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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읽는다

[읽는다] 연구스위치|(3차) 예술지원사업 : 번외_왜 지금도 블랙리스트를 말해야 하는가? ✍짱소(불나방 기획)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6. 23.

번외_왜 지금도 블랙리스트를 말해야 하는가?

짱소_계원예대 내 블랙리스트를 고민하는 모임 '허위'

 

본 필자는 “나는 왜 아직도 여전히 블랙리스트를 말하는가?”라는 자기 당위성 있는 질문을 던지며, 지난 블랙리스트(이하 블랙)의 작동 구조의 수단이었던 ‘문화예술 지원정책’ 변화 및 사업을 나열하며 글을 시작했다. 촛불, 미투, 블랙을 경유하며 변화하는, 변화해야만 하는 현재 기대했지만 반복되는 검열과 차별, 혐오 증후들이 곳곳에 존재, 생산, 증식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변화되는 바람 속에 예술의 가치, 사회성 그리고 지금 지원정책을 다시 살펴보고 동료들과 몰랐던 블랙을 알고, 알지만 자세히 몰랐던 검열을 다시 보았다. 당사자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각자 문헌, 사건, 구술, 경험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함께 그리고 따로 또 같이 이야기 나눈 것들 정리하여 <연구 스위치>를 통해 공유한다.
 
우리는 다시금 블랙을 말하고 또 다시 반복적인 질문을 던져본다우리는 “왜 아직도 여전히 블랙리스트틀 말하는가?”
 
불나방(남하나)
 
* <연구 스위치>에서 정리한 세 가지의 주제 ‘경계하기, 예술과 사회, 지원 정책’을 중심으로 주제별 연구 글을 공유할 예정이며, 2022년 1월에는 번외편을 통해 예술대학생의 위치에서 바라본 블랙리스트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블랙리스트의 작동 구조에 따른 자기검열 구조 파악>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1. 2019년 블랙리스트 총장 취임과 2021년 총장 사퇴

2019년 8월, 학교법인 계원학원은 계원예술대학교 제9대 총장으로 송수근 후보를 최종 선임하였다. 나는 2019년 계원예술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제껏 예술대학생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검열의 잣대가 예술인에게 어떻게 가해지는지 목도하였다. 그리고 2021년 총학생회장직을 맡으며 지금까지도 총장 사퇴와 차기 총장 선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검열과 억압에 대항하고 있다.

송수근 전 총장은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 제1차관, 건전 콘텐츠 TF의 팀장으로 블랙리스트 작성 실무를 총괄했던 인물이다. 총장 선출은 법인 이사회의 독단적인 결정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송수근 총장을 파면시키고 그간의 일방적이고 파행적인 총장 선출 과정에 대한 사과와 민주적인 개선안을 제출하라는 학생들의 요구는 단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국가 범죄다. 계원예술대학교는 예술 디자인 교육 특성화 대학으로서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 기술에 기반하는 교육을 통해 창조적 문화산업을 이끄는 리더 양성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예술에 대한 고등 전문교육을 실시하는 예술 학교에서 국가범죄자가 총장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에 상당한 의문이 든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무력감과 패배감뿐이다.

대학 규정에 따르면 대학의 발전 방향 모색과 비전 실현을 책임지며 교무를 통할하고 대학을 대표하는 자가 총장이다. 대학의 존폐 여부를 결정하는 중대한 결정에 대한 권한과 그에 준하는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기에, 총장의 정책에 따라 수업 운영 방향이 달라지며 학생의 학습권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송수근 전 총장은 총학생회 면담 자리에서 취임 당시 자신이 준비했던 정책 자료집과 공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실토한 바 있으며 재임 기간 동안 눈에 띄게 이루어낸 성과 또한 없었다.

총장이 임명된 지 2년이 지난 2021년, 계원예술대학교의 3주기 대학평가 미선정 이후 송수근 전 총장은 사표를 냈고, 10월 1일 법인 이사회에서 총장 면직이 최종 결정되었다. 그렇다면 ‘블랙리스트 총장’이 사퇴하였으니 지금까지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는가? 안타깝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2021년 12월, 계원예술대학교의 3년을 책임질 제10대 총장 선출이 예정되어 있다. 총학생회는 이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총장 선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학내 구성원 의견을 적극 수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인 관계자는 총장후보자 추천위원회에서 ‘총장 선출은 법인 이사회가 할 일’이라며 여전히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제외하고 있다.

 

2. 검열을 정당화하는 절차의 허점과 태도

정부는 문화예술계 핵심 정책으로 블랙리스트 청산을 약속했지만 블랙리스트 실행자는 버젓이 예술 대학의 총장이 되었다. 사립학교법에 따라 교육부는 교원이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징계 처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묵과하였다. 또한 대학 내부에는 송수근 전 총장과 같은 사례가 다시 한번 반복될 가능성을 남겨두는 절차의 허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현행 규정 상 총장 후보자의 추천과 총장의 선임은 총장 후보자 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와 이사회의 결정에 그 권한이 있다. 법인, 교수, 직원, 학생, 동문, 외부 교육전문가로 구성된 총추위는 총장 후보자를 선정하고 총추위가 추천한 3인에 대하여 이사회 의결을 거쳐 1인이 최종 선임된다.

송수근 전 총장이 도망치듯 사퇴한 뒤 새로운 총장 선출을 위해 총추위가 구성되었다. 11월 24일 총장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처음 공유된 총추위 회의 당일, 후보가 3명이니 곧바로 3배수 추천 의결을 진행하자는 법인 위원 의견에 다수의 위원이 추가 검증 시간 확보를 위해 소견발표 진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인 위원은 ‘현실적 여건이 어렵다’, ‘총장 후보자의 부담감을 가중시킨다’, ‘학생 앞에서 소견 발표를 진행하는 타 학교 사례가 없다’라는 비논리적인 이유를 대며 소견 발표를 거절했다. 그 이후로도 위원 과반이 소견 발표 진행을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은 가결 선포를 거부하였고 법인 위원은 회의장을 무단으로 이탈하기까지 했다.

