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예술문? 누구를 위한 예술문인가?
✍ 강정아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운영단
독립기획자
hysterian.public@gmail.com
‘왜’와 ‘어떻게’ 사이
코로나19(COVID-19)가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애당초 계획했던 작업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공공 미술관이 문을 닫거나 잠정 휴관을 선언하게 되었고 그 일로 벌어지는 부수적인 수익활동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계획했던 전시를 내년으로 미루거나 삼삼오오 모이던 활동들이 중단되어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팬데믹(pandemic)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은 삶의 곳곳에서 촉각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팬데믹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우리에게 고지한다.
필자는 전업/본업이라 할 수 있는 일이 ‘기획자’라고 말하지만, 기획으로만 생업활동을 이어나갈 순 없다. 그러므로 행사 기획, 설치보조 일용직, 재단을 통한 외주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수행한다. 이것은 비단 기획자 혼자 해결할 수도 없고 그동안 함께했던 동료 작가들과 일감을 나누고 연결해야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미리 계획할 수 없기에 항상 ‘스탠바이’ 자세를 취해야 하는 실정이다. 코로나로 인한 문화예술계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각 문화재단에서 수많은 지원사업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팬데믹을 준거로 해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자치구나 전국단위의 사업을 살펴보면 ‘청년’ 세대로 기금이 집중된 경우가 많다. 사각지대에 내몰린 ‘청년’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청년예술’이 가진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기대하고 아이디어는 계획서로 표현되어야 한다. ‘청년’ 세대에 이렇게 많은 자원과 기금이 쏟아지고 있지만 ‘청년’과 ‘청년예술’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왜 항상 사회에서 부재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청년’을 경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국가경제 중심점에 해당하는 세대라고 기대하지만, 경기침체와 더불어 경제활동의 참가율은 낮아지고 있다. 실업률은 평균보다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세대의 문제는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적으로 복합되어 얽혀있다. 2016년《예술인 플랜》사업과 청년수당의 논쟁이 두드러지면서 ‘청년예술’이 정책화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고,《청년예술단》사업에서 활동비는 예술인 생활고와 예술 활동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 기회가 부족하게 된 환경을 전복하는 시도로 나타났다. ‘청년’과 ‘예술’이 가진 사회, 문화, 인식적으로 특수한 상황이 서로 교차하면서 청년문화정책 안에서 ‘청년’과 예술인으로서 ‘청년’이 혼재된 상황이 보인다. 그렇기에 ‘청년예술’ 안에서 어떤 예술인을 당사자로 하는가 보다 ‘청년’이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년)예술인은 수혜와 복지 혜택으로서만 직업적 권리가 보장되는지, 재난 사회에 부딪혔을 때의 해결점이 긴급지원사업이라는 한정된 단위로서만 해당되는지(지원사업에 대한 부정과 긍정을 논하기보다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청년예술’이 가진 개념의 사용처와 사례를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미래 사이: 앞으로
최근 <예술인 권리보장법>, <예술인 고용보험법> 등 예술인의 처우를 개선하고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정책이 구체적으로 규정되면서 보장을 제시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제도적 장치가 문화예술계 현장을 고려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행정과 정책의 수행 주체로서 청년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 어쩌면 ‘청년예술’이란 범주는 제도에 의해 예술(인)-복지적 차원으로 영역화된 것은 아닐까. 이러한 관점 아래 필자는 ‘청년예술’이 만들어지고 해체되는 경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성연주 연구자가 웹진『숨은참조』1호에서 발표한 <‘청년예술’을 폐기하라>는 청년예술이 정책 무대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2016-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연주 연구자의 작업은《청년예술단》의 정책 배경과 지원사업이 가진 함의를 파악하는 일, 청년예술의 개념적 위치와 정의를 확인하고자 했다. 여기서 말하는 ‘폐기함’은 “예술 장의 기능”을 촉진하기 위함으로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다.¹⁾ 하지만《청년예술단》은 기능의 촉진보다는 사업적 평가로만 읽혀 2019년까지 운영하다 지금은 이름만 남고 본체는 사라진 상태이다.²⁾
현재 필자는 ‘서울청년예술인회의’를 통해《미래를 여는 예술문》을 기획하고 있다. 제도에서 규정한 문화예술계의 의제를 발굴하여 현장의 언어로 재정리, 재점유를 목표한다. 그러나《미래를 여는 예술문》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그리는 작업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지원과 정책에 포섭되어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증명하는 일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거리두기를 하며 담론을 읽어내기에는 필자 역시 안팎의 범주를 구분하지 못한다. 표면화된 외부자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것보다 내부자의 응집된 소리를 모으는 일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은 예술인의 [의의, 공공성, 노동권리 담론]을 통해 예술(인)-복지적 범주로 규정된 정의를 문화예술계 당사자의 목소리로 (재)해석해보는 작업의 첫 단계이다.
