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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읽는다

[읽는다] 연구스위치|(1차) 경계 : 블랙리스트의 작동방식에 따른 자기검열 구조 파악 ✍남하나(불나방)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11. 11.

블랙리스트의 작동방식에 따른 자기검열 구조 파악

✍남하나(불나방)

 

chapter 1 : 세상은 요지경

#경계#청년예술#다원예술#블랙리스트

왜 아직도 블랙리스트는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예술생태계 안에서 창작자들은 블랙리스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예술가는 계속적으로 자기 검열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술가의 권리는 보장되고 있는가? 행정과 정부는 태도는 어떠한가? 과거와 현재를 거슬러 '사건-사태'의 블랙리스트에 멈춰있는가? 현재의 상황을 달라지고 있는가? - <프린지 블랙리스트를 말하다2 : 친애하는 자유에게 >

2016년 10월,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고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블랙리스트의 가해자는 한 기관의 수장이 되어 퇴진운동이 한창인 피드를 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하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제정되는 뜻깊고 감격스러운 소식도 있지만, 여전히 정부와 문화예술기관은 국가폭력에 대한 적절한 판결,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부재한 채 흐린눈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아쉬움은 지금 블랙리스트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점점 블랙리스트는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

나는 왜 블랙리스트를 말하려고 하는가?

블랙리스트는 국가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 정책범죄 중에 하나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독재 시대의 반공법과 정치 이데올로기에 가해졌던 사상검열을 그대로 계승하여 다시 독재정치를 재현하였다. 특히나 '문화융성'이라는 정책을 통해 불법, 부당행위를 자행하면서까지[1] 개인을 사찰, 감시, 검열을 통해서 예술가를 정책에 입맛에 길들이는 즉, 자기 검열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2016년, 처음 축제의 프로그램인 <올모스트프린지> 포럼에서 ‘검열'을 맞닥뜨렸다. 2015년부터 연극계를 중심으로 거론된 사건들에 대한 소식과 징후들에 대해 탄식과 분노 뒤섞여 포럼장을 가득 채웠다. 그날의 장은 단지 사업에 배제된 사람들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음에, 예술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함께 연대할 것을 독려했다. 침울한 분위기 속 겨울, 나는 촛불시위 현장과 블랙리스트 시위현장, 소송 기자회견을 다니며 검열의 과정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다시 찾아온 봄,  2017년 3월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파면되었다. 다시 광장은 기쁨의 촛불바람이 불었다. 그것으로 끝인줄 알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직도 여전히 그 어떤것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국가가 어떻게 개인을 검열하고 배제했는지, 국가로부터의 추방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개인의 주체성이 삭제되고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자리잡혀있는지 보면서 주변의 남아있는 트라우마는 오랜시간 동안 동료의 삶을 흔들어놓았다.

이렇듯 우리의 세계에 아직 검열의 잔상들이 유영하고 있다. 특히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고 있는 예술 제도에 익숙해진 청년예술가에겐 시시때때로 위협적이게 다가오고 있다.

“나는 왜 아직도 여전히 블랙리스트를 말하는가?” 단순히 잘못된 일에 대해서 잘못됐다 말하는 것으로는 동기부여가 되기 어렵다.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았는데 행동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내가 창작자로의 삶을 선택하여 개인과 조직 안에서 역사, 가치, 성찰, 사유의 과정을 통해 체득한 감각, 공감을 넘어 동감하는 순간을 경험하면서 ‘당사자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블랙리스트가 해결 되지 않는다면 결국 현장을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이전, 이후의 동료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연구릴레이>를 참여를 통해 블랙리스트 즉 검열의 구조의 따른 현재 지원정책의 변화 지점을 짚어감과 동시에 스피커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지난 과거의 하나의 사건-사태가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알리는 것, 현재 예술의 흐름 안에서 포착되는 블랙리스트의 징후를 발견하는 것, 지원정책 속 예술가의 자기검열을 발생 원인과 동기가 무엇이며 그에 따른 고민들을 공유한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블랙리스트를 다양한 시각적 관점으로  발화하여 현장의 예술가들과  접촉하고자 한다.

경계하기 : 블랙리스트와 지원사업

1. 지원사업을 통해 본 검열의 작동 구조

-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폭로되면서 문화예술인 좌파 청산을 명복으로 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문서[2]가 발견되었다.

자금줄을 끊는 것도 청산의 주요 무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서는 “대부분의 문화예술인은 정부와 기업의 지원금에 의존하는 점을 고려, 의도적으로 자금을 우파 쪽으로만 배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문화예술인 전반이 우파로 전향하도록 추진"하도록 했다..[3]

이명박 정부의 경우 표적감사,  기관장 해임 또는 사퇴종용, 친정부 인사로 물갈이(일명 코드인사, 화이트리스트) 등의 좌파인사 적출을 위한 단계를 밟아나갔던 반면에 박근혜 정부의 경우 ‘공공성'이라는 명목하에 문화예술 기관을 내세워 검열을 지시하고 강요했다. 특히 교묘한 시스템을 가동시켰는데,  연극계를 중심으로는 살펴본다면, 심사 일정 부분 개입하여 불리한 정보를 흘리는 다단계의 장치들을 작동시키거나, 예술가들에게 직접적인 배제 요구 및 포기각서 강요하는 등 주도면밀함을 보였다.[4]

‘윗선'의 지시에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관료시스템 하에 오히려 직접 ‘자기검열'이 발동하여 점차 체계적인 배제 시나리오가 구성되기도 하며, 손수 배제를 하기 위한 방편들을 만들기도 했다. 무사유[5]를 강제하며, 예술가가 동료가 아닌 위협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범죄에 동참한 공범으로 만들어버렸다.

