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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읽는다

[읽는다] 연구스위치|(1차) 경계 : 우리는 준비되어 있었는가? ✍진해정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11. 11.

 우리는 준비되어 있었는가? : 2017′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을 돌아보며

✍진해정

 

2017, ‘서울청년예술단이라는 명칭의 지원사업이 공표되었다. 3년 후, 이 사업은 사라졌다.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만큼의 기억이 남았다. 기억을 되밟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와 미래를 감각하게 한다. 청년예술단 첫 해를 통과했던 이들과 함께 당시와 지금, 도래할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일시_ 102() 11-14

장소_ 스튜디오 자유

참여자_ 곽정은 (연출가/조각바람 프로젝트)

김민조 (비평가/연극비평집단 시선)

이하영 (배우/창작집단 얼루다)

진해정 (연출자/서울청년예술인회의 연구릴레이)

황유택 (연출자/극단 낯선사람)

 

진해정|서울청년예술인회의 연구릴레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해정입니다. 2017년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의 참여 경험에 대하여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38개의 단체 중 4팀의 대표자 혹은 구성원분들을 모셨는데요. 가능한 한 여러 관점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배우·연출·기획·비평 등 각기 다른 직군에 계신 분들께 인터뷰 제의를 드렸습니다. 우선 본인과 단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황유택|연출가와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황유택이라고 합니다. ‘극단 낯선사람’(이하 낯선사람)이라는 단체에서 작업을 해왔는데요. 요즘은 서교예술실험센터와 예술청에서 공동운영단으로 활동하고 있고,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문화예술 정책과 관련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김민조|김민조라고 합니다. ‘연극비평집단 시선’(이하 시선)에서 필진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선 팀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청년예술단 사업을 진행했고요. 저는 비평과 드라마터그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곽정은|‘조각바람 프로젝트’(이하 조각바람)에서 연출 작업을 하고 있는 곽정은입니다. 저희 단체는 2017년 청년예술단 사업을 계기로 창단되었고요. 주로 아동청소년극을 만들고 있고, 연극놀이와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하영|배우 이하영입니다. 현재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서 매니저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표자로 참여했던 ‘창작집단 얼루다’는 2017년 청년예술단 사업을 통해 만들어졌는데요. 그해에만 일시적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진해정|2017년은 서울청년예술단 사업 시행의 첫 해였는데요. 사업을 시작하시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생각을 품고 작업을 하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곽정은|대학 학부 시절에 연출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 몇몇 극단에서 조연출 생활을 했는데, 원래부터 아동청소년극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동청소년극 과정이 있는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어요. 그곳에서 뜻 맞는 사람들을 만나 ‘극단 조각바람’이라는 팀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해정|하영 님은 배우로 활동을 하고 계셨지요?

이하영|맞아요. 청년예술단 사업 즈음에는 ‘극단 경험과상상’이라는 곳에 있었고요. 극단에서 알게 된 배우들, 작가들과 새로운 작업, 극단 안에서 할 수 없었던 작업들을 도모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유택|‘극단 낯선사람’을 2015년에 창단했어요. 대학 학부생 시절이었는데요. 학교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모여 학교 경연이나 젊은연극제 등에 참여를 했었습니다. 2016년이 다 함께 졸업을 하는 해였는데, 운 좋게 서울연극제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대부분의 공모 사업들은 ‘데뷔’의 경력이 있어야만 지원할 수 있었는데, 서울연극제 참여라는 이력 덕에 그해부터 자잘한 지원사업들에 응모할 수 있었습니다.

김민조|시선 팀은 17년도에 창단이 됐습니다. 그때 연극 비평계에서의 지면은 메이저 잡지 두 군데뿐이었고, 젊은 비평가가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전문지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저 개인으로서는 2017년에 드라마터그 작업을 했었고요. 비평 활동은 2018년 1월에 시작했습니다.

진해정|청년예술단 사업 소식을 어떻게 접하셨는지요? 사업 참여를 결심한 이유와 이후 단체 구성 과정도 함께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황유택|2016년부터 지원사업을 찾고, 지원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지금에야 청년예술단과 비슷한 지원사업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이 사업이 기존의 것들과 너무나 다른 형태였어요. 경력이 없어도, 사업자등록증이 없어도 지원이 가능했거든요. 그동안 단체 자체에서 수익 공급이 어려웠고, 단원들이 각각 생계 문제도 겪고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듯한 사업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청년’에 포커싱한 사업이었잖아요. 다른 단체들과의 경쟁력에 있어서 ‘우리가 유리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사업 참여 단체 중 저희 팀의 인원이 가장 많았습니다. 거의 10명에 가까웠죠. 모두 같은 학교 출신이었고 배우·기획·연출 등이 섞여 있었습니다. 청년예술단 사업으로 인해 새롭게 영입된 인원은 없었고요.

