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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현장인터뷰 <치열해야 충만한 것은 아니므로> ✍옥민아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9. 14.

Title : 치열해야 충만한 것은 아니므로

 

Prolog : 매사에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 특유의 기운이 있다.

에너지가 흘러 넘쳐 주변 사람들을 북돋우고야 마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괜히 더 웃고 더 말하고 더 움직이게 된다. 친해지고 싶고 대화해보고 싶은 것이다.

인터뷰를 핑계로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을 줄 아는 배우이자 선생님, 사그라든 적 없었을 것 같은 에너지로 충만한 M에게 만남을 청했다. 이 이상 어떻게 열심히 사나 싶은 그는 손사래를 치며 요즘 논다고 했다. 그는 노는 것도 열심히 논다고 표현했다.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고 이제는 충만하게 살고 싶다는 그는, 배우이지만 예술가는 아니라고 했고 청년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청년이고 싶다 했다.

배우를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배우 M의 이야기.

  • Interviewer : 옥민아 [ 작가, 기획자 / 이하, O]
  • Interviewee : M [ 배우 / 이하, M]
  • Interview 일시, 장소 : 2022년 08월 16일 19:00 ~ 21:00, 서촌

 

O |왜 그런 결정을 해서 이 고생이야. 누나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니요!

 

M | 동생이 농담처럼 한 말이에요. (웃음)

제가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기 동아리를 해보고 고3이 되어서 갑자기 연기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보니 촘촘한 시간표의 쳇바퀴 속에서 살다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 거죠. ‘결과적으로 무엇을 위한 거지?’.

내게는 단기적인 목표만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3이 되서 느닷없이 연기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으니 당연히 식구들이 반대했죠. 동생이 보기에 누나는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것 같았나 봐요. 내 선택이었고 또 열심히 해 왔는데 그 친구만큼 경제력이 있진 않으니 그렇게 얘기할 만해요.

 

O | 공부만 열심히 했던 사람이 연기과에 진학했을 때, 동기들과 거리감이 있었을 것 같아요.

 

M | 그 거리감, 엄청났죠.

특히 제가 다닌 학교가 난다 긴다 하는 애들이 모인 데였어요. 전 내신성적으로 1차를 거르는 입시 전형이었는데 일단 거기서부터 자격지심이 생겼죠. ‘나는 쟤네만큼의 실력으로 들어온 게 아니다. 나는 어떤 메리트를 가지고 합격한 거니까 쟤네보다는 훨씬 못하고, 더 열심히 해야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학교 생활, 너무 힘들었어요. 연기라는 게 열심히 하는 만큼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단 말이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칭찬 한 번 듣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되게 목 말랐어요. 칭찬에

후배에게 지적하면서 넌 이걸 못한다, 이게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선배들이 간혹 있죠. 그런 지적들을 과하게 크게 받아들이고 무척 버거워 했어요. 학교 생활에 있어서 인간관계는 괜찮았지만 성취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연기에 대한 성취감이 낮았던 것 같아요. 4년 내내 그랬고 졸업할 때까지도 이겨내지 못했어요.

 

O | 그 자격지심의 정체는 뭘까요?

 

M | 전 제가 특별한 줄 알았거든요. (웃음)

내 스스로 남과 비교를 많이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신입생때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입학해 보니 노래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죠. 바로 포기했어요. 내가 특별한 게 아니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내가 특별하지 않다면 이걸 계속할 필요는 없어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O | 최고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면 아예 시작을 안 하는, 말하자면 완벽주의 같아요. 저도 그런 성향이 있어서 이해할 수 있어요.

 

M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계속 한 것은, 내가 연기를 잘해서 특별함을 느꼈다 기 보다 창작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 만나는 모든 연출, 선생님마다 가능성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잠재력이 있다고요. 물론 지금도 그 말을 듣고 있어서 문제긴 한데… (웃음) 그런 것들 때문에 연기는 나에게 있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때문에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연기를 가르치기도 하다 보니 예술을 교육함에 있어 이랬어야 했다하는 판단이 생겼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의 선생님들 피드백은 한국에서의 피드백과 180도 달랐어요. 한국에서는 너는 이걸 못했고, 이것을 봤어야 했고, 저것을 보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피드백을 하죠. 그런데 영국 선생님들은 너는 이걸 했고, 이것을 봤고, 이렇게 하려고 했다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네가 못한 것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네가 본 게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줘요. 그 본 것을 토대로 그것을 보았다면 이런 것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피드백을 하죠.

