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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활동내용

미니살롱 1회 운영기록 : <헤어질 결심>에 심술난 사람들의 모임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10. 14.

미니살롱 1회 운영기록

<헤어질 결심>에 심술난 사람들의 모임

 

✍최서윤

 

이런 날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상청은 그날의 강수량을 120mm로 기록한다.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는 뜻이다. 9월 5일, 태풍 힌남노가 북상해 서울에 영향을 끼친 날이자 공식적인 미니살롱 1회차가 열린 날이다.

그날의 기억은 침대에서 거센 빗소리를 들으며 외출의 두려움을 키운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모임 진행자가 아니었다면 참석을 재고했을 정도로 밖은 어둑했고, 예사 빗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걱정됐다. 오는 사람이 있을까…? 이틀 만에 정원이 차서 급히 신청을 마감할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지만, 신청자들이 신청할 때는 날씨가 이럴 줄 몰랐을 것이었다.

축축해진 신발과 어깨로 청년예술청에 도달했다. 물기어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사람들을 기다리던 중 놀랍게도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은 총 여덟.

“아니 이 날씨에 어떻게….”

나는 얼떨떨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한 분이 ‘심술’이 언급된 미니살롱 홍보문에 강한 흥미를 느껴서 왔다고 참여 동기를 밝혔다. 홍보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반대할 결심(부제: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나는 별로였던 것들.)

어느 날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기 구성원 S는 심술이 났어요. S의 주변에는 온통 영화 <헤어질 결심>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S는 생각했어요. ‘나는 별로였는데…?’ S는 작품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개운하게 표출하지 못해 심술이 생겼다고 파악했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은 S뿐만이 아닐 것 같았어요. S는 주류와 다른 취향을 가져 심술 난 적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어요. 자신의 취향을 탐색하고, 명징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해석과 취향을 듣고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어요!”

홍보문 속 S가 나다. 미니살롱 1회차 주제를 정하는 회의에서 강하게 의견 낸 책임을 지고 홍보문을 작성하고 진행까지 맡게 됐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그렇다고 다짜고짜 주제부터 얘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소개의 시간. 서울청년예술인회의를 소개하고, 참석자들 각자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참가자들이 이야기 꺼내는 것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미니살롱 준비팀은 타로카드를 마련했다. 무언가 손에 잡히는 물질, 뇌를 자극하는 이미지가 이야기 꺼내기 편하게 도울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형식은 이러하다. 뒤집혀있어 내용을 알 수 없는 카드를 한 장 뽑은 뒤 그 카드의 그림과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결 짓는 것.

판단은 옳았다. 타로카드로 자신의 상태를 말하는 시간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 덕분에 자신의 솔직한 취향과 의견을 긴장하지 않고 밝힐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느꼈다(직접 경험하고 싶은 분들은 다음 회차 미니살롱에 참가해보자).

드디어 본격적으로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나는 별로였던 것’에 대해 얘기 나눌 차례가 됐다. 모임 홍보문이 대놓고 겨냥한 작품이 <헤어질 결심>이니 만큼, 먼저 이 영화에 대한 내 감상을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시작해 말문을 열었다. 그때 얘기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헤어질 결심>은 7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로, 대다수의 평론가들로부터 만점, 혹은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도 있었다. 그렇게 극찬 일색이라는 점이 나를 심술 나게 했다.

장점이 많은 영화라는 데에는 나도 동의한다. <헤어질 결심>에서 인상적인 이미지와 자주 만났다. 미술, 의상, 촬영 모두 훌륭했다. 특히 무기물이나 다른 생명체 관점에서 인간을 보는 시점은 신선했다. 간혹 던져지는 유머도 취향을 저격했고, 아름다운 대사는 두고두고 곱씹는 맛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가 별로였던 이유는 주인공들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장르적으로 구별한다면 <헤어질 결심>은 멜로영화다. 사랑과 그에 파생된 감정을 보는 이도 함께 느끼게끔 하는 것이 성공한 멜로 아닌가? 하지만 나는 <헤어질 결심>의 두 주인공을 보며 함께 설레어 할 수도, 함께 절절할 수도 없었다. “염병하네”라는 속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 잦았기 때문이다.

인물의 매력에 푹 빠지지 못한 탓이 크다고 본다. 형사 '해준'(박해일)이 여러 ‘멋진’ 설정을 가지고 있음은 머리로 이해한다. 최연소 경감, 점잖음, 용의자에게도 예의 있음, 요리 잘 함, 잘 뛰고 싸움 잘함, 정갈한 옷차림…많은 주머니를 곁들인 등등. 그런데 나는 그가 멋있다고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 ‘미모의 용의자’를 만난 순간 뚫어져라 시선을 두는 해준을 보며 ‘뭐야, 그냥 흔한 얼빠 중년남이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서래에게 웃는 모습이 가증스러워 보였고, 서래를 생각하며 까마귀 깃털을 쓰다듬는 모습, 집에 오라니 내심 기대하며 반지를 빼는 모습, 중국어회화를 설레발치며 공부했다는 사실이 징그러웠다.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왜곡하여 상대를 보다 “우는구나… 마침내”라고 읊조리는 것도 웃겼다.

