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을 폐기하더라도
- 2017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을 되돌아보며
✍ 정진세
lilytulips@nate.com
시작을 알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서울청년예술단》이라는 이름의 청년예술 정책이 세상에 나타났던 시기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서울시에서 주관한 이 사업은 청년예술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2017년에 시작되어 2018년 서울문화재단으로 이관, 2019년까지 운영되다가 지금은 이름만 남고 본체는 사라진 상태이다.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은 35세 이하로만 구성된 단체에 매월 개별적인 활동비를 지급하며, 작업 발표 시에는 이에 준하는 제작비와 전담 멘토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였다. 운영과정에서 수정되기는 했으나 매해 기본적인 내용은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청년 예술가들의 비판적 지지¹⁾를 받아왔던 본 사업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청년예술을 폐기하라”는 구호는 누군가에게는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인 태도나 정치적인 선언이겠지만, 정책의 기획과 실행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에게는 실제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필자는 본 사업 설계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말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짐을 이미 체험하고 있다. 사업이 소멸되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취지나 의도마저 빛이 바래는 것 같아 본 연구릴레이를 통해 당시의 맥락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이 글은 흔적만 남은 청년예술정책에 대한 비망록이다.
갑작스런 탄생
2016년 10월, 서울특별시장 방침(제310호)으로 서울 예술인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창작 안전망을 구축하여 예술인들의 창작 활성화와 공정한 예술 활동 기반을 조성하고자 《서울예술인플랜》이 수립되었다. 이는 예술인에 대한 지자체의 첫 종합지원계획이라는 의의를 갖고 있다.
계획에서 청년예술을 언급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예술인지원사업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신진 예술인들을 위한 ‘최초예술지원사업’을 새롭게 추진하며, 창작지원금과 전문가 멘토링, 홍보마케팅, 작품발표 기회를 제공한다는 등의 내용이 그러하다.
이를 전제²⁾로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은 2016년 하반기부터 설계되었고, 연말에 기본계획이 수립되었으며, 그 이듬해 1월, 멘토단이 구성되어 기획회의를 하면서 구체화되었다. 하나의 예술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최초구상에서 운영³⁾까지 반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고려하면, 굉장히 단시간 동안 추진되었음을 알 수 있다.⁴⁾ 돌이켜보면, 이 사업은 ‘청년에 주목하자’는 당시 서울시의 정책 방향성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2015년 서울시의회는 청년 기본조례를 개정하여, 시에서 청년수당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청년주체에 대한 예산을 편성하고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청년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주목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들을 도출해내고자 했던 것이다.⁵⁾
속도감에 대한 걱정은 있었으나 청년을 위한 예술정책의 당위성에는 의문이 전혀 없었기에, 시 문화정책과로부터의 자문 요청에 응하게 되었다. 외려 정해진 기간 안에 사업을 완성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청년예술’을 둘러싼 지난한 논의 대신 빠른 합의를 이뤄낼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성급한 결정이 차후 청년예술의 담론을 일정부분 축소했고, 사업 운영에 대한 후유증을 낳기도 했다.
누가 설계할 것인가?
당시는 청년예술정책에 있어서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때였다. 일반사회, 시민문화의 영역에는 청년 주체성을 바탕으로 경험치를 쌓은 활동가들이 직접 정책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예술계는 전반적으로 ‘청년’에 대한 개념이나,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 따라서 예술가가 직접 정책에 참여하여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 더더욱 쉽지 않았다. 청년 예술가는 많았지만, 그들의 입장을 대표하거나 전문적으로 논하는 사람이 적었고, 최소한 그들을 당사자로 불러줄 또 다른 전문가 그룹이나 (유관 영역의) 동료그룹 조차 부재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존의 신진예술 지원제도에 의해 공공의 호명을 받는 예술가들이 있기는 했다. 허나 이들은 ‘유망 예술가’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유효했고, 한편으로 그러한 혜택을 받는 예술가들이 극히 소수였기에 청년예술의 대표성을 갖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다시 말해, 청년예술에 대한 구체적인 역할모델이 적거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 청년 예술가는 자신이 당사자임에도 - 정책을 준비하는 테이블에도 초대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책을 설계하는 자문단은 - 세대적으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 일정부분 대표성을 갖고 있던 멤버들로 구성되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다수 참가하는 독립예술축제의 감독, 소액다건 방식의 신진 예술가 지원트랙을 설계한 재단의 예술행정가, 지역 예술씬 연구와 다원예술 창작을 병행하는 공연연출가, 독립예술과 다원예술의 비평가 등이 그러했다. 30대와 40대의 전문가들이 비슷한 수로 구성되었다.