공공지원을 받기 위해 검열이라는 센서를 통과할 수 있는 작품을 기획한다든지, 참혹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표현들을 스스로 자제하려든다. 예술계 내부의 자기검열은 결국 예술가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그로 인한 정신의 무기력증에 대한 공황 상태 때문이다 -  [문화비평] 예술가여, 검열을 두려워 말라. _이동연_경향신문_2015.11.10

자기검열은 또 다르게 청년예술가에게 잔존하게 된다. 공공기금으로 운용되는 지원사업의 경우  많은 부분 ‘사회적 가치’, ’공공성'을 요구한다. 예술을 계속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청년예술가들은 작업/작품이 픽(pick)이 되기 위해 지원사업과 작품 사이에서 과도하게 작품을 재단하고 삭제하게 된다.

2.  청년예술가/청년예술지원사업

2016년 <서울예술인플랜>이 수립되면서 경력이 낮고 빈곤한 예술가를 '청년예술가'라 지칭하여 호명되기 시작했다. 예술인플랜의 5대 의제 '생활환경, 일과 노동, 창작활동'을 중심으로 빠르게 정책적 변화가 이뤄졌다. 안정적인 활동비와 아티스트피가 가능해지면서 많은 청년예술 지원사업[6]들이 창작지원을 넘어 안정한 창작환경 조성 등에 관심을 가지며 담론과 활동에도 필요한 지원사업들이 확장되어 갔다. 특히  블랙리스트와 미투를 경유한 청년예술가들은 점차  지원사업뿐만 아니라 정책의 참여율도 높아지면서 ‘민-관 거버넌스'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활동하기도 한다.

점차 창작자들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일이다. 그만큼 서로가 연대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지난 잘못된 환경들을 정비하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점차 다양한 지원사업이 설계되고 참여자들의 적극성이 높아지는 과정 안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지원사업을 경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매달 쏟아지는 지원사업이 때로는 반갑기도 하지만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창작환경이 안전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현재 많은 작품이 연기, 중단, 취소까지 오는 상황에서 생계의 위협이 존재하지만 정말 우리가 필요한 지원사업은 무엇인지, 정말 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과 욕구를 잘 들여다 봐야하는 하는건 아닐까

지난 블랙리스트가 창작자를 좋은 먹잇감으로 활용한 것 처럼 지원체계의 안에서 또 다시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작업에 올바른 자기검열의 기준이 필요하다. 

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의 폐지와 복원

지난 3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는 2021 다원예술 포럼 <다시, 다원> 포럼을 통해 블랙리스트를 경유하며 다원예술의 시작과 중단 그리고 앞으로의 다원예술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포부 있게 ‘다원예술’의 복원을 알렸다. 4월 <다원예술 Reboot>이름으로 지원사업이 진행되었지만 동료 심의 과정에 있어서 필터링 없이  혐오, 성차별적인 발언이 그대로 예술가에게 전달되었다. 예술가는 동료에 의해 작품이 검열을 받게되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어떠한 완충재도 되지 못했다.

당시 포럼에서도 “심사위원은 누가하게 될 것이며, 심사과정, 그리고 어디까지 다원이라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이 나왔으나 그 이상의 진득한 대화나 토론의 자리가 부족한 가운데 빠르게 사업이 오픈되었다. 처음에는 블라인드 동료 평가제에 대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막상 오픈하니  가이드라인 없이 지원서로만 가늠한 기계적이며 무작위적인 심사가 진행되었다. 결국 ‘예술가 동료'라는 연대 안에 검열을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공정성 논란이 없게 아예 지원 분야를 없앤 것 아닐까. '문제가'가 특히 많은 다원 예술 분야를. " 정진세 작가 (미디어오늘, 2017)

블랙리스트의 위협 속에서 폐지된  상징적인 다원예술의 복원에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였다. 하지만 섬세하지 못했다. 2016년부터 2021년 사이에 다원예술의 흐름, 경향, 분석 그리고 담론이 부재하며 현장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급박하게 사업을 설계하고 운영한건 아닌지 의심해본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떻게?

블랙리스트는 침묵하라는 메시지였다. 공범이 되라 속삭인다. 국가는 어마한 자본을 내세워 권력에 순응하고 복종하게 만들었고 우리를 길들이려 했다.

침묵이 반복될 수록 블랙리스트는 다시 일어난다. 나와 나의 친구가, 동료가 조금 더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다면, 문화예술계를 진입하려는 다음의 동료가 조금 더 괜찮은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면 침묵을 끝내야한다.


[1]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1 기획전시 <프린지 블랙리스트를 말하다2 : 친애하는 자유에게> 전시서문 중 일부 발췌_정윤희

[2] 이명박 정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2008)」,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정리(2013)」

[3] 강정석,  블랙리스트와 예술검열 실태 분석」, 문화과학 89, 2017.3

[4] 김미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동 방식에 관한 연구 - 연극계를 중심으로」, 한국연극학회, 2021.2

[5] 한나 아렌트 <예술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전범재판의 과정을 취재한 내용을 기록했는데, 아이히만의 무사유에 대해서 지적한다. 관료시스템의 익숙한 아이히만(관료)은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며 유대인들을 학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나 아렌트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을 말하기의 무능을 그리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6] 2017 <서울청년예술단>, 2018 <지역청년예술단>, 2019<서울청년예술인회의> 가 탄생하기도 했으며, 보수적인 조직이라 말하는 문예위에서는 2019 <아르코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을 만들며 청년 세대에 확실한 타이틀을 쥐어주며 지원사업이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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