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나침반 하나
✍장은정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전 보통 제 소개를 해야할 때 “안녕하세요. 문학에 대한 글을 쓰는 장은정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문학평론가’라는 단어를 쓰면 많은 사람들이 잠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거든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어서요. 직업을 밝히면 그 다음 질문은 “글을 어디에 쓰는 거에요? 신문 같은 곳?”이라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문에 칼럼을 간혹 쓰기도 하지만, 보통은 문학잡지에 씁니다. 아니면 시집이나 소설집 뒤에 붙는 해설을 쓰기도 해요.”라고 대답하는 것까지가 제 직업을 설명해온 패턴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문학평론가가 예술정책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걸까요?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성연주 선생님은 저를 한 기사에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11년 간 문학평론가로 살면서 얼마를 벌었는지 엑셀에다 빼곡하게 정리를 해봤거든요. 문학상도 받고 창작지원금도 받으면서 나름 주목받는 평론가였다고 생각하는데도,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월 46만원을 벌었더군요. 경향신문 이영경 기자님은 제가 ‘문학평론의 값’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이야길 듣고 지면 인터뷰를 요청하셨어요.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매당 5000원의 삶”, ‘노동자로서 평론가’의 삶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사 덕분에 문학출판계가 아닌 곳에서 저를 찾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성연주 선생님도 저를 이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고 프로젝트 멤버로 적합하다고 판단하신 듯 합니다.
문학계와 청년예술인
하지만 제안 받은 프로젝트 이름이 〈‘청년예술을 폐기하라’ 연구 릴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이 제목으로 뭘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첨부해주신 기획안을 열어봤습니다. 프로젝트 목적에 이렇게 써져 있더군요. “청년예술의 정의, 개념, 용례를 논의하고, 청년예술(인) 정책이 한국 사회와 예술씬에 미친 사회적 효과에 대해 논의함” 이 문장을 읽고 ‘아, 여기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문학평론가이기도 하지만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학웹진 《비유》의 기획자이기도 하거든요. 2017년, 《비유》를 창간할 때 김나영 문학평론가와 함께 총괄 기획을 맡아서 공모사업을 직접 설계했고, 저희 잡지와 방향성이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여러 기획자분들과 잡지의 컨텐츠를 만들어나간 지 3년을 꽉 채워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새 잡지 창간 준비로 정신없던 그 시기,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청년예술지원’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던 《최초예술지원사업》이 동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문학계에는 다른 장르와 다르게 ‘등단제도’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 평론가가 되려면 언론사나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공모전에 당선되어야 그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문학계에서만 통용되는 ‘미등단자’라는 용어가 있죠(최근엔 등단제도에 반대하는 관점에서 스스로를 ‘비등단 작가’로 선언한 작가들도 있습니다). 그동안 문학계 예술정책은 대체로 등단자들만을 대상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런데 ‘최초예술지원’ 사업은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들만을 대상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문학계에선 이례적인 사업이었습니다.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생활비로 쓰면서 글쓰기를 유지하는데 약간의 보탬이 되는 사업이었죠. 그 사업엔 사백 명 정도가 지원을 했고 심사를 통해 백 명의 작가들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선정자들이 행정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과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어 직접 모셔서 설명해야 하는 간담회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죠. ‘지금 준비 중인 새 잡지를 홍보할 기회다!’ 그래서 간담회가 끝나기 전 20분 정도 새 잡지를 소개할 시간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 등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그 싸늘한 분위기에선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새 잡지가 생기는데 뭐? 어쩌라고?’ 