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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현장인터뷰 ⑫ ✍ 반주리, 옥민아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9. 13.

현장인터뷰


20217월로서 꼭 넉 달입니다.

8명의 청년예술가들이 서울청년예술인회의 현장인터뷰, 스터디팀이라는 장황한 이름의 천막을 마련하여, 그 그늘아래서 잘 놀고 잘 쉬다 보니 넉 달이 훌쩍입니다. 상대를 경청하고 질문하길 좋아하는 청년예술인 여덟이 격주로 만나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의 목적은 인터뷰 방법론에 대한 스터디였는데, 서로가 궁금해져 질문을 던지느라 목적도 잊고 여름이 온 줄도 몰랐습니다. 분주한 왕래에 그늘이 오목해질 무렵, 현장인터뷰 스터디팀의 1기 활동이 막을 내린다 합니다. 언제나 익숙해 질라 치면 불쑥 이별입니다.

현장인터뷰, 스터디팀’ 1기의 자취를 기록하고자 팀원 각자, 자신이 평소 궁금해하던 청년예술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웹진 숨은참조위에 그 인터뷰를 순차적으로 공개합니다.

 


Title : 빛이 나를 뒤흔들었으면 좋겠어요

 

Prolog : (Sol)과 나는 어느 겨울 시 쓰기 수업에서 만났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우리끼리 무언가 더 해보자며 모였다. 나는 그 모임이 시 쓰는 모임이라 생각하고 참여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우리는 하는 모임 쇾(SHOCKK)이란 이름으로 글, 사진, 영상, 노래 등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있었다. ‘우리 언제 이런 모임이 되었지?’ 당황하는 나를 향해 솔은 싱긋 웃었다. 네가 날 몰랐지.

솔은 넓은 창작 스펙트럼을 가진 아티스트다. , 에세이뿐 아니라 사진도 찍고, 오브제도 만든다. 예술가를 인터뷰하는 웹진 무용지물(無用之物)의 편집장이며, 최근에는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작업실 비러프(Be Rough)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예술과 창작을 대하는 솔아의 태도가 무척 다정하고 진솔하여서 나는 언젠가 그를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

인터뷰는 편의상 반말로 진행했다. 솔과 내가 주말 오후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나눈 수다에 당신을 초대한다. 솔과 나는 서로를 응원하는 만큼 당신도 응원하고, 다른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기를 희망한다.

 

Interviewer : 주리 [ 작가, 연구자 / 이하, J]

Interviewee : [ 작가, 편집자 ]

Interview 일시, 장소 : 2021 07 25 15:00~16:00, 솔아네 동네 어느 펍

 

J | 오늘 뭐 먹었어?

 

| , 어제 산 바게트.

 

J | 바게트만 먹었어? 늦잠 잤나?

 

| 어어. 새벽 다섯 시 쯤 자서 정오에 일어났어. 그런 거 쓸 거야? (웃음)

 

J |  (웃음) 일단 자기소개 부탁해.

 

|  안녕. 나는 솔(Sol)이고. 자기소개할 겸 좋아하는 시를 하나 가지고 왔어.

 

나는 밝은 곳에 갇혀 살면서도

바라는 것이 많아요

빛이 나를 뒤흔들었으면 좋겠어요

 

주머니에 갇혀 살면

과일이 되고 싶을 거고요

 

소원이 이루어진 다음날 아침에는

또다른 소원을 빌 것 같아요

(이원하, 「풀밭에 서면 마치 내게 밑줄이 그어진 것 같죠」 중에서)

 

나는 내가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라 생각해. 만족을 잘 못 하거든. 밝은 곳에 살면서도 빛이 나를 뒤흔들었으면 좋겠고. 뭔가를 계속 원하고, 움직이고  싶고.

(c)sol

J | 자신을 잘 알고 있구나. (웃음) 나도솔 소개를 준비해왔는데, 비슷하면서도 좀 달라. 너는 욕망하면 이뤄 내잖아. 그래서 나는 너를 소 키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려고… 

 

| 소 키우는 사람

 

J | . 소 키우는 사람. 하고 싶은 건 많아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하고 싶은 걸 진짜 해내는 사람은 몇 없잖아. 그런데 솔은 뭐 하고 싶다고 말하면 몇 개월 뒤에 그것을 하고 있어

 

| 내가 근황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놀라 더라고. 너 되게 바쁘게 산다. 어떻게 그런 걸 할 수가 있어?’ 이런 말 많이 듣거든. 그런데 내게 나의 활동은 너무 부족해. 작업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이만큼 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창작을 이어나 갈 수 있을까? 그냥 딩가딩가 놀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 많이 한단 말이지. (웃음)

 

J | 들어보니 솔은 소 한 마리만 키우려는 게 아닌 것 같네. 하고싶은 게 많구나.