누구를 위한 예술문인가?
● 진행
안준형(시각 예술가), 오정은(기획자), 채태준(문화정책 연구자)과, 남하나(서교예술실험센터 거버넌스 연구TF), 강정아(서울청년예술인회의), 김재상(서울청년예술인회의)은《미래를 여는 예술문》의 목적과 방향, 이에 따른 제작 방법론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제작회의에서 나온 논의는 주제에 따른 선형적인 방법이기보다 입장을 밝히면서 나온 논점을 정리하면서 도출되었다.
● 논의
ⅰ청년예술(인) 의의
- 어떤 ‘예술인’을 당사자로 하는가?
- 공식적으로 국가가 바라보는 ‘예술인’은 무엇인가.
ⅱ 공공성
- ‘청년예술’과 ‘청년예술인’에 대한 방점과 상은 무엇인가.
ⅲ 노동권리 담론
- 고용노동자 ‘청년’과 수혜자로서의 ‘청년예술인’
- 현장의 매뉴얼, 최소한의 원칙
어떤 ‘예술인’을 당사자로 보는 것에 대한 질문보다 누가, 왜, 어떻게 예술인을 규정하는가에 대한 질의를 던지면서 예술인 복지법과 예술인 권리보장법, 고용복지법이 정한 예술인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는 일을 먼저 진행해보기로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들이 체계·질서 등의 기표로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자기-자신에 대한 다양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고 설명의 구조적 조건들로 인해 완전한 설명이 불가능한 것임을 밝혀낼 수 있는 요소로 작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국가가 바라보는 ‘예술(인)’의 상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작업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기구에서 문화와 예술을 공식적으로 함께 표기하는 지점도 흥미로웠다. 문화를 위해 ‘예술’은 항상 어떤 쓰임을 다해야한다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기대효과를 증명하는 서류의 일환처럼 읽혀진다는 의견도 내부적으로 나온 얘깃거리였다. 이는 복지법에서 예술인을 수혜대상, 복지 대상이라고 보는 점과 권리보장법에서 ‘예술인’의 의의, 사회에서 ‘예술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서로의 관점을 비교하면서 읽어볼 여지도 있었다.
큰 갈래에서 하나의 줄기를 선별하기란 쉽지 않고 무엇을 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뒤로하고 앞으로 조금 더 세부적인 갈래는 라운드테이블과 세미나를 병행하면서 ‘예술문’을 제작하고자 한다. 웹진『숨은참조』를 통해 구체적인 사례와 예시, 논쟁을 담아가겠지만, 예술계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말은 감히 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조금 더 최소한의 권리를 요청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는 언어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기에, 적극적으로 ‘예술문’ 제작에 현장의 동료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다음 편은 예술인 권리보장법, 예술인 복지법, 거버넌스에 대한 사례를 분석하면서 청년의 위치와 역할, 사용됨 등 논의를 차근히 담아보겠다.
1) “‘청년예술’을 폐기하라”, 성연주, <숨은참조> 1호, 2020. 08 https://seoulartist.tistory.com/34?category=917556
2) “청년예술을 폐기하더라도” 정진세, <숨은참조> 2호, 2020.10 https://seoulartist.tistory.com/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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