어쩌면 박해일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호소하는 연기를 할 때 어조 끝이 살짝 올라가고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이 칭얼거리는 것 같고 듣기 싫었다. 특히 ‘붕괴’된 뒤 서래에게 호소하는 말투에서 특히 못나 보였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냥 진행자님이 박해일 안티인 거 아니에요?”라는 반응이 돌아왔지만 안티는 아니다. 정말이다.

영화의 다른 주인공은 ‘서래’이다. 서래는 해준에 비하면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적어도 1부까지는. (이제부터 스포일러 파티)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위험을 감수하고 몸 상해가며 어렵게 남편을 제거했으면서, 1년도 안 돼서 또 다른 개차반과 결혼하다니? 직업 자부심 높고 강단 있어 혼자서도 꼿꼿하게 잘 먹고 잘 살 것 같은 서래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게 놀랍고 좀 시시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드러난 서래의 광기와 집착은 시시하지는 않았지만, 공감이 안 됐다. 상대가 나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저주를 내리는 듯한 이별은 ‘뭘 또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사실 그냥 몇 번 데이트 한 사이 일뿐이잖아? 녹음 파일(그것도 짧은 거, 달랑 하나) 듣고 위로 받으며 몇 개월 동안 홀로 키운 마음이 그렇게 커졌나?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인지 몰라도 알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나이가 좀 더 먹으면 중년의 미친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헤어질 결심>에 ‘반대할 결심’을 단단히 하고 온 참가자들이 많은지 이런 생각에 공감을 표한 참여자가 많았다. 음악가 H씨는 “기대가 너무 컸는데 나한테는 안 와닿았다. 예를 들어 나는 <헤어질 결심>과 함께 얘기 되는 <밀회>는 좋게 본 사람이지만 이 영화는 와 닿지 않았다. 이들의 사랑이 공감되지 않았고 특히 서래가 왜 그런 사람과 결혼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서점직원 S씨는 다른 각도에서 영화에 대한 불호를 표현했다.“'불륜미화' 영화라고 생각되어 불편했고, 영화에 상징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피곤했다”며 불호를 밝혔다.

이에 대해서는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불륜이라는 소재 자체는 창작자로서 다룰만한 주제라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떤 태도로 다루는지, 뭘 전달하고 싶은 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모든 금기를 마냥 긍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금기에 매혹되는 과정과 그로 인한 인물의 내적갈등, 고난 등을 전달하고, 금기를 깬 이들이 부서지는 것 또한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줬다. 나는 그런 그의 작품 중 <박쥐>가 특히 좋았다. <헤어질 결심>에서의 불륜도 우리 사회의 금기이고, 그래서 박찬욱 감독이 흥미를 느끼고 그린 것 같지만 작품 무대가 현대이고 사실적으로 구현하려는 톤 때문인지 밋밋하게 다가왔고 그래서 나는 오히려 별로였다. 더 장르적이고 판타지적이라 그랬는지 <박쥐>의 금기가 더 강렬하고 몰입감을 줬고, 나는 좀 더 강력한 자극을 좋아하는 취향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 말을 들은 서점직원 S씨는 “얘기를 들으며 금기를 건드는 걸 불편해하는 내 취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고, 인간이 금기와 맞닥뜨림으로서 나오는 감상과 생각이 있을 것이기에 자꾸 금기를 소재로 창작물이 나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생각을 주고받으며 더욱 생각이 뻗어지는 즐거움을 함께 느끼는 시간이었다.

 

밸런스 맞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론은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았다.

콘텐츠 관련 학과 재학생 D 씨는

“영화의 디테일이 좋았다. 해준의 디테일과 설정도 다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말도 납득이 된다. 극 중 박정민 배우가 분한 캐릭터의 대사 중 '여자들은 왜 그런 남자들을 좋아해요?'가 있다. 밀입국자 출신이고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는 서래 같은 계층이 사랑 받을 수 있는 계층 또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과 연결되는 대사라고 본다. 결국 서래는 고학력자 중산층인 해준과 맺어지지 못했고, 해준은 붕괴 됐다고 말했지만 그의 계급은 여전했다. 서래의 마지막 선택은 일종의 ‘밸런스’를 맞추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원 O씨도 “여자친구가 보러가자고 해서 탐탁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의외로 좋았다. 이전까지 박찬욱 감독 작품은 다 불편했는데 이 영화는 처음으로 안 불편했다. 폭력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 해준이 나와 결이 맞다고 느껴져 편했다. 꼼꼼하고 단정하고 직업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해준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처음 보다 생각이 넓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음악가 H씨는 “얘기를 나누다 보니 도대체 사랑이 뭐지?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 흥미롭고 당신들과 나의 간극을 보는 게 즐겁다.”

