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진 '숨은참조'/말한다

[말한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 ① 행운의 편지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7. 28.

행운의 편지

 

신지원

이 편지는 마포구 어딘가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를 돌며 받는 사람에게 불편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당신의 마음이 원하는 만큼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편지를 받았으나 96시간 이내 자신의 손에서 떠나 누군가에게 보낸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때문에 대학로에 있는 어떤 이는 받고 무시했으며 전달도 회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몇 년 뒤 더 좋은 곳으로 이주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내용을 다 안다는 듯이 끄덕이고선 읽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회차당 3백만원이 가까이 받는 연극배우로선 좋은 기회를 얻었고 잘나가는 중년 배우가 되었습니다. 기억해 주세요. 이 편지를 받으면 불편해질 수 있을 것이고 혹은 어쩌면 너무 불편해서 힘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버리거나 낙서를 하는 것은 절대로 됩니다. 이 편지는 받게 될 당신과 또 다른 당신들 모두의 불편함이 다 담겨 결국 너무도 불행한 편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7통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불편이 깃들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의 불편함에 행운을 빌면서.


1

발신인은 프리랜서 창작자 신지원이다. 지금까지 조연출, 음향, 영상 오퍼레이터, 연기, 극작, 앨범 발매, 움직임 워크숍을 진행했고 때론 글을 쓰는 작업을 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나름 한결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극을 하고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 창작자 신지원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개인으로서 자신을 피력해야 할 때 내 창작물과 역할은 증명도 어려운 부수적인 부산물 같았다. 그래서 항상 신 지 원, 그 석 자만 남았다. 예술 한다고 떠들기도 힘든데 장르도 다양하니 하나로 꼽으면 경력이 부족했고, 여러 개를 하면 떨어졌다. 하나만 하기엔 돈도 발전도 안되기에 나는 열심히 그 모든 것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정작 제도 안에서 남는 건 신지원이 전부였다. 이건 내가 창작하기 이전과 다르지 않다. 5년이란 시간 동안 남짓 쉬지 않고 노동해왔는데 여전히 그게 전부다. 신 지 원.

심지어 이걸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신지원을 모를 것이다. 나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 싶어도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형태의 노동자인지 분류하기 어려워 결국 제외해버릴 것이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 사실 무엇이 부당하고 정당한 것인지도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었다. 20대 전반을 무대 주위를 배회하며 여러 포지션으로 극장에서 일했다. 어떤 프로덕션을 만나면 너무나 당연하게 계약서를 작성했고, 또 어떤 프로덕션은 너무나 당연하게 계약서는 물론 열정페이도 없이 진행했다. 계약서가 있든 없든 나는 그 결과를 혼자 씹고 삼켰다. 마땅한 표준계약서가 없는 이 사태에 대해 목소리를 낼 만큼 큰 영향력 있는 예술가도 아니었고 그만큼 예술가로서 어떠한 가치를 돈에 두지 않아야만 연명할 수 있다고 합리화했고 초반에는 지원사업에 부합할 자격이 되기 바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시민을 포기하고 이 궤도(예술계)에서 나를 말하고 소개하고 자리 잡고 싶었다. 당시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서류를 준비할 때 증빙할 수 있는 노동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카페 아르바이트 혹은 복지용구 사업장의 블로그 마케팅이 다였다. 이것은 예술 하는 데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많은 역할을 실질적으로 해왔지만 예술인으로서 구두로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인터넷이 발달하고 모든 지원사업과 절차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때문에 어떤 파일(file)의 형태로 증명하기 위해 작품을 했고 그 작품으로 또 증명을 했다. 예술이 아니라 증명을 해왔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나는 ‘증명’하기 위해 한동안을 버텨냈고 자격도 얻어냈다. 크게 예술인 패스가 있겠다.

 

2

2019년, 드디어 나는 공식적인 (서류상)배우가 되었다. 그토록 추방당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써왔던 이곳에서의 삶이란! 가까스로 궤도 안에 들어왔다. (야호!) 그렇게 나는 정체성이 모호한 예술인 패스를 가지고 있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알바생이 되었다. 한동안 참 안심되었다. 그러나 티켓을 사거나 지원사업이 아니고선 예술인 패스를 활용할 기회가 없었다. 그저 자격부여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지원사업 안에서만 통용되어 안 그래도 폐쇄적인 예술계를 더욱 고이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걸로 우열을 가리고 심사를 하고 간혹 자격도 박탈했다. 하지만 젊은 청년들인 나의 동료들은 여전히 최소한의 자격을 얻기 위해 감수를 반복했다. 나 역시 당사자였다가 방관자가 되니 어느덧 선명하게 보였다. 따지고 보면 예술인 패스는 t멤버쉽보다도 못했다. 예술인으로 증명되기 위해 달려온 시간들은 노동자로서(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에 모든 혜택과 복지에서는 사각지대를 향한 꼴이 되었다. 탓해봤자 예술하며 돈을 벌겠다는 포부 따윈 내 스스로 삭제했다. 그 원초적인 욕구 자체가 나의 경력을 방해하고 혼을 빠지게 만들 거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한 마디로 나조차 나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야지 예술을 할 수 있다고 단념했다.