곽정은|저희 팀은 낯선사람 팀과 반대로, 그해까지 지원사업에 응모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단원들 대부분이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할 시절이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아는 기획자분이 사업 소식을 알려주셨어요. 사실 처음에는 흘려들었어요. 유택 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전의 지원사업들 중 청년에 주목하는 사업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지원사업은 경력 많은 단체만 선정되는 거야’라고 으레 생각하고 있었어요. 주눅이 들어있던 거죠 (웃음). 응모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을 위한 지원사업이라니 해보자’ 결심을 했었습니다.

응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희한테 가장 걸림돌이 된 부분은 ‘나이’였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희는 그 전부터 ‘극단 조각바람’이라는 단체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요. 청년예술단 사업에 ‘35세 이하’라는 나이 제한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다시 단체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36세 이상인 팀원이 세 명이나 있었거든요. 이분들은 사업 선정 후 서포터로서 작업에 참여하시는 걸로 얘기를 나눈 후 응모를 진행했습니다.

이하영|인터넷 서치를 통해 사업 소식을 접했어요. 평소에도 서울시 등 여러 홈페이지에서 제가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을 자주 찾아보는 편인데요. 당시에도 그렇게 사업을 발견한 거죠. 사업 내용을 보자마자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작비와 활동비가 따로 책정된 부분, 특히나 매달 활동비가 지급된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어요. 앞서 말씀해주셨듯 경력 등이 필수 조건이 아니어서 마음 편히 지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업 응모를 위해 제가 주도해서 단체를 꾸렸어요. 전부터 알고 있던 여자 작가 2명이 있었어요.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작가들이었는데, 본인들의 텍스트를 공연화하는 일에 많이 좌절하고 있었죠. 그분들을 1순위로 배치했고, 다음에 기획자와 배우들을 섭외했습니다. 진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가 대표를 맡게 됐고요.

진해정|시선 팀은 어떠셨나요? 당시 사업 공고를 보면 ‘증빙가능한 예술활동 경력을 가진 예술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고, 특히 연극 분야의 경우 ‘1개 이상의 작품 상연’이 선정팀의 필수 활동 내용으로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비평가분들로서는 다소 거리감과 부담감을 느끼셨을 수도 있을 듯한데, 어떤 과정으로 응모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김민조|아무래도 젊은 비평가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습니다. 대체로 전문지의 간사로 있거나 실무를 맡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같이 모여 비평적인 의견을 나눌 기회가 전무한 현실이었지요. 그때도 비평 지원사업은 있었습니다만, 웹진을 창간해야만 수혜가 가능했어요. 돈과 인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했죠. 그렇지 않으면 소위 ‘열정페이’처럼 서로 착취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기존 사업들이 조직 구성 등 여러 면에서 부담스러운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비평으로 지원을 받겠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원년 멤버가 세 분이셨는데요. 각자 연극 전문지에서 간사, 편집위원 등의 활동을 하면서 서로 알고 있던 사이셨어요. 그중 한 분이 서울청년예술단 소식을 접했고, 서울시에 ‘비평 팀도 지원 가능하냐’고 문의를 하셨어요. 그쪽에서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후에 소규모 단원 체제로 월간지를 발간하겠다는 계획으로 사업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진해정|청년예술단 사업 이전에 ‘청년예술’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처음 그 단어를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이하영|유택 님 말씀 중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딱 이 시기에 신진 예술가들, 그러니까 이제 막 발을 떼려는 예술인들에게 기관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경력을 증명해야만 신청할 수 있는 사업들이 확실히 다수였거든요. 그때쯤 ‘청년’, ‘청년예술가’라는 단어들을 많이 들었던 듯한데, 당시에 제가 30대 초반이었거든요. ‘20대 초반도 아닌데, 청년예술가라는 바운더리 안에 내가 포함이 되나?’라는 의문이 생기긴 했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론 고민이 많았던 때라… 경험들을 쌓아가고는 있었지만 공연계 안에 안정적으로 착지한 느낌이 없었거든요. 원래 뭔가에 애매하게 조금 걸쳐져 있을 때 가장 고민이 많잖아요. 그래서인지 ‘청년예술가’라는 지칭에서 위안을 받았던 것 같아요.

