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진 '숨은참조'/읽는다

[읽는다] 연구스위치|(2차) 예술과 사회 : ‘다원예술’_’블랙리스트’로부터 예술의 존재를 묻다 ✍정윤희(불나방 기획)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3. 15.

‘다원예술’_’블랙리스트’로부터 예술의 존재를 묻다

 chapter 2 : 다원? 그게 뭔데?

#예술과사회#지원사업의부활#다원예술#반복되는검열

정윤희 (미술작가, 비평그룹 시각)

본 필자는 “나는 왜 아직도 여전히 블랙리스트를 말하는가?”라는 자기 당위성 있는 질문을 던지며, 지난 블랙리스트(이하 블랙)의 작동 구조의 수단이었던 ‘문화예술 지원정책’ 변화 및 사업을 나열하며 글을 시작했다. 촛불, 미투, 블랙을 경유하며 변화하는, 변화해야만 하는 현재 기대했지만 반복되는 검열과 차별, 혐오 증후들이 곳곳에 존재, 생산, 증식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변화되는 바람 속에 예술의 가치, 사회성 그리고 지금 지원정책을 다시 살펴보고 동료들과 몰랐던 블랙을 알고, 알지만 자세히 몰랐던 검열을 다시 보았다. 당사자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각자 문헌, 사건, 구술, 경험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함께 그리고 따로 또 같이 이야기 나눈 것들 정리하여 <연구 스위치>를 통해 공유한다.

우리는 다시금 블랙을 말하고 또 다시 반복적인 질문을 던져본다우리는 “왜 아직도 여전히 블랙리스트틀 말하는가?”

불나방(남하나)

* <연구 스위치>에서 정리한 세 가지의 주제 ‘경계하기, 예술과 사회, 지원 정책’을 중심으로 주제별 연구 글을 공유할 예정이며, 2022년 1월에는 번외편을 통해 예술대학생의 위치에서 바라본 블랙리스트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블랙리스트의 작동 구조에 따른 자기검열 구조 파악>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예술의 전략으로서 다원예술

다원 예술의 정의와 개념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행위는 꽤 많은 시사점을 갖는다. 동시대의 예술은 유미주의적 미학을 넘어 사회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반영하고 개입해왔다. 미학자 아서단토는 1960년대에 역사적으로 규정되어오던 장르 중심의 예술을 넘어 실험적이고 새롭고, 다원적인 예술 담론과 맥이 닿아있는 예술의 시작, ‘예술의 종말을 주장하지 않았던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2005다원예술지원을 시작해온 이후 다원예술을 한 장르로 인식하는 단면을 다원예술이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지원받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서 확인한다. 어쩌면 지원기관에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일 수 있으나 다원예술 존재의 규정에 대해 조금 뾰족해질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정의하는 다원예술이란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다양한 예술적 가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창작활동으로서, 탈장르 예술, 복합장르 예술, 새로운 장르의 예술, 비주류예술, 문화 다원주의적 예술, 독립예술 등을 중심적 대상으로 하는 개념이다. 아르코 22년 문예진흥기금-다원예술 지원에서 예술의 다양한 시도에 대한 존중과 지원을 통해 새로운 예술과 창작 경향을 견인하기 위하여 기존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다원적 예술, 기존 장르별 지원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창작유형에 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최근 다원예술 지원을 둘러싼 제도적 쟁점을 살펴보면, 예술창작에서 장르 간 융합이나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보편적 표현양식이 된 지 오래고, 장르 지원사업의 선정기준과 교집합이 커지므로 결과적으로는 선정 대상에 차이가 나지 않는 추세다보니 굳이 다원예술 지원을 할 필요가 있어 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예술인 복지제도에서 포괄하는 예술인 범위가 확장되면서 아르코는 서커스, 그림책 인형극, 인디 음악 등의 지원책을 마련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다원 예술 지원 제도의 논의 시점을 좀 더 본질적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겠다.