평론가들은 문학행사에서 사회를 보는 역할을 자주 맡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은 제게 무척 익숙한 일인데 그때만큼 마이크가 두려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작가를 꿈꾸지만 아직 등단제도를 통과하지 않은 분들에게 새 잡지가 생겨봐야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재단에서 만드는 잡지의 특성상 신인상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는 왜 이렇게 반응이 냉소적인지 발표 도중에 불현듯 깨달았고 그 분들의 얼굴과 눈빛 하나 하나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어떻게든 잡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직접 보여주면서 대답해야겠다고, 그때는 방법도 모르고 그저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대답할 기회
본래 문학웹진을 창간하도록 책정된 예산과 청년예술지원으로 분류된 《최초예술지원사업》의 예산은 별개의 사업입니다. 그런데 회의 자리에서 《최초예술지원사업》에서 선정된 분들에게 그냥 지원금만 지급하지 말고 새로 창간되는 잡지에 기성작가들과 섞어 작품을 싣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기소개란에 등단출신지와 년도를 밝히지 말고, 자신의 문학적 지향점이나 발표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린다면 독자는 작가를 ‘출신지’가 아니라 잡지에 실린 작품과만 만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보통 문학계는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서울문화재단에서 문학웹진을 창간할 수 있는 예산이 책정되었으니, 기획자로서 제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이것이었어요. ‘영리를 추구해야 하는 출판사에서는 시도하기 어렵지만 문학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때 《최초예술지원사업》이 하나의 대답이 되어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비유》 1호는 “우리가 문학을 통해 잘할 수 있는 일들을 등단과 미등단, 문인과 독자, 여성과 남성 등으로 무수히 구분해오진 않았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 언젠가는 둑이 툭 터져, 흘러야 마땅했던 물결처럼 작가들이 밀려오는 상상을 합니다.”¹⁾라는 소개글과 함께 기성 작가와 미등단 작가를 섞어서 일부러 독자들이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 후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분들은 미등단 상태에서 기성작가들만이 받았던 문학상을 받기도 했고 다른 잡지의 청탁을 받아 작가 활동을 시작한 분들이 생겨났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청년예술지원’에 속한 《최초예술지원사업》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사업이 연계되면서 생겨난 일입니다. 다른 문학잡지를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실력 좋은 미등단자들을 어디서 그렇게 많이 찾아냈어요?” 그때마다 저는 《최초지원예술사업》에 대해 설명해왔습니다.
그런데 청년예술을 폐기하자고?
저는 이런 경험을 통해 청년예술인을 지원하는 사업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었고 그 사업 덕분에 세상으로 나와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분들이 실제로 계시기 때문에 청년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제목이 〈‘청년예술을 폐기하라’ 연구 릴레이〉라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처음 연락을 받곤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 좋은 걸 왜 폐기해?’ 그러다 문득, 문학계와는 다른 장르에서의 청년예술지원 사업에선 무슨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로서는 그 궁금증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니 저는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해하기에 참여한 멤버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참여한 멤버였고, 그런 이유로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필자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청년예술을 폐기하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이 프로젝트의 특징 중 하나는 ‘릴레이’ 글쓰기라는 점입니다. 자신의 앞 순서에 연재되었던 사람의 글을 인용하거나 언급하면서 접점을 만들어 나가면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지막 차례니까 다섯 편의 글 모두를 다루는 것이 적합하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졌죠. 차례가 정해진 후 저는 마지막 필자로서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었을 때, 필자와 독자에게 ‘무엇이 남을까’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냥 우리들끼리의 이야기로 남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래서 제가 다섯 편의 글을 읽은 소감에 대해 혼자 말하기보단 누군가와 함께 대화하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은 독자를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서울문화재단과 3년 정도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사실은 재단에서 진행되는 각각의 사업은 그 사업의 취지나 목표와 상관없이 ‘누가 담당자가 되느냐’에 따라 그 사업의 퀄리티가 결정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비유》의 기획자로 일하는 동안 담당자가 세 번 바뀌었는데, 마치 세 개의 잡지를 만든다고 느낄 만큼 편차가 심했습니다. 