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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잡담회 | 타격감 ② ✍ 장일수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0. 10. 6.

 

<잡담회> 

타격감 ②

타인을 향한 격한 공감


✍ 장일수

 

예술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이따금 무기력하다. “이 작업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돌아오는 날엔 더욱더 그렇다. 골몰한 시간만큼 머무르는 이가 없으면, 세상을 향했던 주먹은 허공을 지나 어느새 내 관자놀이에 꽂힌다. 예술은 종종 가혹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주먹이 허공을 지나지 않기 위해 닿고 돌아오는 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공감으로 채워본다. 작품을 내어놓고 서로가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평가가 아닌 이해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만나본다. 세상에 내놓은 주먹이 닿고 돌아오는 경험. 타격감이다.

참여자 : 김환(회화작가), 최하람(비올리스트), 윤동주(서울문화재단), 장일수(진행), 김범무(촬영)

 

 

#1 
창문 작업과 나


김환 작가님부터 가벼운 자기소개와 함께 준비해 주신 작품을 볼 수 있을까요?

환 : 회화작업을 주로 하는 김환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먼저 보여드릴게요. 

김환, <창틀 no.4>, 60.6x72.7cm, 캔버스에 아크릴, 2014

 

: 어떤 이미지로 보이시나요?

창문, 창틀인 것 같은데요. 왼쪽은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오른쪽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요. 예를 들면 왼쪽에 있는 것들이 창문에 부딪힌 것, 흘러내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른쪽 것은 착시라고 하나요? 강렬한 것을 본 다음에 눈 감으면 잔상이 맺히는데, 그것을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주쌤은 어떻게 보이시나요?

동주 : 제가 봤을 때, 습기가 차 있는 상태에서 뭔가 흐르는 느낌인 것 같고, 저 창틀 있는 게 너무 재밌는 것 같아요. 창틀도 그림인 거잖아요?

하람 : 전부 그림인가요? 이게 다?

동주 : 네. 뭔가 작품 안에 작품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하람 : 전 진짜 창에다가 하신 줄 알았어요. 빛을 이용해서 색감을 표현한 것처럼 보였어요. 

: 창문에 관련해서 먼저 말씀드릴게요. 대학교 2학년 때쯤인데, 오브제를 이용해서 저를 표현해보려 했어요. 왜냐하면 보통 관객이 작품을 마주할 때 작가에 대해 상상하기보다 이미지로 보잖아요? 작품 자체가 관객의 입장에서 저와 별개로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어느 정도 소통하기 위해 직접적인 언어로 신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창문, 프레임을 오브제로 사용했어요. 
“나는 나갈 수 없는데, 당신들은 꿈처럼 살고 계시고, 나도 그곳으로 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어떻게 합니까.” 하고 외치는 성향의 작업이었어요. 그렇게 회화 너머로 드러내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 프레임, 창문틀을 그린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잔상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살짝 소름이 돋았는데, 비슷한 내용의 작업을 해왔어요. 그러니까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순간 중에 저를 사로잡고 예술작업으로 이끌었던 것은 ‘살아남았다.’라고 느꼈던 순간이었거든요.
전신을 사용할 수 없다보니까 몇 년간 계속 수술을 받아왔는데, 수술실에서 그걸 경험했어요. 마취가 끝나고 눈을 뜨면 착시효과처럼 빛이 들어오잖아요? ‘살아있다’를 체감하는 순간 보였던 강렬했던 색들이 기억에 남았어요. 그 빛의 색깔들이 나를 말해주는 어떤 스토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 제가 경험한 대상에 그런 색들을 입혀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지금껏 이런저런 고민을 했지만 결국 작품의 큰 목표는 ‘살아있음을 경험한 순간’으로 수렴됐어요.  

 

 

다시 창문 이야기로 돌아오면, 창문으로 소통을 시도했지만 어떤 면에서 창문 작업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에게는 제가 어떤 작업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저한테 바라는 역할이나 모습이 있나 봐요. 때때로 장애라는 프레임의 경험이 저한테 정말 무섭게 다가왔어요. 그런 연유로 제가 창문 작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작업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하람 : 저는 작가님의 말씀 중에 눈을 딱 떴을 때 보였던 강렬한 감각이 기억에 남아요. 작품에 빛 형상 같은 걸 많이 사용했다고 느꼈는데, 그 키워드를 들으니까 좀 더 이해하기가 쉬웠던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하지 못한 순간이지만 와 닿았어요.

