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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말한다

[말한다] 제작일지|<미래를 여는 예술문> 제작일지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1. 29.

<미래를 여는 예술문> 제작일지

 

<미래를 여는 예술문>(2021) 목차

 1. 제작 목적

 2. 제작 배경

 3. 제작 단계

4. 원고 순서

  4-1. 예술가를 위한 사회적 가치 실현의 매개로 환원하는 예술 노동에 대하여 / 사회를 위한 당연한 요소로 인정한다는 것 | 강정아

  4-2. 예술가의 성장과정, 지원사업과 제도적 성장의 관계 / 예술가의 성장에 관한 물음들-지원사업은 예술가의 성장을 보조할 수 있을까? | 안준형

  4-3. 예술 정책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의 청년예술인 / ‘청년 예술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유효성 | 김재상

  4-4. 예술과 문화-청년과 청년예술() / ‘청년으로 청년예술 읽기 | 채태준

  4-5. 예술인의 주체적 활동을 위한 거버넌스 / 청년 예술인 담론과 예술 거버넌스: 다시 쓰는 주체로서의 예술가와 미래 | 오정은

 

1. 제작 목적

<미래를 여는 예술문>(2021)은 하나의 선언문으로, 정책 및 행정에서 규정하는 예술인의 의미를 재점유하고, 정책에 관여할 실효적인 도구로서 예술 현장의 언어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2.  제작 배경

과거와 오늘: 질문하기까지의 여정

오늘날의 예술인은 범주화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다양성은 예술을 창조적이고 풍요롭게 하는 기본적인 조건이나, 예술이 노동 시스템과 불화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고용보장제도의 노동 인정 범위가 예술의 특수한 형태들을 포함하지 못한다면, 제도가 예술'로 규정하는 순간 예술인은 오히려 보장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2021)은 예술인이 처한 이러한 상황에 주목한다. 예술인이 당면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갈 지점을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예술인이 처한 문제를 예술의 근본적 속성에 따른 필연적 귀결로 여기기를 거부하고, 예술인의 역할에 대한 협소한 정의, 예술인 권리에 대한 낮은 인식, 예술인 지원 제도의 미비함¹⁾ 등을[1] 문제화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구체화하려 한다.

시작점은 청년예술 정책이다. 청년예술 정책은 청년의 문제와 예술의 문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고안되었다. 그러나 청년이 누구이며 그들이 왜 지원의 대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년지원 정책은 연령에 근거한 세대론으로 귀결되곤 한다. 또한, ‘예술이 무엇이며 그 지원이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되는가에 대한 물음이 충분히 숙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술정책은 노동과 복지라는 두 의제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간다. 그로 인해 예술인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반복한다. 정책의 수행 주체로서 청년혹은 예술인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되는가? ‘청년예술이라는 범주는 예술 지원의 의미에 대한 성찰 없이 단순히 복지의 일환으로서 규정된 것은 아닌가? 청년예술 개념에서 우리는 불안정하게 맞물린 두 의제에 내포된 문제들을 발견한다. 그러나 동시에 청년예술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시도가 이루어지는 영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년예술 정책의 전개를 살피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은 우리가 주목하는 문제를 가시화할 한 가지 방법이 된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2021)은 제도에서 규정된 문화예술계의 의제를 발굴해 현장의 언어로 재정리함으로써 문제를 새롭게 설정하기를 목표한다. 이 여정은 예술계 내부에 응집된 크고 작은 목소리를 모으는 일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속한 담론을 거리 두고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예술인은 현장 당사자로서 이미 제도와의 관계 안에 있고, 지원 정책이 요구하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 증명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의 특수성을 뒷받침할 제도적 섬세함을 요구하는 일은 예술 자체의 자율성이라는 가치와 끊임없이 반목한다. 하지만 논의를 형성하고 와해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작업 역시 입체적으로 변모한다. 이하의 이야기는 그 변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의 문을 소개한다.