그만큼 예술정책에서는 그것을 직접 실행하고 주도하는 담당자의 역할이 상당한 것이죠. 그럼에도 예술정책 비평에서 결코 논의되지 않는 사람, 그 존재 없이는 사업이 아예 작동하지 않을 만큼 중요하지만 결코 언급되지 않아 그 개별적 목소리를 듣기 어려운 사람들이 바로 실무자입니다. 그런 이유로 ○○문화재단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분을 독자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행정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해야 하는 분에게는 이 글들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했어요. 이제부터 이 분을 A님이라고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징자본 / 성연주, 「‘청년예술’을 폐기하라」
그런데 A님은 이 제안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부담스러워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실무자들의 대표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냐는 의문 때문이었죠.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이 실무자들 전체의 의견으로 독자에게 가 닿을까봐 염려가 컸고, 따라서 인터뷰에서도 실무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입각한 독해보다는 일반적 독자의 관점을 견지하려고 신중하게 답하시려 애쓰는 것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 A님의 실무자적 관점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각 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키워드 다섯 개를 뽑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각 글에서 강조하려는 바와 상관없이 A님께 기억에 남는 단어였으면 좋겠다고도 첨언했구요. 그리고 그 단어가 왜 인상 깊었는지, 이 글들이 A님께는 어떻게 읽혔는지 질문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글, 성연주의 「‘청년예술’을 폐기하라」에서 A님은 ‘상징자본’을 고르셨어요. 저는 내심 굳이 부르디외의 개념보다는 성연주 선생님께서 쓰신 단어들 중에 골라줬으면 하는 마음에 왜 이 굳이 이 단어냐고 여러 번 되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이 단어 없이 이 글은 성립되지 않잖아요?”였습니다. 그 반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2017년부터 본격화되었다가 2019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어버린 ‘청년예술’이라는 기표를 ‘상징자본’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하는 작업 자체가 갖는 의의에 대해 질문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 되었습니다.
성연주의 글을 저의 방식대로 요약하자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청년예술사업에 책정된 290억은 과연 예술장에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묻는 글로 읽힙니다. 그에 대한 성연주의 대답은 “우선 ‘청년’이라는 기표 자체가 예술장에서 통용되는 상징자본과 무관한 기표”이기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액수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예술장을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이구요. ‘청년예술’이라는 단어가 청년예술의 생활고나 빈곤에 방점을 잘못 찍었다고 분석하면서 오히려 그동안 전통적인 예술장의 신화를 깨부수고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예술의 위치를 만들어가는 개념으로 통용되도록 작동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사실 저는 글의 도입부에서 소개했던 문학계에서의 청년예술사업은 문학계의 전통적인 예술장의 신화였던 등단제도를 교란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 그건 청년예술사업 자체가 아니라 웹진이라는 플랫폼과의 연동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가령 문학계 시스템을 논의하는 한 대담에서 스스로 유료 문학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박다래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저도 하루아침에 이런 생각(‘나는 작가이다’-필자 첨언)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등단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사실 웹진 비유가 저의 생각을 다르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²⁾ 박다래 작가는 최초예술지원사업의 선정자로서 웹진 비유에 두 번 작품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문학계의 전통적인 예술장 제도인 등단제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경험을 갖게 된 듯합니다.