뒤늦게 알았다. 방심했다.

나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지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지구에 살고 있었고, 이 지구에서 사용될 패스가 필요한 거였다.

 

3

지구, 거창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 한 노동자로서 제대로 된 보상과 혜택을 받으려면 지금과 다른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더 이상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술’ 자체는 무형이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 물리적인 시간과 이동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노동이다.

마침내 내가 원해야 하는 것, 진정으로 필요하고 살아가기 위해 어떤 것을 바래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본다. 이 숙제는 예술인 패스를 갈구했던 시기보다 더욱 고통스럽고 괴롭고 더럽다. 그러나 훨씬 중요하다.

우선 나도 오랫동안 속아왔던 예술가는 가난하다는 논리는 절대 회자 되어선 안 된다. 막무가내로 돈을 달라, 지원해달라고 아우성치는 게 아니다. 같은 선상에서 예술가가 노동자로 인식되는 것. 모두가 노동자로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거나 살아남아 정당한 삶을 살아갈 권리를 획득하고 싶다. 노동자가 되고 싶다. 한 개인 즉 어떠한 예술을 (일)하는 노동자로 우리 모두가 자리잡기를 바란다. 그것이 일반인과 예술인으로 건넛집 불구경하듯 서로의 불의를 참는 것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함께 모색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꿈꾼다. 가난을 운명처럼 받들지 않고 내 노동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 발생하게 되는 불편한 지점을 정당하게 요구하고 싶다.

 

4

예술문을 통해 우리가 서 있는 장르가 다름에도, 사적인 대화도 없는 서로임에도 각자 껴안은 불편함이 너무도 비슷해 지금까지 놀라고 있다. 혼자 어떻게든 잠재웠던 합리화들이 다시금 이들의 입에서 발화될 때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힘이 났다. 낭만적이든 이상적이든 추상적이든 대안이 제시되기도 하며, 아- 내가 불편했던 건 꿈이 아니었다며 ‘나만의’ (자책, 열등감, 착각, 오해, 객기) 비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획, 미술, 시각, 행정, 음악, 매체, 공연 다른 예술계에서 종사해도 우리는 어떤 소용돌이에 분명히 휘말리고, 이 사태는 구조적인 문제이며 명확한 지적이 필요한 부분이라 마침내 인식되었다.

이 과정이, 우리끼리 유효할 수 있다는 것도 예상한다. 그렇다고 언젠가처럼 나를 없애고 버리고 다독거리기엔 나는 이미 불편하다. 불편은 착각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것이 열정으로 꿈으로 당연히 치부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개인이자 노동자이다. 정당한 권리 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다 태워버릴 수 없다. 이제라도 노동을 지속할 수 있는 체계와 시스템 그리고 보상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기본적으로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지고 쓰여야 한다.

나는 오늘도 연습실로 일하러 간다. 네 시간 동안 움직이고, 토론하고, 기록하며 나의 노동을 성실히 해낼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블로그 마케팅 노동을 세 시간 진행하고, 잠들기 전까지 내일의 연습을 위해 야근할 것이다. 이번 주에 대면 인터뷰 마무리 짓고 선정된 희곡에 대한 소감 노동을 한다. 7월 후반부터는 휴일도 없이 더 많은 시간을 연습실에서 노동하게 될 것이다. 8월에 펼쳐질 작은 공연은 이렇게 망원동 한구석 세 달 정도 지속한 네 명의 노동으로부터 비롯된다. 때론 극장에 있는 조명으로 우리의 연습실과 각자의 방을 비추고 싶다. 예술이라는 투명한 비닐이 씌운 우리의 노동을 어떻게든 설명해내고 싶을 때가 있다. 과정과 결과가 너무도 달라서 특별한 취급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예술이라는 노동을 인정받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감성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도저히 숫자로는 영원히 나의 노동에 대해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예술가이자 노동자다. 불편한 진심이다.

불편함을 나눌 수 있어 정말 힘이 났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당신들의 불편함이 무뎌지지 않고 외면당하지 않고 착각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우리가 불편함을 마주하는 이 끔찍하고 슬픈 시간을 견뎌 어떤 노동으로써의 가치로 환산될 수 있을 행운을 마음껏 바라며 두서없는 글을 이만 줄인다.

 

필자소개

신지원은 하고 싶고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있는 창작자 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극장 근처를 배회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몸’에 많은 흥미를 느끼며 연극에 국한되지 않고 또 다른 분야에서 기웃거리는 기질이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