 청년예술가이자 사회초년생입니다. 보여드릴 작품은 좀 큰 작품이에요. 4미터가 좀 넘습니다.

 

 

저는 전통 미술인 동양화, 한국화 등을 배울 수 있는 학교에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통이나 전통 재료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전통 재료를 규정하거나 전통적인 형식 안에서 작품을 규정하거나 수묵화 같은 정리된 기법 등을 가르치려는 성향이 강했어요. ‘동양화는 꼭 구수한 느낌이 나야 하고, 깊이가 있어야 할까,?’, ‘ 현대미술을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데?‘ 같은 마음들이 쌓였고 그 반발 심리로 이 작업을 시작 하게 되었어요.

 

동양화를 최대한 현대적으로 그려보자는 생각을 했고, 현대적으로 많이 쓰이는 색인 마젠타 옐로우, Cyan, CMYK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자 마음을 먹었어요. 어쩌면 이것들이 전통 색과 전통에서 원하는 색과도 멀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러면서 예술이 놀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의 시각 작품은 색칠공부, 색칠 놀이와 비슷합니다.

 

 

작품을 만들던 당시 믿음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던 시기였어요. 믿음은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저에게 믿음은 달콤함이더라고요. 믿었을 가지면 더 상상하게 되고, 더 좋은 걸 떠올리는 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이 믿음이 근거가 없거나 조악하더라고요. 굳이 그렇게 믿을 필요가 없는데도 믿는 거고, 신의 존재의 이유도 모르는데 믿으면 행복해 보여요. 이 믿음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보여줄까 생각하다가 믿음은 뭔가 사탕같이 달콤한 것처럼 다가왔어요.

 

아까 말씀드린 세 가지 색을 활용해서 계속 겹치면서 공고해지고 다채롭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색칠공부처럼 계속 겹쳐서 저만의 신전을 만들었습니다.

 

 

일수

 

시각작품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관람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사용되는 것은 눈인 것 같아요. 어떤 것이 보이는지 얘기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택수

 

저 그림의 윗부분에 있는 것이 마치 세 명의 사람 같아요. 중간에 한 사람 있고, 좌우에서 기대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요. 서로 의지를 하는 묘사인 건지 아니면달콤하게 만들어진 믿음일까요?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그림의 중간 부분 다시 보니까비탄에 차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래쪽은 문 같은 느낌. 근데 입구와 출구가 명확해 보이지 않아요. 안쪽이 들어가 있는 느낌이고, 바깥쪽이 밝은 느낌이라, 달콤함에 휩싸이는 느낌을 표현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은

 

저는, 먼저 색이 눈에 들어왔어요. 자연스럽게 뒷배경의 화려한 색에 관심이 생겼어요. 왜 배경은 핑크색이고 검정색일까, 반대되는 색감이 흥미로웠고가운데 그림의 노랑 부분이 뭔가 황금빛 물 같이 느껴졌어요. 동굴에 있는 폭포수. 위쪽에 동그란 부분은 피부 측정할 때 쓰는 적외선카메라가 떠올랐어요. 전체적으로 엄청 화려하다 하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걸 보는 순간에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보였어요. 이 작품이 순차적으로 오염되고 있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아래 조각상들은 그리스 로마를 연상시키면서 고대 조각과 관련돼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동양의 느낌도 물씬 풍기기도 하구요. 아래 발톱은 뭔가 위엄스럽고 위풍당당하고 이런 당당함이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한, 기괴한 느낌이 들어요.

 

 

 

일수

 

지금 보니까 발밑에 뭐가 있네요?

 

 

 

 

. 발이 시선을 잡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종교적이고, 근엄한 이미지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색채들의 결합이 뭔가 뭐라고 할까, 사색과 고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을 해보자는 느낌이 들고, 이 조각 두 작품을 보면서 이 안에서 못 빠져나오겠구나, 들어가면 끝나는구나. 스토리를 그냥 생각했어요. 하나의 삶과 죽음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달콤한 신전이기보다는 뭔가 반대인 것 같아요. 달콤하지 않은, 달콤하게 바라본다고 했지만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너가 느껴라, 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수

 

꽃도 아름다운 꽃일수록 가시가 있다는 말과 닿을까요.