 

김환 작가는 창문을 통해 소통을 시도한다.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경험. 창틀 너머로 보이는 것은 나와 생각 그리고 꿈과 삶이다.

김환 : “소통을 위한 매개체로 시작했지만, 지금의 창문은 제가 확장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나아가거나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가 비록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확장해 주는 가능성을 그려 넣고 싶어요.”

 

 

#2
비올라, 여성


하람 :
저는 비올라 연주자 최하람이라고 해요. 이 자리에 와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가장 최근에 발표했던 독주회를 보여드리고자 준비해왔어요.  
비올라와 여성 작곡가 두가지를 생각해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어떻게 보면 클래식의 마이너리티한 부분이에요. 보통 현악기라고 하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주로 첼로나 바이올린을 떠올리게 될 거예요. 그만큼 두 악기가 인지도 있고 연주곡도 많아요. 하지만 제가 연주하는 비올라는 같은 현악기지만 그 둘에 비해 곡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클래식 작곡가하면 보통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하이든 등이 떠오시잖아요? 우리가 아는 작곡가는 대부분 남성 작곡가일 거예요.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 문제의식보다 여성 작곡가의 곡이 참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여성 작곡가의 곡으로만 구성하고자 했어요, 하지만 우연히 신문에서 발견한 ‘남성을 더 우월한 성으로 생각하지 않듯이 여성 또한 더 우월한 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인용문구가 와 닿았어요. 말씀드렸듯 여성 작곡가의 곡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성을 위해 비올라로 편곡된 베토벤의 곡과 스트라빈스키의 곡을 추가했어요. 그러니까 모든 곡들이 함께 연주되어도 손색없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에 의미를 둔 거예요.

 

동주 : 프로그램에 연주자의 글이 들어 있는 건 처음 봐요. 제가 4년 정도 문예회관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많은 연주회를 봤는데, 거의 같은 형식이라 클래식에 대한 약간의 선입견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하람님의 프로그램은 기존의 것들과 다른 느낌이에요. ‘비올라가 상대적으로 곡이 없고 여성 작곡가가 없다.’ 클래식 공연에서 이런 기획의도를 갖고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 자체도 제 편견을 깨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베토벤의 이 멘트가 재밌네요. “내가 이 곡을 편곡했다고 쓰지 말아 주세요,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캐릭터가 보이는 거 같아 정말 재밌어요.

하람 : 그렇죠? 너무 베토벤스러워서 끝까지 넣었죠.

동주 : 일부러 선택해서 넣으시는 거죠?

하람 : 네. 굳이 안 넣어도 되는데, 베토벤이 이 곡을 평가했다는 것을 너무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 레터를 가지고 베토벤이 편곡을 허락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데, 어떻게 생각할지는 관객에게 맡긴 거예요.

 

 

프로그램의 목표는 ‘여성 작곡가와 비올라. 클래식의 마이너리티한 것들을 수면으로 끌어 올리고 싶다’ 그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하람 : 음, 적극적인 형태의 소개.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이걸 알았으면 좋겠어!’라는 느낌보다는 ‘나라도 이걸 소비하고 싶은’ 느낌이 맞는 것 같아요. ‘너무 좋은데, 나만 알고 있기 아쉽다.’는 느낌. 
사실 이제 들려드릴 곡이 이런 생각을 처음 갖게 되었던 곡이에요. 우연히 알게 된  색소폰 곡을 많이 쓴 작곡가의 곡인데 색소폰과 비올라 두 가지 버전이 있어요. 제 느낌에 이 곡은 색소폰보다 비올라가 더 잘 어울리더라고요. 한국에서 잘 알려진 곡이 아니었고, 뭔가 저만 아는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라 제가 무대에 빨리 올리고 싶었어요. 그런 만큼 의미가 있어서 프로그램 구성 마지막에 넣었고요. 그 영상을 가지고 왔어요. 틀어볼게요.