나 역시 “이 영화가 다양한 감상이 나오고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좋은 작품임을 방증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모임을 마치며, 사람들은 ‘반대할 결심’을 가지고 각자의 취향을 밝히는 자리가 좋았다고 터놓았다. 그들이 남긴 참여 소감은 다음과 같다.

“홍보물 보고 재밌고 흥미가 생겨서 왔다. 왜 그렇게 심술이 났을지 궁금하고 들어보고 싶었는데 재밌었다. ‘반대할 결심’을 말하는 이런 자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전부터 정답을 정해놓고 정답을 얘기해야 한다는 강박을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싫었다. 예전에 잠깐 연구한 적 있는데, 그 곳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해도 의견을 안 밝히고 침묵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달랐다. 이런 자리가 좋다.”

“<헤어질 결심>을 둘러싼 일방적 분위기가 불편했다. 평론가들이 작심하고 K-감독 밀어주는 느낌? 신격화하는 느낌? 영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사람들에게 네가 이 상징들을 다 제대로 봤다면 이 영화를 싫어할 리 없다, 당신이 지적이고 예술적 감각이 있다면 싫어할 리 없다고 외치는 그 분위기가 싫었다. 평가의 다양성을 고상한 언어로 사장시키는 느낌이었는데, 오늘 주관적 감상과 자신의 감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콘텐츠학과 학생으로서 창작자로서 자기검열이 싫어질수록 다른 사람 생각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다른 사람들 생각을 들었는데 너무 달라서 어차피 이런 사람들은 만족시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모임은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을 만족하려 하지 말고 내 길을 나아가자는 심지를 오히려 굳힌 계기였다. ‘극호’를 얻으려면 ‘불호’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얘기하는 것은 깊이에서 차이가 난다. 오프라인에서 만나 얘기하면 늘 뭔가 얻어간다."

“생각의 지평이 넓어진 느낌이어서 좋았다.”

“취향에 대해 이렇게 길게 떠들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나는 의견 차이가 있는 사람과 공존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돌아보는 계기였다.”

“싫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세상, 돌려 말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

 “심술의 순기능을 느꼈다”

다음 회에 또 만나요~

 

부록: 그 밖의 얘기 나온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것’

D(콘텐츠 학과 대학생): <오징어 게임>이 한국 콘텐츠의 미래라고 하는 게 불편하다. 무언가를 따라한 느낌이고, 그렇게 좋은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H(음악가): 미술은 좋았다.

S(기획자): 이제 창작물은 챌린지 열풍까지 염두에 두고 기획해야 하나, 그게 콘텐츠의 미래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S(서점 직원): 옷이나 달고나 같은 것을 따라하는 거야 큰 문제 없겠지만, 작품의 폭력적인 부분까지 아이들이 따라하는 건 우려된다. 

H(음악가): 나는 뉴진스 열풍이 우려스럽다. 너무 어린 얼굴인데 마르고 길쭉한 아이들, 그들을  보는 청소년들에게 심어줄 미의 기준과 그것을 선망하고 좌절하며 느낄 감정이 걱정된다.

D(콘텐츠 학과 대학생): 뉴진스를 기획한 민희진 디렉터는 컨셉의 정반합을 추구한다고 알려졌다. 예를 들어 이전에 기획한 그룹 에스파가 컨셉츄얼하고 ‘센’ 컨셉이니 뉴진스는 풋풋하고 수수한 느낌으로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리고 아름답다’는 것에도 정반합이 있는지, 질문해보게 된다.

S(기획자): 뉴진스를 들먹이며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다른 여성 아이돌은 “뉴진스에 비교하면 완전 아줌마”라며 깎아 내리는 걸 목격한 적 있다. 그래봤자 그 아이돌들 다 20대인데, 그 말을 한 사람은 30대 후반이었다. 왜 그런 식으로 깎아내리나? 그리고 자기 생각은 안 하나?

또한 ‘어림 경쟁’이 당연시 되고 거기에 무감각해지는 시장이 형성되는 게 우려스럽다. 사회는 고령화되고 있는데 대중매체에서 날이 갈수록 더 어린 사람들을 소비하고 선망하는 이 괴리가 괜찮은 걸까.

S(서점 직원): 사실 어린 아이돌을 기획한 중역들은 대부분 중년일 텐데.

M(영화인): 예전 아이돌에게 팬들은 “오빠들”이라 부르며 을질했는데 요즘 아이돌에게는 다른 태도인 것 같다. 소비자로서 권력을 인지하고 갑질하는 느낌이다. 그 30대 후반 남성의 경우도 아이돌을 인간이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철저히 상품으로 보기에 그런 식으로 평가하며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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