 

 

 

지규

 

독사도 엄청 예쁘잖아요. 화려하고. 그런데 독을 품고 있죠.

 

 

 

일수

 

화려함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작품인 것 같아요. 촬영해 주시는 작가님은 어떻게 보이셨나요?

 

 

 

기욱

 

로댕의 작품 중에서 지옥문이라고 있지 않나요? 그것의 현대적인 버전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작품도 문 위에 동상이 있거든요.

 

 

 

지규

 

말씀 주셨던 부분 중에 제가 작품을 만들 때 염두에 두었던 내용들이 있어서 기뻤어요. 그리고 이 작품이 원래 개개의 작품이었어요. 그것들을 조합해서 다른 작품을 만들었어요. 이 중 하나는 지옥의 문을 연상하고 지옥의 문 크기로 하려고 최대한 크게 그렸어요. 합판을 네 개를 합쳐서 완성한 작품이에요.

 

 

 

일수

 

합판이요?

 

 

 

지규

 

. 50호 합판을 네 개를 합쳐서 200호가 된 거죠. 그래서 이렇게 했던 건데 그래서 이게 지옥의 문이라서 실제로 여기 세 명이 있는 게 맞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상정하고 만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형태는 찰흙 덩어리를 생각했어요. 단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체감을 주기 위해서 찰흙이 빚어지거나 물감이 섞이기 직전, 응고되기 직전의 느낌으로 세 가지 색을 계속 섞으면서 덩어리의 형태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의 형태도 들어갈지 나가야 할지 고민하게 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결국 흘러가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었는데, 알아 봐주셔서 좋았어요.

 

작품의 제목은 Sweet Gate인데, 부제로는 Door and Door, 문 안의 문, 그래서 여길 들어가야지 행복한 건가 나와야지 행복한 건가를 중의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달콤하거나 화려한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작품에 대해 호불호가 갈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경도 핑크색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베이스는 회색이에요. 동양화의 장점 중 하나는 아크릴이나 유화와 좀 다르게 먼저 칠을 하고 그 위에 칠해도 둘 다 보이는 특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회색을 엄청 발라서 황폐한 느낌을 내고, 거기에 분홍색을 옅게 계속 쌓아서 분홍색과 회색이 동시에 교차되게 했어요. 이게 예쁜 색인가, 좀 탁한가? 라는 생각들이 혼동되게 하고 싶었어요.

 

아랫부분이 동양적인 느낌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중국 여행을 하면서 동상 같은 것들을 인상깊게 봤어요. 그런데 한 쪽 면은 본래 사람인데 한쪽 면은 뼈로 된 거 있잖아요? 그런 장난감이 있더라고요. 그거에 영향을 받아서 한쪽이랑 그 일부는 온전한데, 일부는 좀 뼈다귀처럼 나와서, 사람이 생성되는 느낌과 퇴화되어서 몸이 녹아가는 느낌을 좀 둘 다 보여주고 싶어서 한쪽은 온전하고 한 쪽은 퇴화되어 있거나 미성숙하거나, 골격밖에 없는 이런 느낌으로 형태가 약간은 일그러지게 되었고요.

 

일수

 

그래서 구슬도 약간 모양이 다르군요. 왼쪽 오른쪽이.

 

 

 

지규

 

그렇죠. 흘러내리게 했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순환되게 하고 싶었어요. 한쪽 면으로도, 일직선으로 순환되고 결국 이렇게 돌고 도는 건데, 어떻게 보면 얼굴이 보입니다. 찡그린 게 살짝 보이거든요. 최초의 달나라 여행(*A Trip to the Moon, 1902)이라는 영화의 내용 중에 눈에 총알 박히는 장면에 영향을 받았어요. 그 달에 영향받아서 달과 형태가 같아요.

 

 

 

일수

 

, 달이군요.

 

 

 

지규

 

. 달도 되고 지구도 될 수 있는? 그런데 이것도 사용한 색은 같은데 함량을 다르게 했어요. 그래서 같은 재료에 같은 색이지만 비율이랑 순서를 달리해서 색깔을 변화시켰고, 이게 결국에는 순환된다, 여덟 개의 색깔이지만 한 개의 믿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달이라는 한 개의 믿음을 좀 상황이나 환경이나 관점, 시각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비춰지는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여덟 개의 색깔, 한 개의 믿음,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합쳐진 게, 해서 또 각각의 의미가 있지만 합쳐졌을 때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게 장치를 주고, 각자 생각하는 예술이라는 놀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 작품을 했었습니다.

