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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읽는다

[읽는다] 연구스위치|(2차) 예술과 사회 : 우리는 준비되어 있었는가? ✍진해정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3. 15.

 우리는 준비되어 있었는가? (2회)

: 2017′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을 돌아보며

 

일시_ 102() 11-14

장소_ 스튜디오 자유

참여자_ 곽정은 (연출가/조각바람 프로젝트)

김민조 (비평가/연극비평집단 시선)

이하영 (배우/창작집단 얼루다)

진해정 (연출자/서울청년예술인회의 연구릴레이)

황유택 (연출자/극단 낯선사람)

 

진해정 | 사업의 진행 과정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여쭤보려 합니다. 먼저, 1년이라는 제작 기간의 확보가 작업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을까요? 작업과정의 리듬이나 여유 같은 것들이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곽정은 | 사업을 통해서 <깔깔깔 탐험대>라는 작품을 제작했어요. 당연히 다른 때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고요. 이전에는 공연 날짜가 잡히면 거기에 맞춰서 연습 일정을 정했는데, 이 사업으로 다양한 창작 분야와 과정을 전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아니었는데도 희곡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예술교육 팀과 함께 리서치와 디벨롭 과정을 여유 있게 밟을 수 있었어요.

반면 살짝 느슨해지는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1년짜리 사업이면 사실 이 작업 하나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가끔 다른 작품들보다 청년예술단 사업이 후순위로 밀려나기도 했었어요. 단계를 꼭꼭 밟아나가면 더 단단해져야 하는데, 어느 순간엔 약간 허술해지기도 했죠. 그래서 멤버들끼리 마음을 다 잡은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 모로 특이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황유택 | 1년 동안 심도 있게 작업을 하는 일이 이상적인 과정임은 분명한데,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여야 하는 일 등이 다소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연극 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극단에 온전히 매진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게다가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듬해의 계획도 세울 수 있었는데요. 사업이 준 안정감이 아니었으면 그런 구상은 시도해보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돌아보면 이때의 사업이 2019년 말까지 계속 영향을 줬어요. 2017년 중반에 세웠던 계획을 2018년에 수행했고, 청년예술단 사업으로 제작했던 작품을 19년도까지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상연을 했거든요. 저희 극단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준 사업이라, 상당히 좋고 의미 있었습니다.

이하영사실 저희 팀은 그해 청년예술단 사업에서 처음으로 중도포기를 한 팀입니다. 사업을 접은 게 8월 말이었을 거예요. 원래 계획으로는 7월에 두 작품으로 리딩 공연을 하고, 연말에 본 공연을 상연하려 했었어요. 창작극 작업이다 보니 작가들의 작업 진행을 우선순위에 두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연 작가 한 분이 새로운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집필이 함께 진행됐는데, 작품의 상태가 팀원들에게 공유하는 내용과 점점 달라졌어요. 결국 대본이 리딩 공연 3주 전까지도 나오질 않았어요.

협업이라는 것이 참 어려워요. 당시에 활동비와 제작비가 보장이 됐는데, 이 금액적인 부분 때문에 각자의 입장이 달라지더라고요. ‘순수한 마음으로 공연을 해보자. 그런데 돈이 따라오네?’ 이런 생각에서 돈이 따라오는데 내 입장은 이래. 뭐가 문제지?’ 이렇게 변하는 거예요. 대표자인 제 입장에서는 다른 팀원들과 객원 배우, 스태프까지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합의되지 않는 말들로 모두가 괴로워하는 상황보다는 이 관계를 멈추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해 사업에 멘토제가 있었는데요. 멘토는 이상적인 협업을 계속 요청을 하셨어요. 여러 번 미팅도 가졌었고요. 그런데 참여했던 분들 모두가 이런 작업에 굳은살이 박인 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감정적인 말들이 오가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타격을 많이들 입으셨어요. 결국에는 그만두는 것이 맞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단체 활동을 정리했습니다. 팀원들이나 저를 포함해서,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고 정신적 피해를 줬다는 생각에 많이 아쉬워요. 그렇지만 끝까지 갔다면 모두가 다 연극을 그만뒀을 것 같아요.

진해정 | 어려운 말씀을 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2018년 청년예술단 사업 수혜자였는데요. 다른 부분들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일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어요. 특히 이라는 것이 만들어내는 묘한 문제와 감정들이 있더라고요.

곽정은 |  활동비라는 게 두 가지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 ‘매달 돈이 들어오니 나도 그만큼 이바지해야지라는 책임감을 스스로 부여하게 되면서도, ‘내가 그러니 너도 그래야 돼라는 기대가 다른 팀원들한테 생길 때가 있었습니다. 프리프로덕션을 길게 이어가는 과정에서 기대만큼 상대에게서 어떤 모습들이 나오지 않을 때 마음에 섭섭함이 일어나기도 하는 거예요. 창작과정이 실상 모든 팀원에게 동일하게 진행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과정에서의 역할 차이들이 돈과 관련되면서 자칫 어긋나면 감정 상하기 쉽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민조 | 시선 팀은 매우 평화로웠습니다 (웃음). 아무래도 저희는 역할을 나눌 필요가 없었고, 각자 글을 쓰는 일을 하면 돼서요. 안정된 상황에서 기존 환경이나 지원제도 내에서는 불가능했던 방식을 청년예술단 사업을 통해서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시기에 다른 팀에서도 섭외 멤버로서 활동을 했었는데요. 가보면 마음고생들이 굉장히 많으셨어요. 구성원들이 의기투합했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의기투합한 상황이었죠. 서로가 갖고 있는 연극관, 작업에 대한 견해들이 맞춰진 상태로 한 배를 탄 게 아니었거든요. 연극계 내에서 수평적인 구조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보니 팀원들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었고, 그만큼 정리가 되지 않은 생각들이 풀어져 나왔던 듯해요. 그런 면에서 사업이 시행됐던 3년이 굉장히 많이 싸웠던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황유택 물론 저의 관점이긴 하지만, 저희 팀 안에서는 그런 문제는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애초에 대학교 4년을 같이 보냈고, 그 안에서도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라서요. 작업 방식 등 모든 부분을 서로 공감하고 출발한 팀이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진해정 |  당시의 자료를 살펴보니 작업 외에 멘토링 등 주최 측으로부터 요구되는 활동들이 있었던데요. 그와 관련한 경험들은 어떠셨는지요?

