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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현장인터뷰 ⑤ ✍ 옥민아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0. 11. 29.

 

현장 인터뷰 ⑤


✍ 옥민아

 

 


현장 인터뷰 소개글

글로, 말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오해의 연속입니다.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키워드를 가지고 ‘당신’을 만나겠노라, 다양한 ‘당신’께 요청을 드렸습니다.

한 사람의 삶과 예술관을 키워드 몇 개에 담겠다는 시도는 무모하고 건방진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수의 ‘당신’에게서 길어낸 다양한 키워드는 어느 한 지점, 한 사람을 가리킬지도 모릅니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서 우리가 이제껏 오해하고 있었던 익명의 ‘당신’을 새롭게 만나려는 시도입니다.

신중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당신’은 청년예술가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청년예술가입니까?


 

현장인터뷰 5차 <세부 사항>

장소: 서대문구 노고산동
시간: 19:00 ~ 22:00
인터뷰어: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위원, 작가 옥민아
인터뷰이: 조소과 재학생 P


 

#미대로 가는 여정

 

어릴 때 미술학원을 많이들 다니지만 저는 스무 살 때까지 미술을 접해보지 않았어요. 다만 찰흙 같은 걸 조물조물 만지며 노는 것을 좋아해서 엄마가 항상 지점토나 고무찰흙 같은 걸 늘 집에 사다 두셨죠. 혼자 하는 놀이라고만 생각했지 미술을 한다는 개념은 전혀 없었어요. 고등학생 때 제 영어 과외 선생님께서 과외 학생 중에 조소하는 친구가 있다고 얘기해 주셨어요. 전 ‘조소’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분 말씀이, “조소가 뭐 만드는 거라던데 너 집에서도 맨날 혼자 그러지 않냐, 좋아하는 걸 하면 네가 조금 덜 아프지 않겠냐.”라고 말씀하셨어요. 중, 고등학생 시절에 몸도 매우 아프고 마음 건강도 나빴거든요. 그렇게 과외 선생님에게서 추천을 받아 ‘조소’에 대해 알아보다 혼자 미술학원에 수업을 받으러 갔었어요. 조소를 가르치는 미술학원에 가면 처음엔 찰흙으로 구 만드는 걸 시켜요. 그런데 그걸 제가 4시간 동안 매달려서, 사진으로 보면 사람이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구를 만들어 놓았던 거죠. 칭찬을 받았어요. 이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미대 입시

 

첫 미대 입시는 실패했어요. 실기 준비를 너무 늦게 시작했거든요. 지방의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보니, 성적 맞춰 들어온 학교에서 졸업장을 위해 어영부영 대학 생활을 하는 게 억울했어요. 한 학기 만에 자퇴하고 다시 미대 입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죠. 4개월 정도 미대 실기 입시에 매달렸어요. 조소에는 다이라고 하는 책상보다 조금 작은 느낌의, 밑에 바퀴가 달려 움직일 수 있는 작업대가 있어요. 위에 심봉이라는 철근이 박여있고 그 심봉을 중심으로 사람 얼굴을 만들어요. 쇄골 정도까지의 흉상을 4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고요. 모델링과 특정 주제, 이 2가지 시험 요소가 있는데 모델링은 모델을 앞에 앉혀 놓고 4시간 동안 그 사람과 똑같이 만드는 거예요. 학생들이 모델을 둘러싸서 자리를 잡고, 모델은 10분에서 15분 정도 머물다 시간이 경과하면 조금씩 방향을 돌려요. 주제는 보통 3시간 반에서 4시간짜리 과제예요. 예를 들면, ‘엄마 품에 안겨 환하게 웃는 아기’ 같은 식의 주제어가 입시 당일에 주어지죠. 이를 위해 미대 입시 학원에서 사람의 골격이나 나이대에 따른 사람 얼굴의 변화, 근육이 쳐진다거나 볼살이 늘어진다거나 의 느낌들에 대해 이론적으로 배우기도 해요.

