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청년/예술인 고민하기
✍채태준
“Time is Out of Joint!”
시간의 이음매가 어긋나 있다. 한 쪽에서 ‘청년예술정책’이란 성찰적인(Reflexive) 진단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고 논해지는데, 다른 쪽에선 청년정책은 여전히 지원사업 중심이다. 지난해 서울청년예술인회의에서 발행한 웹진 ‘숨은참조’의 연구릴레이는 ‘청년예술을 폐기하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로부터 출발한 바 있다. 청년예술은 ‘청년’이라는 단어에 깃듯 ‘미숙함’과 ‘곤궁함’을 당위로하여 그들을 지원해야하는 이유를 거론한다. 그러나 미숙함과 곤궁함이란 예술이라는 장(Field) 내에서 전혀 ‘먹히지 않는’ 종류의 상징자본이다. 더불어 양극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의존도가 높은 지금의 예술장 내에서 기존의 창작예술지원사업 규모와 맞먹는 청년을 대상으로한 특정한 지원사업의 트랙이 새롭게 생겨날 때, ‘청년예술인지원’은 세대 간의 피해자성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 지원사업으로서의 청년예술 보다는, ‘참여 이니셔티브’로서의 청년예술 또는 예술계 내의 ‘대안적인 관점들에 붙은 공통의 이름'으로서 청년예술을 프레이밍해야한다. 성연주의 첫 글에서부터 담론으로서 청년예술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연구릴레이 일련의 기획은 청년예술의 ‘담론화’의 실천이기도 했다. 2020년 웹진 ‘숨은참조’의 연구릴레이는 서로다른 조건에서 청년예술에 관해 바톤을 넘겨받아가며 고민을 쌓아왔다. 일련의 과정은 지난해 거버넌스기구로서 ‘서울청년예술인시민회의’가 청년예술을 재구성하기 위해 지나온 지난한 작업 중 일부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2021년, 등장-비판-재구성의 경로를 거쳐 이제 서울문화재단의 청년예술정책은 형식에 있어서는 지원사업에서 거버넌스로, 대상에 있어서는 연령코호트에서 ‘관점’으로 변모했다.[1]
그러나 시간의 이음매는 언제나 어긋나 있다. 서울 바깥의 다양한 시도에서는 여전히 ‘청년예술정책’은 살아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청년기본법>(2020)의 통과라는 일종의 추진요인 이후 신진/유망 작가를 대상으로 했던 창작지원사업들이 ‘청년’의 이름으로 묶여 등장하고 있다. 2018년을 전후로 각 급 광역지자체에서 청년 기본조례나 청년문화, 청년예술에 관한 기본조례가 통과되며 등장한 ‘청년예술’ 창작지원사업들은 이제 더욱 전격화되는 중이다. 지난해 웹진 <숨은참조>의 또 다른 기획이기도 했던 ‘아카이브리뷰’를 통해 권수빈이 정리한 2020년 서울 외 8개 도시의 ‘청년예술인지원 정책’들 중 대부분이 2021년에 살아남았으며, 몇몇 광역지자체의 문화재단에서는 ‘청년예술인’을 호출하는 창작지원사업이 신설되기도 했다.[2] 각각의 지원사업들은 대부분 만39세 이하라는 연령코호트의 기준으로 청년예술인을 정의하고, 해당 시도 내에 거주중이거나 2년 이내에 해당 시도 내에서 활동한 경력을 요청했다. 지원의 형식은 ‘창작지원사업’이 핵심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들 사이의 네트워킹을 독려했다. 부산문화재단과 광주문화재단 등에서는 청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지원을 ‘일반’과 중 ‘생애첫 지원’으로 나누어 운영했으며, 후자의 지원트랙의 경우 ‘한 번도 지원사업의 수혜경력이 없을 것’을 요청했다. 이 사업들은 서울에서 운영된 바 있었던 ‘최초예술’과 ‘청년예술단’과 상당부분 유사한 사업목적과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담론으로서의 청년예술정책과 지원사업으로서의 청년예술정책. 동시대 서울과 지역이라는 경계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청년예술’의 서로다른 조건이란 시차나 동시대의 비동시성으로서 빠름과 늦음으로, 진척의 정도로 판별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서울에서 지나온 하나의 방식이 ‘모델’이라거나, ‘모범사례’가 될 수는 없다. 외려 서울 안의 조건 또한 혼종적이다. 최초예술인지원, 청년예술단 등의 사업이 사라지고 청년예술청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협치기구들(서울청년예술인회의, 공간운영단 등)로 청년예술정책이 재편된 한편, 청년예술인과 인접하며 때로는 분리불가능하기도 한 ‘청년문화기획자’를 대상으로 한 사업들 속에서 정책의 수단으로서 ‘지원사업’과 정책 대상을 규준하기 위한 범주로서 ‘나이’는 살아남았다. 서울 내 자치구문화재단을 통해 운영중인 ‘청년문화기획자 양성사업’이 바로 그 예다.