 

| 어떻게 소를 한 마리만 키울 수 있어! (웃음) 그리고 소를 키우려면 헛간이 필요한데 헛간도 지어야지. 또 소만 키우냐, 닭도 키워야지. 풀도 키워야지

 

J | 이럴 수가풀도 키운다고? 풀은 사 먹이면 안 될까?

 

| 키워야지. 다 그런 거야.

 

J | 소 한 마리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유니버스를 만드는 사람이네.

 

| . 그래서 가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

(c)sol

****

J | 솔의 유니버스에 이름이 있다면 솔 다이얼로그(Sol Dialogue) 아닐까. 인스타 계정이기도 하고, 사진 작업 올리는 웹페이지이기도 하고. 솔 다이얼로그 소개를 부탁해.

 

| 솔 다이얼로그는 단어 그대로솔의 대화라는 뜻이야. 창작한다는 건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 내 목소리를 창작물에 담으면, 보는 이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 ㄱ잖아. 나는 사진을 주로 찍지만 글, 그림, 영상 등 다양한 도구들로 창작을 하거든. 그래서 내 작업을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대화라고 생각했어. 사진, , 그림 작업 모두 내 목소리가 들어 있다는 게 공통점이니까.

 

J | 그렇구나. 요즘은 어떤 작업하고 있어

 

| 고향을 주제로 사진 전시를 하거나 책으로 출간할 생각이야. 준비하기 위해 고향에 몇 번 다녀왔고, 여기서 영감을 받은 이미지로 작업을 진행하려 해살짝 보여주자면 이런 것들

(c)sol
(c)sol

나는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서, 고향에 대한 기억이 없거든. 상경 후에는 시골 출신이라고 이야기도 하지 않고, 시골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되게 애쓰면서 살아서. 사투리라든가, 지역 정서나 특산물 등등 문화도 다 까먹었어. 최근 에서야 내가 부정하려 했던 정체성도'로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거의 20년 만에 고향을 다시 여행했어. 아마 10월쯤에는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

J | 솔은 인터뷰 웹진무용지물의 편집장이기도 하지. 직장 다니랴 사진 작업하랴 정말 바쁠 것 같은데, 시간을 쪼개서 다른 창작자를 인터뷰하는 데에는 그만의 매력이 있을 것 같아.

 

| 인터뷰의 매력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재미. 그냥, 재미있어. 사실 처음에는 내 고민을 해결하고 싶어서 인터뷰를 시작했거든. 나는 창작을 서른쯤 늦깎이로 시작했잖아. 게다가 예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 그래서 주변에 아는 예술 전공자도 없지. 직장도 다니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창작에 시간을 온전히 쏟을 수가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내가 계속 창작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커져만 가는 거야.

그래서 나처럼 작업하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계속 시도를 해왔어. 결국 찾게 된 좋은 방법이 인터뷰였지. 인터뷰를 하면 누군가의 작품이 너무 궁금할 때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끈이 생기잖아. 대화를 하면저 사람은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멋있다’, ‘나도 비슷한 주제가 있는데, 한 번 만들어봐도 괜찮겠다와 같은 생각에 동기부여가 되고. 그것이 재미있어서 계속하고 있어.

 

J | 그렇구나. 특히 동기부여가 되었던 인터뷰가 있을까

 

| , 일러스트레이터 권신제 님이라는 분이 계셔. 그분의 인터뷰는 내가 창작자로서 멘탈 관리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

요즘 SNS만 들어가도 멋진 사진 작업을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잖아. 최랄라라든가, 조기석이라든가. 그런 분들 작품을 보다 보면 그게기준이 되어버리는 거야. 그렇게 찍어야지 좋은 사진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버리게 되더라고. 그래서 정작 내 작업을 하기가 힘들었어. 내가 만든 것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그러던 와중에 권신제 님이꼭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원하는 거, 그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해도 괜찮다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거든. 그 말이 당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어

 

J | 내가 알고 싶은 사람에게 조언을 들으면, 그 조언이 더 와닿을 것 같아.

 

| 맞아.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내게 와닿지 않으면 그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J | 그래. 항상 솔이 무용지물 인터뷰할 때 하는 질문이 있잖아? 이번에는 내가 해볼게. 솔에게 무용지물이란?

