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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활동내용

미니살롱 4회차 운영기록 : 각자의 애도 방식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3. 2. 15.

미니살롱 4회차 운영기록 : 각자의 애도 방식

 

ANN

 

미니살롱 4회차는 월드컵으로 온 국민이 열정적인 감정의 통일을 이루던 때이자, 이태원에서 벌어졌던 사고로 모두가 여전히 통감(痛感) 중인 제법 혼란스러운 때에 열렸습니다. 마치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사이, 롱 패딩과 반팔 티가 공존하는 계절처럼 사람 마음의 형태도 갖가지로 모양 짓던 바로 그 시기, 마음은 답답한데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모르는 이들은 청년예술청 SAPY로 모여들었습니다.

미니살롱의 주제는 기획자들의 협의를 통해 선정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들의 고민과 질문을 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네 번째로 열리는 미니살롱의 주제는 가장 동시대적이고 자칫 민감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말하고 싶은, ‘애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미니살롱의 시그니처, 타로카드를 이용해 자기소개를 마친 참여자들은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이번 미니살롱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로 운영되었습니다. 마땅히 슬퍼할 일에 슬퍼했던 과거를 이야기하고, 지금의 생각을 꺼내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우리, ‘애도’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누군가와 이별한 적이 있나요?

“살고 있는 집 옥상에 올라가면 제가 애칭을 붙여 부르던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였어요. 사계절 내내 볼 수 있었죠. 어느 날 하늘이 너무 잘 보여서 이상했는데, 나무가 사라진 거예요. 하루아침에 잘렸더라구요.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순식간에 그 큰 나무를, 어쩌면 여기서 제일 오래 살았을 나무를,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유를 알고 싶어 구청에 전화했더니 전선 방해로 나무를 잘랐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하지만 납득되지 않았죠. 미리 알았다면 내 마음은 좀 나았을까? 사고 같은 순간들에 마음은 또 다르겠다 싶었어요.”

“극장에서 영화를 봤어요. 채드윅 보즈먼(Chadwick Boseman)이 주인공으로 나오던 영화의 시리즈였는데 그는 지금 세상에 없잖아요. 영화에서는 캐릭터로도, 배우로도 애도를 담아냈습니다. 미디어와 콘텐츠에서 그런 식으로 애도하는 방식을 흥미롭게 봤어요. 애도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독특한 표현이지만, 흥미롭게 느낀 애도의 방식이었습니다.”

“가끔 어떤 애도 행위를 보면 죽은 이를 위한 게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 같아서 회의감이 들어요. 결국 다 산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들은 진심으로 슬퍼하는 게 맞을까? 기사 밑에 달리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문구는 진심인지 의심되기도 해요.”

“지인의 가족 장례식 문자를 받았는데, 답장을 못했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문구를 섣불리 말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는 2014년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너무 슬프게도 방송사 뉴스팀에 있었어요. 사고가 난 후 한 달간은 집에 가지 못했는데요. 올라온 기사를 정리하고 기사를 쓰고, 사무실에서는 뉴스가 하루 종일 서라운드로 들리고. 일하며 꽤 오래 버티다가 힘들어서 그만두고 그 후 거의 1년 동안 일을 못했어요. 세월호 사건은 대처를 잘 못했잖아요. 애도가 잘못됐구나, 이게 단단히 잘못되어 애도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스탭을 밟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다시 몇 년을 끌다가, 사이트에서 세월호 매듭 묶기 활동 같은 걸 하길래 저도 가서 매듭을 짓고 하니까 벗어날 수 있었어요.”

“각자의 애도 방식이라는 게 있는데, 애도의 방식을 정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세월호 당시가 생각이 많이 나요. 집단행동을 통한 애도 방식은 정치적으로 느껴지고 오히려 애도처럼 느껴지지 않아 불쾌하기도 했죠. 왜 특정한 애도 방식을 강요받아야하지? 어떻게 하면 각자의 애도 방식을 존중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슬픈 일에 슬퍼하는 것, 그것이 애도(哀悼)입니다. 참여자들은 저마다 이별에 관한 사연을 말해주었고 모두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나의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지 선택하지 못한 채 외부에 의해 결정되었던 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외부적인 이유로 나의 할 일이 영향을 받았던 적 있었나요?