그렇다면 정책설계자들이 빈곤층이자 소외 계층으로서의 ‘청년’으로 간주하는 전제 하에 청년지원사업을 잘못 구상했다고 하더라도 이 사업을 향유자와 만날 수 있는 플랫폼과의 연동을 통해 그 기표의 의미가 바뀌었다는 거죠. 이는 예술정책사업이 의도한 바는 그 사업을 실행하고 활용하는 구성원들에 의해 충분히 변화하는 유동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예술정책사업에 대한 이론적 담론이 하는 역할이란 무엇일까요? A님께서 이 글의 핵심 키워드로 ‘상징자본’을 꼽아주셨는데, 최근 3~4년 간의 한국에서 시행되었던 청년예술정책을 담론화할 때 반드시 부르디외의 개념을 경유해야만 하는 그 필연성이 무엇인지는 A님도 저도, 확신 있게 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자기과제 / 정진세, 「청년예술을 폐기하더라도」
청년예술지원 카테고리에는 앞서 살펴본 《최초지원예술사업》외에도 《서울청년예술단》사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진세 선생님은 당시 이 사업의 설계에 참여한 당사자로서, 폐지되어 잊혀져가는 《서울청년예술단》에 대한 당시의 맥락을 차근차근 짚어가며 자기비평을 수행하는 글입니다. 사실 저 역시 공모사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한계지점들을 공모를 실행하는 과정에서야 뒤늦게 실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해에는 작년의 문제점들을 수정하고 보완해왔기 때문에 설계 당시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자기 평가하는 이 글은 특히나 여러모로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A님이 꼽은 키워드는 ‘자기 과제’였습니다. 정진세의 「청년예술을 폐기하더라도」에서 이 단어가 등장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기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청년 예술가의 특질을 바탕으로 사업이 기획되는 것과, 어떤 긴급 구호의 대상으로 청년 예술가를 바라보며 사업을 기획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전자는 청년 예술가의 개념을 긍정하면서, 스스로 자기과제를 부여하게 하지만, 후자는 청년예술가를 대상화하면서, 한계상황을 연출하게 만든다.” 이 구절은 예술정책 사업 설계자가 사업 대상을 어떤 존재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차이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 문장을 가볍게 스쳐지나갔던 것 같은데 A님은 이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자기과제’라는 용어가 여러모로 중요한 단어로 다르게 읽혔습니다.
어쩌면 예술인의 특수성이란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자기과제를 스스로 설정하고 또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스스로 설정한 자기과제가 자신이 속한 장르의 씬 내부에서나 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구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인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 단순히 이해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이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누구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앞서 업로드 된 다섯 편의 글들에 대한 리뷰를 A님과의 대화를 통해 전달하려고 설정한 것 역시 제가 저에게 부여한 일종의 ‘자기 과제’인 셈이죠.
정진세는 《서울청년예술단사업》이 설계자를 구성하는 단계에서 청년의 당사자성이 누락되었다는 점과 멘토 시스템이 청년예술의 특성과 맞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설계 당사자로서 자기검열로 인해 비판적 관점에 더욱 입각해 사업을 조금 야박하게 평가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했는데요. 제가 체감했던 《서울청년예술단사업》은 참여한 이들에게 매달 인건비가 지급되는 유일한 사업이어서 예술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사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학계는 워낙 개인 창작자 지원 혹은 문예지지원 중심으로 정책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예술정책 사업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드뭅니다. 하지만 위 사업에 참여했던 몇몇 팀들이 지원 받은 금액으로 신인으로서는 기획자가 되어보기 힘든 경험을 실행하는 풍경은 문학계에서 보는 낯선 풍경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이 사업에 참여했던 한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소회를 물어보기도 했는데요. 