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된 ‘청년’으로서, ‘아카이브 리뷰’를 리뷰하기
진해정
호명된 ‘청년’으로서
30대 초반, 난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짓고, 듣고, 들려주는 일을 오래 전부터 꿈꿔오고 있었다. 그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영화, 드라마, 웹소설 등 어떤 길이라도 좋았다. 연극 또한 수많은 ‘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자본도 인맥도 경력도 없는 나에게 그 길은 사뭇 요원해보였다. 그러다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그해 처음으로 실시한다는 ‘창작실험활동지원’의 사업 공고를 우연히 접했다. 공고 내용 중 한 구절이 유독 눈에 띄었다.
- 사업 내용
- 기존 결과중심(완성공연)의 지원사업과 차별화된 창작준비와 창작활동에 대한 지원
- 심의기준 내 공연 및 경력에 대한 가중치 최소화로 청년 및 신진예술가, 신생 단체의 진입 기회 확대
이듬해인 2018년, 서울문화재단은 ‘청년예술지원사업’을 신설했다. ‘기존 예술지원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잇는 청년예술인 대상 맞춤형 지원시스템을 마련하여 다양한 예술창작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현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안정적 활동 기반을 조성’하려는 목적의 사업이었다. 전해 문예위의 사업을 거치며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을 만났던 터, 망설임 없이 공모에 응모하여 그해 두 편의 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지금, 뒤늦은 물음들이 마음 한켠에 들어앉았다. 만약 내가 2017년과 2018년, ‘청년’을 불러냈던 그 사업들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면 이후의 작품 활동들은 불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나는 ‘청년’으로 호명당할 만한 존재였는가? 내가 하고자 했던 작업은 ‘청년예술’의 범주에 속하는가? ‘청년’과 ‘청년예술’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 기준을 구축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제도 설계의 배경은 무엇이고, 설계의 목적은 달성되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아보고픈 욕구, 그것이 올해 서울청년예술인회의의 ‘연구릴레이’에 참여한 주요 이유였다.
일단은, ‘아카이브 리뷰’를 리뷰해보기
욕구와 이유는 명확했으나 그 방법은 막연했다. 인물과 이야기가 아닌, 제도와 논문을 연구하는 일은 내게 낯설었다. 무엇보다 그 대상을 걸러내는 일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청년예술’을 검색하면 424개의 국내학술논문이 나온다) 뱁새의 가랑이가 남의 일이 아니겠다는 위기감이 들 무렵, 우리보다 앞선 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남긴 ‘아카이브 리뷰’를 발견했다.
아카이브 리뷰는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사이트에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까지 게재된 6개의 글로, 청년예술정책과 관련한 그간의 논문과 논의들을 톺는 연구문이다. 집필자인 권수빈 문화연구자는 약 21개의 논문을 대상으로, 그 논의를 정리하고 그에 기반하여 청년예술 담론에 대한 더욱 심화된 논지를 펼쳐낸다.
‘연구’라는 일이 낯선 상황에서, 나보다 깊은 눈을 가진 연구자의 논의를 꼼꼼히 살펴보는 일을 선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아카이브 리뷰들을 리뷰하는 일을 이번 스터디의 첫 걸음으로 시도해보기로 했다.
청년예술 사업에 대한 리뷰
: ‘청춘’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청년예술가 / 청년예술가, 우리의 다른 모색 / 청년예술인과 지역이라는 생태계 만들기
‘아카이브 리뷰’는 총 세 차례에 걸쳐 국공립 기관에서 시행한 청년예술가 대상 사업을 들여다본다. <‘청춘’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청년예술가>(이하 1)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아르떼),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역문화진흥원 등 소위 4대 중앙 공공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제도를, <청년예술인과 지역이라는 생태계 만들기>(이하 2)에서는 지역문화재단의 청년문화예술인 지원사업을, <청년예술가, 우리의 다른 모색>(이하 3)에서는 앞의 두 글에서 다루지 않은 지원 기관의 청년정책을 검토한다.
