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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현장인터뷰 ⑦ ✍ 보경, 옥민아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7. 28.

현장인터뷰 ⑦


2021년 7월로써 꼭 넉 달입니다.

8명의 청년예술가들이 ‘서울청년예술인회의 현장인터뷰, 스터디팀’이라는 장황한 이름의 천막을 마련하여, 그 그늘 아래서 잘 놀고 잘 쉬다 보니 넉 달이 훌쩍입니다. 상대를 경청하고 질문하길 좋아하는 청년예술인 여덟이 격주로 만나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의 목적은 인터뷰 방법론에 대한 스터디였는데, 서로가 궁금해져 질문을 던지느라 목적도 잊고 여름이 온 줄도 몰랐습니다. 분주한 왕래에 그늘이 오목해질 무렵, 현장인터뷰 스터디팀의 1기 활동이 막을 내린다 합니다. 언제나 익숙해질라치면 불쑥 이별입니다.

‘현장인터뷰, 스터디팀’ 1기의 자취를 기록하고자 팀원 각자, 자신이 평소 궁금해하던 청년예술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웹진 ‘숨은 참조’ 위에 그 인터뷰를 순차적으로 공개합니다.


Title : 봄을 지나 봄을 향해 계속 걷기

Prolog : 문수는 몇 해 전, 요가를 배우면서 만난 친구의 남편이다. 이들과 비슷한 관심사에 머물며 교류하며, 나는 이 친구들의 단순한 생활과 그들의 작업을 개인적인 형태로 유지하는 동시에 그들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일치시키려 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재작년부터 문수는 찍은 사진들을 시기별로 묶어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여, 올해 초 첫 사진집을 완성했다. 그가 만든 첫 번째 사진집의 이름은 <봄에 이르는 길>로, 어느 시기에 그가 겪은 변화에 대한 개인적 기록이다. 개인적인 경험은, 역설적이게도,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것은 현장인터뷰 스터디 과정을 통해 내가 깨달았던 점들 중 하나다. 문수의 이야기가 나에게 와 닿았듯,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가 닿기를 바라면서.

 

Interviewer : 보경 [ 기획, 편집자 / 이하, B]

Interviewee : 문수 [ 산책자 ]

Interview 일시, 장소 : 2021년 06월 20일 17:00~19:00 / 07월 11일 11:00~13:00, 온라인 Zoom

 

*

B |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키워드로 말해 본다면요?

 

문수 | 아르바이트하는 거랑, 사진책 만드는 거요.

아르바이트는 ‘바다쓰기’라는 단체에서 하는 수업 보조 강사 하고 있어요. 이 분들(‘바다쓰기’)이 학교 나가서 수업하실 때 아이들이 만드는 거 같이 돕고, 필요한 재료들(바다 쓰레기들) 나가서 주워 오고. 일주일에 한 2, 3일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주워 오는 쓰레기는 씨글래스(seaglass)라고 해서 유리병이 깨진 다음에 동그랗게 갈려 있는 게 있는데 물때 맞춰 나가서 줍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 사진집 작업을 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고쳐야 부분이 많아서 수정한 다음에 다시 뽑으려 다가, 확신이 안 들어 일단 제본까지 된 형태로 책을 받아봤어요. 그게 어제 왔는데 아직 완성이 안 된 느낌이 있어서 계속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B | 첫 번째 사진집 잘 받았어요. 인쇄해서 따로 수작업을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문수 | 실제본으로 해야 책이 완전히 펴져서 사진을 보기가 좋아요.

일반 제본은 전체가 꽉 채워진 사진을 제대로 펼쳐 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본은 소량으로 해주지 않고, 비용이 몇 배는 더 들죠. 그래서 수제로 만들어야 했어요. 만드는 방법은 유튜브에서 보고 배웠는데, 종이 형태로 인쇄된 사진들을 잘라 접어서 실로 엮은 다음, 전체를 다시 엮어서 책을 누른 상태로 제본용 풀을 발라 붙여서 만들어요. 풀을 붙일 때 책을 일정한 힘으로 누를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해서 나무로 간단하게 제작했고, 책 제목은 알파벳 도장을 구매해서 찍었고요.

 

B | 사진집 제목이 <WIND UP IN SPRING>인데요. wind up은 사전에 보면 ‘마무리 짓다’ 라는 의미로 나와요.