● 음악 감상/링크 https://youtu.be/slSQiKK6X7k


잘 들었습니다. 여쭤보는 걸 깜빡했는데, 곡의 제목이?

하람 : <도샵 소나타>라는 곡이에요. 곡 전반에 도샵(#) 조성을 쓰고 샵을 많이 써서 그렇게 지은 것 같아요. 부가 설명을 하자면 도샵은 악마 같은 조성이라고 불려요. 도샵 조가 되려면, 조표에 샵이 파도솔레라미시가 다 붙어야 되거든요. 샵이 모든 음에 다 붙어있다고 하면 피아노의 흑건만 치는 게 되는 거에요. 더군다나 운지로 할 때도 정말 어려워요. 


그럼 <도샵 소나타>를 어떻게 들었는지 이야기해 볼까요? 

: 저는 패턴이 달라지는 부분에서, 왠지 기승전결이 있는 느낌이었어요.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혼자 상상했을 때, 대자연 속에 있는 존재 같았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작은 우물이 연상되고 나비 같은 친구들이 하나씩 나타나면서 동화되고, 그 안에서 다 함께 노는 느낌이었어요. 

하람 : 음악을 들으면서 그렇게 이미지화를 할 수 있는 상상력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하람님과 피아노 연주자분이 호흡을 맞추는 게 정말 훌륭하다고 느꼈어요. 김환 작가님이 그림을 통해 친구분과 소통했던 것처럼 두 사람의 연주자가 음악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재밌게 들었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범무 : 음… 일단 작곡가가 이 음악을 색소폰이랑 비올라 버전으로 썼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색소폰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비올라를 위한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올라라는 악기가 음색이 바이올린과 비슷하면서도 사람 목소리 쪽에 가까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람 : 맞아요. 낮아서.


어떻게 들으면 음색이 중성적인 느낌이 들더라고요. 베토벤이 비올라 곡을 왜 안 썼을까 괜히 생각해 봤는데, 만약 보수적인 시대라면 덜 쓰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최하람 비올리스트의 독주회 멘트 중(中) 

“우리가 지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음악들이 있죠? 그 음악들도 첫 연주가 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연주되었기 때문에 클래식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곡(Finzi 의 Impression Tango) 은 2003년도에 작곡된 곡이에요, 제가 오늘 한국에서 처음 연주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연주돼서 이 곡도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3
타인과 나


: ‘다른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타인과 나 사이에 갭이 존재하잖아요. 전까지 제 이야기와 경험, 감정만으로 작업했는데, 그걸 작품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친구가 제주 공항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내부가 아닌 밖으로 펼쳐지는)확장성이 보였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사진들을 가지고, 저만의 경험이나 감정들로 해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작업이에요. 


친구분이 보내준 사진에다가 작가님 본인의 세계를 입힌 건가요?

김환, <창문틀 no.10 제주공항>, 91.0 x 467.2cm, 캔버스에 아크릴과 색연필, 2019

 

: 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완성된 이미지를 다시 친구한테 보여주고 친구가 상상했던 그림과 비교하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예를 들면, 친구가 “그림을 보고 그 장소에 있었던 감정과 공감을 못하겠어.”라고 하면, 저는 다시 친구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나 감정을 상상하고 해석해서 다시 그림을 그려요. 그리고 그런 작업을 이어나갔어요. 상대가 생각한 이미지와 비슷하거나 다를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공감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지점들이 존재했어요. 제 나름대로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 거예요. 그런데 결국 제 그림이 그 친구의 상상과 갭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갭이라는 게 차이인 건데, 차이를 확인해 가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제 나름의 소통하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작품으로 따지면 성공적이진 못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작품이 제 주관적인 해석밖에 안 되는 거였거든요. 작품이 색채를 변경하거나 형태를 변경한 시각예술로만 보이고, 작업 과정 중에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나 구구절절한 설명은 작품으로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람 : 작가님은 소통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갭이 생기는 걸 확인하셨잖아요. ‘이 사람하고 나하고는 차이가 있구나.’라고 인식하셨을 텐데 결론적으로 지향한 건 ‘갭을 없애고 싶다’였나요? 아니면 ‘그 갭이 있다는 걸 인정하자’였나요?