입시를 위한 미술이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조소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요. 입시 학원 친구들도 절레절레할 정도였는데 10시간, 12시간 동안 학원에서 사람 얼굴만 만들면서 밥 먹는 시간마저도 핸드폰에 사람 얼굴 사진 띄워놓고 데셍처럼 그려보곤 했어요. 그렇게 하면 내가 직접 만들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양감과 비율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오니까요. 지하철이나 버스 탈 때도 앞에 앉은 사람을 몰래 쳐다보면서 눈, 코, 입, 얼굴형을 그렸죠. 가장 빡세게 입시 준비를 하는 시기에는 오전과 오후, 각 4시간씩 시험 과제를 치르고 야간엔 수정 작업을 하는 일정이에요. 미술은 입시 시기가 단과대 중, 가장 늦으니 미대 입시생들은 방학 때 이런 일정으로 연습을 하게 되죠. 오전 10시까지 학원에 가서 오후 10시까지 12시간 정도 작업해요. 흙을 다루다 보니 이렇게 오래 연습을 하면 점토가 손의 수분을 다 빨아가서 손등이 갈라지고 피 나고 난리가 나요. 잘 때라도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비닐장갑을 끼고 자는 식으로 일종의 처방을 하곤 하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죠. 손등은 난리가 났지만, 재수에는 성공했어요.

 

#미대 신입생

 

전 미대 신입생 시절을 좀 소극적으로 보낸 것 같아요. 지방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학생들도 방학이 되면 꽤 많이들 서울로 학원 원정을 다녀요. 방학 하는 동안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대형 미대 입시 학원에 다니다 보면 서로 친구가 되는 거죠. 그 아이들이 대학에서 다시 만나는 거예요. 예중, 예고 출신들은 서로 오래 봐 왔으니 특히나 더 끈끈하고요. 저는 대전에서도 정말 작은 미술학원에서 입시 준비를 했던 터라, 서울로 대학을 오고 보니 아는 얼굴이 전혀 없었어요. 신입생들을 보면서 저만 빼고 이미 서로 아는 사이처럼 느꼈나 봐요.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안 받아도 될 소외감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미대 신입생의 일

 

인체를 더 공부하게 돼요. 조소과 입시를 위해서 두상까지만 죽어라 연습했는데 미대 1학년이 되니 이제 인체의 허벅지 정도까지 만들기 시작했어요. 얼굴만 만들다가 몸을 만드니까 얼마나 재밌어요. 그리고 누드모델을 앞에 두고 작업 할 수 있어요. 미대생의 특권이죠. 누드모델을 앞에 두고 인체를 만들어 볼 기회가 언제 있었겠어요. 팔다리와 몸, 얼굴 이외의 것들을 만든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저는 6개월이 채 안 되는 입시 기간을 가진 뒤 대학에 입학한 터라 다른 학생들보다 얼굴은 확실히 못 만들었어요. 그 점에 대한 자격지심이 컸었는데, 제가 양감에 대한 재능은 확실히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대 입시를 위해서 아무리 오랜 시간 연습한 친구들도 두상만 만들었지, 모두 다 몸은 처음 만들어 보는 거죠. 몸을 만들기 시작하니까 제가 잘하는 거예요. 자신감이 붙어서 재밌게 했죠.