 

문수 | 한글 제목은 ‘봄에 이르는 길’로 정했는데, 영문학을 좋아하는 친한 형에게 영어 제목을 지어 달라고 했더니 wind up a spring 하면 ‘태엽을 감다’라는 말이래요. 문학에서 windings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고 하는데 ‘굽이친 길’, ‘고난’ 같은 것을 지칭한다네요. 그래서 wind up in spring이라고 하면 ‘봄에 이르다’라는 말도 된다더라고요. 가끔은 너무 이미 봄에 도착해 버린 뉘앙스인가, 의미를 너무 많이 담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에는 뭔가 모호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B | 이 사진집에 있는 사진들은 어떤 시기에 찍은 사진들인가요.

 

문수 | 아픔이 촉발된 이후에 새로운 지점으로서의 시기가 오는데, 그때까지의 일이에요.

(그게 2017년, 시기적으로도 봄이네요.) 2015년에 네팔에 갔다가 발목을 다치고 돌아왔어요. 집에 한참 앉아 있다가 걷고 싶다는 열망이 들면서 조금 나아졌을 때 ‘길과 문화’라는 곳에서 일하게 됐고, 거기서 다친 다리로 계속 걷다 보니까 무릎에 탈이 났어요. 그래서 또 한동안 못 걸었죠. 집에서 버티려니 눈치도 보이고 할 것도 없고, 그래서 제주로 내려왔어요. 제주에서 1년 정도 있었죠.

 

B | 제주에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문수 | 위미에 살고 있을 때 주인아주머니께서 아들이 들어오게 되었으니 나가 달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그때까지는 은(짝꿍)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의 방에서 지내거나, 지인의 소개로 방이 구해졌던 건데, 이제는 온전히 저희의 선택으로 제주에서 살 것을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온 거죠. 그런데 그때까지 가족들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도, 같이 살고 있다는 것도 얘기를 안 했어요. 각자 집에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둘이서 계속 지내고 싶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괜찮은 집을 구해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자는 생각에 집을 구해 부모님께 알렸고, 그럴 거면 결혼을 해라, 라는 말씀을 들어서 결혼을 하게 됐어요. 제주가 일단 자유롭고, 이미 지내고 있었으니까 여기에서 집을 구하는 게 편했어요. 도시 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었고요. 그게 2017년 봄이었네요.

B | 요즘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카메라를 바꿨죠. 사진집 작업하면서 후회되진 않았나요?

 

문수 | 계속 필름으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랬을 때 죄책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계속 짊어지고 갈 깜냥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현상하면서) 쓰는 약품들이 어떻게 처리될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아무리 대안적인 방식으로 현상을 한다고 해도, 이쪽(디지털)이 제가 원하는 방향인 것 같아요. 내 감정을 푸는 게 중요한지, 지키고 싶은 게 중요한지 생각했을 때 제 방향성은 예술이라는 작업보다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에요. 그러면서도 이게 변화인지, 포기인지 생각하게 돼요. 어쨌든 선택은 해야 하는 거니까요. 어쩌면 시대적인 흐름과 맞물려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B | 그래도 디지털에 기대하는 바, 필름과는 다른, 그런 부분들도 있나요?

 

문수 | 그걸 깊게 생각 안 해본 것 같아요. 필름에 비해 쓰레기가 안 나온다는 것? 필름과 자꾸 비교하게 되네요. 필름 작업한 사진들을 계속 정리하는 상황이라 아직 디지털로 넘어갔다는 느낌도 잘 안 들고요. 사실 지금 사진들, 정리하면서 볼수록 느낌이 너무 좋거든요. 가끔 디지털로 찍은 사진들을 가져와서 흑백으로 변환해서 볼 때가 있는데 어떤 건 괜찮네, 이 정도만 느끼고 더 이상 진행을 안 해요. 좀 익숙해졌나보다 생각하고 거기서 끝내고 있어요. 어떤 시기에는 아이폰으로 찍어둔 사진들이 있어서 모을 생각이거든요. 그런 거 생각하면 또 괜찮을 것도 같고. 어쨌든 시간은 지나버렸기 때문에 사진들은 어떻게든 묶어야 될 거고 찍어 놓은 게 디지털밖에 없다면 그걸로 또 익숙해지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모르겠어요. 사진의 본질적인 문제인지, 익숙해진 매체에 대한 미련인지.

 

B | 사진이란 장르가 필름과 함께 시작되기도 했으니. 어쩌면 문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닐 수도 있겠어요.