 

 

시각예술가이자 청년예술가, 사회초년생.

 

시작을 알 수 없는 모호한 경계면 앞에서 달콤함과 불안은 믿음과 두려움. 그리고 순환을 만난다.

 

하나의 믿음은 필연이 아닌 것. 믿음과 두려움의 경계에서 순환하면서 살아갈 것.

 

#2

일수

 

선님은 글을 쓰신 건가요?

 

 

 

 

. 저는 동시대 작가들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지금은 서양 미술의 발자취나 인물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이 글은 제가 접하는 일상과 연구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과 연결시켜서 내용을 엮어봤습니다.

 

 

 

제목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일상의 세상에서 당신은 어떤가요?>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일상이 찾아왔어요. 어느 순간부터 마스크 쓰고 있는 거울 속의 모습이 불편하지만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어딜 둘러봐도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요. 다 같은 모습을 마주하는 일상에서 문득 개성이란 단어가 생각났어요.

 

개성과 관련하여 제가 봤던 작품들을 생각하니 바스키아의 작품이 떠올랐어요. 바스키아 작품에서 느껴지는 개성이라는 감각과 일상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연결해 봤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두 번째 글은 길목이나 거리의 상점들 사이에 보이는 낙서들에서 시작해서 바스키아의 작품을 생각했어요. 예술이라는 것을 좀 더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봤습니다.

 

 

 

일수

 

다 같이 한 번 읽어보고 얘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지규

 

한 편의 에세이처럼 느껴져요. 요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에세이에 공감하고 있잖아요. 저는 이러한 형태의 에세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미술이나 예술을 이해할 때, 일상이라는 공통점으로 시작해 개인적인 이야기와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어서 좋았어요.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더 공감하고 더 참여하고, 즐길 수 있고, 놀이로 인식하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마스크를 통해 개성이라는 주제로 넘어간 점과, 바스키아의 그림으로 연결된 점이 좋았습니다. 선님의 글을 보면 코로나 블루와 마스크가 촉매제가 되어서 바스키아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잖아요. 마스크 때문에 누가 누군지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더 자신에 대해 알고 싶고, 이 사람에 대해 알고 싶고, 상호 확인을 거치면서 발견하는 게 개성이지 않을까? 저는 바스키아 그림은 일종의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바스키아는 그림을 통해 자신을 보여준 것 같아요. 이 사람의 그림은 논리보다 낙서나 일기처럼 직관적인 느낌이 들잖아요? 더 신선하고 원초적이고 직접적이어서, 사람들이 더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바스키아의 그림 안에 바스키아는 없지만, 이 작품 속의 도형들로 바스키아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세은

 

저는 제목, 목차, 단락의 구성, 이것이 그 사람의 예술 표현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문학 하시는 분들에 대해서. 그래서 그것을 일단 위주로 봤어요. 어떤 제목을 쓰셨는지, 어떻게 단락을 구분하셨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그렇게 보고 마지막 단락을 일단 먼저 봤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봤고. 짜임새 있다고 생각했어요. 개성에서부터 지금 현재 상태와, 바스키아와의 만남의 순서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제목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일상의 세상에서 당신은 어떤가요?>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써 내려가셨고, 그것을 바스키아에 대한 예로 들으셔서 쉽게 설명을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예술과 일상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개성’,

 

개성으로 소환된 바스키아의 작품은 일종의 언어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언어는 나와 네가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3

 

 

세은

 

저는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전체로 보여드리기 어려우니 짤막짤막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일수

 

지금까지 영상을 봤는데 기억이 나는 부분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았는지, 어떤 소리가 기억에 남았는지. 그리고 그 기억들을 연결시켜 보면 어떤 식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지규

 

일단은 아, 이런 게 다원예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명과 춤과 노래의 조화가 신비로웠고요. 의식 행사 같은 느낌도 나고. 무용 동작도 그렇지만, 저 의상이 휘날리는 것과 몸이 베일에 싸인 느낌도 들었어요. 군데군데 빨간색이 있으니까 뭔가 더 약간 종교적인 느낌이 더 들었고요. 영상 중간에 도망치는 놀이 같은 것을 봤는데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그리고 이 세 명의 무용수가 서로 호흡을 주고받는 것에서 3이라는 숫자와 종교적인 의미가 연결된 것 같고, 완전한 숫자의 느낌도 났어요.