예술의 정의와 개념은 국가, 사회, 예술씬의 관계와 제도 속에서 실질적 존재 방식 간에 차이가 발생 한다. ‘무엇이 예술이고 예술이 아닌가? 누가 인정받은 작가이고 무엇이 우수한 작품인가? ’예술‘, ’예술가임을 식별하는 역할이 예술계 내부에 있었지만 이제 예술-예술가의 자격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식별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예술인 지원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늘 예술인 스스로 사회적 가치와 쓰임새를 증명하라는 것으로 귀결짓는다. 그런데 국가는 충분히 예술-예술인을 국가 장치로 활용해왔다.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된 이래로 국가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하여 국가는 창작 예술의 지원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공적 지원이 발생하는 각종 정부 지원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국가와 정부의 정책과 홍보의 도구로 활용되는 속성이 있는 것이다. 예술인에게는 이를 잘 실행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다. 일례로 전두환 정부는 노골적으로 국가 지배 장치로서 문화예술 검열을 당연시하고 도구화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문체부는 소위 창작예술 지원보다는 문화산업 진흥에 더 많은 자원을 들여왔다. 노무현 정부는 문화국가원리 하에 국민의 여가 선용 관련 지원을 다각화 하였고, ‘박근혜 정부는 형식과 명분만을 오려내어 예술 창작 지원을 기획지원으로 바꾸어 블랙리스트를 실행하는데 활용하기도 했다. 물론 자세히 살펴보면 지난 50년간 창작 지원과 관련하여 예술현장의 요구들이 반영되고 소위 예술인 복지와 관련한 제도가 진화해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¹⁾ 사건은 국가와 행정 체계, 예술/예술인의 관계가 전근대적인 위계 속에서 폭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다원예술 폐지와 복원, 블랙리스트는 다시 발생하지 않을까?

2015년 국정농단 시기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실험적 예술 및 다양성 증진 지원 사업‘ (이하 다원예술지원사업’)>은 폐지됐었다. 그 이유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과정에서 당시 예술진흥본부장의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가 다원 예술지원 사업에 많기 때문에 이 사업을 폐지했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작동 원리를 살펴보면 다원 예술 지원 자체를 폐지 시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판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다양하게 드러내는 특성이 두드러지는 다원 예술이 불편했을 것이다. 다원예술지원 사업의 폐지는 다원예술의 활동, 공간, 주체, 담론으로 축척 되어 온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다양한 예술 실현의 장을 축소 시켰고 프린지네트워크, 변방예술제 등 다원예술로 활동해온 존재들의 관계와 예술 창작의 장을 넓혀온 예술 네트워크들의 상흔으로 남았다.

올해 다원예술 지원 사업은 폐지 6년 만에 다시 복원된 이유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가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권고한 제도개선 이행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개선 과제의 기조는 블랙리스트가 재발되지 않도록 수직적이며 전근대적인 관료제의 폐해와 퇴행적인 협치 구조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아르코가 예술현장과 평등한 관계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기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원예술 지원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단지 폐지된 사업을 복원하는 차원은 아니다. 회복적 정의로 지원사업을 전환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그래서 그간 아르코는 프린지, 변방예술제등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단체들과 지원사업 복원을 논의해왔고, 의견을 수렴하는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그런데 아르코는 올해 ‘블라인드 동료평가제²⁾’ 심의제도를 도입했다.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단체의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필자는 아르코가 이렇게 부적합한 방식을 채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 위한 기관 내부의 노력들이 있었으나, 시행하는 과정 속에서 검열, 인권침해 등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예술인들은 SNS를 통해 문제를 공론화 하였다. 필자는 전문가 심의로 참여하게 되면서 기관에게 확인하고 요구했던 지점은 피해 예술단체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와 후속 조치, 그리고 이 문제를 현장의 의견을 듣고 해결하기 위한 간담회를 시급하게 여는 것이었다. 기관은 이미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기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는 동안 현장 예술인들의 목소리가 모아졌고 블라인드 방식 동료집단 심의 폐지 촉구 성명서를 발표 했다.

아르코 블라인드 동료평가제인권침해 사건은 몇 가지 시사점을 남겼다. 첫째 국가범죄에 공조한 예술기관에 내제된 조직 문화와 주체의 인식이 변화할 수 있을까? 공공 기관 행정 관료체계의 고질적 문제는 예술현장과의 위계적 수직관계를 유지하려는 속성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현재 조직구조와 운영의 실효성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다원예술 심의 절차에 형식적 변화를 꾀하였으나 정작 본질을 놓치게 한 것은 단순한 실수 일까? 의도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부적합한 방식으로 작동한 동료평가제와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과 해결의 과정 평가와 기록이 필요하겠다.