 

내일을 위한 한 발자국: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듣고 보았나

강정아는 문화예술정책 안에 있는 예술 노동과 복지 사이의 모호한 간극에 관심이 많다. 예술창작을 제도상의 노동 가치로 환원하는 기준이 부재한 채로 예술인 당사자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입증해야 하는 현 시스템에 의문이 있다. 예술인이 여전히 복지수혜자에 머무르는 실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논의를 전개한다. 예술 노동'이 가진 의미를 재설정함으로써 그것이 동시대의 필수적인 창조 노동'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안준형은 예술의 비판적 가능성을 고민하면서 예술가는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관해 고민한다. 예술가의 성장과 그것의 양면인 커리어문제를 지원사업과 현장 제도 사이의 괴리 안에서 살펴본다. 지원사업이 예술가의 커리어 성장과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기대가 과연 마땅한 요구일까. <미래를 여는 예술문>이라는 상투적이디 상투적인 선언문이 더 낫게 성장한 미래'의 예술 작품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의 공백을 채우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김재상은 청년 예술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과 존재론적 질문이 유효한지 반문하면서, 청년 예술인(넓게는 문화예술인)이 문화예술 생태계에 안전하게 안착할 수 있도록 환경과 조건을 조성하는 방법으로서의 제도 활용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 현장과 제도에서는 정책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의 청년 예술인, 예술인으로서의 청년 예술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피력한다.

채태준은 청년예술 개념을 청년예술이라는 두 단어가 각각 포함하는 역사적 조건들이 절합articulation 되는 과정에서 탄생했음에 주목하고, 전자인 청년, 관련 연구 및 정책의 장에서 언급된 청년예술에 관해 논한다. ‘청년 예술인당사자들의 말하기를 동시대 청년 활동가들의 논의에 비추어 함께 고민한다.

오정은은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 등 최근 등장한 청년 예술인과 예술 거버넌스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시대 변화에 따라 요청되는 새로운 예술가 상을 생각해보았다.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개인과 사회적으로 발명되는 시민이 서로 다르듯, 사회가 호명하는 예술가의 상 역시 비고정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세대론과 협치가 혼재되어 등장하는 오늘날의 문화예술 정책은 어떠하며, 이러한 시대 의제에 반응해 다음을 볼 수 있는 예술가의 상은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써나가야 하는 것일까. 행정자원의 공동화 등 적극적 정책 참여의 장으로 이루어진 실험의 확장과  평가, 그리고 예술가의 권리와 더불어 대표성(대신성), 전문성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계속해야 할 논의 과제다.

윤동주는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 팀에서 근무 중이며, 예술정책 담론 형성을 위한 거버넌스인 <서울청년예술인회의>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관 거버넌스 구조의 다양한 용례와 가능성에 관심이 있다. 제작 회의를 통해 문화예술 행정가로서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고민과 기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민주<미래를 여는 예술문>이 글이 되는 과정에 참여한다. 예술인의 생계가 어떻게 꾸려지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정당화되는지에 관심이 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당연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으로 코드화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다양한 삶의 방식과 사회적 존재론을 긍정하고 싶다.

 

3. 제작단계

2020.03-05 |ᅠ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운영단 강정아, 김재상은 제도에서 규정한 예술인'의 개념과 문화예술계 현장과의 거리감을 확인하고자 한다. ‘현장 예술인당사자의 목소리로 발화하는 일종의 선언문인 <미래를 여는 예술문>이 어떤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상상을 안고 시작했다.

2020.05-07 |ᅠ

문화예술계 고질적인 문제이자 오랜 논쟁 주제인 예술은 노동이다 vs. 아니다의 주제로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했다. 토론자 안준형(시각예술가), 채민(드라마터그), 성지수(콜렉티브 뒹굴, 화학작용), 오정은(미술비평가)과 함께했으며, 웹진숨은참조1[말하다]에 담았다.

2020.08-09 |ᅠ

문화예술 생태계라는 모호하고 거대한 범주 안에서 '현장''당사자성'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어떤 예술인을 당사자로 볼 것인가를 묻기보다는, ‘누가어떻게 예술인을 규정하는가를 물었다. <예술인 복지법><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정한 예술인 정의를 살펴보면서 논의의 단계를 밟아 나갔다.