저는 그 교육방식이 맞다고 생각해요.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중에 연기과 2학년 학부생들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걔네들이 1학년일 때, 한국의 연기과 학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했어요. 기본기도 없었고요. 감각이 아예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던 친구들이 2학년이 되니까 너무 다른 거예요. 교육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죠. 한국에서 연기를 배운 5년의 시간보다 영국에서의 2년 동안 연기에 대해 훨씬 깊이 있게 알게 된 것 같아요.

 

O |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적응하기 힘들지는 않았나요?

 

M | 대학생활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사람을 얻는 것이 거잖아요.

동료들이 필드에 있으니 그 친구들을 통해서 공연 보러 다니고 요즘 어떤 연출가가 있는지, 어떤 작업이 있는지, 어떤 트렌드가 있는지 접할 수 있게 되어 크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배우는 어차피 졸업하면 다 힘들어요. 누가 알아서 캐스팅해주는 게 아니고 내가 찾아서 배역을 따내야 하니까요. 힘들 것이라는 각오가 있어서 였는지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O | 배우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연기를 가르치게 되었다고 했어요. 연기를 가르치는 경험은 배우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던가요?

 

M | 당장 지금의 작업에 영향이 생겨요.

왜냐하면 내가 그 주에 학생들에게 가르친 내용이 있는데, 배우로서 참여하고 있는 연극연습에 가서 대본을 보면 난 지금 내가 가르친 것을 행 하고 있는가?’ 각성하게 돼요. 초짜 선생님이었을 때는 주로 1학년을 담당했어요. 1학년 수업은 기본기 위주로 가르치게 되는데 그 기본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거죠. 무엇이 기본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고요.

연기에도 이론적인 부분이 있는데 저는 학부도 석사도 실기위주의 공부를 했기 때문에 연기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경험이 많지 않아요. 제대로 가르치고자 하면 연기론 적인 부분도 들여다봐야 하니 가르치기 위해 많이 공부했죠.

 

O | 배우이지만 동시에 연기를 가르치는 역할도 심도 깊게, 여러 해 동안 준비하신 것으로 알아요. 가르친다는 것에 뜻이 있었던 걸까요?

 

M | 스스로 비교하느라 대학 생활을 힘들게 했다고 말씀드렸죠?

다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했다기 보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한 것에 가까워요.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아주 나중에서야 할 수 있었어요. 영국에서 교육을 받는 순간, 이런 교육방식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나 한국의 배우들에게 너무나 필요하다고 느꼈고요. ‘넌 이게 잘못됐어, 이렇게 했어 야지라고 얘기하는 게 아닌, 다른 방식을 만나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마침 제게 석사 학위가 있고 우연한 기회로 강의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 확신을 가지고 수업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넌 가르치는 거 되게 잘할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연기자이자 연기를 가르치는 것도 배우 일 중 하나의 옵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O | 가르치는 일과 배우로서의 일을 병행하는 것은 어떤가요? 어느 한 쪽이 상대 쪽을 해치거나 방해할 것 같기도 해요.

 

M | 연기하는 사람은 졸업하고 나면 배우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작업을 통해서 훈련하는 거지 사실상 내가 연기에 대해서, 연기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습할 수 있는 장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가르치는 것의 좋은 점은 제가 가르치려면 공부를 해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학기가 바뀔 때마다 학생이 완전히 바뀌지 않으니 지난 학기의 수업을 똑같이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워크샵에 참여해서 배우고 더 공부하고 연구하는 거죠. 가르치면서 배우고, 가르치려고 배우는 게 커요. 대학 4, 영국에서의 2년 동안 배운 것. 연기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계속 느끼면서 리프레시 하게 되요.

그런데 또 이런 말이 있기는 해요. 연기를 가르치기 시작하면 자기 연기의 단점만 보게 된다 고요.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요? 못하는 걸 짚어내고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가르치게 되면 스스로에게도 단점만 찾아내게 되겠죠. 교육방식의 차이라고 봐요.

 

O | 가르치는 사람으로만 남지 않고 계속 배우의 일을 이어오고 있어요.

 

M |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어요.