 

한편으론 역경을 이겨낸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보여주신 세 파트를 봤을 때 회복의 단계가 있다고 느껴졌어요. 뭔가 회복을 하는 느낌.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이유와, 유희와, 극복의 의미도 있지 않나, 작품이 제의적인 형식으로 관통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로 만들어진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택수

 

처음에 생각 없이 보다가 문득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전에서, 무녀가 점을 칠 때? 하는 그런 의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프린지의 의미를 기괴하다는 의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기괴하다고 느꼈어요. 음악도 어떻게 보면 신화나 미신약간 그런 의미인가 싶고그 뒤쪽의 긴 머리 하신 분이 그래서앉아서 동작할 때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어떤 의미나 해석까지는 잘 모르겠고, 어떤점을 보는 과정에서 행하는 의식인 것 같다세은님께서 보여주시는 동작이 굉장히 인상 깊더라고요. 대단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저는 첫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몽환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조명도 더해지니 영상 속에 앉아 있는 관람자들 사이에 나도 앉아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공연하고 계신 분들의 동작 안에서 소생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지금 봄이잖아요,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무언가, 싹이 트고 있다는 느낌이 공간 안에 퍼지고 있다고 저는 느꼈어요. 강렬하면서도 싹이 트는 느낌, 강압적이지 않으면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느낌도 들고, 조명이 쏟아지니까 그림자 같은 게 가끔씩 보이면서 작은 인물들이 모였지만 큰 공간을 채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공간을 쓰는 게 너무 인상 깊은 것 같아요. 거기에 종소리까지 더해지니 공간감이 더 살았던 것 같아요.

 

 

 

일수

 

그렇다면 세은님, 어떤 작품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세은

 

저희는 이 작품은, <동하다>라는 작품이에요. 제목을 <동하다>라고 지은 이유는 누군가의 마음을 동하게 하고 싶다’, 혹은 나 자신을 동하게 하고 싶다는 의미였어요. 더불어 현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와서 현재의 내가 여기 존재하고 관객들에게 여기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뜻으로 시작했어요.

 

 

그것을 위해 제의적인 분위기의 표현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이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현실과는 구분된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이 공간 자체가 거인의 눈 속이라고 생각했어요. 거인을 깨우는 의식처럼, 완전 초반에는 조금 명랑한 봄의 새싹 기운이 이렇게 있다가, 고난과 역경을 거쳐서, 계속 고난과 역경의클라이막스까지 고난으로 가는 공연이었어요.

 

저희가 초반에 나온 부분이 좋다고 말씀해 주신 분이 많은데 그분은 관객이에요. 객석이 임의로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관객 참여형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관객들을 좀 참여시켜서 관객들도 우리랑 같이 이 공간을 거닐어 보고,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입장 전에 나눠드렸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저희 공연에는 향기가 나요.

 

 

 

일수

 

공연 중에 나오는 향이 되게 궁금했어요.

 

 

 

세은

 

. 제의와 냄새라는 요소를 어떻게 엮을 수 있을까 하다가, 물리적인 형식으로도 할 수 있지만, 거인을 냄새나 향, 소리로도 깨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의할 때 향을 피우잖아요? 저희 팀에 조향사, 후각 예술가 분이 있어서... 냄새, 향을 피워서 관객들도 깨우고 그 공간도 깨우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지규

 

저는 작품을 보고, 제가 좋아하는 소설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가 생각났어요. 그리고 거인이 나오고 극복하고 하는 내용들을 스토리로 만들어서 텍스트로 남겨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수

 

저는 궁금했던 게 거인을 깨운다고 하셨는데 거인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걸까? 아니면 거인은 어떤 것을 은유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세은

 

이게, ‘동하다의 그 동이 약간 눈동자 동이기도 하거든요.

 

 

 

일수

 

중의적인 표현들을 쓰셨군요.

