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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말한다

[말한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 | 업이 되기 위한 조건들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3. 11.

 

《미래를 여는 예술문》 2. 업이 되기 위한 조건들

 

강정아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2021년 한 해를 보낸 작업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노동과 자본주의 시장에서 예술의 가치, 최소한 예술가의 권리를 요청하기 위한 시도를 다루며, 각자의 창작 경험과 입장을 밝히는 과정은 지지부진한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해의 우리의 성과는 예술가의 일을 노동으로 밝히는 일과 시스템에서 노동을 규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노동을 잉여로 치부하게 되는데 포섭되지 못한 예술 이 자본주의 내 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열쇠로 보고 있다. 비물질적인 예술의 가치를 기존의 노동(기계화/대량생산, 가치교환/화폐, 쓸모 여부)이 아닌 예술 노동(수작업/예술품, 환대/연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환했을 때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는 지점이 있고, 이것이 자본 논리로 연결되었을 때 발생하는 불협은 노동의 조건이 달라지지 않을까, 노동 조건의 변화를 예견한 희미한 희망과 상상력을 품어보기도 했다.

또 하나 우리를 둘러싼 일터에 관한 논의를 나누면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와 도장을 찍기 전에 긴 호흡으로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계약서에 도장 찍는 일에 왜 여유가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제안받은 일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생계를 유지하는 문제와 연결되기도 하지만, 어떤 일에서 자신의 쓸모와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프리랜서 일을 지속하다 보면 갑자기 몰려든 일 때문에 밤을 지새우고 예상했던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와 완벽하게 해내고 싶고 완성도를 고려하다 보면, 일을 선택할 때의 기준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됐다.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는 예술 일을 증명하기 쉽지 않은 부분을 계약서로 정립하려 했을 때 발생하는 간극을 드러내고자 했다. 계약서가 구체적이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특정한 일을 구분 짓기 모호한 특히, 창작의 영역에서 협업과 협력을 요할 때 서로 간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계약서 내용에 세부적인 것들을 적기보다는 원활하게 합의한다. 논의한다.’ 등으로 마침을 찍는 경우가 많다. 어쩐지 모호한 어휘는 계약할 때 갸우뚱하면서 넘어가는데, 막상 일을 주고받을 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일을 처리해야 할지 의문이 들어 상황을 살피고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도 발생하기도 한다. 기획자, 코디네이터, 연구자, 리서처의 작업에는 창작물을 이루기까지 여러 일이 수반한다. 이 일은 목록화로 구분되기가 모호하고 결과물에 대한 정확한 구현이 있는 일이 아니기에, 계약을 맺은 당사자의 의중을 알 수 없을 때면 지금까지 일을 수행하고 제작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해나간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면, 당사자와 부딪혀가면서 , 이럴 때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고 이것을 경험이라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눈치코치로 일한다고 말하기는 싫지만, 여러 상황에 따른 변수가 다층적인 상황을 잘 살피는 눈치코치는 일을 할 때 중요한 덕목인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눈치코치가 아닌 이 일이 좀 더 체계적이기를, 또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하나의 장치로 작동되길 바랐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예술 노동을 둘러싼 논의가 왜 예술이 노동이 아닌지에 대한 외침과 함께, 일하는 조건을 구체화하는 시도를 갖는 시도로 접근했다. 예술 노동의 인정투쟁이,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요구하기 위한 목소리들이 예술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큼 그 일을 해내기 전에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기 위한 단계로 사용되길 바랐다.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의 기본적인 의무 편에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자.”요청과 간섭을 헷갈리지 말자.” 조항이 있다. 이는 작품을 만들기까지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비난하지 않는 수평적 관계로 위치하자는 내용을 포함한다. 또한, “프로젝트에 따라 적극적 개입이 따르고 이에 대한 협의가 필수적이다.”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계약은 서로 간 의사를 맞춰가는 과정으로 존재하지만, 서로를 위한 배려와 존중이 오히려 더 많은 생각과 과정을 삭제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20219~11월에 이뤄진 설문조사를 통해 계약서 작성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집하고 예술 현장에서 최소한의 권리 보호를 위한 항목을 표준계약서에 따라 작성한 것이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초본이다. 두리뭉실하게 작성된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입장을 선별하고 역할을 확정한 것을 유연하게 바꿈으로써 눈치코치로 모호하게 일을 처리하고 수행하는 것이 아닌, 예술가의 을 위한 더 많은 조항과 목록을 나열해보도록 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예술-노동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을 때, 예술노동이 자본주의 쓸모 여부로 존재하는 근거 방식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증명하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예술가를 위한 낭만적인 계약서는 예술가의 을 정의하고 재설정하는 일을 고민하고 창작이 신뢰를 통해 만들어지는 섬세한 과정을 담아가고자 한다. 업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지. 2022년의 여정은 업이 되기 위한 조건을 나열하고 예술 노동력의 가치를 구체화하는 시도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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