사실 이 사업이 아니었다면 시도해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일들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에도 지원이 가능했음에도 왜 지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건…… 저희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그 대답 이후 우리는 같이 크게 웃었는데, 문학계 특성상 혼자서 작업을 해오던 작가들이 협업을 처음 경험하면서 통과해야만 했던 여러 부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회계 처리 과정이 아주 고통스러웠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이 경우는, ‘자기과제’ 뿐 아니라 ‘행정과제’도 실행하게끔 만든 것이고, 전자보다 후자의 무게가 더 무거워 전자를 포기해야 했다는 점은 새겨들을 만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 지적은 《서울청년예술단사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모든 예술인들이 큰 금액을 지원 받은 경우 ‘행정과제’에 고통 받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사업의 설계자가 예술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심오하게 고심하는 중일 때, 참여자는 사실 아주 단순하게 행정처리의 고통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는 점은 중요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과제와 행정 과제 사이의 간극, 후자가 두려워 전자를 포기하게 만든다면 이 지점이야말로 예술정책 설계자가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할 자기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취급 / 신지연이며 신소우주, 「나는 청년예술인이었다」
연재를 지켜보면서 저는 내심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지금 너무 우아한 이야기만 하는 것 아닐까?’ 담론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이론의 개념을 적용시키는 일이 아니라 현장의 구체성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구조를 세밀하게 읽어냄으로써 가능한 질문을 발견하여 씬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말이 돌도록’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돈다는 것은 함께 의제를 공유하고 저마다의 관점을 피력하며 차이가 두드러지면서 모두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 바로 담론을 만드는 일일 텐데요. 과연 이 프로젝트가 청년예술정책의 구성원들 사이에 ‘말이 돌게’ 할 수 있을지 저로서는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읽게 된 신소우주의 「나는 청년예술인이었다」는 예술인 당사자성을 전면에 앞세운 글입니다. 그런데 글의 제목이 과거형이라는 사실에 주목해보죠. 지금은 청년이 아니라는 의미가 더 부각되는데요. 이 글에서 A님은 ‘취급’이라는 단어를 골라주셨습니다. 이 단어가 포함된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술인 당사자로서 경험한 나의 길은 보편의 이해를 받기보다 어느 때는 돈도 안 되고 쓸데없다는 이유로 미련한 취급을 받거나 또 어느 때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특별한 취급을 받아왔다.” 이 문장은 예술인의 자기 이해 혹은 자기서사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예술가의 위치를 지적하는 문장입니다. A님께서 고르신 ‘취급’이란 단어는 이 글에서 대상화되고 측정되고 계량화되는 예술인들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 대한 A님의 반응이 특히 조금 독특했습니다. 이 글에선 경청할 만한 고민지점도 많지만 한 예술인의 지엽적 의견처럼 느껴졌다는 후기를 주셨거든요. 다른 글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답변하시는 태도와는 달리, 저는 여기서 예술인 당사자와 행정 실무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 관계(라고 제가 일반화해도 될까요?)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예술가가 정책을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느껴지는데, 사실 이 글 뿐 아니라 이런 태도를 가진 예술가들을 많이 접해 오셨던 모양인지 ‘전형적’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그렇다면 사실 저 역시 예술가 당사자로서 신지연 선생님 입장에 서서 A님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상황 상 자연스러울 텐데 어째서 행정실무자인 A님의 관점에 더 공감이 갔던 것일까요?
고백하자면 저는 이 글의 시작지점, 성연주 연구자가 “청년예술의 사회적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그걸 왜 제가 정의해야 하죠?”라는 질문은 저에게는 조금 충격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대답의 마지막 문장이 “그건 정책을 만든 사람들이나 관련 분야의 연구자들이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에서는 더욱 놀랐는데, 왜냐하면 예술인 당사자가 예술정책 설계에 있어서 스스로를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전혀 간주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예술인들로부터 ‘미련한 취급’을 받거나 타자화된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신지연 선생님이 예술정책으로부터 정작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를 외부의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째서 자신을 예술정책의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간주하지 않으시는 거지?