1의 서두에서 연구자는 주요 광역문화재단들과 달리, 4대 기관들의 청년예술(가) 대상 사업이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나마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지역문화진흥원의 ‘청춘마이크사업’과, 여러 양태로 변모하고 있는 아르코의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을 살펴보며 그 한계점을 논의한다. 전자의 경우 기관이 선정한 장소, 랜덤한 관객, 짧고 규격화된 공연 시간의 제약 등 사업의 중심에 예술인이 아닌 기관의 편의가 있지는 않은지 의심케 하는 양상이 있으며, 후자에서는 예술인들에게 기관이 요구하는 목적, 즉 ‘사회적인 것’의 수행을 강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음을 거론한다.
연구자는 이 양자의 대안으로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역문화우리’ 사업을 예시한다. 예술인이 자율적으로 기획하는 프로그램에 관한 피드백을 제시하며, ‘거창한 일자리나 사회적 가치 담론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의 기획을 수행토록 요구하는’ 사업이 아닌 청년예술가 스스로 주도하는 기획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지역문화재단의 청년지원사업을 대상으로 삼은 2에서, 연구자는 경기 · 인천 · 부산 · 제주 · 대전 · 대구 · 광주 · 울산문화재단의 2020년 청년예술사업을 크게 창작지원형 · 생태계지원형 · 프로젝트형 · 일자리창출형으로 카테고리화한다. 국가 주도 사업과 다르게 이 사업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일 것을, 혹은 ‘지역에 남거나 함께 하는’ 예술인일 것을 조건으로 삼는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사업들이 진정 그 조건을 현실화할 수 있는 성격의 내용들인지 구체적으로 뜯어본다.
3은 앞의 두 글이 다루지 않은 기관들의 청년정책을 조망한다. 서울시 청년허브의 <2019 청년직업실험지원사업 ‘청년-업’>, <아시아 청년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AYARF)> 사업을 검토하는 과정에 <서울生, 쓸데없는 일을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 인터뷰집과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웹진에 수록된 예술인들의 말을 간간이 기입하고 있다. 그로써 ‘청년예술가 주체’가 ‘다양하게 경로를 재모색하는 일’에 어떤 방식으로 도달할 수 있을지를 질문한다.
청년예술담론, 그 너머를 향한 리뷰
: 청년예술가 담론의 경계 넘기 / ‘청년예술 - 이후’를 위한 청년예술 담론
나머지 두 리뷰는 청년예술 담론에 대한 연구다. <청년예술가 담론의 경계 넘기>는 청년예술가를 주목한 5개의 논문을, <‘청년예술 - 이후’를 위한 청년예술 담론>은 2017-2019년 사이에 열린 청년예술정책 관련 포럼을 대상으로 한다.
전자는 각 논문들을 개괄적으로 요약한 뒤, 그들의 연구를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정책 방안 제시 · 정책 수혜 경험을 통한 지원사업의 한계 파악 · 청년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 강조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연구자는 단순히 연구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논의들의 한계와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는 당사자 연구들에 주목하고 있는데, 그러한 결과물들이 ‘이론적 논의나 방법론적 치밀함 등의 면에서 다소 투박할지’라도 ‘당사자의 눈으로 다양한 맥락을 놓치지 않으며 청년예술가의 다층적 현실을 짚어내’며, 그로 말미암아 ‘청년예술가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담론 장을 느슨하게 확장하는’ 방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후자의 리뷰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담론의 추이에 집중한다. 청년예술포럼(2017), 청년예술가 연-결 포험(2018), 서울 청년예술인 정책포럼(2019.9), 제1회 서울청년예술인회의 1인칭 주인공시점(2019.11) 등 네 차례의 포럼에서 대두된 논의들을 쫓으며, 청년예술정책이 변모해온 그간의 양상을 전달한다.
무엇을 ‘이어 연구’할 것인가?
‘아카이브 리뷰’를 리뷰하며 자연스레 무수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 제도는 아직 존속하고 있을까? 사라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도의 수혜자들은 아직 예술 활동을 지속하고 있을까? 그들을 지속하게 한 힘은 무엇일까. 이후의 제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갔으며, 그 변화의 근거는 무엇일까 등등…
무엇을 어떤 식으로 들여다볼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바통을 들고 연구릴레이 구성원들과 기꺼이 이번 트랙을 밟아보려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뛰다보면 어느새 지금보다 나아간 자리에 다다라 있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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