 

문수 | 저도 사진을 처음 배울 때 필름으로 배웠고, 표현수단으로서의 사진을 필름으로 찍기 시작했으니까요. 필름에는 롤이라는 단위가 있잖아요. 한 롤의 길이만큼 감정을 연주하라는 식으로 배웠어요. 그런 가르침이 저한테는 박혀 있으니까 그래서 디지털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죠. 예를 들어 필름은 찍을 때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으로 쭉 이어 나갈 수 있는데 디지털은 찍으면서 보게 되고, 감정보다는 미적인 감각만 남는 것 같아요. 살짝 비틀어보거나 바로잡는 것들에 집중하게 돼요. 그런 식으로 매커니즘이 다르죠. 필름은 한 롤에 시간성이 다 담기잖아요. 간격도 일정하게 살아 있고. 경험했던 순간들을 필름이라는 물질로 처음 보게 되죠. 디지털 같은 경우는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이미지들로만 만나잖아요. 처음 마주하는 사진의 모습도 다르죠. 흑백인 경우 더 그래요. 필름은 찍고서 바로 흑백으로 볼 수 있는데 디지털은 컬러로 변환된 것을 다시 흑백으로 변환해야 하니까요. 입자감 같은 것도 달라요. 필름은 한계가 주는 한계로서의 결과물인 거잖아요. 디지털도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점점 입자감을 없애는 쪽으로 진화하는데 필름은 은 입자가 항상 거기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특유의 느낌도 있죠.

 

B | 한계가 주는 특징이라는 게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문수 | 필름 사진은 시간과 관련된 것 같아요. ‘적정현상 시간’이라는 게 있는데, 예를 들어 10분이 적정 현상 시간이라고 하면 20분 현상해 버리면 한 롤 전부가 오버 되어 버리는 한계가 지어지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필름에 한계를 줄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그걸로 실험적인 작업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입자 자체를 터트려 버리거나 거칠게 하거나 하는 작업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거 자체가 주는 느낌이 있으니까요. 그런 우연성이 좋은 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건 제가 찍으려는 사진에 관해서 만인 것 같아요. 필름으로도 자유롭게 한계 짓지 않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이런 구분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필름 사진을 스캔해서 디지털처럼 노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요. 필름을 계속하다 보면 스스로한테 틀에 박힌 사진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요. 이전에도 필름으로 자유롭게, 그걸로만 할 수 있는 작업을 했나?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요. 저는 밖에 나가서 사진 찍는 거, 그게 제일 좋아서 시작한 건데 그건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 때는 차이가 그렇게 큰가? 싶기도 해요. 제가 필름을 기준으로 생각해서 디지털을 바라보니까 어려운 거고, 아예 새로운 매체로 넘어가자 마음먹고 디지털로 넘어가면 또 다른 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B | 두 번째 사진집은 어떤 시기에 대한 이야긴가요?

 

문수 | <봄에 이르는 길>시기가 끝나고, 마을 하수처리시설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도 필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고, 좀 더 깊게 알아보고자 그 일을 하기로 했죠. 그런데 그 안에서 제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많이 겪어서, 그 일들을 겪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가지고 찍었던 사진들이에요. 그때도 힘들었던 시기네요.

 

B | 일과 관련된 사건들인가요?

 

문수 | 네. 하수처리시설 관리에 대한 문제,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 같은 것들이요. 제가 일을 많이 안 해봐서 일수도 있는데,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도 느끼고, 분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를 좀 더 돌아보면서 나왔던 감정들이 사진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일 자체로만 보면 2019년까지가 기간인데, 글들이랑 사진을 비교해서 보니까 2018년 이후로는 좀 다른 이야기가 되어서 2018년까지로 시기를 묶었어요. 이번 것까지는 좀 내 안에 머무는 게 많고, 다음부터는 외부로 시선이 향해 있어요. 그래서 담기는 게 달라져요.

 

B |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된 거네요.

 

문수 | 드디어 계절 안에 들어온 것 같았죠. 계속 갇혀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계절은 계속 지나가는데 저는 봄의 우리 안에만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제목을 <봄의 우리로> 라고 붙였었어요. 봄이 상징하는 게 새롭게 태어나고 다시 시작하는, 그래서 희망이 가득 찬 그런 건데, 저는 사계절은 겪어도 계속 봄이라는 희망만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괜찮아질 거야 하는데 실제 봄은 겪지 못하고 봄의 우리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아픈 게 있으면 계절 감각도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아픈 건 그대로니까요. 그래도 봄이 되긴 되었네요. 시간은 흘렀고, 뭔가를 시작하긴 했으니, 이르렀다고 할 수 있으려나요. 영어로 사진집 이름을 지어준 형이 제 사진들을 보고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파우스트의 구절이 생각난다고 했는데, 저도 문득 그 말이 생각나네요.

