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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타격감에세이 Chapter3.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의 사이다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3. 11.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의 사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이 있다. 긴 숙련 기간에 비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예술 창작은 어렵고 우리의 일상은 소중하다.

 

예술인으로 살다 보면 종종 한계에 봉착한다. 과연 내가 가는 이 길이 온당한가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끝이 없고 이따금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예술은 길고 긴 여정인데, 나에게 주어진 하루는 가끔 무기력한 형태이다.

 

마치 체한 것 같은 날이다.

그럴 때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기운을 회복해야만 한다.

 

예술인의 일상은 비교적 자유롭다는 인식이 있다. 직장인의 관점에서 예술인들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매일 월요일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예술인의 일상은 항상 일요일처럼 보일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조조할인을 받아 오전 8시의 영화를 볼 수 있는 부러운 사람들. 창작 활동과 직장 생활을 조금이나마 모두 경험해 본 나의 입장에선 예술인과 직장인 모두 생활이 자유롭지도 여유롭지도 않다. 돈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시차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시차로 고생 중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함께 호흡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다. 예술인의 관점에서 동시대는 창작 활동을 지속하기에 너무 어려운 시대이다. 직장인의 입장에서 현대사회는 하루하루 생존하기에도 힘겨운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허락된 인생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주어진 일상을 지켜내야만 한다.

 

동시대라는 시차와 체증으로 고생하는 현대인.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은 날, 사이다 같은 해소제가 필요하다.

 

나에겐 묵은 체증을 씻어주는 사이다 같은 순간들이 있다.

 

질투가 날 정도로 감각적이고 온당한 예술 작품을 만났을 때

들으면 들을수록 깊은 감동을 주는 노래가 찾았을 때

읽으면서도 또 읽고 싶은 문장을 발견했을 때

다시 만나고 싶은 타인을 허락받았을 때

 

많은 사람이 내가 느낀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순간을 선물하는 예술인이 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타격감이 예술인의 기분을 풀어주는 놀이터이자 기운을 회복하는 쉼터가 되는 날을 상상해 본다. 다양한 분야로 전파되어 많은 사람이 예술의 즐거움을 알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동시대를 공유하는 모든 사람에겐 묵은 체증을 씻어줄 해소제가 필요하다. 사이다를 크게 한입 마실 수 있는 순간이 절실하다. 나에겐 일상 속 예술이 너무 차갑지 않은 사이다처럼 적당한 온도의 청량감을 머금고 있다. 당신에게도 이러한 순간이 부디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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