사실 저에게 ‘청년예술’이라는 용어는 좀 낯선데요. 왜냐하면 문학계에선 ‘청년’ 대신 ‘젊은’이라는 수식어를, ‘예술가’ 대신 ‘젊은 시인/소설가/평론가’라고 호명하는 일이 잦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게 ‘청년예술가’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정책적 호명이라는 느낌이 굉장히 강합니다. 제 일상에서 거의 쓰는 일이 없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는 올해 여러 공공기관의 예술정책 심사를 다니면서 지원 사업에 가장 적게 의지하는 장르가 문학계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마 다른 장르에 비해, 작은 규모라고 하더라도 출판 산업이라는 시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그렇다면 지원 사업 없이는 거의 활동 자체가 힘든 장르들의 경우, 지원사업은 예술인의 정체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예술정책에 대한 수동적 태도를 취하는 이 글은 한 사람의 독특한 견해가 아니라 ‘전형적’이라고 표현될 만큼 많다는 것 자체, 즉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동 / 오경미, 「‘청년 예술’이 자연스럽게 폐기처분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저에게 이 글은 ‘예술정책이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아주 큰 질문 속에서 ‘청년 예술’이라는 영역을 재위치 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제게 흥미로웠던 지적은 ‘예술은 노동인가?’라는 질문이 노동의 범주에 포함되는 사람이 사회적인 혜택을 더 받음으로써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는 현실적 사실 자체를 지워버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경미는 ‘예술은 노동이다’라는 말이 하나의 메타포라고 설명합니다. 정확히 인용하겠습니다. “예술계가 예술이 노동이 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정확한 개념을 다투는 중에 잊어버린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예술=노동”이라는 등식은 법적, 사회적 보호망 안으로 예술인을 포섭해달라는 요구를 간결한 용어로 치환한 것이자 일종의 메타포였던 것이다.”
‘예술이 노동이냐 비노동이냐’ 묻는 질문은 노동의 정의를 검토하게 만들고 예술의 특수성을 강조하게 만들며 노동의 범주를 고려하면서 일종의 ‘체계’를 만듭니다. 이 체계에 집중하다보면 불평등 문제가 어느 순간 지워진다는 것이죠. 저 역시 그러한 공회전 속에 오래 있었고, 이 글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불평등의 문제와 노동 범주의 문제는 별개의 것임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오경미는 예술인은 작품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과정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일반 근로자들이 연습기간이나 준비기간, 휴식과 휴가까지 보장 받지만 예술가들은 오로지 결과물에 대해서만 보상을 받습니다.
저는 이 지적을 읽으면서야 제가 오래 품어왔던 의문을, 그러나 차마 말을 꺼내기는 어려웠던 이야기를 어쩌면 지금 용기 내어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사실 문학계에서 청탁서에 적힌 공식 마감일을 지키지 않는 필자로 유명합니다. 출판사마다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아마 저는 그 리스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그때마다 담당 편집자 선생님께 늘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원고를 첨부했는데요, 사실 아주 깊은 마음속에서는 사실 이런 의문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내가 왜 마감일을 지켜야 하지?’ 왜냐하면 저는 제가 쓴 글에 대한 결과물을 제출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서만 값을 돌려받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그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자비로 구입하고 공부하고 소화하고 간혹 완성한 글을 폐기했다가 처음부터 다시 쓰고 하는 과정은 제 노동의 산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글쓰기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보상도 없고 단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결과물을 200자 원고지 매수를 기준으로 원고료를 지급받으니까요. 만일 제가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해 한달이라는 시간을 들였다면 이 한달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오로지 완성된 글에 대한 보상뿐이지요. 그렇다면 저는 왜 출판사의 일정에 맞춰야 할까요? 늘 속으로만 품고 있던 생각이지만 당당할 수 없었던 유일한 이유는 제가 마감일을 지키지 않으면 엉뚱하게 편집자 선생님들이 고통 받는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제게 원고료를 지급하는 사용자가 아닌, 출판사에 고용되어 저와 협업을 하는 출판노동자가 제가 마감일을 어겨서 고통 받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제가 마감일을 어겨 죄송하다고 말할 때는 오로지 편집자 선생님 개인을 향한 사과였지, 결코 제게 원고료를 입금하는 출판사를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직장인들은 결과물 뿐 아니라 그 결과물을 만드는 시간까지 합산하여 그에 대한 보상을 책정 받습니다. 그러나 예술인들은 그렇지 않죠. 이에 대해 오경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식의 노동과 동떨어진 분야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결과물이 산출되는 과정이 필히 소요되는 시간에 대해서는 논의의 필요성조차 고려되지 않았다. 연습기간과 준비기간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인식 부족은 예술인을 경제적으로 더욱 취약하게 만들어 자립 가능성을 한층 더 저하시킨다.”