모든 구성원의 동등한 자격과 충분한 참여가 결여된 구조 안에서 학교 법인 이사회는 전체의 결정을 독점한다. 송수근 총장 취임 역시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비민주적 구조를 통해 자행될 수 있었다. 법인은 총추위에서 ‘총장 선출은 법인 이사회가 할 일’이라며 총장 후보자에 대해 심사하고 검증하는 총추위의 역할을 부인하고 정관을 위배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구성원의 의견이 배제된 상태에서 법인의 입맛대로 선출된 자를 과연 대학의 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법인 관계자는 이번 총추위 회의에서 ‘우선 이사회에 후보를 추천하고 추후에 후보자의 결격 사유가 드러난다면 그때 다시 재논의하면 되는 것'이라며 본인의 권한과 책임의 무게에 대해 아무런 인지도 없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총장 선출의 문제를 짚는 학생 발언에 ‘학생이 착각을 하고 있다. 전 총장 선임은 이사회에서 표결로 결정된 사안이다'라며 절차상 문제가 없음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이는 다양한 구성원 의견 수렴을 무시한 채 검열과 독선을 자행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법인 위원은 ‘본인은 그 당시 이사가 아니라 알지 못한다. 그 일과 무관하다'라는 언급으로 후보 추천의 속행을 주장했으나 중대한 책무를 맡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황과 문제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은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이는 시키는 대로 보고만 했을 뿐이라는 송수근 전 총장, 그리고 블랙리스트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문체부 공무원의 책임 방기와 닮아있다.

 

3. 무엇이 자기검열의 작동을 부추기는가?

총학생회와 대학 본부 그리고 학교 법인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대학 내부의 검열이 작동하는 방식을 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2019년 재학생 중심으로 결성된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서 올해 9월, 블랙리스트 총장과 블랙리스트 총장을 임명한 파라다이스 그룹 계열 학교 법인 계원학원에 대한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다. 전시 홍보를 위한 인쇄물을 총학생회실에 두었는데 학교 관계자가 그것을 발견하고 나에게 연락을 한 적이 있다. ‘이미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총장으로 선임된 것인데 그를 비판하는 홍보물을 학교에 부착하는 것은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며 홍보물 게시를 신중하게 고려하라는 일종의 회유였다.

홍보물을 부착한 다음날 대학 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자마자 날카로운 음성이 튀어나왔다.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내가 어제부터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는 건 또 뭐야. 너는 붙일 테니까 나보고 알아서 떼라는 거야 뭐야?’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단체의 홍보물 게시를 언제까지 가만히 두어야 하느냐며 철회를 종용하고 압박하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발화하고자 하는 예술 창작 표현에 대한 명백한 검열이었다. 그러나 더욱 위험한 것은 그 순간 ‘홍보물을 모두 떼는 편이 낫지 않을까'하는 자기검열이 나의 내면에서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반복되는 검열은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든다. 총학생회는 법인의 비민주적 회의 운영을 규탄하고 학내 구성원 의견을 수렴한 총장 선출 요구를 골자로 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진행 전부터 신입생 입학 시험 기간에 학교 대외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으니 자중해달라는 법인 관계자와 대학 관계자의 우려를 빙자한 검열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법인 사무국 앞에 걸어두었던 비민주적 총장 선출을 규탄하는 현수막은 몇 번이고 줄이 끊어져 있었다. 사람에 의한 고의인지 거센 바람에 흔들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끊어진 현수막은 나의 무력함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매번 간신히 나무에 매달려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나니 학생회장이라는 대표성을 가지고 참석하는 자리에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졌다. 총장 선출 과정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 자리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공모자 송수근이라는 언급은 삭제해달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왜? 맞잖아’라는 말을 듣고 순간 나도 모르게 자기검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무의식에 학습된 검열은 이상하게 불안한 기분으로 자기검열의 작동을 부추겼다.

 

4. 왜 지금도 블랙리스트를 말해야 하는가?

블랙리스트 총장이 사퇴한다고 예술인으로서 예술대학생이 겪는 검열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는 더욱 촘촘하고 세밀하게 기능하며 태도에 스며든다. 그것은 교수와 학생 사이의 위계로 존재하고, 총장 선출의 비민주성에 존재한다. 자기검열로 이어져 무의식중에 스스로를 검열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묶어둔다. 평가자 중심의 예술 교육에서, 사회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페미니즘, 권위주의 말고 다른 주제로 작업을 해보라는 말을 들으며 점점 교수님의 취향에 맞도록 작업 주제를 결정하게 된다. 학교는 예술가 제1권리인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결국 이를 학습한 학생 간에도 검열과 자기검열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총장 선임을 단순히 어느 예술대학교 내부에서 발생하고 마무리된 폐해 사례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구성원이 처한 각기 다른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대표성을 독점하여 이루어지는 논의에서 얼마나 많은 검열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하는 검열의 작동 방식은 서로 유사하다. 그렇기에 예술대학생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사회 참여의 구성원으로서 표현의 자유 보장과 민주적 대학 구조에 대한 기반을 요구할 때 더욱 활발한 논의와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총학생회는 지금도 민주적 정당성에 대해 고민하고 학내 구성원이 총장 선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총장 직선제와 거버넌스 마련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기본권 보장에 대한 요구이며 끊임없이 검열을 경계하고자 하는 태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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