추후에 좀 더 확대된 기획단 회의에서는 장르별 대표자들이 추가 확대되었는데, 이들은 청년 예술가를 옆에서 지켜보고 조언하던 선배 뻘의 그룹⁶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또한 어느 정도 전문성은 갖추었으나, 돌이켜보면 청년세대를 온전히 대표할 수 있는 멤버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정책 설계의 초기구성에서 당사자성의 확보는 확실히 요원한 문제였던 것이다.
청년 예술가에 대한 호명
우선은 누가 청년 예술가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시간상 대상에 대한 면밀한 검토보다는 실질적으로 공모의 ‘지원대상’을 정하는 상황이 급선무였다. 자문단은 기존의 신진, 유망의 지원제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청년 예술가의 자격을 설정하고자 했고, 그 범위를 최대한 열어두고자 했다. 작업의 수월성과 잠재력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기존의 방식은 존재하는 청년 예술가를 지워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서울청년예술단》 공모에 응할 예술가들의 자격, 즉 청년 예술가의 기준⁷⁾을 다음과 같이 공표하였다.
“개인이 아닌 단체로서 해당연도의 공공지원사업을 수혜 받지 않은(혹은 못 한) 35세 이하의 예술가. 3월을 기준으로 학부생이 아닌 자. 증빙 가능한 예술활동의 경력을 가진 자. 여타 예술 공공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지 않은자. 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되지 못한 예술가”
자문단이 보기에 서울의 청년 예술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기회의 부족으로 인해 예술계에 진입하지 못한 ‘무명의’ 예술가였다. 경력이 아예 없기 때문에 그 다음의 기회를 만들지 못한 상태, 공공지원제도에 응모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예술가로 파악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청년 예술가의 무명(無名)은 비명(非名)에 가깝다. 존재하지만 아직 이름이 불러지지 않은 예술가인 셈이다.
호명 행위에는 선배나 동료가 부르는 방식이 있고, 기업이나 시장(市場)에서 부르는 방식이 있다. 한편으로 공공의 제작단체나 지원제도를 통해 호명하는 방식이 있다. 공공의 경우라면, 수월성을 판단하는 전문가 그룹의 심사를 통해 선발하기도 하고, 해당 예술 생태계를 대리하여 존재성을 판단하는 동료 그룹의 인증 방식⁸⁾이 있을 것이다.
《서울청년예술단》은 다소 혼합된 방식을 취하였는데, 일정 부분 동료의식을 가진 선배 세대의 예술가가 청년 예술가를 심사하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활동을 수행기간 내내 옆에서 지켜보는 형태였다. 이른바 사업의 이해도가 높은 기획단과 심사단, 멘토단의 멤버가 이어지는 방식이었는데, 일종의 통합적 멘토링 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합의한 멘토의 역할은 정책을 추진하는 공공을 대리하여, 무명의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호명하고, 자기주도적 과제를 수행하는 예술가팀을 조력한다는 것이었다. 본 사업의 목적이 흔들리지 않게 예술가와 함께 수행 과제를 점검하는 것이 멘토링의 핵심이었고, 자문단은 이러한 멘토링이 청년예술가들과 보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일어나기를 희망했다.
‘멘토’라는 존재에 대한 부당함과 역할의 필요성이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이는 결국 개별 멘토의 역량에 맡기자는 차원으로 정리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취지는 좋았으나 멘토의 책임소재와 적합성 여부를 따질 수 없었던 나이브한 운영이었다고 여겨진다. 예술가의 윤리의식과 운영의 공정성을 바라는 청년예술의 특성과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 사업에 서는 정책의 취지와 완전히 어긋나는 멘토도 있었다고 들었다. 멘토링 제도는 당사자성을 획득한 청년예술정책의 유경험자가 드물었던 시기에, 불가피하게 존재했던 과도기적 체계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애매한 사업목적
“전문 예술인으로 활동하고자 하나 기회가 부족하여 경력을 쌓지 못하고 공공지원에서 조차 소외되고 있는 청년 예술인들에게 예술 창작 및 공공활동 기회를 제공하여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고자 함.”
《서울청년예술단》 추진계획에 실린 사업의 목적은 위와 같다. 《서울예술인플랜》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었고, 청년 예술가들을 지원해야 하는 명분을 시민들에게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서, 밑줄 친 문장 등을 쓰게 되었다. 지금 시점에서 복기하자면 이러한 설명은 본 예술정책의 본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일단은 청년 예술가에 대한 긴급구호의 성격이 과하게 부각되면서 마치 선심성 복지정책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다음 단계로 도약’이라는 설명은 기존의 신진 유망사업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다시 말해, 모든 청년 예술가가 긴급구호와 긴급성장을 원할 것이라고 섣부르게 전제한 것인데, 이는 청년 예술가의 진로를 단순하게 일반화했던 셈이다.