B | 작업으로부터도 쉬어 가고 삶으로부터도 쉬는 ‘섬’ 과 같은 시간이 혹시 있나요.

 

문수 | 글쎄요. 요즘은 그냥 사진 작업할 때가 제일 즐거워요. 뭔가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다가도 집에 가서 작업 좀 혼자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건 있어요. 오늘은 찍기 싫은데? 했을 때 기타를 치는 경우도 있고, 은이랑 같이 미드 같은 거 볼 때도 있고. 그게 삶에서 벗어나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살아간다는 게 늘 치열한 건 아니니까요. 사진을 찍는 것도, 저는 다 삶처럼 느껴져요. 좀 구분이 어렵네요. 제가 계속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혼자 있는 시간을 두 배로 더 보내야 되고, 일을 하고 오면 더 여러 시간을 쉬어야 되고. 안 그러면 아주 어두운 사진으로 터져 나와요. 그럴 때 오히려 사진이 더 잘 될 수도 있긴 하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런데 사진이 더 잘 되게 하려고 그런 걸 선택하진 않을 것 같아요. 삶이 최우선이에요 저는. 일단 사진을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니까요.

 

B | 보통의 하루를 정리해 본다면 어떤 식으로 하루가 흘러가나요.

 

문수 | 일을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으니 그런 때가 평상시라고 한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거나 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있으면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계속 앉아 있다가, 움직여야겠다 싶을 때쯤 밥을 준비해요.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을 때도 있고, 사진 작업이 하고 싶을 때는 작업할 때도 있고요. 밥을 먹고 나서 또 몇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작업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아무 데나 가서 사진을 찍거나. 저녁 때쯤 들어와서 밥을 먹고, 때에 따라 다른 것 같네요. 혼자 있을 때는 거의 사진과 관련된 책이나 영상을 보는데, 은이랑 같이 있으면 밝고 즐겁고 싶을 때가 생기더라고요. 그럴 때 예능, 영화를 보거나 요즘 무슨 일이 있었나 얘기하고요. 일부러 친구들을 만나진 않아요. 친구들이 찾아오면 만나는데, 제가 만나자고 해서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요.

 

B | 앞으로도 사진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문수 | 제안을 들어보고 선택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자 해서 찍는 건 부담스럽긴 해요. 예전엔 필름을 사려고 결혼사진 찍는 일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돈을 벌어보자 하면 안 할 것 같아요. 근데 뭐 사진전을 열어서 누가 사겠다 하는 걸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건 제가 큰 노력 들이지 않아도 되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B | 사진전을 할 의향은 있으신 거군요?

 

문수 | 보여줘도 되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올해 들어 정리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쓸모없진 않겠다는 생각. 제가 사진을 찍는 이유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저 자신을 바라보고 솔직해지고 싶어서인 건데, 누구한테 보여줌으로써 솔직함에 더 다가갈 수 있나? 생각하면 그렇진 않은 것 같아서 지금까진 전혀 고려해 보지 않았죠. 아니면 정리를 안 해봐서 그런 생각을 못 했던 걸 수도 있고요. 너무 일기처럼 찍은 사진들이라서요. 일기장을 굳이 남들한테 전시까지 하면서 보여주진 않잖아요. 그 일기에 주제를 정하고 형식을 갖춰서 보여줘 볼까 하고 묶어 놓으면 보여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요즘 들어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물론 그게 유의미한가? 하는 생각은 들어요.

 

B | 그건 어느 방향으로의 의문인가요? 자신에게 인가요, 타인에게 인가요?

 

문수 | 대체로 이 영역 안에서요. 사진계 안에서 새로운가?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좀 비교가 들어간 생각인데, 어떤 책을 보면 그게 너무 좋아서, 그 사진들이 나를 계속 후벼 파고 내가 모르는 어떤 감정들을 불러일으켜서 한참 동안 말을 못 잇게 하는 그런 게 있는데, 내 사진이 그 정도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사진계에 이만큼 유효한 타격감을 주지 않는다면 굳이 남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나? 그냥 나를 드러내기 위한 전시, 나를 전시하기 위한 전시가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 기준으로 자꾸 저를 덮어 놓는 것 같아요. 만약에 누군가 “왜 전시했어요?”라고 물어본다고 상상하면, 답이 안 떠오르는 거죠. 왜 했지? (웃음) 배가 고파서 할 수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그것도 아니고. 문득 예전에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떠올랐는데, 예술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친구들이 얘기를 해줬어요. 그 얘기를 듣고 굳이 예술인 등록을 안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 에너지를 쓸 마음이 아직은 안 나는 것 같아요. 제가 사진을 찍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거 없으면 못 살겠다’도 아니었고요. 근데 ‘이걸 하면 살 순 있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B | 그 둘은 다른 생각인가요?

