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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현장인터뷰 ⑩ ✍ 강지희, 옥민아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9. 13.

현장인터뷰 ⑩


20217월로서 꼭 넉 달입니다.

8명의 청년예술가들이 서울청년예술인회의 현장인터뷰, 스터디팀이라는 장황한 이름의 천막을 마련하여, 그 그늘아래서 잘 놀고 잘 쉬다 보니 넉 달이 훌쩍입니다. 상대를 경청하고 질문하길 좋아하는 청년예술인 여덟이 격주로 만나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의 목적은 인터뷰 방법론에 대한 스터디였는데, 서로가 궁금해져 질문을 던지느라 목적도 잊고 여름이 온 줄도 몰랐습니다. 분주한 왕래에 그늘이 오목해질 무렵, 현장인터뷰 스터디팀의 1기 활동이 막을 내린다 합니다. 언제나 익숙해 질라 치면 불쑥 이별입니다.

현장인터뷰, 스터디팀’ 1기의 자취를 기록하고자 팀원 각자, 자신이 평소 궁금해하던 청년예술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웹진 숨은참조위에 그 인터뷰를 순차적으로 공개합니다.


Title : 계속 유영하다.

 

Prolog : 지은과 지희는 예술계에 진입한지 몇 년 된 동년배 청년예술가다. 청년예술가로 진입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지희는 어떻게 하면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 흐름에 잘 안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인스타로 자신의 작업을 꾸준히 기록하는 지은의 모습이 단단한 예술가의 그것과 닮아 있어 지희는 지은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예술이란 바다에 떠 있는 동년배 청년예술가들에게 많은 위안이 되길 바라며.

 

Interviewer : 강지희 [ 공연예술가 / 이하, H ]

Interviewee : 김지은 [ 시각예술가 / 이하, 지은]

Interview 일시, 장소 : 2021 730 10:00 ~ 12:00, 예술인주택 커뮤니티공간

     

*

H |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작업의 진행상황을 계속 올려주는 모습을 흥미롭게 봤어요. 그 작업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지은 | 저는 공간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결국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공간에 빗대서 하고 싶은 거에요. 예를 들면 지금 우리 둘이 여기서 같이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제 상황과 제 심리상태같은 것 때문에도 우리 둘이 이 공간을 많이 다르게 볼 수 있잖아요. 바라보는 방향 때문에도 그렇고, H가 이 쪽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H의 기억엔 이 쪽이 더 많을 거고, 저의 기억엔 H의 뒤편의 이 벽이 더 많이 남겠죠?

그런데 이걸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제 기억에 많이 남은 건 제가 여행 다녔을 때의 기억들이거든요. 저는 주로 여행을 혼자 잘 다니는 편인데, 어쩌다 한 번씩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갔을 때, 우리가 돌아와서 그 공간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이 다른 거에요.  아니면, 어떤 곳에서 만난 사람이 어, 나도 어디 가 봤었어 하고 얘기할 때 그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많이 다른 모습이거든요.

그래서 그 공간에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표현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같은 풍경화지만, 여러가지 색들을 섞어 쓰는 이유는, 제가 컨셉으로 잡은 특정한 색깔이 아니라, 그 공간에 남아있는 어떤 사람들의 기억들이 다 갖가지의 색들, 그 날의 날씨라던지 분위기, 누구와 함께 갔는지, 기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에 따라 색깔들이 다르게 남아있을 것 같은, 그런 감각 들을 표현하고 있어요.

결국 완전한 기억이나 완전한 정의, 이런 것들은 사실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그거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지는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른 기억들을 갖고 있다고 해서, 혹은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게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이런 생각때문에 그런 그림들을 그리는 거기도 해요.

가끔 다른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 아니면 화가 나거나 할 때도 있잖아요. 혹은 다른 사람들이 너무 존경스러울 때도 있죠. 그런 모든 순간들에 있는, 저 스스로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해요. 가령 어떤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어려운 거지, 그 사람은 그냥 그 사람이구나 하면서 놔두게 되면 사실은 그게 더 맞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H | 사실 저는 동년배의 작업에 대한 마음가짐이 궁금하거든요. 매일매일 꾸준히 스케치 위에 색이 덧입혀지는 걸 보면서, 꾸준하게 작업하고 계시고, 열심히 색을 채운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색을 채울 때 어떤 마음가짐일까 하는 것이 궁금했는데,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약간 누군가를 동경하거나, 누군가가 이해가 되지 않거나 하는 감정을 그림에 담을 때도 있다는 거죠?

 

지은 | 그렇죠. 거의 초반에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 제일 많이 든 생각이, 그리고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들 중 하나가 도 닦는다는 얘기였어요.

