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이 청년예술을 낳기를, 기록의 시작으로부터
연구릴레이 김정엽
청년예술은 기록(연구)될 수 있을까?
보통 기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후일에 중요하게 남겨두기 위함과 ‘그냥’ 어찌할 바를 몰라 냅다 적어두는 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2021년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연구릴레이>에서 회자되는 ‘청년예술’은 필자의 두 가지 기록의 정의 사이에서 길을 찾고 있다.
지난 2020년의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연구릴레이>에서는 이전부터 때때로, 아직까지도 여전한 청년(가난)과 예술(궁핍)에 대한 강조에서 벗어나 사회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예술의 위치를 청년세대가 향유함과 동시에 청년이 스스로 청년예술을 정의(발화)해야 한다는 당사자성을 공론화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청년이 청년예술을 정의(발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은 무엇을 청년예술이라고 호명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낳았다. 그래서 필자는 청년예술을 아직 정의해보지 못한 2021년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연구릴레이>에서 다소 청년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과거 폐기의 논쟁에 있었던 청년예술이 더욱 자주적인 청년예술이 되기 위해 먼저 청년예술을 둘러싼 많은 살들을 붙여보고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청년예술에 대한 개인의 문제의식을 들여다보며 곱씹어 보았다. 이것은 단순히 8인의 8가지 청년예술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앞으로 청년예술이 무엇인지를 더욱 고민하고 향유하는 많은 주체의식들에게 8가지 용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청년예술을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이유는 청년예술이 담고는 있지만 해결되지 못한 많은 사회적 이슈와 불분명함, 지금도 여전히 의도치 않게 생성 혹은 폐기되고 있는 청년과 예술의 존재 사이의 무언가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이 무언가를 찾기 위한 여정을 기록이라는 행위로부터 더듬어보길 시작하였다. 더 좁은 시각으로 필자가 주목한 기록은 연구 자료로서 활용되는 기록의 특성이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구 국립예술자료원)의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은 예술사 연구를 위하여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을 거친 원로예술인들의 예술적 체험과 활동 및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본래 구술사 연구방법론은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의 절대적 부족으로 동일 사료를 반복하여 활용하는 기존 역사서술의 보완과 심층적인 연구를 위한 실천적 연구방법의 일환이다. 원로예술인의 발화를 통하여 해방 이후 예술계 풍경, 예술에 대한 창작의 세계관, 주요 예술사적 사건들을 영상과 문자기록 등으로 남기고 구술자의 소장 희귀자료를 수집하여 한국 근현대 예술사 연구와 창작, 교육적 활용을 위한 기초자료의 생산 및 발굴로 연구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에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2003년도에 착수되어 2021년 현재까지 공연예술, 시각예술, 대중예술, 문학, 기타 등 263건(2021.07.27. 기준, 단위:명)의 구술채록이 축적되었다. 원로예술인의 기록은 ‘생애사’ 구술처럼 개개인의 기록으로 존재하며 역사속의 부재했던 예술계의 모습들을 개인 단위에서 조명하고 예술사적 이해의 폭을 넓혀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한국의 근대화시기의 예술계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와 과도기적 새로운 흐름들을 조금 더 객관화된 시각으로 여러 명의 구술자가 참여하여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구술된 ‘주제사’ 구술채록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술채록 형태의 기록들이 도대체 청년예술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필자는 이 원로예술인들 또한 당대의 청년예술인으로서 활동했음을 거꾸로 생각해보았다. 비록 이들은 당대에 어떠한 예술적 업적이나 충분한 활동을 통해 각 장르별 진흥과 성장을 일으킨 주역들로 시간을 지나서 현대에 위와 같이 조명 받은 인물들이긴 하나 이러한 기록으로 말미암아 당대에 숨겨진 예술사를 심층적으로 밝혀낼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만약,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활동했던 청년예술(인)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추후에 청년예술을 더욱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들이 생긴다면 어떨까? 청년예술은 청년이라는 단어로 인해 시계열적인 특성에 따라 제한되고 종료되는 암묵적 약속이 아니고, 주체자의 수행성으로도 정의의 기준을 나름대로 달리 설정해볼 수 있다는 유의미한 숙의 과정을 넘어, 앞으로 청년예술을 근거할 많은 자료들을 고민함과 동시에 함께 차곡차곡 축적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청년예술에서 기록이라는 행위는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청년예술을 진지하게 고민(연구)해볼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문제는 단순히 여러 관련 사업의 기록목적으로 존재하는 책자나 영상만으로는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포함한 다양한 주체에 의한 다양한 형태로의 기록이 존재해야 하고, 개인단위에서 뿐만 아니라 단체적 성격들의 기록들도 마구마구 쏟아져 나와야 한다. 가령, 그 기록이 하나도 의미 없이 보일지 모르는 기록일지라도 말이다. 본래 기록은 또 다른 기록을 낳는다. 연구자들은 참고 혹은 인용이라는 말을 다소 빈번하게 사용하는데, 이것은 기존의 기록된 것을 나의 기록으로 삼을 때에 활용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기록은 기존의 기록과 나의 기록을 모두 밝히는 동등한 관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예술은 이러한 동등한 기록으로서 현재에 존재하는가? 혹은 청년예술(인)에 대한 연구가 어떠한 유의미한 자료들로 청년에 의하여 구성되고 쓰이고 있는가? 당장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사회적 함의를 전제로 후일에 남겨두기 위한 진지한 기록이 되지는 못해도 ‘그냥’ 무언가 쓰이겠지 하는 생각에 써 내려가는 양적인 기록을 시작으로 그 필요성을 느끼고 함께 써내려가길 공감할 수 있다면 청년예술은 결국 발화되며 동시에 질적으로 쓰이지 않을까?
청년예술이 청년예술을 낳기를 : 기록의 시작으로부터
청년예술의 목적은 청년예술에 대한 정의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예술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당장은 내가 생각하는 청년예술이 이러하다고 말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들이 모인 아고라 같은 것이다. 자꾸만 청년예술을 하나의 틀과 개념 안에 정의하려고 하는 시도가 오히려 청년예술을 청년과 예술의 합성어 정도로 그치게 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청년예술은 그냥 부표처럼 떠돌아다니는 시대적 호명에 그칠 것인지, 그렇게 부름을 받고 태어나 여기저기 불쑥불쑥 사용되고 일컬어지는 것이 누구에 의한 쓰임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청년예술이 아직 갓 태어나 걸음마를 떼는 시기라는 것을 청년예술포럼(2017), 청년예술가 연-결포럼(2018), 서울 청년예술인 정책포럼(2019), 서울청년예술인회의(2020-2021)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움직임들이 정말 청년예술의 방향을 짚어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어서 청년예술에 대한 목소리가 청년예술을 안건으로 두는 아고라에 더 모여들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좋은 현상이다. 청년예술을 더욱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청년예술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했고 변모했으며, 미래에는 어떠한 역할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지 깊이 있게 조사하여 따져 보면 좋겠다. 그 시작이 연구로부터 진행될 때 필자는 그 연구를 풍부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담론이 내재된 기록이 어디서든 넘쳐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말 중요하게 남기기 위한 기록이든, 냅다 써보고 보는 기록이든 청년예술을 기록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모순적이게도 청년예술은 호명되었지만 정의되지 못했고, 정의하지 못한 채로 계속 청년예술을 만들어 가야 할지도 모른다. 애매모호함이 청년예술의 특징이 된다고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조차도 기록하고 연구할 수 있다면 청년예술은 한 걸음 더 청년예술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라고 정의되지 않은 채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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