다만 이 일련의 상황 속에서 나는 어렴풋하게 제기된 논의들, 뻗어나가다가 접고 말았던 궁금증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어졌다. 지난해 숨은참조는 청년예술이라는 정책과 동시에 이름, 마냥 달갑지는 않았던 씌워진 정체성을 소화했던 서울시 청년예술인정책의 참여자들 목소리를 담았다. 서울에서 활동중인 예술가들이 ‘청년예술’이라는 정책주도의 범주와 부데낌을 스스로 서사화하는 그 글과 동시에, 앞서 거론한 권수빈의 글은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예술인들이 ‘도구화’를 겪고 있다고 논했다. 이때의 도구화란 청년예술정책의 정책 대상인 청년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에 근거했다. 지역의 경제적 활성화를 위해 - 젠트리파이어-, 일자리난해소를 위해 -창업정책-, 지역의 공동체활성화를 위해-공동체의 매개물- 특정한 연령코호트의 예술인들이 청년예술이라는 개념을 통해 호출될 때 그 ‘도구화’의 기저를 이루는 청년예술인들에 대한 기대는 상이할 것이다.
지난 시절의 ‘숨은참조’와 연구릴레이가 정책이 아닌 ‘담론’으로서 청년예술에 관해 논하고 또 실제로 서로의 글에 응답하는 ‘담론화’를 실천하는 기획이었다면, 그리하여 정책의 비대함과 담론의 빈곤함을 조정하고자 했다면, 그렇다면 한편에서 이 담론이 암묵적으로 가정했던 지리적 경계 바깥의 ‘청년예술’에 관해서 듣고 싶어졌다. 지난해 그리고 올해, 서울청년예술인회의에서 동시대 예술장의 신참자로서 자신이 청년예술이라는 개념과 만나고 또 부딪혔던 경험을 함께 나누던 바로 그 시점에, 서울이라는 지리적 경계 바깥에서 청년예술에 관해 말하거나 쓴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수도권 내 구 단위 문화재단에서 청년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담당했던 담당자는 청년예술가들과 함께했던 한 해를 돌아보며“그들의 일년”이 “과연 숫자로 답해지는 종류의 것들일까”에 관해 고민하다가 정량적인 지표로 평가되는 사업이 아닌 “성패와 상관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사업으로 청년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을 다시 정의해본다.[3] 영남권의 한 대학신문에 실린 ‘청년예술가’는 지원금을 한시적으로 교부하는 정책 위주의 정책이 아닌 “지원금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립을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4] 앞으로 2회에 걸쳐 서로다른 지역과 공간 내에서 ‘청년예술’과 부딪혀온 목소리들을 소개하고, 또 여기에 서울에서 청년예술과 관련한 일련의 논의들을 바라본 내 목소리를 섞을 것이다. 청년예술 담론 내에서 ‘서울’의 상황을 지역화해서 바라보고, 또 한편에서는 각각의 청년예술인들의 목소리를 납작하게 유형화하지 않는 것이 목표다.
2) 해당 꼭지에서 언급된 ‘청년예술인' 대상의 지원정책은 대부분 올해까지 운영중이며, 특히 창작 및 프로젝트 지원정책은 더욱 늘어난 듯 보인다. 사라진사업은 경기문화재단의 ‘청년매개자발굴’이며, 광주문화재단에서 청년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창작지원사업(청년예술인지원/생애첫지원)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웹진 '숨은참조' > 읽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는다] 연구스위치|(1차) 경계 : 우리는 준비되어 있었는가? ✍진해정 (0) | 2021.11.11 |
---|---|
[읽는다] 연구스위치|(1차) 경계 : 블랙리스트의 작동방식에 따른 자기검열 구조 파악 ✍남하나(불나방) (0) | 2021.11.11 |
[읽는다] 연구스위치|(1차) 경계 : ANT와 청년예술(인) ✍김정엽 (0) | 2021.11.11 |
[읽는다] 연구스위치|(1차) 경계 : 문화예술교육사업과 청년예술의 경계 ✍장민지 (0) | 2021.11.11 |
[읽는다] 연구스위치|(1차) 경계 : 경계의 예술인 ✍최서윤 (0) | 2021.1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