이런 식의 그림을 제대로 시작하게 된 거는 대학원 때였어요. 그때 학교에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휴학이나 졸업을 한다 거나, 대학원 수업이 많지 않으니까 또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없어서, 잘 안 나오는 사람도 있고. 꽤 큰 공간의 1/5을 항상 저만 쓰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서. 그걸 1년 반 정도를 거의 그렇게 썼거든요.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고, 그럴 때마다 도 닦는 기분으로 했던 것 같아요. 생각이 많아지면 저는 좀 움직이기를 싫어해요. 하지만 뭐라도 해야겠던 거죠. 속도가 있는 그림 같은 경우에는 체력도 많이 들고, 저는 그렇게 속도를 내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은 거에요. 제가 너무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안 좋은 상황들도 있었고 하니까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데 그림은 또 그리고 싶었던 거에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가만히 앉아서 나에게 많은 일거리를 주는 거였어요. 생각하는 것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그림이다 보니까그랬죠. 그런 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그림 그리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라는 게 정말 많아요. 그래서 많은 생각들이 왔다갔다하죠.

 

H | 요즘 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시는 생각은 뭔가요? 생각을 유영하는 지은 님의 모습이 제 머리속에 그려지거든요. 그러다 보면 어떤 흐름대로 갈 때가 있잖아요?

 

지은 | 요즘에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에요,

사실. 이제 나이가 곧 40대에 들어서는데 제가 제대로 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지금 추가로 하는 일도 하루에 4시간 밖에 하지 않는, 어떻게 보면 완전히 제대로 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거의 처음이에요.

이 나이 즈음이 되면 아는 작가들도 어떤 선택들을 하는 것 같아요. 계속 작업을 할 건지, 작업을 계속 하더라도 작업의 분위기를 바꿔볼 것인가 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안 되겠다 싶은 경우에는 돈을 아예 더 열심히 번다 던지 결혼에 대한 고민을 더 하기도 하고요. 그 선택들에 의해 또 작업이 더 팔리기 시작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죠. 주변의 그런 변화들이 점점 보이는 상황이에요.

그런 시기이다 보니 저는 저 스스로 봤을 때 그런 큰 변화가 없고 사실 안주라고 하기보다 그냥 습관처럼 작업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요.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시간에 나가서 작업을 하고, 습관처럼 그리던 그림 그리고. 그리고 아무래도 이제 몇 년 동안 전시나 이런 것들을 해왔으니까, 그냥 가끔 들어오는 전시하고예전에는 나 개인전 해야 돼, 개인전을 위해 1, 2년 준비할 수 있어, 그런 게 있었어요. 그래서 개인전 올리고 나면 너무 힘들었다, 뿌듯하다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언제든지 준비가 돼있어야 해, 하고 계속 준비를 해왔던 거니까, 누가 개인전 할래요? 하면 네, 그림 있으니까 할 게요. 이런 식이 되거든요.

저는 사실 언제든지 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준비해 온 거기도 하지만, 막상 그게 현실이 되니까 좀뭐라고 해야 할까요? 스스로 많이 나태해졌구나, 열정이 좀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도 사실 조금 들기도 해요.

또 막 판매되는 작가들 보면 어떤 작가들은 작업이 좋고 해서 잘 되는 작가들도 물론 있는데, 어떤 작가들은 사실 저게 맞는 방향성인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근데 또 그걸 생각하면서도 근데 나는 왜 안 되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들고그러면 내가 어떤 방향성을 다시 잡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다 보니 진짜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 건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그냥 열심히 해보자, 이런 거였는데 이제 어떤 작가가 될 거야 라는 걸 다시 생각해봐야 되는 게 아닌가, 사실 지금까지는 이런 부분을 생각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꼈어요. 나를 그냥 규정짓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사람이 된다 라는 걸 내가 규정지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런 상태로 계속되다 보니까이제는 규정도 한 번 지어봐야 되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H | 그런 생각을 작업하면서 하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은 | . 작업하면서 이 생각들을 해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나 잘 하고 있는 건가? 그래서 얼마전에는 갑자기 인터넷 보다가 부채를 3개 샀어요. 취미반을 한 번 해볼까, 어쨌든 돈벌이는 해야 되니까취미반은 또 뭘 그려야 되지, 하면서 또 하고엊그저께 작업하던 게 지금 끝났는데 그래서 한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는 살짝 내려놓고 취미생들을 위한 그림을 좀 연구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H | 약간의 방향성을 바꾸시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은 | 방향성이라기 보다는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미술학원 실장 일인데, 저 한테는 지금까지 번 적이 없는 큰 돈이지만 결국에는 알바비 만큼이거든요. 현재 제가 두 번째 월급을 받았는데 막 흥청망청 쓸 수 있는 정도의 돈은 아니에요. 사실 내가 지금까지 너무 아끼기만 하고 돈 쓰는데 전전긍긍하다 보니 한 두어 달은 적금도 안 하고 그냥 써야지 하는 생각을, 나에게도 자유를 좀 주자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만큼의 돈이 안 되는 거에요. 요즘에는 여행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거의 생활비로만 사용했는데도요. 사람을 만나서 먹을 거 다 사 주고 이런 것도 아니고, 혼자 생활비 쓰는 데에도 그게 여유로운 돈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게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여전히 쫄리는 삶을 사는 사람인 것 같아서그런데 결국 여유라는 것이 돈에서 나오는 부분도 있으니까, 이런 지점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조금 더 풍족하게 살려면 취미 미술도 해 보고 그러니까, 내가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H | 많이 공감되네요. 저도 나이대가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여태까지는 그냥 열정과, 다른 일을 하면서 이 일로 적게 버는 것들을 감수해왔지만, 계속 평생 이래야 할까 하는 고민을 엄청 하는 것 같아요.