이하영 | 멘토링 과정에서 도움도 받았지만 쓴맛도 많이 본 것 같아요. 팀이 해체되고 나서 멘토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요. ‘내가 그때 너무 이상적인 입장을 강요했던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멘토라도 해도 이 팀이 어떤 과정을 겪고 있는지 체감하실 수가 없잖아요. 여기서는 말하기 힘든 참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멘토가 그런 부분까지 다 알 수도 없었고요. 경험에 기반해서 말씀해주시다보니 저희와 맞지 않았던 거죠. 실질적인 작업에 대한 멘토링을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곁에서 지켜봐주시고 중재를 해주시려 한 것이 저희가 경험한 멘토링이었던 것 같아요.

황유택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희 팀이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의 경우엔 2015년부터 오랜 친분이 있었던 팀과 함께, 학교 교수님이셨던 연출님으로부터 그룹 멘토링을 받았거든요. 연출님이 작품에 대한 자문보다는 팀들끼리의 네트워킹을 중점에 두셔서 같이 모이는 자리가 많았습니다. 그 팀들과는 지금까지도 연대를 하고 있어요. 즐거운 경험이었죠. 도움도 많이 됐고요.

곽정은 | 저희 팀의 멘토는 평론가분이셨어요. 선정팀 중에 청소년극 단체가 한 팀 더 있어서 그 두 팀을 담당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멘토링 제도에 대해서 사실 불만이 있긴 했어요 (웃음). 멘토라는 말이 주는 거부감이 확실히 있었거든요. ‘청년들은 늘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나? 왜 우리 마음대로 못하게 하지?’ 이런 지레짐작에 의한 감정이 있었지요.

그런데 실제로 만났을 때 굉장히 마음이 편안했어요. 일단 그분께서 편하게 저희를 대해주셨고요. 아동청소년극의 특성과 제작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분이셨기에 작품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받았습니다. 만약에 연출가가 멘토였다면 이런 관계는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요.

진해정 | 공모 심사평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습니다. ‘고민의 성숙과 진지함이 기성연극계를 자극하기에 넘치는 행보를 보이는 단체도 적지 않았다’, ‘이 사업이 서울시민의 세금을 통해 청년문화예술의 열악한 환경에 대응하고자 설계된 만큼 공공의 가치를 전제로 최종 선정하였다이 구절들을 읽으면서 사업의 주최 측이 청년예술인들에게 기성연극에 대한 반대항혹은 공공 가치의 실현 의무등 어떤 틀을 부과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는데요. 실제 사업을 수행하시면서 그런 압력을 받으셨거나 스스로 느끼신 적은 없으신지요?

황유택 | 작업을 하면서는 딱히 시민이나 공공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민으로서 도움을 받았던 경험은 있어요. 저희가 그때 버스가 필요했었거든요. 그래서 서울시에 빌려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실제로 빌려줬어요. 서울시 관할이라 그랬는지 서류 한 장으로 해결이 되더라고요.

아마도 사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세금을 쓰는 것이 사실이니 심사평과 같은 표현들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사업의 결과보고서에는 몇 명의 시민이 봤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지만요.

그런데 최근에는 청년예술단 사업이 자치구 기초문화재단으로 넘어갔잖아요. ‘구청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들어요. 아무래도 기초문화재단은 자치구민의 예술 향유를 중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 예술인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하영 | 서울시에서는 예술인들을 시민으로 대해줬던 듯해요. ‘시민인 사람들이 예술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복지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태도랄까요. 담당자들이 청년예술인들을 이해하면서, 파트너십을 갖고 함께 사업을 진행한다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어요.

김민조 | 연극비평지라는 지점에서 저희가 오히려 자유로웠던 것이, ‘시민들이 얼마나 (월간 <시선>) 봤느냐보다는 연극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느냐와 같은 지표가 중요했습니다. 비평지가 워낙 적은 상황이었고, 많은 연극인들께서 비평이 부족하다’, ‘리뷰와 담론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개방성 지표에서 다소 비껴갔던 부분들이 있었던 듯합니다.

이 이슈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유택 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현실적으로 기관 입장에서 세금이라는 워딩을 어딘가에는 쓸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렇다고 해서 예술인들이 시민을 생각하면서 연극을 만들어서는 안 되잖아요. 그러는 순간 망가져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사이에 굉장히 알게 모르게 연극계 내에서 생활예술등의 단어처럼 민감한 말들을 둘러싸고 부딪히는 균열의 지점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3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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