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경계 : 경계의 예술인
✍최서윤
경계에 서있다고 자주 느낀다. 이를테면, 나는 예술인인가 아닌가? 경계에 위치하며 때때로 양쪽을 오가는 것은 아닐까?
예술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공인된 자격을 취득하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예술가로 정체화해도 되는 건지 망설인 때가 있다. 그 시기에도 창작 활동을 했고, 타인으로부터 환대나 격한 혐오를 받으며 감상과 비평의 대상이 되고 있었지만.
국가 기관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예술활동증명’을 받았을 때, 여러 공적 제도의 잠재적 수혜자가 된다는 ‘실질적’인 부분도 반가웠지만, 스스로를 예술인이라 여겨도 된다고 국가가 공인해준 것 같아 기뻤던 감정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전히 질문은 남아있다. 내가 만든 보드게임이나 웹 공간을 기반에 두고 수행한 퍼포먼스는 예술로 ‘증명’받지 못했다. 영화를 연출하고 상영한 뒤에야 예술인으로 증명받을 수 있었다. ‘영화’가 행정적으로 승인된 예술 장르이며, 내 작품이 이와 관련되어 법령에 명시된 자격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영화를 만듦으로서 비로소 ‘예술인’이 된 것인가? 보드게임이나 새로운 공간에서의 창작활동이나 발표방식도 예술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제도적으로 공인된 예술인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예술인으로 정체화하며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달라진 기술 환경으로 다매체를 활용한 창작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행정이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건 좀 문제적인 것 아닐까? 달라진 시대, 행정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현 제도가 포착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오늘날을 드러내고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총 3회에 걸쳐 대화의 기록이 연재될 것이다. 읽는 분들이 더 나은 행정과 예술인 복지를 함께 상상해 봐 주었으면 한다. (최서윤)
세 명의 인터뷰이 간략 소개
홍명교: 사회운동가· 활동가와 예술인 사이의 경계인
오재형: 미술가/영화감독/피아니스트. 장르와 장르를 넘나드는 경계인
여지우: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보드게임 제작자이지만 아직 보드게임이 예술이라는 인식이 세상에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인
Q. 먼저 ‘근황 토크’부터 할까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명교: ‘플랫폼C’의 활동가로 지내며 외부 원고 기고를 하며 지내고 있다. 주4일 활동하고, 그 외 시간에는 틈틈이 원고를 쓰는데, 늘 바쁘게 지낸다고 느끼는데도 한 달에 가까스로 최저임금 정도 번다.
재형: 피아노 치고 있고,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활동 중이다. 올해 피아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노 프리즘>을 만들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됐다.
지우: 원래 보드게임 외주개발이나 교육비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보드게임이 여러 명이 모여 하는 활동이다 보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생계가 많이 어려워졌다. 다행히 올해 서울시 청년수당을 받게 되어 큰 도움 받고 있다. 그밖에 가끔 비정기적으로 글 쓰고, 영어 번역을 하기도 한다.
Q. 본인이 예술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저는 예술대학 출신이 아니어서인지 ‘예술활동증명’을 받은 뒤에야 ‘떳떳하게’ 스스로를 예술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도 그런 외부적 요인에 영향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재형: 나는 예술대학, 미대 출신이라 그런지 ‘내가 예술가인가 아닌가’ 하는 정체성의 고민은 없었다. 물론 예술대학 안에서도 혼돈을 가진 친구들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작가 정체성이 있었다.
예술활동증명은 받았다. 개인전을 했기에 ‘미술’ 장르 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제 미술가로서는 은퇴했지만.
예술활동증명의 좋은 점? 일단 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너무 좋았다. 두 번째로 좋은 건 ‘예술인 파견지원사업’ 활동인데, 다행히 파견기관(리커버리 센터)이 마음에 든다. 재밌고 보람 있는 일 하면서 수당도 받고 있다. 그밖에 좋은 건 뭐... 예술인 패스? ‘국현(국립현대미술관)’ 공짜? 그런데 예술인 패스 보여줬지만 민증 안 가지고 가서 결국 4000원 냈다.
명교: 예술활동증명이 가능한 시기가 있었는데, 안 했다. 귀찮아서. 내가 원래 좀 그런 거 못 챙겨먹는 타입이다. 하지만 다음에 기회 되면 할 것이다. 혜택 볼 수 있는 게 있다면 좀 보고 싶다. 지금은 마지막 영화 발표한 지 시간이 좀 오래되어 예술활동증명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지우: 영화하는 친구가 그거 하려고 서류 준비하는 거 본 적 있다. 그 과정이 어려웠다고 들었다. 예술활동증명 뒤 생계지원 및 창작지원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사실 이 인터뷰 전에는 내기 거기(‘예술인’에)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 하지만 이 인터뷰 제안을 받고 진행하면서 점차 그런 생각과 욕망이 들었다.