2020.09-11 |ᅠ

강정아(독립 기획자), 김재상(문화연대 활동가), 오정은(미술비평가), 안준형(시각예술가), 채태준(문화정책연구자), 윤동주(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 김민주(정치철학연구자)로 이루어진 제작 워킹그룹이 2주마다 정기스터디를 진행했다. ‘예술과 노동', ‘예술과 청년', ‘예술과 시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면서 각자의 활동영역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2020.11 | <미래를 여는 예술문> 제작을 위해 집중 회의 및 집필 진행.

2020.12 | 서울청년예술인회의청년-예술인발행.

 

미래를 여는 예술문의 논의지점

지난 n개월 동안 각기 다른 영역의 인물이 모여 <미래를 여는 예술문>(2021)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제작 방법을 논의했다. 특정 주제에 국한해 선형적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대신, 다양한 방향에서 제시되는 논점을 수용하고 그것으로부터 연결점을 찾아 나가는 방식으로 구도를 넓혀 나갔다. 우리는 예술인을 둘러싼 쟁점이 모호하고도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마주했다.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당사자는 다양한 장르 및 창작 환경에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결코 단일하지 않은 의제와 맥락을 갖는다. 그 경로를 짚어 나가는 작업 역시 다양한 방향으로 발산했다. 하나의 예술문을 만들고자 시작된 작업은 이질적이고 상호 갈등적이기까지 한 논의점들을 먼저 마주해야 했다. ‘예술가의 주체성작업의 자율성을 중심으로 질문이 뭉쳤고, 점차 제도와의 관계예술가 간의 관계라는 두 길이 닦였다. 미래로 가는 길목에 놓인 논의 지점을 우리가 던졌던 물음의 형태로 소개한다. 현 단계의 문제의식을 공유함으로써 <미래를 여는 예술문>(2021)에 깊이를 더하고, 비슷한 시도를 하는 다른 이들의 여정을 풍부하게 하기를 바란다.

 

○ 예술가의 주체성: Q.예술가의 정의(정체성)는 무엇인가? 예술가와 예술 작업이 사회의 당연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은 왜 사회적이어야 하는가? 예술가의 자기규정과 외부의 규정은 왜 불일치하는가?

“예술인은 소위 ‘사회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만 협소하게 호출되잖아. 마을 축제나 벽화 그리기 같은 제한된 상상력 안에서만 예술가는 사회적 존재가 되는 것 아닌가?”

“국가가 예술을 지원해줄 땐 항상 명분이 필요하고.”

“벽화 마을 조성이나 차상위 계층을 위한 예술 공연에 국한된 게으른 정책 구상을 넘어서야 해. 그러려면 제도에게도 상상력이 필요하고.”

“예술가와 그 작업이 다른 모든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해.”

“예술인의 성장 궤적도 이해할 필요가 있어.”

“창작 과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한 뒤에 정책에 반영해야지.”

“예술인에게 부여된 정책적․행정적 언어를 예술인 스스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

“수동적인 정책 대상에서 주체적인 정책 당사자로 이제 바뀌어야 할 텐데 말이야.”

 

○ 예술가의 자율성: Q.예술인의 창작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예술은 어떤 자율성을 필요로 하는가?

“문화예술을 지원의 대상으로 볼 경우 국가의 검열과 관리도 같이 받게 될 거야. 국가가 예술인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돼.”

“지원에 의존하면 예속된다는 역설이 참 어렵다.”

“국가가 예술인을 애초에 왜 지원해야 하는데? 공공의 범위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야?”

“예술이 국가와 국민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제도도 알고 있을 거야. 역설적인 건 그 안에서 예술은 여전히 수단적이라는 것이지.”

“문화 예술은 공공재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공공재 생산에 마땅한 대가가 예술인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거지. 소득이 적은 예술인은 복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고.”

“그런데 왜 예술을 지원해야 해?”

“어… 아름다우니까? 삶을 풍요롭게 하니까. 각박한 세상에 예술이 숨 쉴 구멍을 뚫어주는 거지.”

“국가의 요구에 대한 비판과 국가 요구라는 두 결이 우리 논의 안에 혼재해 있는 것 같아.”

