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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말한다

[말한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 | 신자유주의 문화예술산업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기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3. 11.

《미래를 여는 예술문》 1. 신자유주의 문화예술산업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기

 

리영

 

예술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예술노동에 관해 인식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이후, 내가 겪은 예술노동환경 문제에 관해 주변 예술인들에게 관심과 동참을 호소하였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배우는 주어진 현장에서 연기만 잘하면 되었지, 무슨 환경 탓이냐라는 반응이 제일 많았다. 나는 배우로서 현장에서 연기를 전문적으로 해내자고 할 때 발생하는 환경의 문제 때문에 육체적·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으나, 오히려 나만 다른 세상에서 사는 존재인 듯 고립감을 느꼈다. 그러한 반응은 오히려 나의 열정을 더욱더 뜨겁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힘들게 시작한 만큼 많은 이들을 설득을 시켜보자라는 마음으로 대학원 졸업논문의 주제를 배우의 노동 환경으로 쓰기로 결심하였다. 허나 생각보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연기과에서 그 주제만을 다루는 졸업논문이 없었고, 실기 중심의 연기론적인 논문이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지도교수님조차 갸우뚱했었다. 절망적이었다. 본격적인 글쓰기 시작 전까지 심적인 방황이 컸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와야 했던 여름방학이 되어도 조사한 자료와 나의 경험을 엮는 것에 어려움이 생기고 인터뷰를 도와줄 이도 찾지 못했다. 그동안 큰소리쳤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다행히도 여름방학이 지나고 글을 써야 할 시기가 되자 교수님을 비롯한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주제에 대한 공감과 동기부여의 힘을 더해주었다. 제출 시기를 4개월가량 남겨 놓은 시간이 되었고, 조사한 자료와 동료 배우가 겪었던 경험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엮어지기 시작했다.

예술인들의 권리와 노동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류열풍과 더불어 드라마 산업이 커지면서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뛰어들게 됨으로써 자본주의로 예술계는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계약 분쟁이 제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문화예술계가 산업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에 들어선 것이다. 정부도 뒤늦게 2012예술인 복지법을 비롯하여 20147월에는 대중문화산업예술산업발전법을 제정하였다. 문화예술이 산업으로 급격한 발전과 변화를 맞이했다는 하나의 예이다. 문화예술계의 자본주의와 경쟁주의 시계는 생각보다 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산업구조환경의 변화를 예술인들은 준비할 겨를이 없었고 예술대학 역시 발맞추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예술대학의 주요 목표는 당연히 순수예술을 위한 자아실현이 올바른 길이 맞지만, 급격한 산업화를 맞이한 문화예술산업 소용돌이 속에서 졸업 후에 예술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신진예술가를 위한 교육이 필요함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 안에는 예술인 법, 계약서, 복지 등 생존에 대한 여러 가지 안전망에 대한 교육이 필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예술인의 직업적 위치는 사회에서 규정한 법의 테두리 밖에 존재한다. 개인사업자로서 근로·노동법에 제약을 받지 않는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치를 갖추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근로자도 노동자도 아닌, 우리는 예술노동이라는 그사이 언저리쯤에 안착해있다. 한 예로, 표준계약서 내용만 봐도 예술가의 지위를 알 수 있다. 개인으로 활동하는 예술인의 경우 변호사나 로펌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코로나로 인한 일자리의 부족과 치열한 생존환경에서 일을 준 것만으로도 하는 감사하며 계약서를 대충 읽어보고 사인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서를 자세히 읽어보더라도 일어나지 않는 위험을 미리 예견하거나 예정된 것들을 상대방()에게 조항을 무조건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나 역시도 계약서를 작성할 때 한없이 왜 작아지고 두려운지 모르겠다.

나는 한 드라마 촬영장에서 18시간을 대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 겪었던 최악의 상황이 아마 나에게는 현장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이 된 것 같다. 집에서 촬영장을 나설 때 마치 전쟁에 나가는 사람처럼 생존 가방을 만들어서 간다. 추운 겨울에는 여벌의 옷과 담요부터 간단한 식사, 1L 등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낭에 싸서 차에 싣고 간다. 연극을 했을 때는 햇빛도 들지 않는 더러운 연습실에서 온종일 내 차례를 기다리며 출연료 없이 동료들의 연기를 보느라 하루를 보낸 적도 많았다. 나는 아직도 부당했던 기억의 트라우마 속 굴레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혹독했던 기억과 경험들을 일일이 말하며 신파적인 호소를 하고 싶지 않기에 그저 예술인의 지위와 현장에서의 안전망, 표준계약서 등이 촘촘해지고 법적으로 보호받는 노동자이길 바랄 뿐이다. 2021년 서울청년예술인회의에서 활동하게 되고 미래를 여는 예술문팀원들을 만나면서 예전만큼 외롭지는 않다. 예술인을 위한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음에 행복했고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2022년에는 우리의 예술인들의 목소리가 모여 국회까지 크게 울려 퍼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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