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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말한다

[말한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 |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 작성기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11. 12.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 작성기

 

“예술의 가치가 미래를 향할 때 어떤 문을 열 수 있을까?”¹⁾

 

지난 7월 웹진 《숨은 참조》를 통해 ‘미래를 여는 예술문’(이하 ‘예술문’)의 여정을 7편의 편지와 함께 살포시 전했다. ‘미래를 연다’는 다소 추상적인 말에서 시작한 우리 작업은 제도와 정책에서 ‘예술인’이 묘하게 비끌리는 현상을 문제화하기 위해 문화예술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예술인의 경험으로부터 문답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인정투쟁해야 하는 예술인의 환경은 사회 제도 및 질서와 예술인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주요한 무대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문화예술 기획자로 활동하며 이야기를 쓰고 엮는 일을 한다. 기획자는 보이지 않는 가치와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이야기와 이미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아직 선명하지 않은 예술문의 목적과 의도를 전달하는 글을 쓸 때마다 초조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증명과 인정투쟁의 습관이 직업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기분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할수록 글에 안간힘이 베어 낯설어진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 같다. 설명하기 위한 글은 항상 절대적 입장을 취해야 하고, 확신과 확증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엇 하나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입장에서 겪는 경험은 단정한 확신을 동반할 수 없다. 이것이 예술문이 지나온 길에서 직면한 간극이자 균열이다. 이를 대하며 우리는 모든 상황을 하나의 규정으로 쉽게 단순화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 예술문은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경험을 나열하고 연결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을 나누는 것이다. 다층적으로 산포한 경험이 때때로 겹쳐지고 이어질 때 우리는 제도의 단일한 시선이 아닌 예술인의 다양한 시선을 위한 자리를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정해진 길이 아니라 필요한 길을 닦고 만드는 ‘예술문'의 여정은 2021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 예술문은 ‘예술은 노동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노동을 둘러싼 전제에서 출발한 이 논의는 ‘자본주의 질서로 예술을 포섭할 수 없다’ 혹은 ‘예술은 노동환경을 전복할 수 있는 수단이다’라는 의견에 닿았고, ‘예술산업의 양극화 상황에서 노동의 위치’, ‘노동 환경에서 안전할 권리’, ‘팬데믹 이후 변화하는 세상,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 ‘기본소득으로부터 평등할 권리’ 등의 주제로 이어졌다. 예술과 노동을 둘러싼 이러한 다양한 논의의 근간에는 예술 노동이 직업으로 인정받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는 난점이 있다. 특정한 근무 시간 ・ 장소 ・ 공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일이 단기적 ・ 일시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으며, 전시회나 공연을 하기 전에 수행되는 리서치 ・ 연구 ・ 리허설 ・ 연습 등의 시간은 정확하게 책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를 시간이나 장소의 측면에서 사유하기를 탈피하여 대안적인 노동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우리가 당면한 것은 참혹한 현실이었다. 한 예로, 예술문 구성원인 박선영은 「나의 신념이 누군가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다」²⁾에서 독립영화 현장의 일화를 통해 ‘좋아서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당연히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라는 막연한 인식이 만연하며, 현장에서 예술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조차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작업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나 대처 매뉴얼이 부재하다는 점, 작업이나 연습 과정 전반을 통해 만들어지는 창작에 대한 저작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 예술인을 증명하기 위한 ‘예술인복지재단’의 가입 기준이나 고용보험 및 실업급여 등에 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등이 잇따라 지적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사안들이 논의되어야 할 장소인 ‘계약서’가 실제로는 어떤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를 되짚는 데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이하 ‘낭만계약서')이다. 낭만계약서는 창작을 하는 데 필요한 환경을 낭만적으로 반영하는 계약서를 만들어보려는 예술문의 시도이다. 예술 활동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실제로 고려해야 할 지점을 짚어보는 작업을 가상의 계약문 형식을 빌어 전개한다. 이를 통해 예술문은 예술인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가치들을 환기하고 고민할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의도적으로 설정한 ‘낭만’이라는 단어는 이상과 현실이 외따로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게도 예술인 자신이 바라는 작업 환경을 낭만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낭만계약서를 제작하면서 예술문은 예술인이 사회와의 관계에서 바라는 최소한의 약속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묻게 되었다. 예술인을 규정하는 정의를 어떻게 재설정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창작이 신뢰를 통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민하는 방법을 상상했다.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그 약속의 전제를 이루는 영역에서 어떻게 공명을 이룰 것인가를 찾고 싶었다. 낭만계약서는 단순히 계약서라는 안전 장치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창의적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생산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몇몇 질문은 아직 설익었거나 의도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관적인 언어를 체화하기 위해 많은 의미를 깎아내 잃기보다는, 아직 망설이는 생각들을 더 담아보고 싶다. 지난 기억과 경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낭만’에 당도하기 위해 현실에 산재한 부당함과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를 채집하고, 그 길목에서 계속해서 예술 ‘문’을 두드려보기를 바란다.

낭만적인 계약서가 현장에서 최소한의 ‘일’을 보장받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작동하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보는 동료들의 손을 잡고 예술 ‘문’으로 향한다.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_설문조사

  1. <예술인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를 위한 사전 설문링크 : https://surveyl.ink/answers/Mq9qzj
  2. 2차 설문 참여일시:  2021.11.10 ~ 11.30
  3. 진행 과정

             2021. 3~7월: 내부 스터디

             2021. 7~9월: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 제작 회의

             2021. 9~10월: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 1차 설문

             2021. 10~11월: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 1차 피드백 후 2차 설문

             2021. 11~12월 : 법률 자문회의 및 피드백 점검

             2021. 12~2월: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 코딩 후 프로그램

             2022년 3월: 배포 예정

✳ 일정은 추후 변동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선언을 위한 여정」, 웹진 《숨은참조》, 2021.7월 발행 https://url.kr/pbdznm

2)웹진 《숨은참조》, 2021.7월 발행 https://url.kr/8jr4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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