시청각적인 규칙과 상호작용을 통해 생각이나 감정,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담고, 수용자와 참여자가 그걸 경험하게 한다는 면에서 게임 역시 예술로 볼 수 있다고 본다. 플레이어의 주체성에 의해 같은 게임이 여러 방향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법령이 바뀌어 게임이 예술에 포함이 되어서, 독립게임 제작사들도 수혜자가 되길 바란다.
“정신장애에 대한 카드 안에 여러 색깔이 있다. 그리고 사회라는 공간, 내면(의식하는)이라는 공간, 무의식의 공간이 있다. 카드를 뽑고 진행에 따라 카드를 공간에 두는데, 같은 색깔이 5개 이상이면 그 색깔이 포함된 카드들은 다 ‘내면’에서 버려져 점수의 손해를 보게 된다. 덜 건강한방식의 분출이 될 것이라는 메타포다. 플레이어가 ‘상태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느끼기를 바랐다.(여지우)”
Q. 본인은 어떤 면에서 경계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재형: 피아노 때문에 고민되긴 했다(재형은 성인이 된 뒤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시작했다. 그 뒤 몇 차례 피아노 공연과 피아노를 소재로 한 창작활동을 했다). 나는 피아니스트인가 아닌가? 내가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피아노 전공자가 안 좋게 바라보지 않을까?
미술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미술, 꼭 전공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할 때 나는 “전공? 중요하지 않죠.”라고 답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피아노 전공자 앞에서 “전공, 중요하지 않죠.”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회화나 음악 같은 역사가 오래된 장르에서는 ‘전공을 했느냐/ 안했느냐’로 권위 혹은 자격을 획득하는 경향이 아직 남아있어 보인다. 반면 비교적 신생장르인 영화의 경우, 감독 중 영화학을 전공 안 한 사람 짱 많다. 그래서 꿀리는 게 없는데 피아노는….
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피아노 치는 것 보고 좋다고 하고, 내가 피아노만 치는 게 아니라 피아노에 더해 영화 작업을 하기도 하니까, 경계에 놓여있지만 스스로 피아니스트라고 믿으련다.
명교: 활동가의 정체성이 지금으로서는 더 크지만, 예술가와 활동가의 경계에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활동하고 싶은 마음’과 ‘예술 창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다르지 않다. 전하고자 하는 걸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예를 들어 연극을 밖에서 하면 집회가 될 수 있지 않나? 2012년, 예전 학교 다닐 때(명교는 고려대 경영학과에 다니다 그만두고 한예종 영화과에 진학했다) 집회에 같이 가는 한예종 친구들 자체가 미술하는 사람, 음악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냥 가는 게 아니라 나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늘 활동 속에서 창의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대학 전야제 때 민중가요만 부르면 너무 형식적인 같아 인디음악 등 다양한 장르로 공연자를 섭외했고, 공연 ‘의견충돌로 제목은 정하지 못했습니다’를 2012년 학교에서 했다가 반응이 좋아서 시청광장에서 1000명~2000명이 있을 때 해도 좋겠다 싶어 ‘사삼공(4월 30일, 노동절 전야제)’때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역대 최고 사삼공이었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지우: 스스로 게임개발자로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의 시선에서는 예술가가 아니어서 경계인 같다. 게임제작자들 사이에서도 비주류라고 느낀다. 늘 사회적 시선,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는데 게임 씬에 이런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경계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고, 임금 노동을 하지 않고 생계유지를 한다는 점에서도 경계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Q. 경계인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면?
재형: 경계인의 좋은 점이 있다. 내가 어느 판에서, 예를 들어 공연판에서 화나는 일을 당했다? 걸쳐있는 다른 곳도 있다면, 거기다 대고 말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그런데 평생의 꿈이 영화감독이었다? 그 상황에서 영화제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나는 말 못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무대가 필요해서 공연계의 지원사업에 신청해서 합격한 적 있다. 그런데 내게는 필요없는 멘토링이 딸려왔다. 내게는 무대만이 필요했는데, 나를 교정의 대상으로 보고 내놓는 멘토링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의견도 너무 구렸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 거절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차했다. ‘거절 할 수 있음’이 주는 기분 좋음이 있다. ‘너네가 날 심사해? 나도 너네를 심사해’와 같은 태도다. 내가 (공연계, 영화계, 미술계를 넘나드는) 경계인이라 가능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명교: 경계인이라서 기쁘기 보다는 창작과 이에 대한 반응에서 오는 기쁨이 크다.‘예술적이고 새로운 사회운동’을 시도하고 이에 대해 좋은 반응이 올 때가 그렇다. 사회운동 쪽에서도 예술 쪽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경계가 두터워진 상대로 보이는데, 나는 계속 경계를 무너트리는 시도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좀 더 ‘관종(관심종자)’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스스로 관종이라고 생각하는데, ‘티를 안 내려는 관종’이라 한계가 있다.
지우: 경계 지어짐으로써 좋은 점을 잘 모르겠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경계를 허무는)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의 계층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에 제한 받지 않고 취업, 창업, 취미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한적이지만 청년수당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어 보인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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