 

 

 

세은

 

우리가 사는 지구도, 우주도 누군가의 눈 속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속한 우주, 누군가의 눈에 있는, 사람을 좀 깨우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거인은 신화적인 존재겠죠? 여기서 거인, 신이란 은유가 나왔던 것 같아요. 우리는 누군가의 눈동자 안의 작은 사람들이고,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네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약간 이런 느낌.

 

 

 

일수

 

이 작업을 관객들이 어떤 식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하셨나요?

 

 

 

세은

 

사실 서사를 잘 몰라도 되고, 감각적으로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의미들을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뭔가 나한테 좀 남았고, 기억에 남고, 그들의 기억의 순간에 우리가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결론적으로 기억에 남는 공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각적 요소들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관객참여형의 공연을 구상하면 그들이 우리를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공간구성 자체도 관객석이랑 저희 공연하는 석을 구분 지으려고 하지 않았고, 다각도로 볼 수 있는 형태로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일수

 

찬찬히 보면 관객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셨더라고요. 공간을 넓게 쓰니까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려면 고개를 돌려야 하고, 소리라는 것도 공간 안에서 어디서 나는 것인지 찾는 게 인간의 기본적인 습성 중 하나여서 그런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세은

 

네 맞아요.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저는 퍼포먼스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에, 자기의 몸짓이나 움직임을 음악에 맞춰서 하는데 가장 몰입되는 순간이 있으실 것 같아요. 그럼 뭔가 다른 감각이 생기나요? 자신만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로, 그 순간의 힘이 어떨 때 발산되는지. 그런 게 궁금해요. 우리가 봤을 때, 분명히 엄청 몰입하고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일수

 

맞아요. 너무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이 있죠.

 

 

 

세은

 

저희는 이번에 좀 의도적으로 그런 카타르시스나 몰입의 순간들을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한계를 치닫게끔, 엄청 긴 공연이잖아요, 그래서 쉴 틈도 없이 계속 움직여서.

 

 

 

(일동 웃음)

 

 

 

세은

 

쉴 틈 없이 움직임을 몰아쳐서 의도적으로 한계를 끌어내게끔 연출을 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인지하고 내가 계속 감각하고, 관객을 무시하지 않고 인지해야지만 그것이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걸 저는 믿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떤 기분으로 추고 있는지, 내 움직임은 어떤지, 내가 어떤 감각을 느끼고 있는지, 공연하면서 감각을 세웠어요.

 

그렇게 해야, 그리고 그걸 몰입하고 내가 인지하는 순간 관객한테 반영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이 작업을 할 때는 제가 그렇게까지 고민했나, 이건 잘 모르겠지만, 요즘 계속 인지하고 있는 점은 그런 부분이에요.

 

 

 

동하다.

 

동하게 하기 위해 극한까지 다 닿으려는 노력.

 

동하는 감각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일수

 

타격감을 처음 경험하셨는데, 소감을 한마디씩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갤러리에서 작품을 보고 가는 것 같습니다. 지시적으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꺼내놓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어요. 내가 생각했던 혹은 마음속에 있던 말들을 작가님과 직접 이야기하니까 너무 좋았어요.

 

 

 

지규

 

저는 뭔가, 깨어진 느낌이었어요. 인식이 트인 느낌. 원래 사람이 자신이 만든 벽이 있잖아요. 넓게 돌아가면 늦고, 원래 가던 방향을 가야지 편한데, 지식이 아닌 감각으로 이야기하고 감각을 통해 공감으로 이어지는 게, 저는 어떻게 보면 탁 트인 느낌이 들었어요. 한 문장으로 탁 트인 순간!’

 

 

 

택수

 

저도 즐거웠어요. 이렇게 직접, 만드신 작품들을 보면서, 또 작가분께서 이렇게 설명해주시는 것도 듣고 하니까, 즐겁다.’

 

 

 

세은

 

저는 일단 한 줄로 말씀드리면, ‘다시 놀이가 된 느낌.’ 예술 작품을 보는 게 놀이로 다가왔어요.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념들이 떠다니는 것을 제가 캐치해서 듣고 고민하게 된 것도 좋았어요. 작품을 보는 것도 너무 좋았지만, 그 사람 자체의 생각들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일수

 

네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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