그런데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최근 전통적인 형식의 노동 역시 점차 소멸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투버의 경우, 결과물을 업로드한 후에 구독자라는 ‘반응’을 통해 보상을 받습니다. 즉 모든 것이 일종의 후불제로서,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어도 그에 대한 별다른 반응이 없다면 아무런 보상도 없습니다. 이제 예술인에게만 적용되어 왔던 부당함이 다른 컨텐츠 산업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런 변화 속에서 점점 더 ‘예술가’의 역할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이제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해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저는 문학평론가로서 출간되는 문학작품들에 대해 해설을 하거나 이 작품들의 갖는 가치를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작업을 통해 직업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는 출판 산업이라는 구조 속에서 문학평론가가 할 수 있는 작은 업무입니다. 예술계에서 그나마 ‘시장’을 가진 장르에 종사 중이므로 문학비평은 ‘업무’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비평의 역할과 대립될 때도 많습니다. 즉 산업구조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비평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운영하는 잡지에서 실어줄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현재 문학비평이 출판산업 안에서 마케팅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청탁받은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좀 더 편안하게 쓸 수 있기도 하죠. A님은 이 글에서 예술노동에 대한 깊은 이해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았지만 예술지원과 예술노동의 차이점이 혼재되어 있는 듯해서 그 부분이 궁금했다는 피드백을 주셨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술인의 자립’이라는 것이 자본주의 질서 내부에 안정적으로 안착하는 것일까? 예술지원이 그러한 안착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직 / 김선기 / 「새로운 예술인세대의 등장은 가능할까」
김선기 선생님의 이 글은 아마 이 릴레이 연재 프로젝트에서 ‘예술’보다 ‘청년’이라는 말에 더 주목한, 거의 유일한 글인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A님은 ‘조직’이라는 단어를 고르셨습니다. 이 단어가 포함된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각자의 어떠한 희망이 일상적으로 ‘청년’이라는 개념에 투사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권력이 작용하여, 특정한 ‘청년’ 담론은 실제 연령상의 청년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으로 포장해버리고, (주로 전복적인) 다른 ‘청년’ 담론은 일부에게나 해당하는 것으로 배제해버린다. 이 과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청년팔이’를 동반하는데, 여기에 바로 ‘청년예술인세대’를 조직해야 할 필요성이 따라온다.” 김선기는 예술정책 사업에서 상정하는 대상으로서의 청년이 아니라, 스스로를 ‘청년예술인세대’라고 선언하는 주체를 상상하고 호명함으로서 그들의 존재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호출합니다. 이 호출은 처음 성연주 연구자가 제기한 ‘청년예술’이 갖는 문제제기를 지렛대 삼아 일종의 가능성으로 전환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첫 글과 이 글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립니다.