 

#알바와 함께한 대학 생활

 

등록금으로 한 학기에 460~480만 원 정도를 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조소과는 작품 실기를 해야 하는 수업들이 많아요. 한 학기에 전공과목을 4개 듣는다, 그러면 한 과목당 20만 원씩은 들었던 것 같아요. 작업을 위한 개별 재료비에 수강생들이 공통으로 써야 하는 게 있다면 돈을 모아 주문하는 것들을 합쳐서 사요. 한 학기에 전공수업을 4개 들으면 등록금 외에 80만 원 정도가 더 필요했어요. 그래서 전 학교 다니면서 항상 알바 투잡을 뛰었어요. 집이 지방이다 보니, 학교 근처에서 자취했는데 다행히 방 계약금과 월세는 부모님이 내주셨어요. 그럼 이제 저는 생활비와 수업을 위한 재료비를 벌어야 하는 거죠. 평일엔 4일, 주말은 2일 내내. 이런 식으로 알바를 하고 수업 듣고 4시나 5시쯤 수업이 끝나면 그때부터 또 알바 가고. 그러고 와서 과제하거나 야작(야간 작업)을 하러 갔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한창 알바로 투잡을 뛸 때는 주중 알바를 4시부터 7시 반까지 4~5회 했고, 주말엔 하루 11시간, 12시간씩 일할 때가 있었어요. 대학 생활과 알바를 동시에 했던 게 1학년 1학기예요. 그때 가장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2학기가 되면 복학생들이 돌아올 텐데 절대 실기로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거예요. 장학금을 탈 기회가 1학년 1학기밖에 없을 거란 판단이 들었어요. 정말 미친 듯이 과제 하고 작품 해서 과 수석을 했어요. 알바 두 탕을 뛰면서요. 2학기 등록금이 80% 면제돼서 80만 원 정도만 낼 수 있었죠.

 

#미대에 대한 기대
#예상 밖과
#예상 안

 

제가 다닌 학교가 타 미대와 조금 다른 점은 취업을 중시한다는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3D 수업이 많았던 것 같아요. 조소과가 현실에서 입체를 다루다 보니 가상의 공간, 컴퓨터 안의 공간에서도 입체를 다루는 3D 프로그램이 조소과 학생들에겐 상대적으로 수월해요. 기능만 몇 개 배운다면요. 서울대, 중앙대, 시립대 등의 교육 목표는 작가 양성에 좀 더 무게를 둔다고 들었고, 또 현직에서 작품 활동하시는 교수님들도 많다고 하던데 제가 다닌 학교는 작품보다는 논문 위주로 활동하시는 교수님들이 더 많았어요. 

취업을 중시하는 학교이다 보니 작품에 열정적인 학생들이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종합대학이지만 예술 대학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였어요. 때문에 타 대학에 비해 시설이나 장비의 퀄리티는 좋았을 수 있지만, 공간이 정말 좁았어요. 조소과의 경우, 작품 사이즈가 큼직큼직한 게 많은데 좁은 공간을 함께 쓰는 타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내 작품의 크기를 줄여야 하기도 했어요. 좁은 공간 안에서 대형 작업을 한다 해도 작업실 문을 통과해야 작품을 반출할 수 있는데 문의 크기도 한계가 있으니까 작품의 사이즈가 학교 작업공간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느냐에 좌우되는 거죠. 생각보다 시설의 디테일들이 중요하더라고요. 대형 작품을 하려면 반드시 해체가 가능한 작품을 해야 했으니까요. 이런 점이 매우 아쉬웠어요. 그리고 또, ‘나는 과연 그랬던가.’ 반문하게 되지만 열정적으로 자기 작업, 자기 작품에 매진하는 친구들이 적어서 아쉬움이 컸어요. 

 

#교수님
#강사님
#선배님

 