“예술에서 발현되는 창조 ‘노동'을 더 논의해야 해. 지원과 공공이 아닌, 수요와 공급 개념도 아닌, 고전적 노동개념으로 돌아가야 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본원적인 질문으로 말이야.”

“예술계가 도제식 시스템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문제야. 사적인 인맥이 없는 사람은 어떡해. 예술계 진입 장벽이 얼마나 좁으니.”

“상징 자본을 분배하는 체계가 협소하니까 예술이 국가검열에 취약해지는 것이지.”

“사적-공적 네트워크가 분리되지 않으니까 협소한 씬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방치되기 더 쉬운 것 같아.”

“그러게.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이 일어난 게 2016년인데 지금까지도 현장 곳곳에서 악행과 고발이 끊이지 않잖아.”

 

○예술인과 제도 및 국가와의 연결: Q.제도와 예술인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제도와의 관계에서 예술인으로 바라는 상은 무엇인가?

“예술인이 바라는 것은 주체적인 결정권을 갖는 것이지! 그러기 위해서 열린 거버넌스 구조가 필요해.”

“단순히 정책에 참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예술인이 과정과 결과의 직접적인 주체로 고려되어야 해.”

“그럼 예술인은 다 거버넌스에 참여해야 해?”

“예술인이 다 참여한다기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대신성’의 방식으로 서로를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결국 현재 상황을 말할 수밖에 없는 건 당사자이니까.”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업무계획서에서 ‘거버넌스'라는 단어 자체가 확 줄었더라. 이전에는 ‘협치’나 ‘파트너’ 같은 수사가 종종 사용되곤 했는데 이제는 아예 자취를 감췄어. 보다 연속적인 차원에서 거버넌스를 모색할 필요가 있어.”

“거버넌스의 형태도 문제야. 예술인 당사자의 역할은 전달 체계의 끝 단위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잖아. 현장이 반영된다는 점은 장려할만하지만, 제도 상부로 갈수록 협치 개념 자체가 무력해지는 것 같아.”

“맞아. 현장 예술인이 형식적으로 동원되는 수준을 넘어서 다양한 참여 방식을 고안해야 해.”

“거버넌스를 통해 예술인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해. 거버넌스로 논의할 수 있는 공동의 ‘행정 자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공공에게 말 걸기’를 넘어서 ‘공공의 자원을 통해 (예술 장 내 다른 예술인에게) 말 걸기’의 경로를 모색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예술가들 간의 관계연결: Q. 예술가 간에 연대는 어떤 의미인가?

“예술인이 원자화되기 쉽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 자원을 공유하고 연대할 기반이 필요해.”

“그런 기반을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건데? 예술인들 스스로 만들어야지. 국가가 대신 만들어주길 요구하는 건 좀 아이러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지. 한층 거시적이고 상호적인 차원의 변화가 필요해.”

“예술인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경로가 있었으면 좋겠어.”

“매체와 장르 간 협업을 통해 현장의 다양한 생산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현장’이란 게 도대체 뭐야?”

“그러게. ‘현장'은 강력하고도 불명료한 개념인 것 같아. 사변적 의미의 고찰도 필요하겠지만, 이 개념을 확실한 기표나 상징으로 응축해 정치적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성찰도 필요한 것 같아.”


1) 최근 들어 예술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예술인 권리 침해 방지, 성평등한 환경 조성, 폐쇄적 예술 환경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면한 문제는 산적해 있다. 문화예술계 내부의 위계로 인해 편중된 권한, 구조적 환경에 의해 심화되는 성폭력 문제, 인지도와 유명세에 의존하는 체계로 인한 기회의 불균등성,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필요로 하는 예술에 대한 몰이해, 예술대학 내부의 도제식 교육과 현장이 유리되어있다는 문제는 여전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문화예술 전반에서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계의 특수성과 연동된 복잡한 역학 속에서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각 문제는 예술계마다 서로 다른 형태로 구체화되고, 안에서도 세대․성별․장르에 따라 다르게 경험된다. 이러한 복잡성을 포착하는 일은 예술인의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시도에서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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