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현장인터뷰 ⑥ ✍ 옥민아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0. 11. 29.

 

현장 인터뷰 ⑥


✍ 옥민아

 

 


현장 인터뷰 소개글

글로, 말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오해의 연속입니다.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키워드를 가지고 ‘당신’을 만나겠노라, 다양한 ‘당신’께 요청을 드렸습니다.

한 사람의 삶과 예술관을 키워드 몇 개에 담겠다는 시도는 무모하고 건방진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수의 ‘당신’에게서 길어낸 다양한 키워드는 어느 한 지점, 한 사람을 가리킬지도 모릅니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서 우리가 이제껏 오해하고 있었던 익명의 ‘당신’을 새롭게 만나려는 시도입니다.

신중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당신’은 청년예술가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청년예술가입니까?


 

현장인터뷰 6차 <세부 사항>

장소: 마포구 동교동 
시간: 19:00 ~ 22:00
인터뷰어: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위원, 작가 옥민아
인터뷰이: 조형과 대학원 재학생 K


 

#입시 장수생

 

대학원에서 조형을 공부하고 있어요. 현대미술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한 후에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전 미술을 좀 오래 한 편이에요. 입시 준비를 시작한 게 초등학교 때부터거든요. 예술중학교에 가고 싶었죠. 예원학교를 준비했는데, 엘리트 코스를 밟는 첫 번째 단계 같은 곳이었어요. 예원학교에 가면 서울예고에 가기 쉽고, 서울예고에 가면 서울대에 가기 쉽다는 식으로요. 

전 그런 큰 그림을 그린 건 아니고 그냥 조용히 반에서 그림 그리던 아이였어요. 친구가 자기도 미술이 하고 싶은데 너도 열심히 그리는 거 보니 같이 배우면 좋겠다 해서 함께 미술학원에 다녔어요. 그게 초등학교 5학년 11월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학생을 체벌하는 게 허용됐던 시기여서 미술학원 다니면서 많이 맞았어요. 뺨을 맞은 적도 있고 어떤 친구는 피멍 들어 있는걸 보기도 했죠. 입시나 미술에 트라우마가 생기더라고요. 예원학교엔 결국 가지 못했고 중고등학교 땐 미술 입시를 조금 쉬고 있다가 고등학교 2학년 즈음에 다시 미대 준비를 시작했죠.

 

#입시 미술

 

제가 입학할 당시, 학사과정의 현대미술 전공은 딱 두 대학에만 있었어요. 대학들이 미대에서 전통적인 회화만을 가르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에요. 두 학교가 가장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던 경우고, 다만 입시는 딱히 일반 회화과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어요. 현대미술을 전공하더라도 아카데믹한 기초와 센스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원래는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을 준비했어요. 예종의 입시 스타일은 개념미술의 비중이 크다고 해요. 재료 연구라든지 미술을 개념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경향인 건데 말하자면 고추장으로 그림 그려보기 같은 것이에요. 예종 1학년 때 배운다는 파운데이션 과정을 학원에서 따라 해 보면서 예전에 트라우마가 됐던 입시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어요. 이런 걸 집중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예종에는 입학하지 못하고 다 군이었던 현재의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두 학교가 가까워서 지하철 타고 수업 갈 때, 한예종의 미술 전공 학생들이 과 점퍼를 입고 있는 걸 자주 봤어요. 현타가 오더라고요. 입시 준비를 1~2년 더 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입학 후에 내 작업을 하면서 천천히 나만의 것을 쌓다 보니 나는 이곳에 올 만하니까 여기 왔다는 생각으로 기울었어요. 사실 저는 한예종의 학생들처럼 무언가 특출나거나 탁월한 학생은 아니라고 느끼거든요. 지금은 이 학교에 잘 왔구나 싶어요.

 

#현타
#방황

 

학부 때 정말 열심히 놀았어요. 스무 살 됐겠다, 열심히 입시 준비해서 미대 들어왔으니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싶었거든요. 미팅도 많이 하고 클럽도 다니면서 학교도 많이 빼먹었죠. 학점은 바닥인데 전공수업 때만 교수님 하시는 말씀 열심히 듣는 정도의 학생이었어요. 다음날이 시험인데 까먹고 준비 안 했다가 잔머리 굴려 임기응변으로 제출한 걸 교수님이 칭찬해주신 적이 있어요. 거기에 우쭐해 있다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다른 학생의 작품을 보니, 내가 너무 얄팍하더라고요. 현타가 오고 정신 차리자 싶었다가 열심히 놀고, 또 다른 학생 작품에 현타 오고. 이런 일의 반복이었어요. 