가뜩이나 청년예술정책에 대한 방향성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의 목적은 예술가의 복지를 위한 것인지, 성장을 위한 것인지, 일자리를 장려하기 위한 것인지 더욱 헷갈리게 된다. 이는 ‘활동비’의 개념과 맞물려, 본 제도를 수행하는 예술가들을 더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쟁점을 통해, 정책의 목적을 구성하는 단계에서 정책 설계자의 청년 예술인에 대한 인식과 무책임이 은연중에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서울예술인플랜》과 《서울청년예술단》의 설계주체가 일정부분 전문성과 대표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이를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청년 예술가를 대상화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아마도 여러 청년예술정책이 여전히 시혜적인 태도 혹은 그러한 인상을 풍기는 것은, 이렇듯 정책이 구상되는 단계에서 은연중에 청년 예술가를 딱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리라.
이 지점이 필자가 크게 반성하는 부분이다. 예술정책의 목적은 정확해야 하며 오해가 없어야 한다. 특히 정책의 파트너로 호명된 주체의 존엄성을 낮추는 방식의 설명은 지양해야 한다. 부연하자면,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기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청년 예술가의 특질을 바탕으로 사업이 기획되는 것과, 어떤 긴급 구호의 대상으로 청년 예술가를 바라보며 사업을 기획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전자는 청년 예술가의 개념을 긍정하면서, 스스로 자기과제를 부여하게 하지만, 후자는 청년예술가를 대상화하면서, 한계상황을 연출하게 만든다. 결국 사업상에 나타난 공공의 성급한 개념 정의와 호명 행위는 그 의도와는 다르게 청년 예술가를 정책의 동반자가 아닌 ‘하위주체’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수당? 작업비? 활동비? 사례비?
살펴보면, ‘청년’을 위해 고안된 정책에는 그 말속에 이미 특정한 세대주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청년은 단순히 나이를 가르는 개념은 아니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된 존재,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주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배제된 존재, ‘노동자’로서의 역할 또한 호출하고 있다. 즉, 청년수당은 일종의 실업수당이며, 이는 실업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준비금인 셈이다. 청년정책에는 시민이자 노동자로서의 청년들의 몫을 되찾겠다는 취지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취지를 경유하고 있음에도, 청년 예술가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실업상태가 아닌 직업 예술가로서 수행한 행위에 대한 보상 성격이 강하다. 즉, 준비금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서의 지급인 셈이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청년 예술가의 상태에 따른 보상 논의가 충분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활동비, 작업비, 소득, 수당 등의 명칭이 나왔지만 에둘러서 '활동비'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활동비도, 예술수당도 아니라, 말 그대로 ‘월급’이어야 마땅했다.
이는 청년예술에 대한 전문가로 호출된 자문단에게도 어려운 의제였는데, 청년 예술가 세대보다 앞선 시기에 예술계를 경험한 이들에게, ‘예술이 곧 노동’이라는 등식은 쉽사리 수용될 수 있는 개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청년이 주체가 되는 예술 활동이 얼마나 특수한 성질을 갖고 있는 노동인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 또한 미비했다. 돌이켜 보면, 예술이 곧 노동이라는 등식을 채택하기에 앞서, 청년 예술가의 노동이 특수한 것이라는 인식만 정확하게 있었더라도, 청년 예술가에게 맞는 명칭이 고안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노동자성과 시민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세대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 작업자로서의 역할에만 만족하고, 예술가의 근대적 이상에만 복무하면서 성장했던 기성 예술가와는 다르게, 청년 예술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노동자로 자각하면서, 그에 대한 노동 가치를 항상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관점에서 청년 예술단의 활동비 지급과 제작비 지원은 파격적이고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당연하게 책정되어야 할 예술가의 권리이자, 공공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설계의 오류를 인정하며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이진우 역, 한길사, 2002)에서 ‘활동적 삶(vita activa)’이란 용어를 통해 인간 삶의 조건을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하고 있다. 노동(labor)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되어 삶의 과정에 투입되는 모든 활동을 이른다. 노동은 삶의 지속과 유지를 위한 생물학적인 과정이다. 작업(work)은 예술, 문화 활동 등을 포함한 창의적인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나 생물학적 삶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창의와 상상을 표출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작업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행위(act)는 시민적 관계 속의 삶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의미한다. 일종의 정치적인 행위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세 가지 개념 요소들은, 2010년대 서울을 살아가는 청년 예술가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나중에 이 사업을 다시 복기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이 청년 예술가의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를 인정해주는 사업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본 사업의 목적을 다시 풀어쓰면, “예술인으로 노동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있으나, 공공의 지원이 작업의 수월성만을 선발의 기준으로 하는 상황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 예술가들을 발견하여, 그들의 ‘활동적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에 준하는 인정을 하고자 함”이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동시대 청년 예술가는 굳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양한 예술의 장르와 그것이 수행되는 방식에 따라 자기가 설정한 정체성을 가져도 된다.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건에 저마다의 방점을 찍는 방식이어도 좋다. 다만 공공은 그것을 온전하게 호명하면 된다. 따라서 청년예술정책은 ‘노동’이자 ‘작업’이며 ‘행위’이기도 한 청년예술의 모습을 정책에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⁹⁾