 

| 예술이야. 처음에는 사람들이그거 해서 돈도 안 되는 데 왜 자꾸 해?’라고 물었을 때 답을 할 수가 없었어. 그때 내게 예술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었던 거지. 근데 인터뷰를 하면서 창작자들과 대화도 하고, 이후에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면서 깨달았어. 예술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무용하구나. 예술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안에서 끓어올라서 시작하게 되는 것 같아. 돈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자유에서 예술이 태어나니까. 무엇이든지 자본으로 살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살 수 없는 것은 예술인 것 같아.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무용지물

(c)sol

나는 무용지물을 진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내가 그랬듯이 무용지물이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 창작을 주저하거나, 계속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잖아.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 당장 돈이 안 벌리기도 하고. 특히 어느 정도 나이가 찼는데 직장도 안 구하고 예술을 한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압박을 할 수도 있겠지. 그 외에도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있다거나. 다양한 이유로 예술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 안타까워. 나도 어렸을 때부터 줄곧 예술이 하고 싶었는데 계속 망설이다 못 했거든. 무엇보다 내 스스로를 못믿겠는 거야. 예술은 재능 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 아닌가? 돈이 있어야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에 못 하다가, 이십 대 후반에 와서야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때부터 한 거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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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어?

 

|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스물아홉에 느낀 조급함. 지금도 성격이 급한 편이지만, 그때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어. 두 번째는 기면증. 그때 내가 처음으로 기면증 진단을 받았거든. 증상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지만, 희귀한 병이라 나중에서야 이게 병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병원을 찾았지. 진단받기 전까지 자책을 심하게 했어. 나는 왜 이렇게 항상 졸리지? 왜 에너지가 금방 떨어질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기면증 진단을 받고 나니까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어.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니까 에너지가 생기더라고.

(c)sol

물론 진단을 받고 바로 좋아진 건 아니야. 한참 우울하던 시기가 있었어. 처음 진단을 받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아보았는데 심각한 기면증 환자들이 많은 거야.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면증이 심해서 어느 회사를 가도 권고사직을 받는다는 사람들. 그리고너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항상 졸아? 왜 그렇게 게을러?’ 이런 말과 시선을 받는 나날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내게도 언젠가 에너지가 소진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잠을 컨트롤할 수 없다면, 결국 반쯤은 죽는 거랑 똑같은 거잖아. 일상을 제대로 살 수 없으니까. 내게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진짜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어

 

J | 요즘은 어때

 

|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해. 기면증 환자는 수면 패턴을 항상 제대로 유지를 해야 하거든. 근데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수면 패턴을 잘 지키기 어렵더라고. 집중하다 보면 그냥 새벽 내내 계속 할 때가 있거든. 오늘도 새벽 다섯 시에 자서 열두 시에 일어나고그런 식으로 패턴이 바뀌면 좋지 않아. 그래서 기면증은 내 삶을 전반적으로 잘 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야. 잠을 관리 못 하면 하루가 다 무너지니까, 잘해야지. 잘해야 해. (웃음) 술도 먹으면 안 되고

 

J | 솔이 스스로에게 더 엄격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기면증이 한 사람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  

 

| 사실 기면증이라고 하면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기면증을남들보다 조금 더 졸린 상태로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기면증은 호르몬의 문제야. 사람이 일어나거나 잘 때 적절한 호르몬이 나와야 하는데, 기면증 환자는 그 호르몬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잠들어도 잔 게 아니고, 깨어 있어도 정상적으로 깬 상태가 아닌 거야. 일반 사람들은 졸린 걸 참을 수 있잖아? 기면증 환자는 졸음을 컨트롤할 수 없어. 졸리면 삼일 밤을 새운 수준으로 미친 듯이 졸려. 그게 가장 큰 고통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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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 마지막으로 솔 유니버스에 최근 추가된 공간, 비러프(Be Rough)에 대해 알려줘.

 

(c) berough

| 비러프는 내 개인 작업실이야. 아직은 지인들에게만 공개한 비밀 공간. (웃음) 비러프는 창작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어. ‘러프한 안으로 잡아봤어요와 같은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가벼움.

 

J | 아니 그렇게 직장인스러운… (웃음)

 

| (웃음) 예술을 너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시작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 ‘저 정도 완벽하게 만들어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예술은 재능있는 사람들만 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 그래서, 일단 러프하게 시작하자는 거야. 처음에는 다 그렇잖아. 거칠게 그은 선이나 투박한 문장들도 하다 보면 더 나아지고, 나아지고. 그런 모든 첫 창작의 순간, 비러프는 시작하는 예술가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야.

 

J | 솔아가 비러프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이것도 고민이 많은데, 지금은 개인 작업실이지만 나중에는 다양한 창작자를 위한 공간이면 좋겠어. 일단은 유연한 공간(flexible place)으로 두고 이것저것 시도할 것 같아. 언젠가는 클래스, 워크숍을 열거나, 예술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

 

J | 솔이라면 또 금방 만들 것이야. 그럼 반대로 비러프는 솔아에게 무엇을 바랄 것 같아?

 

| 자주 보러 오고, 잘 쓰다듬어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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