곽정은|그 시기 이전에는 정말 ‘청년’이라는 말을 잘 안 붙였던 듯해요. 저 역시 굉장히 생소했어요. 30대가 굉장히 묘한 나이인 거예요. 나이 조항 때문에 함께 지원하지 못한 동료들을 농담으로 ‘중년예술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웃음) 35세에서 39세, 그 나이대가 굉장히 애매한 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연출 분야로 생각해보자면 조연출을 맡기에는 나이가 많고 연출을 맡기에는 다소 젊다 싶은, 그런 식인 거죠. ‘청년’이라는 단어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게 됐었어요.

김민조|일상적으로 ‘청년’이라 하면 다들 말씀하신 것처럼 20대~30대 초반의 나이대를 생각하실 텐데요. ‘청년예술’이라 말할 때 제가 기억나는 건 <화학작용>이라는 페스티벌입니다. 3회가 열렸던 2017년에 드라마터그로 그 행사에 참여를 했었는데요. 행사의 모토가 ‘30대 젊은 연출가들의 페스티벌’이었거든요. ‘30대 연출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분들, 본인의 연출로 무대 공연을 꾸리고 싶은데 기성 극단 등에서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분들이 뭉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자는 취지로 열렸던 축제로 기억해요.

이하영|말씀하신 <화학작용> 페스티벌은 2015년부터 시작을 했어요. 가까운 지인분들이 참여했기에 제가 조금 더 부연을 하고 싶은데요. 그때쯤 30대 초중반의 연출가들한테는 지원사업으로 사업비를 마련하고, 공연을 올리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이제 막 경력을 쌓기 시작하는 시기라서요. 그런 상황에서 산울림 고전극장·팝업씨어터 등으로 연을 맺은 연출들이 투합해서 모임을 만들었고, 그것이 <화학작용> 페스티벌로 이어졌습니다. 30대 연출자들이 많아서 30대 위주의 행사처럼 보이기도 했는데요. 흥미롭게도 나중에는 20대 연극인들만 참여할 수 있는 <이십할페스티벌>도 생기기도 했어요.

김민조|축제에 참여하는 분들이 스스로를 ‘젊은 예술가’, ‘젊은 연극인’, ‘청년예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보고 ‘연극계는 약간 (나이) 평균이 높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한편으로는 그 단어들이 이 판의 구조를 너무나 잘 드러내고 있는 듯했고요.

청년예술단 사업 당시에도, 그 이전에도 ‘청년’이라는 단어의 반대는 중년보다는 ‘기성’으로 많이 쓰였던 것 같아요. 연극계라는 판에서 그 판이 돌아가는 방식이 있는데, 거기에 이미 어느 정도 발을 걸치고 안착한 사람들을 ‘유망’ 혹은 ‘중견’이라 불렀잖아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으레 싸잡아서 ‘청년’이라 부른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황유택|청년예술단 사업 전에는 ‘청년’을 호명하는 지원사업이 거의 없었지만, ‘신진’이라는 용어를 쓰는 지원사업들은 있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각각의 창작 공간들이 존재하잖아요. 그중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한 ‘소액다컴’ 사업에 신진예술가들이 지원할 수 있긴 했어요. 당시에는 서교가 시각 장르의 이미지가 강했던 공간이긴 했지만요.

그외에는 말씀하신 대로 <화학작용>이나 <이십할페스티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처럼 민간에서 진행했던 행사들이 많았어요. 20대인 제가 당시 연극계를 바라봤을 때, 새롭고 진취적인 모습들은 30대 연출가들의 활동에서 많이 보였던 듯해요. <이십할페스티벌>도 엄밀히는 20대 연극인들을 위해 30대 연출자들이 만든 거였죠. 그런데 그때 저는 그 페스티벌이 잘 이해가 가질 않았어요 (웃음). 축제의 명칭을 포함해서, 극장이 아니라 마로니에 공원에서 한겨울에 진행됐었거든요. 그런 기획이 20대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대는 청춘과 패기가 있는 나이니까 지원사업 없이, 극장이라고 하는 안전한 공간이 없어도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인식요. ‘왜 우리는 극장이 아닌 바깥에서 공연을 해야 하지?’라는 불만이 컸어요.

그런 면에서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에서 호명한 ‘청년’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전의 신진예술인 지원사업들은 지원자들에게 비주류, 실험적, 새로움을 요구하는 듯했는데요. 보통 갓 졸업한 예술전공자들은 아직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텍스트 기반–드라마 중심의 작업을 주로 배워왔다면 그 같은 지원사업들이 바라보는 ‘신진’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어요. 반면 서울청년예술단 사업들은 그런 종류의 사업들과는 약간 달랐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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