《서울청년예술단》이 증명한 것
《서울청년예술단》이 증명한 것 중에, 인상적인 포인트는 ‘청년’이나 ‘예술’이기보다는, ‘서울’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서울’은 동시대 한국사회의 성격을 집약하고 있는 키워드이다. 문화예술의 도시를 천명했던 ‘서울’은 청년예술의 세 가지 요소인 노동과 작업, 행위에 있어서 아주 열악하고 위태로운 ‘환경’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니까, 서울은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도시라기보다는, 청년 예술가에게 아주 위태롭고 긴급한(emergent) 장소였던 셈이다.
예술계의 문제와 도시의 문제를 겹쳐서 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으나, 한정된 자원과 기회의 땅에서 그간 서울의 청년 예술가들은 노동자로서, 작업자로서, 행위자로서 ‘착취’ 당하고 있었다.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은 이러한 착취의 상황에 놓인 청년 예술가들이, 자신의 ‘활동적 삶’을 통해 ‘당사자임’을 발언하고, 자기 서사를 쓸 수 있었던 예술정책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본 사업을 통해 드러난 의제들은 한국사회의 시민성과 노동자성, 그리고 예술가의 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이들의 작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는데, 상당수 청년 세대의 존재론과 여성(혹은 젠더) 담론,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등이 주제화되어 나타났다. 청년 예술가들은 작품에만 이러한 의미를 담은 것을 넘어서 그들의 노동과 행위에도 실천을 이어나갔다.
청년예술정책의 시행과 예술계의 변화가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기에, 이에 대한 관계성을 명확하게 짚어내지 않고 말하는 것은, 인과관계가 바뀌는 등의 위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은 부분은, 청년 예술가들이 당사자로서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이 가시화되어 예술계의 화두가 되었고, 그것은 한국사회의 과제가 되어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그 변화는 고스란히 현장과 예술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¹⁰⁾ 청년예술정책은 결국, 청년 예술가의 ‘인간의 조건’을 되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글을 마치며
《서울청년예술단》의 설계와 운영에는 분명 오류가 있었다. 사업이 시행되는 3년 내내 이에 대한 자책감과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청년 예술가가 본 정책의 파트너로 자리하고 나면 이러한 부채감은 어느 정도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사업은 본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소멸하였다.
최초 설계 당시,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은 3년 연속 지원을 받을 경우 졸업한다는 원칙이 있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예술가보다도 정책이 먼저 졸업을 하게 된 셈이다. 이 또한 여러 예술가에게 기회가 분배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취지였는데,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격년으로 활동기간을 설정한 팀에게는 불이익이 돌아가게 되었다. 지면을 빌어 이 문제에 대해서 사과의 말을 전한다.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다. 3년 이상 지속될 거라고 생각한 설계자들의 판단에는 착오가 있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예술정책에는 이에 대한 메타평가와 환류제도가 미비하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사업설계에 대한 과정을 스스로가 밝혀야 할 만큼, 정책수립의 작업은 여전히 열린 광장이 아니라 좁은 밀실에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 당사자인 예술가들이 크게 관심을 두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면, 관심을 두기에는 정책이 만들어지는 구조, 즉 예술계의 구성원, 혹은 시민으로서의 정치행위에 대한 학습과정이 너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더불어 지원제도를 수행한 예술가의 작업에 대한 사후처리 만큼이나 지원제도를 만든 정책 설계자 혹은 해당 정책에 대한 공정한 평가도 이뤄지기를 바란다. 아마도 청년예술이 갱신해 나가는 예술 생태계에는 이러한 임무 또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정진세
극단문의 드라마 작가이다.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장,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서울청년예술단》 설계 자문단(2017년도 심사, 멘토 등 기획단)으로 참여했다. lilytuips@nate.com
1) “청년예술단 사업은 어디로 가는가/갔는가?”, 청년예술지원제도 좌담회, <연극in 웹진>, 2020.2. https://www.sfac.or.kr/site/theater/WZ020000/webzine_view.do?wtIdx=11962
2) 추진계획 상에 청년예술단 사업의 근거가 되는 법령은 문화예술진흥법 제39조와 서울특별시 문화도시 기본조례 제6조이다. 요약하자면 문화예술의 진흥과 시민들의 향유를 위해 공공(국가, 지방자치단체, 시장 등)은 이를 지원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3) 본 사업은 2017년 2월에는 공모절차를 거쳐, 3월에 예술가를 심사하고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간 운영되었다.