 

지은 | 지금은 내가 젊으니까, 아직 청년이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그 생각이 제일 많이 들어요. 언제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내가 최저가만 검색하면서 사는 나에게 괜찮아, 이렇게 살아도 돼 하고 얘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막 남들 사는 만큼 살거야 하는 그런 의지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냥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느 순간 제가 초라해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그래, 너는 너 하고 싶은 걸 하니까, 라는 그런 얘기도 많이 듣고 저 스스로도 지금은 내가 이렇게 조금 어렵게 사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이런 핑계를 언제까지 내가 나한테 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서 어른들이 왜 너는 결혼도 안 하고, 어쩌고 저쩌고, 한 달에 얼마는 벌어와야 어떻게 살지, 하는 그런 얘기들을 듣는데 지금은 제가 에이 괜찮아요, 하고 넘기지 만요. 언제까지 남들 얘기 신경 안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 확신이 들지 않아요.

저는 그렇게까지 제 멋대로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제가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H | 작업할 때 도를 닦는다는 표현이 인상깊었는데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예술가한테 필요한 작업 중 하나는 연습,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그런데 제가 보는 지은 님의 작업들이 약간 그런 과정과 맞닿아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는데본인이 자기 작업을 생각할 때는 이게 뭘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신다고 했지만, 조금 더 거기와 관련된 생각이 궁금하네요.

 

지은 | 제가 제 작업을 봤을 때요? 아까 계속 고민된다는 얘기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림으로서 재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작가가 전시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제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서 다른 공간에 있을 때의 내 그림이 보고 싶은 이유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제 삼자로 놓고 그림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요, 전시라는 것이. 작업실 안은 한정된 공간이다 보니, 그 공간에서는 너무 크다고 느껴졌던 작업들도 전시장이나 다른 공간으로 갔을 때엔 이게 이렇게 작았는지, 이게 이런 느낌이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 오래 작업을 하고 계속 들여다보다가 작업이 끝나자 마자 작품을 일부러 다른 방에 숨겨 놔요. 그리고 어느 날 다시 꺼내서 봤을 때, 내가 이렇게 이걸 그렸었구나 생각하게 되는 그 감정을 느껴야 할 것 같아서요.

 

H | 다른 궁금했던 점 중 하나인데요, 작업할 때 색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지은 | 생각보다 감각적으로 해요.

보면서 이 번에 이 색을 쓰면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하고 큰 면이 들어가야 되는 색을 결정할 때는 (저는 그림 눕혀 놓고 그리거든요) 세워서 한참 쳐다보면서 저기에 무슨 색이 들어가야 할까 생각도 하고그리고 사실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경우도 많은데 마음에 안 들어도 놔둬요. 왜냐하면 내 마음엔 안 들어도 누군가의 마음엔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이번 개인전 때도, 작업을 뭘 가져갈까 고르는데 스스로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놔둔 그림이 몇 개 포함되어 있었어요. 얘를 가지고 갈까, 말까 생각하다 꺼내서 놓고 보는데, 엄마가 와서 요즘 잘 돼? 그림 밝아졌네?’ 하시더니 제가 제일 망했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보면서 , 나는 얘가 제일 마음에 든다하시는 거에요. 이상하지 않냐고 하니까 괜찮대요.