2학년 때는 또 영화에 빠졌어요. 학교 밖의 독립영화 제작 동아리에 들어갔거든요. 올해 초까지 활동하면서 미술감독도 하고 조연출 일도 해봤어요. 영화 만드는 일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나는 미술이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질문이 생겼어요. 

휴학하고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미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실 누가 여행 다녀와서 인생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식으로 말하면 좀 비웃었거든요. 그런데 유럽 여행을 통해 내가 생각보다 굉장히 경직되고 위선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특히 직업적인 부분에서요. 여행자의 입장에서 유럽 사람들을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낮춰서 보는 청소부, 경비원 등의 직업을 가진 분들이 굉장히 행복한 얼굴을 하고 살고 있더라고요. 여행지의 카페에서, 술집에서 현지 친구를 만들면서 그들과 대화하다 보니 내가 미술을 하면서 원대한 꿈을 꿀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스스로 대단해져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작업 할 수 있었죠. 물론 아직도 전시 때마다 이번 전시까지만 하고 그만둬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건 여전하지만요.

아무리 타지에서 자유로운 마음을 조금 얻어왔다고 해도 그 태도를 지속하는 게 쉽지 않아요. 현실적으로 저는 한국에 있고, 원대한 꿈을 가지지 않아도, 대단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미술을 해서 과연 먹고살 수 있는가에 대해 늘 고민해요. 부모님께도 무언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미술을 하면서 살 때 내가 못 챙기는 부분들이 서서히 보이는 거죠. 좋아하는 일이니까 취미로 남겨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제 작업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주변 사람들이나 관람객의 반응에서 어떤 감화되는 모습들을 만날 때 미술을 계속하겠다고 다시 다짐하곤 해요.

 

#미대생의 먹고사는 일

 

대학교 1학년 때 뭣 모르고 삼계탕집에서 삼복을 다 맞이한 일이 생애 첫 아르바이트에요. 손목이 나갈 뻔했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특별했던 건 아동미술학원 일이었어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5년을 일해서 처음엔 보조 선생님이었다가 나중에는 정식 강사가 되었죠. 보조 선생님으로 일할 때 제가 모시고 일하던 정식 선생님이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고 좋은 분이어서 저는 알바를 통해 사람 대하는 법을 배우고 성장했다고 느껴요. 미술을 가르치는 일 외에도, 애들이 시끄럽게 굴면 왜 시끄럽게 구는 것인지, 선생님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이가 힘들어할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을 저에게 천천히 알려주셨어요. 지금은 아이와 어른은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 배웠던 것들이 지금도 큰 도움이 돼요. 

 

#미대 전용 등록금

 

대학 등록금은 부모님께 지원받았어요. 말씀하시기로는 “나중에 갚아.” 하시는데 저희 부모님은 교육에 있어서는 최대한 지원을 해주셨어요. 생활비에 등록금까지 내가 벌어야 했다면 미대 못 다녔을 거예요. 우리 학교는 입학금이 80만 원, 학부 등록금이 480만 원인데 그 당시 미대 대부분 이 정도 금액이었어요. 그나마 우리 학교는 유난히 실기실을 잘 주는 곳이었어요. 타 학교의 친구들 얘기로는 1~2학년 때,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실기실이 없어서 선배들에게 빌붙어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대학원은 학사보다 조금 더 비싸서 한 학기 등록금이 580만 원이에요. 작년에는 대학원 인턴 생활도 했어요. 기숙사에서 야간 조교를 맡았는데 쉽게 말해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죠. 외국인 학생이 머무는 국제생활관에서 사감을 하면 방을 주거든요. 지내는 곳과 학교가 가까워지다 보니 대학원 생활이 좀 더 수월했고, 등록금도 면제받을 수 있었어요. 조교를 한다 해서 대학원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주는 학교는 몇 없어요. 대개 반액 정도를 지원해주거나 시급을 주는 방식이거든요. 올해부터는 석사 청구전시 준비 때문에 일과 학업이 주객전도될까 봐 적금을 깼어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 화상회의로 수업이 진행되었잖아요? 학위 장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미대라고 다른 단과대와 대단히 다르지 않은데, 하고 싶은 게 미술일 뿐인데 왜 등록금이 비싼지 이해하기 힘들어요.