네 분의 정교수님이 계셨어요. 이론적인 방향으로 수업을 이끌어가려 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느꼈어요. 갓 대학에 입학한 20대 초반의 미대생들은 내가 이걸 어떻게 하면 잘 구현해 내고, 어떤 재료를 어떻게 쓰면 좋을지 배우고 싶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방법론은 과하게 자유롭게 풀어두셨어요. 개념에 방점을 두셨던 것 같아요.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의 방향을 잃은 느낌이었죠. 특히 1학년 때는 좀 충격받았어요. 인체 반신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교수님께 질문을 드렸는데 “디테일한 것들은 선배한테 물어보렴.”이라고 하셨어요. 나는 교수님한테 수업으로 배우려고 온 건데 선배한테 배우라고 하시니 놀랐죠. 학년이 높아질수록 이해는 됐어요. 선배들이 우리와 직접적으로 실기실을 공유하는 사람이니까, 실기실을 사용하는 예절이라든지 공구가 너무 위험하니까 그것들을 다루는 안전교육 등을 더 가까이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래도 신입생이던 그때의 나는 떠넘기는 듯한 대답을 들은 것 같아 실망스러웠어요. 다른 강사 선생님들은 우리가 알고 싶은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느낌으로 작품에 대한 상담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학생 대부분은 강사 선생님을 더 좋아했어요.

 

#미대 등록금

 

미대는 타 단과대보다 등록금이 비싸요. 그런데, 그렇게 많이 낼 거면 장비라도 개수가 넉넉하다든지 고장 난 것 없이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본적인 장비인 드릴도 다 고장이 나서 쓸 수 없는 게 많았어요. 그래서 다들 개인장비를 갖고 있어야 했고요. 장비를 사는 것도, 하나에 10만 원, 20만 원씩 하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대 내에서 빈부격차를 많이 느껴요. 장비 풀세트를 가지고 있는 애가 있는가 하면, 학교 장비만 빌려 쓰는 아이들도 있고요. 모든 학교가 그렇지는 않다고 들었어요. 타 대학의 미대에 간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 자기들은 ‘유토’라고 하는 기름이 섞인 흙이 공짜로 제공된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그냥 흙과 물이 섞인 흙을 썼거든요. 이런 흙은 물을 계속 공급해 주고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비닐로 덮어놓지 않으면 다 굳어버려요. 못쓰게 되어 버리는 경우가 왕왕 생기죠. ‘유토’는 기름과 섞인 흙이라 실온에 둬도 수분이 날아가지 않아서 계속 쓸 수 있어요. 그게 학교 측에서 공짜로 제공된다는 얘기에 놀랐어요. 대학마다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기본적으로 모든 미대가 타 단과대보다 등록금이 비싼 건 똑같지만요. 내 모교는 장비, 시설, 공구에 이러한 제약이 많은데 왜 내가 그렇게 많은 등록금을 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대학생의 필수코스
#휴학

 

재학 중에 친척 오빠를 따라 한 직장인 극단에 들어가게 됐는데 연극에 빠졌어요. 연기가 하고 싶고 어떤 식으로든 공연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무작정 휴학을 했어요. 사실 연기에 대해 선입견에 가까운 이미지가 있었어요. 예쁘고 잘 생기고, 어렸을 때부터 끼가 있어서 남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런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게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추어지만 배우로서 무대에 올랐을 때, 사람들의 집중도가 느껴지는 경험이 충격적이었어요. 조소로 작품을 만들었을 때 보다 연극 공연을 통해 더 큰 만족을 느꼈거든요. 무대감독으로서 연극 무대와 미술을 제작했을 때에도 말도 못 할 성취감을 느꼈고요. 나는 앞으로 작가가 되고 싶은데 작업을 위해 필요한 비용이 알바비로 충당이 되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작업에 대해서 서서히 마음을 접어가고 있던 찰나에 연극을 만났고 문화 기획 일을 접하게 되었어요. 공연 포스터도 만들게 된 거죠. 선 하나 그을 줄 아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일러스트를 전공한 지인에게 점 하나 찍을 때마다 물어봐 가면서 작업했어요. 정말 작지만 페이를 받았거든요. 일단 돈을 받았으니 민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 해내야 하고, 배워 가며 작업을 했는데 완성된 포스터가 그렇게 뿌듯했어요. 퀄리티를 떠나서요. 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은 부분도 많았죠. 조소과에서 혼자 작업하는 게 제 적성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낼 때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대학에서의 성장

 

불안과 불만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생각해보니 내가 왜 예술을 선택했는지, 또 휴학했을 땐 내가 왜 예술을 관두려고 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대학 시절은 ‘나는 예술의 영역 안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확신을 얻게 된 여정이었던 것 같아요. 예술을 하기 위해 꼭 예대를 다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수록 힘들었는데 4년간의 미대 학생 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확실히 예술이 좋구나, 예술로써 내가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예술대학에서 배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작품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작가적 맥락이 생겼다고 생각진 않지만 경험적으로, 감정적으로 예술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것에 대한 만족에 가까워요.

