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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말한다

[말한다] 제작일지|예술가의 성장에 관한 물음들-지원사업은 예술가의 성장을 보조할 수 있을까?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1. 29.

예술가의 성장에 관한 물음들-지원사업은 예술가의 성장을 보조할 수 있을까?

 

안준형

 

0.

예술가는 어떻게 성장할까. 예술가의 커리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자연스레 예술가에 대한 존재론적인 물음부터 출발해서 어쩐지 금방 속물적인 생각들로 가닿는 기분이 든다. 예술가는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이 점점 완숙해짐에 따라 곧 성장한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을 판단하기 어렵다면 예술가는 그저 더 나은 미술관과 전시에 작품을 선보이고 작품이 더욱더 높은 가격을 형성함으로써 그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 예술 작품을 위계적인 질서 안에서 판단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같은 예술 작품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설령 그것이 과거의 자신이 만든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예술 작품을 두고서 무엇이 더 낫거나 그렇지 않다고 위계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이것 자체로도 큰 미학적 문제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성장 과정을 판단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분위기나 잡으면서 예술 작품을 위계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그저 각기 다른 감상자들의 취향에 따른 무한히 다양한 감상만이 있을 뿐이라고 너스레나 떨 수도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실없는 너스레는 아티스트 토크포럼에 들르면 빈번하게 들을 수 있었더랬다. 이는 작품에 대한 공격적인 비평이나 다양하지만 서로 모순되는 감상들을 방어적으로 처리하는 데에 아주 큰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예술 제도권이라는 것이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는지 진지하게 시선을 둘러본다면 생각보다 예술 작품에 대한 판단이 너무나도 명백해서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미술 제도권을 가시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여러 주요 미술관과 재단 등 핵심 기관 및 전시 프로그램들은 미학적 목적을 갖든 공익의 목적을 갖든 또는 상업적 목적을 갖든, 더불어 연구 및 보존의 목적을 갖든 우리 시대 안에서 더욱 탁월한 예술 작품을 선발해야 할 책임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이 곧 예술가들에겐 마치 기회와 증명의 공간처럼 여겨진다. 그것은 예술가 성장의 가늠쇠가 되고 또 그의 커리어를 만들어내고 확인한다.

어떻게 보면 특정한 학문 영역에서 나타나는 더욱 뛰어난 성취들을 끊임없이 검증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학문이 예술이라면 이러한 요구는 어쩐지 거리를 두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미술계 제도권 내에서 벌어지는 내밀한 현장 이야기를 담은 문화사회학자 세라 손튼의 책걸작의 뒷모습은 마치 내용 전체가 풍자나 거대한 블랙 유머처럼 보인다. 저자는 흔히 걸작이라고 불리우는 높은 수준의 예술 작품이 제도권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예술가 자신이 스스로의 커리어를 형성하기 위해서 벌이는 온갖 외설스런 과정들을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흔히 듣곤 하는 예술 작품을 위계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식의 방어적인 너스레와는 전혀 낯선 이야기처럼 들린다.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어째서 예술 작품을 위계적으로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그토록 거부감을 갖게 하느냐이다. 이러한 거부감이 갖는 효과는 단순히 예술 작품에 대한 공격적이면서 동시에 필요한 만큼의 논쟁을 무마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성장 과정 전체를 신비스럽게 만드는 효과도 갖는다. 그 때문에 우리가 예술가의 성장 과정 및 커리어 형성에 관해서 말할 때 어쩐지 외설스럽고 속물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예술가의 커리어 형성에 관한 분석이 주로 작가나 비평가, 기획자와 같은 예술 제도권 내의 당사자들이 아닌 문화사회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점 또한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1.

하지만 예술가의 성장 과정은 정말이지 중요한 화두다. 최근 몇 년 동안 우후죽순 생겨난 예술 지원사업들은 더 이상 이 지원사업 없이 미술계가 작동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원 프로그램의 큰 줄기 중 하나는 바로 신진 예술인 지원사업이다. 이는 청년 예술인 지원, 최초예술지원, 젊은 예술인 지원 등과 같이 애매하지만 동시에 논쟁적인 온갖 이름으로도 불렸지만 어쨌거나 큰 줄기는 커리어의 시작 단계에 있는 신진 예술인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목적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진 예술인이 효과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쌓아 나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의 지원이 필요한지 물어야 한다. 더불어 신진 예술인 당사자들은 당면한 자신의 성장과 커리어 형성 문제와 관련해서 지원사업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예술가의 성장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예술가의 커리어 형성 문제는 이제 미술계의 또 다른 토대가 되어버린 지원사업과 엮여 구체적으로 파악되어야 할 필요를 갖는다.