 

#대학원
#석사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입학한 케이스예요.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석사과정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쌓아서 독일에 가야겠다는 계획이 있었어요. 막상 석사를 해 보니, 그걸 해낸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실력은 안 올라가는데 눈높이만 높아져 가는 나를 발견한다는 것 또한 꽤 힘든 일이더라고요. 유학에 대한 마음은 접은 상태예요. 지금은 일단 하고 있는 것부터 잘 마무리하자는 생각으로 졸업전시, 석사학위에 관련된 준비를 하고 있어요. 2년간 석사과정을 밟고 논문 쓰고 또 졸업전시를 끝내야 석사학위가 나와요. 그 전시에 대한 포트폴리오 제출까지 하면 졸업인 거죠. 2년 안에 이 모든 걸 끝내긴 힘들다고들 해요. 저희 과의 경우, 졸업전시가 있다 보니 거기에 여력을 쏟아붓고 이후에 논문을 쓰게 되니까 석사 졸업까지 2년 반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이후에는 생계를 놓치지 않는 선에서 작업을 지속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독일에 가고자 했던 건 작가가 되기 위해 내 인생을 올인한다는 의미인 게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느껴요. 우선 내가 생활인으로서 잘 살아가면서 작가로서 지킬 수 있는 자리를 찾아보자는 방향으로 수정했어요. 생계에 대한 문제를 떼 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거죠. 

 

#선후배의 진로
#작가로 산다는 것

 

얼마 전에 갤러리에서 일하는 선배를 만났어요. 요즘 대학원에서 작품하고 있다고 했더니 취직할 거면 당장 그만두고, 취직 안 할 거면 계속 다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취직하면 아무리 독하게 결심해도 작업할 기회가 기약 없이 멀어진다고요. 대학원 선배들의 진로를 보면 석사를 마치고 따로 취직 준비를 해서 회사에 많이들 가세요. 주로 게임회사, 문화기획이나 광고 대행사들이죠. 아예 본인 사업을 하기도 하고요. 미대생들의 성향인 듯한데, 일반 회사에 취직해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아요. 저 또한 그렇고요. 풍문처럼 전해 오는 작가 선배들의 소식은 있어요. 어느 친구 미국에서 졸업했다더라, 한국 돌아온다더라, 무슨 전시 한다더라 하는 식인데 정말 소수인 것 같아요. 제가 졸업한 학부 전공이 한 학년에 40명 정원인데 아직 작가로서 작업하는 사람 누가 있냐고 물어보면 한두 명 정도예요. 한 학년에 작가 1명 나오면 많이 나오는 거라고들 하죠. 

 

#현실적인 작가

 

옛날엔 골방에서 안 나가고 그림만 그리는 지독한 태도를 가져야 진정한 화가라는 말도 안 되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들도 그림 팔려고 노력 많이 하지 않았을까요? 난 돈 필요 없어, 하고 그림만 그린 건 아닐 텐데 예술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이 이상한 방향으로 고착되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작가들의 장르도 다양해졌고 사회 속에 스며들 수 있는 분야도 많아졌어요. 미디어 하는 작가들은 기술직으로, 디자인 쪽으로 특출 난 작가는 상업 디자인 분야로 가기도 하면서 투잡을 뛰는 작가들이 생겼죠. 작가들이 좀 더 현실적으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 같아요. 대학원 졸업 후엔 저도 일을 해야겠죠. 다양한 일을 경험하다 보면 내게 맞는 직업군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졸업 후에 개인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디자인 프로젝트가 있어요. 제가 타로를 배웠거든요. 주로 동양 타로를 써요. 그런데 시중에 파는 동양 타로의 그림체가 너무 대충인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이걸 따로 제작해야겠다 싶어서 정성을 들여 디자인한 동양화 타로를 제작할 생각이에요. 이런 식으로 나만의 굿즈를 늘려 가면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싶기도 해요. 갤러리 인턴십에 도전할 생각도 있어요. 작가로서 작업을 이어나가려면 언젠가는 갤러리와 소통을 해야 하는데 갤러리 인턴쉽 경험을 통해서 미술계의 내부적인 소식들이나, 미술계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싶은 거예요. 현실을 살아내기 위한 돈을 벌면서 나의 예술작업에 도움이 되는 직업을 상상하고 있어요. 어떻게든 미술을 놓지 않기 위해서요.

 

#청년예술가로서의나 와
#자연인으로서의 나

그 둘의 관계

 

예술가로서의 나와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애증 관계예요. 서로 제일 애틋하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제일 이해하기 힘든 사이예요. 적당히 타협해야 하나 싶다가도 적당히 타협하면 이도 저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요즘은 예술가인 나와 자연인의 내가 자아분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가끔 자연인, 청년으로서의 내가 목소리가 커질 때는 예술가인 나를 짓밟고 누르면서 “그만해!”라고 소리치기도 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예술가인 내가 슬금슬금 뱀처럼 기어 올라와서 몰래 일을 벌이죠. 요즘 본캐, 부캐라는 말들을 쓰잖아요? 저도 본캐를 자연인 나로 두고 부캐를 예술을 하는 나로 두고 사는 듯해요.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요.

 

#현타
#미대 전용 등록금
#대학원
#석사
#진로
#현실적인 작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