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허락한 예술인'이 되기까지
연구릴레이 최서윤
“청년예술을 진지하게 고민(연구)해볼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문제는 단순히 여러 관련 사업의 기록목적으로 존재하는 책자나 영상만으로는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포함한 다양한 주체에 의한 다양한 형태로의 기록이 존재해야 하고, 개인단위에서 뿐만 아니라 단체적 성격들의 기록들도 마구마구 쏟아져 나와야 한다. 가령, 그 기록이 하나도 의미 없이 보일지 모르는 기록일지라도 말이다.”
연구릴레이 스터디그룹에 함께 속해있는 정엽님이 남긴 말¹⁾입니다. 이걸 읽고 제가 ‘예술인’의 정체성을 갖게 된 계기와 경험을 공유하는 게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예술대학 졸업자가 아닙니다. 원래는 언론인이 되고 싶었어요. 돈도 벌며 세상을 (내 관점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개꿀’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각 잡고 언론사 입사 준비를 2년 했지만 나를 받아준 기성 언론사가 없었고, 토익점수는 만료됐습니다. 토익점수 만료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바랐던 사회적 활동은 직접 매거진을 만들어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충동이 일었습니다. 2012년 자비출판으로 독립언론을 창간하게 된 계기입니다.
예상 보다 제가 창간한 매체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의 이메일과 페이스북 친구신청이 벅차게 몰려왔죠. 온라인 관계망이 넓고 복잡해졌습니다. 이 상태로 수년간 잡지를 발행했는데요, 바라던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생계에 대한 불안과 체제에 대한 불만은 지속되더군요. 이와 관련된 문제의식이 온라인 관계망이라는 기반 위에 뻗어나가 도출된 아이디어가 바로 ‘730프로젝트’였습니다.
730프로젝트는 730명의 페이스북 친구들을 만나 함께 식사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고 1년 동안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 2(하루 두 끼)에 365(1년)를 곱하면 730이 나와서 이름이 730프로젝트입니다. 730명의 자발적인 참여자들(내게 밥 사는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기획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밥 한 끼 제공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는 경제적 상황이면서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펴 낸 독립출판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고 만남을 청해오는 사람이 종종 있었어요. 그런 이들에게 아예 멍석을 깔아주면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또한 남들이 궁금해 하는 경험과 정보를 나누고, 고민 있는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감정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면 나름의 효용도 있을 것이었습니다. 방식은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이 구글 공유문서에 편한 날짜와 시간을 기입하면, 제가 그 사람이 정한 시간에 그가 편한 장소로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단, 시간과 차비의 제약이 있으므로 만남 장소는 수도권으로 한정했습니다. 페이스북 친구들의 호의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 요소도 있으므로 프로젝트 기간 동안에는 이들의 도움으로만 ‘연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즉 약속 없는 날에는 굶는 것이죠. 3일 연속(여섯 끼 이상) 굶는 상황에 놓이면 프로젝트는 중단될 것이라고 프로젝트 시작 단계부터 공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됐는데, 2014년 8월 1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반 년이 지난 2015년 2월의 어느 날, 프로젝트를 중단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200명의 사람을 만난 뒤였으니 730프로젝트를 ‘200프로젝트’로 바꿔야 하나도 고민했지만, 200보단 730이 좀 더 느낌적인 느낌을 주니 730프로젝트라는 이름은 유지하고 ‘실패한’을 덧붙이기로 합시다.
처음 기획할 때에는 프로젝트의 여정을 단행본으로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도 염두에 뒀는데,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책이라는 매체보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결과물이 공유되는 편이 더 흥미로웠겠다고 후회했습니다.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 보다 페이스북 페이지나 텀블러에 사진과 짧은 글, 인터뷰 동영상 클립을 그때그때 연재하는 편이 기록과 공유의 방식으로 더 적절했을것 같다는 생각도 뒤늦게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게 좀 더 폭넓은 매체와 장르를 활용한 창작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프로젝트 도중 언론에 보도되어 참가자와 악플러가 동시에 늘어버린 일은 제게 ‘730 프로젝트… 이 정도면 현대미술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730 프로젝트 중 D신문사의 기자가 밥을 며 이 내용을 기사로 쓰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발행된 기사가 꽤 화제를 모았고,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져 프로젝트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무엇보다 화가 나보이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왜 당사자들 간의 자원을 교환하는 행위에, 관계없는 사람이 저렇게 화까지 내지? 그들은 저를 ‘페북녀’, ‘김치녀’, ‘창녀’ 등으로 불렀습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밥을 사는 행위를 성관계와 연결시켰는데, “730명 자지가 들락거리면 보지가 너덜너덜 해지겠네”라는 악플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어째서 ‘식사 횟수 = 섹스 횟수’라는 등식이 성립하는지, 그리고 내게 밥을 사는 사람이 ‘자지’를 가진 이일 거라고만 생각하는지, 신기한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심지어 신청자의 성비는 엇 비슷했는데 말이죠.
'730프로젝트’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며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시대를 지배하는 관념을 환기한 걸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예술가? 하지만 이런 형식의 프로젝트(혹은 퍼포먼스)를 벌이는 창작자를 예술인으로 승인하는 내용은 ‘예술인복지법’에 없습니다(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을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고, 그 ‘활동’의 세부적인 내역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예술인’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수저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을 기획 · 제작했습니다. <수저게임>은 플레이어들이 뒤집힌 카드를 뽑아 신분을 부여받고, 이에 따른 역할을 수행하며 법안을 등록하고 사회구조를 바꾸는 체험을 하도록 만든 게임입니다. 현실에 분노 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제도를 함께 고민하며 보편적인 삶을 개선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게임을 경험한 사람들이 쓴 리뷰와 기사를 보면 취지가 전달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의미부여와 해석을 접할 때는 고양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저게임> 역시 예술 아냐?’ 하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만…. 예술인 복지법의 기준으로 비추어보면, 이 또한 예술이 아닙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창작에 뛰어들고 있고,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이 마구 튀어나오는 시대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행정에서도 더 많은 창작자들을 포용하기 위한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연구릴레이 활동을 통해 이에 대한 필요성을 설득하며 구체적인 방법론을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어쨌든 현재 저는 (결국) 예술인으로 행정적인 승인을 받은 상태입니다(박수!). 2016년 발표한 단편영화로 예술인복지법 시행규칙 관련 예술 활동 증명에 관한 세부 기준(제2조 관련) 의 ‘영화’ 부문²⁾을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체험한 여러 지원 제도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이어 이야기 해보도록 하죠. 지금까지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30대 여성이자, ‘국가가 허락한 예술인’이었습니다.
1) ‘청년예술이 청년예술을 낳기를, 기록의 시작으로부터’
2) 나, 최근 5년(「영화 및 비디오물의진흥에 관한 법률」 제2호제7호에 따른 단편영화의 경우 최근 3년)동안 「저작권법」 제2조제36호에 따른 영화상영관등에서 상영되거나 「영화 및 비디오물의진흥에 관한 법률」 제29조에 따른 상영등급분류를 받은 영화에서 1회 이상 연출을 담당한 실적이있는 사람 (예술인복지법 시행규칙 관련 ‘예술 활동 증명에 관한 세부 기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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