정부 기관이 예술 현장에 피해를 입히거나 발생의 원인을 제공하고 공적 책임 의식 조차 없었기 때문에 블랙리스트가 가능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가? 블랙리스트 이후 아르코와 같은 공공 기관은 피해 회복에 대한 예술현장의 요구를 미온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다원예술 지원 심의방식에 변화를 주기 위하여 행정 체계를 설득하고 실행한 노력으로 기관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관료의 기술은 바로 지연에 있다. 이렇게 밍기적 밍기적 거리다가 블랙리스트가 사회적으로 망각되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동료평가 심의와 문제가 공론화 되어가는 과정속에서 예술인 당사자의 자기 검열 인식과 경쟁을 내면화한 주체임이 드러나 버렸다. 물론 민주적인 방식으로 예술인의 목소리를 모으고 기관에 문제를 제기하고 요구를 전달하는 과정과 이후의 결과 등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공공기관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없애고 심사 제도에 개입하는 것이 용인되는 토양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예술 현장의 내재적 성찰이 필요한 지점이다.

 

예술의 전략으로서 다원예술

다원예술개념의 외연과 내용이 모호함은 예술을 지키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예술의 주요 명제인 예술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의 문제는 국가 행정조직과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점점 설득력을 잃어간다. 때로는 사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예술의 명제를 엘리트 예술에 갇힌 예술인들의 이기심으로 호도하기도 한다. 블랙리스트, 미투, 코로나 펜데믹은 창조적 신화속에서 삶의 곤란을 숙명으로 여겨온 예술인들에게 삶 권리의 문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대 예술과 삶의 문제 사이의 간극은 예술의 공허함을 부추긴다. “예술이 무엇을 할 수는 있을까

다원예술을 지원받을 수 있는 합당한 제도는 무엇일까? 그러한 완결적인 지원제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다원예술을 지원제도에 수렴될 수 있는 예술형태로 위치 짓기 위하여 다원예술의 개념을 정교화하기보다 포괄적으로 세우고 그 모호함에 담대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의 현실에 비추에 독립성과 자유가 보장된 창작을 위하여 공적 지원을 확보해 나가기 위한 방안은 필요하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다원예술은 비주류예술, 다원주의 예술, 독립예술 등은 장르 간 종 횡단을 넘나들며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현재에는 매체의 특수성에 기반을 두고 각각의 예술장르가 협업하여 형식적 실험, 다원성을 견지하는 예술, 국내의 다원예술의 현재적 시점에서는 다양한 장르가 하나의 의제로 만나 현실 참여적 태도로서 축제의 형식으로 모아지는 것이 유형화 된 것 같다. 다원예술 지원은 기존제도에서 포괄할 수 없는 새롭고 규정 짓기 어려운 실험적인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창작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현장이 나서서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예술적 실천을 규정 가능한 정태적 대상으로 환원하는 것은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적지원을 도모하기 위하여 다원예술을 장르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의 예술 지원의 틀에서 범주화하고 동질선상에서 논의되고 제도화 하는 것은 넘어서야 할 당면한 과제다. 블랙리스트와 미투 이후 예술인들은 사회적 상황과 국가 통치 제도, 표현의자유, 예술씬의 위계 문제, 예술인의 열악한 지위를 좀더 예각화 하여 보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예술 창작 전반을 전복하는 방식, 형식, 정서. 역할을 해채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찌보면 다원예술은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 버팀목일 수 있다.


1) ‘블랙리스트는 국가가 예술인에게 정치적 이념이 다르고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과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검열, 사찰, 배제, 차별한 국가 폭력이다. 국가가 헌법을 비롯한 총체적인 법제도를 위반하여 국가조직의 최상부 청와대의 지시로 국정원, 산하기관 및 예술지원 단체에 이르기까지 조직적, 전방위적으로 벌어진 반헌법적 국가범죄이다. - 블랙리스트 제도개선 및 진상조사 위원회

2) 지원신청자 전원이 심사자로 참여하는 방식. 지원심의자료공유시스템 및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을 사용하여, 심사자 287명이 신원 비공개로 무작위 배정된 7개의 그룹 내 각 42건씩 온라인 심의(비대면)를 진행함.(2021.5.31.~6.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