 

문수 | 달라요. 안 하면 못 살겠다는 아닌데 이걸 하면 살아 있긴 해요. 사진만 찍으라고 하면 딱히 찍을 게 없거든요. 그런데 삶을 겪다가 느낀 게 있으면 사진으로 찍어서 나오잖아요. 그랬을 때 내가 뭔가를 느꼈고, 그것을 표현했다는 걸 사진이 저한테 다시 알려주는 것 같아요. ‘너 살아 있다’고요. 그래서 하는 게 제일 커요. 제가 어떤 일을 할 때 사진 찍는 일보다 다른 일을 하려고 하는 건 거기서 뭔가를 느끼고 싶어서예요. 그 느낀 것들을 글로 쓰거나 하는 것보다 사진으로 풀었을 때 훨씬 저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걸 계속 느끼고 싶고요. 느낀다는 건 제가 살아있다는 것과 같거든요. 삶을 살고, 삶에서 나온 감정으로 사진으로 한 번 더 살고. 그게 좋아요. 사실 이건 그냥 믿음인데요, 저는 주로 걸으면서 사진을 찍거든요. 걷기 작용이 주는 효과일수도 있는데 그냥 걷는 것보다 사진을 찍으면서 걸으면 후련해지는 게,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 경험들이 계속 쌓여요. 제가 첫 경험했던 것도 그거였고. 그 느낌이 좋아서 계속 믿게 되는 거고요.

 

B | 저는 사진을 찍으면서 걸을 때는 이것에도 저것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진을 찍으면서 후련한 느낌을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문수 | 생각이 없어져요. 평소에 생각이 좀 많기도 하고, 우후죽순 이것저것 생각나기도 하고요. 근데 카메라를 들고 앞에 있는 걸 하나 찍기 시작하잖아요. 그게 육상선수가 시작점에서 ‘탕’하는 총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때부터 시작돼요. 생각이 없어지고 모든 걸 평온하게 바라보게 돼요. 시공간 안에 있는 그대로가 되는 것 같아요.

 

B | 사진으로 처음 경험했던 게 후련함이라고 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어요.

 

문수 |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일상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사진과를 나온 고등학교 후배가 웨딩, 돌사진 아르바이트를 제안했어요. 그러다 보니 사진 찍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카페나 이런 데는 자주 들락날락거렸죠. 그때 알게 된 사이트가 SLR갤러리였고 흑백 필름 사진도 막연하게 좋아해서 올라오는 걸 자주 구경했는데, 연작처럼 흑백사진이 올라온 걸 보고,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 분한테 연락을 했죠. 게시물 아래, 사진을 같이 찍는 모임을 하는데 암실도 있고 철학, 미학 공부도 함께 한다는 설명이 있었거든요. 가서 면접 같은 것도 봤어요. 들어가서 처음으로 스터디를 들었죠. 다른 내용은 잘 기억 안 나는데 선생님이 솔직하게 찍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어디서 본 대로 따라 찍으려고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냥 찍어 봐라.’ 하셔서 저녁에 동네를 돌면서 한 롤을 찍었어요. 불면증이 있었던 때였는데, 그날 잠을 너무 푹 잔 거요. ‘이렇게 표현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진으로 표현이 된다면 사진은 나한테 맞는 매체인가보다 하면서 그때부터 믿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서 점점 사진에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사진으로 드러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편하게 솔직해져 보는 거예요. 제게는 ‘언젠가는 폭발해 버릴지도 모르는 어떤 게 감춰져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요. 내가 누군가와 있을 때 긴장을 하니까 그걸 풀고 싶은 거죠. 그렇지 않을 때는 불편한 순간들이 많은가 봐요, 삶에서. 저를 풀어놓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사진이란 매체는 나를 풀어놔도 허용되는 느낌이에요. 마치 모든 게 허용될 것 같은…

QR코드를 클릭하시면, 인터뷰 후 문수가 모으고, 보경이 편집한 “풍경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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