 

 

: 최근에서는, 인정하는 거 같아요. 전에는 ‘공통분모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하면 비슷한 감정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소수자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살아봤을 때도, 아동미술을 하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신체를 가진 장애인들을 만났을 때도 공통점을 발견하다가도 결국은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갭을 없애자는 느낌보다 인정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환 : 아래 왼쪽 작품이 사진을 가지고 경험을 재해석해서 그린 거예요. 그걸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서 다시 그린 게 오른쪽 작품입니다.

동주 : 그림 자체도 멋있는데 방식이 재밌는 것 같아요.

범무 :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해요. 

 

(좌)김환, <하늘색설경2>, 53.0 x 45.0cm, 캔버스에 아크릴과 색연필, 2019  (우)김환, <하늘색풍경2>, 53.0 x45.0cm 캔버스에 아크릴과 색연필, 2019

 

: ‘나는 네 사진을 보고 이런 감정이 들었고, 이렇게 표현했어.’가 왼쪽 그림이고, 그 그림을 가지고 “너는 어때?”라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을 가지고 다시 나온 게 오른쪽 그림이에요. 
구체적으론 작업의 바탕이 되는 사진이 있잖아요. 작업의 과정에서 사진 속 하늘은 ‘나’로서 사진을 보고 발생하는 ‘감정의 경험’을 재해석해서 그리는 영역이에요. 그리고 사진 속 현실적인 대상들은 ‘내’가 이야기하는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친구의 사진을 보고 저는 제가 꿈꾸는 이상(감정의 경험)과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그려요. 이 작업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체험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종의 훈련이에요. 이게 제가 세상과 소통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방법이더라고요.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소통한다. 하늘과 땅, 이상과 현실로 타인을 마주한다. 창문 밖 보이는 풍경, 하늘과 땅 차이. 그 간극을 잇고자 하는 바람이다.

 

 

#4
클래식 연주

 

클래식 연주자들, 하람님의 경우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하람 : 먼저 악보를 뽑아요. 악보 제본을 마친 뒤 자리에 펼쳐 놓아야 연습을 시작할 준비가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악보를 보면서 어느 손가락을 어디에 놔야 할지, 활을 언제 바꿀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요. 배우들이 대본에 대사를 끊어 읽는 걸 체크하듯이. 그리고 어느 정도 숙지가 되면 피아니스트랑 맞춰보면서 서로의 생각을 정리해요. 그렇게 한 달 정도? 때에 따라서 더 많이 하시는 분도 있고요.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는 입장에서 질문하자면, 악보에는 굉장히 꼼꼼하게 약속이 정해져 있잖아요. 연습하는 과정에서 연주자들끼리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어떤 지점에서 생기는 걸까요? 

하람 : 음, 절대적인 1초의 기준이 있어도 제가 느끼는 1초와 일수님이 느끼는 1초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두 사람이 적당한 속도로 산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는 앞서있고 누군가는 뒤쳐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각자가 느끼는 속도가 다를 수 있는 거예요. 

범무 : 그런데 그게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요? 심지어, 여리게, 강하게, 강조 표시도 있고요. 이런 것들이 다 악보에 표기가 돼 있는데. 

하람 : 네. 강조한다고 했을 때 강조를 표현하는 방식이, 해당 음만 강하게 치는 사람이 있고, 혹은 강조를 위해서 음을 점차 증폭시키며 강조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는 그 전에 잠깐 쉬어서 뒤에 음이 강조되길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강조라는 범주 안에 어떤 형식을 취할 것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환 : 저는 ‘검붉다’라는 단어를 각자 표현했을 때 남들과 차이점이 있는 것을 생각했어요. 

하람 : 네 맞아요. 색깔을 묘사하는 단어는 있지만, 개개인이 보거나 표현하는 노란색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작업자의 입장에서, 오케스트라 안의 연주자 일 때 그리고 독주했을 때의 연주자가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하람 : 음… 제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경험은 없지만 오케스트라에 참여한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오케스트라 단원 분들의 견해는 좀 다를 수가 있겠지만) 오케스트라의 경우에 연주자 개인의 해석은 거의 못 들어간다고 봐야 하는 것 같아요. 큰 그림으로 나는 소리를 위해 맞춰야 해요. 예를 들면 손가락 번호랑 활을 어디서 쓸 건지 등이 정해져 있고 연주자들은 그걸 맞춰야 해요. 반면에 독주는 그런 것보다 자기가 오롯이 끌고 가야 하는 거죠. 본인의 연주 성격이나 스타일, 색깔을 다 보여주는 느낌이에요. 