제가 까만 배경을 주로 쓸 무렵, 전시를 준비할 때였어요. 저는 까만색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 중 한 분이 오셔서 이거 다 너무 디자인 적이고 다크한데 (제가 제일 마음에 안 들어했던 작업을 찍으시면서) 얘가 제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번 전시는 카페공간에서 진행되었어요. 카페에 오신 손님들이 전시를 보는 공간이었죠. 어떤 분들이 제가 작가인지 모르고 지나가면서 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 사진 을 찍으시는데 진짜 이거는 망쳤다,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그림 앞에서 사진을 제일 많이 찍더라고요. 그래서역시 나는 나의 눈을 믿으면 안 돼싶었죠. (웃음)

 

H | 약간 본인의 눈이 주류랑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지은 | 그렇죠. 아니면 저의 감각이 누군가에게 통하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 실패도 완전한 실패는 아니구나, 라고 좋게 생각하고 싶기도 해요.

 

H | 예술이 사실 기준이 없다고는 하지만 잘 팔리는 공연이나 시대성을 담고 있는 공연의 트렌드는 명확하거든요. 그것에서 조금 벗어나면 못한 공연인 것 같이 자책하게 되고요. 아마 회화도 비슷할 것 같다는 인상이 있는데, 제 감각이 주류와 완전 맞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떻게 보면 시류를 타기도, 타지 않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쓸려 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지은 님도 아마 그런 고민을 하시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도 자기 중심을 잡고 계신 것 같은데그런 시류의 감각과 내 감각이 조금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은 | , 조금. 어정쩡한 위치에 나를 데려다 놨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 대학원 가서 작업 시작할 때도 많이 들었던 얘기가, 너의 작업을 어떤 위치에 놓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그걸 결정을 하고 작업해야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작품 소개글을 쓸 초반에, 생각할 시간이 많다 보니 소개글에 이 생각도 넣고 저 생각도 넣으니, 얘가 중구난방인 거에요.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제 그림도 사실 펼쳐져 있는 편이죠.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라 그림이 평면적이고 색깔도 다 난해하게 펼쳐져 있는데 제 글도 그런 식이에요. 이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가 저 이야기를 하는 식 인거죠. 그걸 보신 어떤 선생님께서 가지치기를 좀 해야 한다고, 네가 이런 생각도 있고 저런 생각도 있는 건 알겠지만, 그걸 다 얘기하려고 욕심을 내다보니 이 얘기도 저 얘기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방울토마토를 키울 때, 토마토 몇 개를 잘라줘야 실한 토마토를 얻을 수 있다. 뭐 그런 얘기를 이어 하셨어요. 그것도 되게 맞는 말인데 지금 저는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아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거에요. ‘맞아요, 그 얘기가 맞습니다하면서도 또 중구난방으로 이 얘기도 했다가 저 얘기도 했다가 하고 있는 거죠. 지금의 저는그 때 그 얘기를 더 잘 듣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도 들면서도 그런데, 그러니까, 그렇지만…’ 이러면서 여전히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그 기준을 못 잡았기 때문에 아직도 제가 주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좀 애매한 곳에 있지 않나 싶어요.

 

H | 저 역시 나는 계속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어디로든 갈 거야라고 생각은 하지만요지은 님도 가 닿고 싶은 지점이 있나요? 아니면 저처럼, 나는 일단 꾸준히 새로운 길을 생각해 보겠다는 쪽 이신가요?

 

지은 | 전 오디션 프로그램 보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런 오디션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결국에는 자기가 보여야 한다는 것 같아요. 예술가도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술가 스스로가 한 명의 아이돌이 돼서, 오디션에 나오는 어떤 참가자처럼 자기가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기의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인데, 제가 똑똑하고 계산적인 사람이라면이런 작가가 되어 야지하고 만들어갈 수 있을 텐데 저는 스스로에게 기획자의 모습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나의 기획자로서의 능력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생각도 사실 조금 들고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나를 보여줬을 때 매력적인지를 알고 있으려고 해요. 작가인 제가 됐든, 제 그림이 됐든, 누군가에게 매력이 어필이 되어야 하잖아요? 주류 미술이든 비주류 미술이든 간에요. 비주류도 비주류만의 어필 포인트가 있을 거고요. 그것을 찾아 야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그냥, 내가 그렇게 똑똑하지 못한데 그냥 내 거나 해서, 내가 이걸 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면 언젠가는 어떤 포인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제일 많이 해요.