하나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술 제도 내에서 지원사업에 대해 갖는 기대는 단순히 커리어의 출발 단계에서 예술 창작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만큼 커리어 자체에 대한 기회 또한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문화사회학자인 성연주는 앞서 예술가의 커리어 형성을 보는 관점에서 지원 제도와 현장 제도 사이의 괴리가 있음을 분석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서울청년예술단》이나 《최초예술지원》사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이, 또는 청년 예술가의 생계 곤란 문제는 예술가들이 자신을 뽐내거나 서로에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내기물로 작동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이 사업들은 실질적 효과에 비해 예술가의 포트폴리오로 작용하는 상징적 효과가 약했고, 청년 예술가들끼리 크루와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것도 공고한 예술 씬을 뒤흔들 만큼의 엄청난 파괴력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안정적인 생계지원비를 모두 꿈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가로 사는 삶의 성공을 단순히 생계의 유지만으로 보지 않는 상황에서 이 사업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 씬을 만들기에는 무언가 2% 부족했다.”¹⁾

그는 예술가의 커리어 형성과 같은 의미를 갖는 상징적 효과 내지 상징자본의 획득이 작금의 지원 제도를 통해서 충분히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점에 관해 언급한다. 물론 그는 이러한 문제를 청년예술인이라는 특정한 담론 안에서 다루었지만 나는 이러한 문제의 범주를 보다 확장해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말하자면 청년 예술인 지원 사업뿐만 아니라 신진 예술인 지원 사업의 전체 형태 자체가 예술가의 커리어 형성 과정에 있어서는 애로 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갓 예술대학을 졸업한 신출내기 작가들이 처음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즉 예술 창작을 시작하고 그것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이제 지원 사업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지원사업을 통한 작품 생산이 예술가의 커리어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는다. 단순한 작품 창작과 커리어의 성장은 같지 않다. 다시 질문을 반복해보자면 예술가의 커리어 형성은 무엇일까? 그것을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같은 글에서 성연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동안 예술은 예술가들의 천재성이나 작품의 위대한 예술성을 담보로 하나의 견고하고, 분리된, 독립된 영역을 고수해왔다. 이를 부르디외를 빌려 ‘상징자본’이라 칭한다면, 상징자본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상, 비엔날레, 콩쿠르가 권위를 부여하는 제도로 작동하고 있고, 이런 제도는 기성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굴러간다. 이런 성장 트랙을 따라 씬의 중심으로, 위로 올라가면 예술가는 엄청난 개런티를 받거나, 비싼 값에 작품을 판매하는 소위 지배자로 거듭나게 된다.”²⁾

예술가로서의 성공과 같은 말이 불러오는 낯뜨거움이나 쉬이 내면화하기 어려운 지배자 개념을 제쳐두고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나는 앞서 예술가의 성장 과정이 신비화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그는 이를 천재성 및 상징자본과 같은 개념을 빌려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리고 앞서 그가 상징자본의 효과적인 획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듯 지원 제도가 예술가의 커리어 형성에 조응하지 않는 바는 문제로서 전제된다. 물론 그는 해당 글에서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이 지점을 극복하거나 화해하기보다는 하나의 징후로 남겨둘 수밖엔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그것밖에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지원사업에는 2중의 역설적인 요구가 기대된다. 그것은 예술 작품을 위계적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지만 동시에 이를 통한 예술가의 (커리어)성장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원사업이 제도의 제한된 예산안에서 운용되는 이상 이는 심사와 평가 형태를 갖는다. 이는 더 나은 예술 작품 기획에 대한 판단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이것 자체로 배타적인 형태가 되어 항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심사의 판단 기준에 대한 논란은 매년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원 제도가 단순히 작품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예술가 커리어 성장의 길은 다르기 때문에 이는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다시, 예술가의 성장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앞서 제쳐놓았던 예술가로서의 성공이라거나 예술계의 지배자와 같은 조금은 웃음이 나오는 가치를 내면화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또한 더 나은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아주 중요한 공백으로 남는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아주 원론적인 물음들로 돌아가게 만든다.

 

마치며 미래를 여는 예술문이란

예술가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하긴 여전히 까다롭다. 하지만 예술가의 제도적 성장 궤적은 너무나 명백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드러낼 수 있다. 이런 논의가 예술계에서는 외설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를 드러내는 것 자체로도 비판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지원 제도와 현장 제도 사이의 괴리를 상대하는 하나의 길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나는 지원사업이 예술가의 커리어 성장과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기대가 또 마땅한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것이 과한 기대라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것이 가능한 기대인가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요즘 미술관 소개말이나 주요 연사들이 이야기하는 예술에 관한 정의를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찔할 정도로 상투적인 이 문장들은 예전 같았으면 꼰대 같은 소리라고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말들이다. 그러나 더 나은 예술 작품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품고 있는 이 중요한 공백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이는 의외로 산뜻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이라는 상투적이디 상투적인 선언문이, 나의 미래의 예술 작품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채우는 데에 기여하길 바라며.

아래는 98년 개관한 한국의 미술관 아트선재센터의 소개말 중 신진작가지원에 해당하는 내용에서 발췌한 것이다.

“아트선재센터는 새로운 작가들의 발굴과 성장을 지향한다. 당대의 시급한 목소리를 작품의 형식과 주제를 통해 드러내는 새로운 작가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작업을 적합한 맥락에서 소개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한다. 또한 새로운 작품의 제작, 지원을 선호하며 전시에 소개된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미술관의 컬렉션을 구성해 나간다.”³⁾

 

필자소개

안준형은 예술의 비판적 가능성을 고민하는 시각 예술가이다. 작품 창작과 더불어 비평적 글쓰기를 생산 중이다. 최근에는 게임 매체에 관한 특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아티스트 폴리티컬 파티 '배드 뉴 데이즈'와 마르크스주의적 비평 연구기관 <조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지원사업과 현장제도 간의 괴리를 예술가의 성장 과정 측면에서 생각하는 글을 썼다.


1) 성연주, “청년예술을 폐기하라”, 웹진『숨은참조』1호. 2020. 8. https://seoulartist.tistory.com/34

2) 같은 글

3) 아트선재센터소개.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 http://www.artsonje.org/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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