4) 사업 규모가 55억에 달하는 정책이었기에, 그 정도라면 더더욱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우려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이 글은 그러한 급조된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5) 《서울예술인플랜》에 담긴 내용이 모두 정책화된 것은 아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바로 사업으로 추진되었던 《최초예술지원》이나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이 정책의 우선 순위였음을 차후에 알 수 있다.
6) 애초에 멘토의 성격이 강한 그룹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본 사업이 출범하고 나서도 정책의 설계 및 운영자와 파트너인 청년 예술가가 대등한 관계 혹은 균형적인 관계를 온전하게 맺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2017년의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은 일종의 ‘당사자’를 만들기 위한 마중물 사업으로 진행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후 새롭게 등장한 역할모델이 정책의 파트너가 되어 사업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재설계했어야 본 정책이 보다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7) 개인이 아닌 3인 이상의 단체로 선정한 이유는, 동료 예술가와 함께 협업의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는 청년예술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기도 했고, 각각의 개별주체에게 최소한의 사회화 경험을 요구했던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활동을 통한 성과가 ‘개인’에게만 귀속되지 않기를 바랐다. 3인 이상의 구성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장르적 특성과 개별적인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동료와 또래 그룹들을 확인하면서 생겨나는 청년 예술가들의 생태계에 대한 감각을 기대했던 셈이다. 35세의 나이를 기준 삼은 것은 35세 이상과 이하의 예술가가 경험에서 오는 경쟁력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신진이나 유망의 타이틀을 받는 예술가들이 35세와 40세 사이에 몰려있기에, 이러한 나이구역이 허용된다면 정책의 취지와는 다르게 작업의 수월성이라는 항목이 응모와 심사에서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학부생을 제외한 이유는, ‘학교’라는 안전망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졸업자를 배려하기 위함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연중 내내 진행되는 본 사업이 학업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다소 막연한 판단에서였다. 공공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은 예술가나 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된 예술가를 제외한 것 또한 비슷한데, 공공지원 혹은 복지재단 가입이라는 기본적인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예술가를 안배하기 위한 처사였다. 이러한 자격조건들은 이후 청년 예술가들의 반발 혹은 비판으로 인해 수정되었다.
8) 지난 시절 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다원예술 지원파트를 만들어 장르에 속하기를 원치 않는 다양한 젊은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호명했던 사례가 있었고, 거리예술 장르에서도 극장을 벗어나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과 축제 등에서 함께 작업했던 경우가 있었다. 장르기반이나 학교기반의 네트워크가 없는 경우(다원예술, 거리예술, 독립예술)에는 이런 식으로 예술가들의 존재를 호명하고, 끊임없이 소통을 구하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이 발굴되고 해당 씬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9) “청년이란 나이, 풋내기 애송이라는 경력의 미천함, 가난과 궁핍함의 아이콘으로 존재하는 청년이 아닌, 예술가하기의 성공적인 전환을 통해 사회와 긴밀히 소통하고 자신의 작업 세계를 공고히 쌓아가는 그런 청년예술의 시대를 호출하는 것이다.” 성연주, “청년예술을 폐기하라”, <숨은참조>, 2020.8. https://seoulartist.tistory.com/34?category=917556
10) “청년예술지원사업의 실행과정 등을 통해 기존의 창작지원정책이 되비춰짐으로써, 기성 예술계의 관행과 맹점이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 앞으로 지원정책 설계에 있어서 청년예술정책을 참고하는 역방향적 발상이 가능해짐.” 이동연 외, 「예술지원체계 개선 연구 보고서」, 5-8 청년분야, 서울문화재단, 2019,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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