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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타격감에세이 Chapter3. 격하기: 예술이 나의 삶이 될 때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3. 11.

격하기: 예술이 나의 삶이 될 때

*() : 치다, 부딪히다, 마주보다, 보다, 두드리다, 지탱하다. - 열정

글쓴이: 곽혜은

 

내가 가진 취미 중에 가장 자주 했던 취미생활은 전시장이나 박물관에 가는 것이었다. 특히 전시장에 가면 그곳을 채우고 있는 작가의 생각과 그가 가진 특유의 표현을 읽어내는 것이 재밌었다. 그러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작업을 보게 되면 나도 이렇게 내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마음이 흔들렸고, (내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관객도 내 작업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생각 혹은 바람은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그려왔던 그림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 다니고 있을 무렵, 그날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전시였는데, 서울시립미술관 1층부터 3층까지 공간 전체를 사용하는 대형 전시였다. 나는 그곳에서 전시된 모든 작품에서 귀감 혹은 영감을 얻었을 정도로 푹 빠져서 전시를 관람했기에 모두 보는데 꼬박 2~3일은 걸렸다. 앞 편 [격하기: 나를 마주보고 두드리기]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또한 이곳에서 경험했던 것이다.

 

1층에서 전시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시된 모든 작품들을 관람하고 나서 특히 좋았던 작업을 한 번 더 보고 있었다. 몰입하며 작품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누군가 내 등 뒤로 지나갔고 그에게서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났다. 어떤 느낌인지, 감각이 발동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있었던 기척도 사라진 상태에서 나에게 남은 것은 미묘하게 남아있던 그 향기뿐이었다. 그 순간 내가 알고 있었던 공간의 개념이 달라졌다. 전체적으로 하얀 벽, 넓은 공간들이 다르게 인식되었다. 벽에서는 페인트 냄새가 나는 듯했고, 밖으로 나가니 불어오는 바람들 사이에서 오묘한 이파리 냄새가 났다. 새로운 제3의 눈을 뜬 듯 일시적으로 신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추억할 때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인간의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데 나의 첫 번째 기회가 여기에 쓰인 것 같다고. 그런 확신이 있다. 그땐 당시 내가 느꼈던 어떤 감정 혹은 감각 혹은 인지, 인식 등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을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하였고 일주일 뒤 회사에 사표를 냈다.

 

메시지를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후, 선택한 나의 무기는 후각이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조향학원에 다녔다. 나는 그곳에서 향의 기본을 배웠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내게 필요한/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고 있다. 또한, 전시, 퍼포먼스,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표현해왔다. 기존 미술에서는 없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새롭지만, 그 자체로 즐거운 행위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것은 나의 매체와 속성을 연구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작업을 거쳐 가면서 나는 한국의 후각예술가로서의 입지를 굳혀가는 중이다.

 

나의 작업 모토는 ‘닿아 흔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작업을 감각하는 이가 이로 인해 자신만의 어떤 것이 흔들리기를 바란다. 어떤것에는 정말 어떤 것이든 좋다. 내가 그렇게 인생의 기회를 찾았듯, 견고하기만 인생이 흔들려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을 만끽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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