“저는 노래하는 사람이라 공연을 하는데 이태원 참사 때 관련 공연이 많이 취소되었어요. 크게 상관은 없었어요. 이태원 일대 상인들도 장사를 한동안 중지하기도 했었잖아요. 애도해야할 때, 어느 범주까지 하던 일을 멈추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애도를 표현하기로 정한 것 같기는 한데 애도 자체를 언급하고 말하는 건 꺼리는 것 같아요. 강압하진 않았는데 내 작업을 하긴 어려운? 같은 것들 말이에요.”

“참사가 발생하던 날, 시간을 변경해서 저녁이 아닌 낮에 이태원에서 일정을 소화했어요. 그렇게 참사가 발생했고, 확 느껴졌어요. 지금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몰두를 잘 못하겠는 거예요. 혼자 고민하는 시간들이 얼마동안 이어졌던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이 작업을 해도 되나? 이 순간에 난 뭘 해야 하지? 뭘 말해야하지? 하는 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외부적으로 못하게 된 건 아니지만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아이가 처음 태어나면 말을 못하잖아요. 아이가 말을 잘 하려면 엄마가 잘 받아줘야 하거든요. 근데 우리나라는 표현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먼저 받아줘야 던질 수 있는데, 던져도 받아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내 목소리로 아무리 외쳐도 받아주는 사람이 있냐는 거예요.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바탕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검열하게 만드는 게 제일 나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도 규칙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았는데 스스로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이런 거를 해도 되나? 감정 표현이나 가치 판단은 자유롭게 되어야하는데 계속 턱밑에 걸리는 느낌이 있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나? 하는 그런 느낌? 차라리 구체적으로 있는 강압은 아예 물리칠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들은 스멀스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이 있어났을 때, 개인의 의견을 SNS 등에 표현해야할 것만 같은 압박을 느낀 적이 있나요?

“참사 다음날에도 연습이 있었는데 가서 되게 아무렇지 않게 다 같이 연습을 했어요. 연습이 끝나고 한잔하는 자리에서 오만가지 이야기를 쏟아냈거든요.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어서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랬던 게 처음이었던 거 같거든요. 우리가 애도를 받아주는 것, 애도하는 걸 잘 모르는구나, 싶었어요. 외국에서는 장례식이나 추모식할 때 사람들이 프레젠테이션 같은 걸 하잖아요. 영상도 틀고 노래도 하고, 한 마디 하면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그 방식이 부러웠어요. 그리고 동시에 참 좋다고 느낀 건 결혼식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은 너무 다르잖아요. 애도의 방식에 대해서도 산 사람이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얘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추모를 할 수 있게 열려있어야 건강한 사회인 것 같아요. 특히 국가적 참사 등에 대해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존재들이 국가적으로 압박이 가해졌을 때 이런 내적 갈등이 생기잖아요.”

“저는 사실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정치적 견해를 말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어야한다고 한국사회가 강요하는 것 같아요. 개인은 색깔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생각이 있고 평소처럼 밥을 먹거나 부정하는 방식도 있거든요. 행동양식을 일방적으로 정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아서 애도나 추모도 비슷한 맥락 같아요.”

“어렸을 적 할머니가 직조를 하셔서 직조하신 새하얀 한복을 보여주셨어요. 그리고는 ‘원래 이거는 속치마야. 이걸 입고 가고 싶다.’ 라고 하셨어요. 너무 아름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는 거예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말도 안 돼. 꼭 오래 사셔야 해.’ 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너무 예쁘실 것 같았어요. 누군가의 죽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아름답고 죽음이 꼭 가슴 아프거나 그렇지만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참사가 났을 때도 마음이 너무 아팠던 게 바닥에 누워있었다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그렇게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지 않았으면, 그러면 좀 괜찮았을까? 그들의 죽음이?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편으로는 나는 그럼 죽음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가? 예기치 못한 재난, 전쟁, 그런 것들은 어떻게 표현해야하지? 내 작업으로 표현해야하나? 그건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이걸 다 쏟아내고 싶은데 그래야하나? 이런 여러 가지 고민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가족을 잃으면 상실감이 크잖아요. 근데 그런 얘기가 상실감을 채워주는 것 같았어요. 저는 부탁받은 게 있어서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하루 펑펑 운 적이 있거든요. 온 복도에 계단까지 있는 사진이 있는데, 수많은 것들이 밀려오면서 그냥 터져 나오더라고요. 돌아가신 분들이나 가족들이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죠. 웰빙만큼 웰다잉도 있잖아요. 내가 온전히 살다가 죽을 수 있는 게 소박한 바람이고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되게 어려운 거였구나, 싶었어요. 2014년 이후로 나도 우리 모두가 치유되지 못했구나. 계속 겨우 버티고 견디면서 살고 있었는데 또 이런 게 터지니까 다시 무너지는 구나. 한 명 한 명 약한 존재들인데 어떻게 극복하고 손 내밀면 좋을까, 계속 고민하면서 글을 마무리 못 짓고 왔거든요. 오늘 나눠주신 얘기들이 힌트가 될 것 같아요.”