예술가로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나 뭐 이런 것들에 대해서. 오케스트라를 목표로 하시는 분들이 있겠고 혼자 작업하길 바라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하람 : 예술가의 정체성 차이라기보다 ‘다른 경험’인 것같아요. 예를 들면 모노드라마가 있고 대하드라마도 있듯이 각각의 특색이 있는 거죠. 대하드라마에서는 주연을 비롯한 많은 조연들과 어디서 보기 힘든 대서사가 있잖아요. 음악의 경우 작곡가 말러나 슈트라우스의 작품 같은 큰 규모의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오케스트라 밖에 없거든요. 많은 악기가 그리는 큰 그 규모의 오케스트라 곡만이 가지고 있는 대서사가 있어요.  

범무 : 예술가는 발현하잖아요. 여러 가지 표현의 방법이 있겠지만 제 언어로 ‘발현한다’라고 말할 때, 창작을 얘기하거든요. 쉽게 말해서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0에서 시작해서 100까지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이 있는데, 연주자는 100% 창작하는 게 아니라 작곡가, 그러니까 다른 창작자의 작업물을 해석하고 연주하잖아요. 그 관점으로서의 예술가도 궁금해요.

하람 :  저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창작도 모방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영향을 받아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연주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연주자는 악보가 나오면 작곡가가 오선지 위에 풀어놓은 생각을 공부해요. 예를 들면 슈베르트의 디미누엔도(diminuendo :점점 여리게)와 베토벤의 디미누엔도는 다른 어법이거든요. 슈베르트의 디미누엔도는 어떤 구간에서는 느려지라는 의미도 내포해요. 연주자로서 그의 언어를 이해하고 내 경험을 더해 연주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악보를 마주하면서 0에서부터 다시 100을 만드는 작업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은 영역의 창작인 거죠.


[    ]와 예술인의 삶이 만난다. 그것이 예술이 일까.

 

 

#
마지막 한마디

동주 : 아까 짧게 말씀드렸지만 계속 드는 생각은, 뭔가 내 안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깨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예술현장에서도 중요하겠지만, 저 같은 예술 행정가에게도 꼭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모임이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제 안에 있던 편견을 깨는 시간이었습니다.”

범무 : 다른 분야를 이해할 기회가 있다는 게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이런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네요. 많은 작가님들이 참여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많이들 오셔라!”

환 : 청년 예술인 분들과 만나서 너무 좋았어요. 다만 ‘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현실을 자각한 상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 모르겠다,” 

하람 : 전 사실 여기 오기 전에 되게 겁났었거든요. 왜냐면 다른 사람이 제 생각에 관심 없듯이, 제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서 이 자리가 맞을까 생각했어요. 저 자신을 소통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오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가 음악적인 부분에서 소통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위로가 됐어요. 음악 작업에서 소통을 너무 많이 해서 평상시에 좀 끊고 살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즐겁게 예술 활동을 하면 좋겠어요.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용기 얻고 가요.

환 : 다들 예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분들이라 재밌게 진행한 거 같아요. 저는, 엄마가 내가 하는 작업을 보고 공감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엄청나게 노력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하람 : 앞으로도 절대 안 될 거예요. 저도 그래요. 엄마한테 맨날, 어디 가서 음대 엄마라고 하지 말라고. (농담)

 

코로나로 인한 제한조치 직전에 자리가 마련됐다.
우리는 ‘혹시’라는 이유로 하얗게 입을 막았다. 하얀 입의 우리들은 서로의 작품으로 서로를 들여다보았다.
예기치 못한 오늘이 불안감으로 엄습할 때가 있다. 
작품을 통해 소통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것을 나와 연결하는 것. 우리의 의미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산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것은 돌아올 메아리가 있기 때문이다. 닿고 돌아오는 감각이 우리를 소리치게 한다.”
타격감은 계속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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