김선기의 글에서 함께 전제된 부르디외의 이론의 적용이 적합한가를 계속 묻게 되는 이유는 사실상 전통적인 예술 장의 신화를 깨는 일이 새로운 청년 주체가 탄생하기도 전, 예를 들면 유투브, 넷플릭스, 트위치 등과 같은 새로운 컨텐츠 산업 플랫폼들이 그 자본력을 앞세워 우선적으로 수행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예술계에서 전통적인 예술 장의 신화가 남아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글의 앞부분에서 문학웹진 《비유》의 경우, 《최초예술지원사업》을 웹진과 연계시키는 일을 통해 등단제도를 교란시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고 썼는데요. 사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문학계가 여전히 권위와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장의 신화가 아직까지는 ‘간신히’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신화가 과연 얼마나 더 버텨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출판계의 스타트업 기업들은 기존 방식의 출판이 비효율적이라고 보고, 온라인으로 그 수요가 이미 검증된 텍스트들만을 발행함으로서 확보된 독자수를 대상으로 재고가 남지 않는 방식으로 출판합니다. 김선기의 글에서 기대하며 호출하고 있는 ‘청년예술인세대’가 발생할 수 있는 토대가 우리 사회에 존재할까요? OECD 국가 중 10~30대 자살율이 1위인 국가에서 스스로 자신을 청년예술인세대라고 선언하며 조직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왜 제게는 조금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 글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는 ‘청년’이라는 용어가 예술보다 훨씬 더 깊이 사유되어야 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예술가가 결정할 수 있지만 ‘청년’이 처해있는 환경은 스스로 결정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중단되지 않는 삶
그런데 ‘청년예술’이라는 용어를 문제 삼은 성연주 연구자로부터 시작하여, 《청년예술단》이 폐지된 이후 설계자로서 사업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정진세 기획자의 글을 읽고, 청년을 생물학적 나이로 규정하는 정책의 기준이 예술가 당사자에게 어떻게 경험되는가를 생생히 담은 신지연의 글을 거쳐, 예술노동 의제에서 제외되어 있는 ‘과정의 값’과 불평등의 문제를 지적하는 오경미의 글을 통과한 후, 설계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호명된 ‘청년’이 아니라 “우리는 청년예술인세대다”라고 자발적으로 선언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하는 김선기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따라 읽어내면서 처음에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궁금해 했던 나의 의문이 풀렸는가 하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술정책 담론을 만든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뜻할까요? 그 담론의 형성은 예술정책 설계 단계에서 변화의 시작점이 되어줄까요? 정책비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대답보다 질문이 더 길어지는 프로젝트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12월을 끝으로 글의 서두에서 소개했던 문학웹진《비유》의 기획자에서 물러납니다. 새로운 잡지가 생긴다고 소개하는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동안 그토록 냉랭했던 《최초예술지원사업》의 선정자 분들의 눈빛에 잡지를 만들어나가는 행보로서 대답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을 때 저는 제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들이 타 장르 예술가들과 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고 싶은 공간, 실패하거나 지지부진하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즐겁게 다시 시도해보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마음산책, 2013)을 펼치면 목차나 본문도 시작되기 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너는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 문장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예술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 하더라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세상에 널리 퍼지도록,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잡지를 만드는 동안 나는 충분히 노력했는가를 스스로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힘듭니다. 2020년 12월, 지금 예술가들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소리 지르면 들어주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아니, 예술가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시민 향유자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우리는 하루 평균 38명이 자살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³⁾ 그리고 코로나 이후 2020년 상반기에만 1924명의 여성이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⁴⁾ 죽음을 세어도 되는 것일까요? 평균 38명, 1924명으로 단순히 수치화되어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있었을까요? 저는 이 압도적인 죽음의 숫자들 앞에서 지금 제가 비평가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프로젝트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이미 세어버린 죽음, 하루 평균 38명, 2020년 상반기 1924명의 여성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은 후, ‘예술정책이란 무엇인가’ 질문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술을 합니다.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예술계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그 역할을 좀 더 잘 수행하기 위해 예술정책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이렇게 가장 최초의 질문들로 되돌아갑니다. 이 글을 읽은 당신과 같이 고민하고 싶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으며 우리에게 남는 것이 이러한 질문들이길 원합니다.
1)문학웹진 《비유》 2018년 1호 창간호 권두언 중 일부, http://www.sfac.or.kr/literature/#/html/conts_view.asp?cover_type=VWCON00002&cover_idx=39
2) 「독립문학, 그리고 작가라는 정체성」, 유료 문학웹진 《던전》, https://www.d5nz5n.com/work/46/episode/204 (최종검색: 2020년 12월 6일)
3) 서지민 기자, 〈부끄러운 ‘자살률 OECD 1위’…하루 평균 38명 목숨 끊어〉, 시사저널 1625호, 2020년 9월 22일 자
4) 김기범 기자,〈‘코로나19는 공평하지 않다’ 2020년 상반기 여성 자살 사망자 1924명〉, 경향신문, 2020년 10월 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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