문 사이즈나 실기실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고, 큰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대형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갈망했었고, 갤러리에 전시 해놔도 어설퍼 보이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는데, 역시 그건 좀 부족했어요. 온전히 내 탓이겠지만요.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수업을 경험하고 교수님들에게도 좀 더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이런 기대도 사그라들었어요. 여전히 작가로서 활동하는 교수님들의 작품을 보고 내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 이론과 기술 양면에서 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스승을 원했는데 충족이 되지 않더라고요.

 

#졸업 후
#전공 살리기
#전공 버리기

 

연극을 통해 배우를 경험했고 문화 기획의 일도 알게 되었어요. 졸업을 앞둔 지금은 문화 기획의 일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고요. 졸업 후에 기획자로서 커리어를 쌓는다고 해도, 내 전공을 살리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극 무대를 만들 때에도 제 전공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느꼈거든요. 극단의 연출님과 소통하면서 기술적 완성도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큼이나 의미적으로도 극에 어울리는 미술을 제작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어요. 그 때문에 무대를 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죠. 요즘, 제가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수업 과제를 하다 깨달은 것이 있어요. 문화예술교육의 분야에서도 나의 작가적인 기질을 투영할 수 있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나의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요.

 

#졸전

 

미술대학의 학사 졸업을 위한 몇 가지 요건이 있어요. 영어 시험이 있긴 하지만 통과점수가 높지 않은 편이고요. 교양이나 전공 학점을 일정 이상 이수해야 하고, 봉사 시간을 채워야 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졸업작품전이 있죠. 졸업 전시는 보통 4학년부터 시작해서 학교 수업과 방학 기간의 개별 작업을 포함해서 10개월 정도 준비하는 것 같아요. 졸업을 위한 작품을 총 4개 제작해야 하는데, 졸업 학년의 전반부는 대개 작품의 담론적 배경을 만들고 구상을 하는 데에 사용했어요. 여름방학부터 시작해서 2학기 내내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요. 3D 작업에 큰 비중을 두는 학교라, 졸업 작품 4개 중에 3D 프린팅 작품이 반드시 1개 이상 포함되어야 하고, 나머지 3개 작품은 자유 형식이에요. 어떤 학교는 석조 작품 무조건 하나, 인체 하나,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기도 하고요. 금전적인 부분을 말하자면, 개개인의 작품 구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작품을 제작하면서 100원씩은 들이는 것 같아요. 그건 작품 제작 만을 위한 비용이고 졸전을 앞둔 학생들 각자, 추가로 120만 원 정도씩을 각출해서 졸전을 위한 전시관 대여비, 작품 도록에 실을 작품 촬영비 등에 써요. 지금의 저는 총 4개의 작품 중 1개를 끝냈을 뿐이에요.

 

#청년 예술가로서의 나와
#자연인으로서의 나

그 둘의 관계

 

미술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저는 혼자 우뚝 서 있기도, 혼자 나를 돌보며 살기도 버거운 아이였어요. 삶에 대한 애착도 살고자 하는 욕망도 별로 없었던 아이가 청년예술가인 나를 만나면서 ‘아, 나도 살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예술가인 내가 자연인인 나를 이끌어 주는 느낌이에요. 이 둘이 만나지 못했으면 지금의 저는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미대입시
#알바
#휴학
#교수님
#강사님
#졸업전시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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