그래서 인스타도,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나의 매력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의 대답인 것 같아요.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 넌 노래를 너무 잘 하는데 네가 안 보여,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한국말 못하는 애를 외국에서 데려 다 놓고, 너는 네가 너무 잘 보여서 기술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너는 너무 매력적이야, 너를 뽑겠어 이러고 데려 가기도 하잖아요. 근데 또 희한한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렇게 데려간, 1등하고 2등했던 애들 중에 대중적이다, 라고 성공한 케이스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아요.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자꾸 저를 대입해서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지? 내 그림은 어떤 매력이지? 내가 그리는 게 뭐지?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오디션만 잘 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H | 저는 사실 인스타그램에 작업을 올리기가 두려운 측면이 있어요.

한 번 올리면 계속 올려야 될 것 같고, 누군가 완성되지 않은 내 작업을 본다는 게 부담스러운 느낌일 수도 있는데, 지은님은 정말 차곡차곡 올리시니까 , 열심히 자기를 쌓아가고 있는 예술가의 모습이다. 일상을 잘 쌓고, 계속 그냥 존재 가능한, 움직일 수 있는 예술을 만드는구나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동경하며 지켜보았죠.

 

지은 | 그러려고 의도한 건 아니에요. 아는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고 물어봤어요. 그 친구는 디자인을 하는 친구이다 보니 이미지 메이킹이나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친구였어요. 좀 더 대중적인 생각을 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고려를 할 수밖에 없는 친구죠. 한 달에 얼마를 벌면 풍족한 삶이라는 것을 살 수 있을 것 같냐, 또는 이런저런, 저의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그 친구가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져 주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이런 것을 해 보는 것은 어떻냐 하며 얘기했던 것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나누는 거였어요. 그 친구가 얘기한 건, 인스타를 생활계정과 작업계정을 나눠라. 그래서 작업계정을 조금 더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도록 만들어라, 였는데 저는 그냥 작업이 내 삶인 것처럼 보였으면 좋겠는 거에요. 그래서 나누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제 작업이 다른 사람들처럼 며칠에 한 번 나올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나눈다고 해도 포스팅을 한 달에 한 번 밖에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나는 둘 다 있는 계정을 갖고 싶은데 또 그 친구의 말이 너무 맞는 말들이다 보니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옛날 작업들을 한 번씩 올려 보기도 했는데, 저는 그렇게까지 인스타형 인간은 아니더라고요. 열심히 해시태그 달아가면서 인스타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거죠. 그렇지만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에서 제가 작가처럼 보였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런데 한 달에 그림 한 점 올리는 사람이 작가처럼 보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모르는 사람이 내 인스타 계정에 들어왔을 때, 나를 꾸준히 지켜보던 사람이 아니어도 얘가 열심히 하고 있네?’ 하는 인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한달에 작품하나 업로드는 그런 인상을 못 줄 것 같은 거죠. 어떻게 보면 저를 대중에게 소개시켜 주는 부분이, 그래도 열심히 하는 사람, 꾸준히 하는 사람 정도로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인스타스토리 기능을 이용하기 시작한 거에요.

또 저 스스로도 내가 그림을 며칠이나 그리는 지 궁금했거든요. 내가 작업을 하나 하는데 얼마나 걸리지? 하는 질문이 생기면서 저 스스로도 확인하고 싶었어요. 하루에 하나씩, 매일 일정하게 인스타 스토리를 올리고 그림이 끝나면 작품을 찍어서 올리는데 그렇게 하면 내가 이 작품은 며칠 작업을 했구나, 저 스스로도 볼 수 있고, 사람들에게도 결국 얘는 놀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요.

예전의 제 인스타는 사실 완전히 미니홈피의 개념이었거든요. ‘ㄴ ㅏ는 ㄱr  눈물을 흘린ㄷr…’ 이런 감성적인 느낌의 글들을 쓰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의 인스타는 조금 더 상업계정처럼, 프로의 계정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바꿔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상도 같이 올리고 싶기도 해요.

 

H | 하지만 제가 꾸준하다고 느꼈으니 성공하신 거네요. 이걸 일로 대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생각해요. 이십 대 때는, 내 작업은 일생의 작업이고 내가 내 생애에 걸쳐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어마어마한 무게감으로 다가왔어요. 지금은 그저 내 삶의 일부로 느끼고 싶어요. 내 작업에 대해서 굳이 많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가둬놓고 싶지도 않달까요?

 

지은 | 저를 지키는 방법인 것도 있어요. 이 일에 제가 먹히지 않으려면 제가 저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요.

 

H | 요즘 저의 화두가 지속 가능한 작업인데, 지속 가능한 작업을 하고 계신 분을 만난 것 같아요.

 

지은 | 글쎄요. 어떻게든 지속 가능하게 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거겠죠?

 

H | , 그렇게 또 보여서, 잘 가고 계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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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akim_ (https://www.instagram.com/zinak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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