 

 

예술가로서 어떻게 애도를 표현하면 좋을까요?

“요즘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그런 주제로 작품 활동 많이 하잖아요. (그러한 관점에서) 추모 현장도 그렇고 예술 활동 과정도 그렇고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쓰레기들이 있잖아요. 추모리본 같은 것들이나 장소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것들이요. 이런 것들을 통해서 그런 행위들이 진정한 애도행위라고 할 수 있는지, 또는 자연을 위한 작품을 만들면서 생기는 쓰레기 같은 것들을 보면서 이런 것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정치적 성향을 바탕으로 공연을 만든다면 예술가 개인의 목소리를 강하게 낼 수도 있잖아요. 나라는 사람의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어떤 방식을 선택할지 생각했을 때, 아직은 자유로운 것 같아요. 위험성이 수반되어 있는, 말씀하신 것처럼 기후위기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양산하는 작품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거든요. 작품이 좋더라도 환경면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아티스트를 보면 비판적으로 봅니다.”

“마음껏 하는 예술의 표현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해요. 하지만 모두가 노력하면 예술가로서 기후위기 메시지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계속 고민하는 부분인데, 나는 어떻게 건강하게 예술을 해야 하는 걸까? 혼자 고민하면 답답하고 외로운데 여럿이서 함께 고민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벌써 미니살롱을 마칠 시간이 되었어요. 오늘 어떠셨나요?

“아까 할머니 얘기가 인상적이어서요. 수의를 미리 마련하면 장수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상실을 미리 준비하는 것, 그것도 너무 아름다운 애도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수의를 사지만 수의를 짜는 행위를 통해 서서히 상실을 준비하는 게 그 자체로 너무 예술적이라고 느껴지네요. 애도의 행위가 예술적으로 표현되는 문화를 보니, 과거 우리나라 문화에서 (좋은) 애도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동시에 그게 연극, 미술, 무엇이 될 수도 있는데 갑자기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국가 애도기간이 정해졌고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굉장히 불쾌했어요. 시간이 없어 얘기를 많이 못해서 아쉽습니다.”

“죽음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오래된, 사랑하는 사람들 여러 명이 죽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어떤 살아있는 생물의 죽음만 생각했는데 은행나무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그 얘기를 듣고 정말 와 닿았어요. 너무 좋은 생각 공유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준비된 죽음은 우리가 준비를 하고 맞이할 수 있지만 예기치 못한 죽음이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의 얘기 들으면서 창문에 부딪힌 새를 묻어주지 못한 게 생각났는데요. 다음에 또 이런 죽음을 마주치면 어떻게 할까?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얘기를 같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금 월드컵 시즌이고 기쁨의 축제 시즌이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태원은 잊혔을 거예요. 그래도 여기 와서 얘기하는 사람들은 잊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오셔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냥 ‘나만 이러고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이런 연결감을 느끼고 싶어서 왔고,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문화다양성의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문화성숙도가 못 따라오는 거 같아요. 애도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정치로 인해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들의 세계는 온전히 다르더라구요. 큰 애도를 겪어 나가계시겠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애도를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애도와 추모에 환경문제가 매칭될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연극 연습 후 술자리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말로는 너무 부족해서 뭐가 적절할 지 얘기를 많이 했는데, 결론은 잊어버리지 않겠다, 였던 것 같아요.”

 

미니살롱 프로그램은 서울청년예술인회의의 진입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오고갈 수 있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2022년의 마지막 미니살롱은 애도와 추모라는 화두로 시작하여 참여자들 각자의 다양한 가치관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미니살롱에서 오고 갔던 대화들에서 보이듯이,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이 존중받는 사회 속에서 자연스러움을 느끼며 그렇지 않았을 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물음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묻고 싶은 것들이 얼마만큼 많은 사회에서 살고 있을까, 되짚어봅니다.

많은 것들이 사라져간 2022년을 뒤로 하고 2023년이 오고 있습니다. 서울청년예술인회의-미니살롱은 또 어떤 흥미로운 질문들을 꿈꾸고 물어볼까요? 앞으로도 많은 기대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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