프리랜서 배우일 때, 생각해 보니 작품을 꽤 많이 했네요. 적어도 1년에 세 작품씩은 했거든요. 안 쉬려고, 안 쉬고 싶어서 오디션을 많이 봤어요. 엄청나게 핫 한 작품이나 대형 작품에 참여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꾸준히 작업을 했었단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세 작품을 하면 3개월 정도는 비어요. 3개월 동안 정말 왔다 갔다 많이 했어요. 어디를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그때 남자친구에게 죽고 싶다느니 하루하루 밥 먹고 똥 싸고 이러고만 있을 거면 난 뭐하러 사나 이런 말도 했었대요. 그때 우울증 약도 먹고 그랬어요.

 

O | 저도 아주 바쁜 시기를 보내다가 잠깐 일 없는 그 몇 달에 심각하게 피폐해지는 경우가 있었단 말이죠? 그 일 없는 시기가 왜 그렇게 힘들까요? 그 불안은 대체 뭘까요.

 

M | 우리 직업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잖아요? 회사에 들어가 있거나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그걸 찾기 쉬워요. 지금 당장의 목표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게 없어지는 순간, 이유나 목표를 자기가 찾아내야 하는데 스스로 의미를 찾는 일을 많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대개 그렇잖아요. 초중고, 그리고 대학을 다니면서 나는 늘 학생이거나 직장인이라는 신분이 정해졌죠. 그에 따른 역할이 부여되고요. 완전한 무의 상태에서 나의 역할을 찾아 나서는 것에 대한 훈련은 되어 있지 않죠. 이런 이유였던 것 같아요.

 

O | 인터뷰 요청할 때 인상적이었던 점이 있어요. “저는 예술가가 아닌 것 같은데, 저를 인터뷰 해도 괜찮겠어요?” 라고 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M | 저는 예술가는 자기 작업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언젠가 예술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예술가가 되려면 자기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저는 모든 배우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는 연기라는 기술이 있으면 누구나 관객 앞에서 행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술가라고 했을 때는 창작, 창작물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배우도 예술가가 될 수 있지만 모든 배우가 예술가라고 생각 하지 않는 편인 거죠. 배우로서 카메라 앞이나 무대에도 서지만 자신의 사고 안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창조적으로 풀어낼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요. 그런 사람을 저는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캐스팅이 돼서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아요. 나만의 시선이 담긴 무언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내가 쓰고 연출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되겠죠. 제가 출연까지 하더라도 남의 시선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야 되는 건데 남의 시선이라는 게 어떤 필터를 거치는 일이잖아요. 그럼 그 필터 하나를 만들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곳까지 도달하면 그때서야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O | 작년에 다년간 활동한 극단에서 나왔어요. 그리고 1년 동안 안식년을 보낸 셈이에요.

 

M | 반은 의도적이고 반은 아닌데, 일단 극단생활의 여파가 조금 있었어요.

많이 달렸다고 느껴요. 저뿐만 아니라 당시에 저와 같이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이 조금 과했다고 느꼈을 거예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프리랜서 시절에 1 3작품을 한 것도 많이 하는 편인데, 그곳에서는 1년에 7작품을 했으니까요.

공동창작이다 보니 대본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창작해야 되고 소모해야 되는 작업들이었어요. 극단을 나오고 나서는 내가 그렇게까지 지쳐 있는 줄 모르고 바로 뭘 해야 되겠다, 글을 써야 되겠다, 이제 진짜 내 것을 써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극단을 나오고 나니 결혼도 했겠다, 놀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O | 그것도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세 달 쉬는 것도 불안해서 못 쉬었잖아요. 뭐가 달라진 것 같아요?

 

M | 극단생활 할 때를 돌이켜 보면 그 시기에 박사 공부도 하고 있었어요.

교수님이 너무 빡세서 책을 일주일에 세 권 씩 읽으라고 했어요. 수업관련 책 읽고 공연 하고 강의도 하고 그리고 공연예술축제에서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하는, 이 모든게 동시에 이뤄지던 시절 있었단 말이죠. 그때 하루에 잠을 20분을 자고 그랬어요. 바쁜 거야 인지하고 있었는데, 내가 무언가를 미친듯이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한 거예요. 그 시절이 끝나고 나니 그때 내가 어떻게 살았지 싶었어요.

일단 극단을 나오자 마자 결혼준비를 했어요. 그래서 나름 6개월 정도 바빴어요. 결혼식까지 마치고 나니 쉬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여름 내내 운동도 안하고 누워만 있었어요. 가을이 다 되어서 오디션을 보긴 봐야 되겠다, 이대로 있는 건 나에게 민망한 일이다 싶어서 오디션을 하나 봤는데 그게 1시간짜리 2인극 공연이었어요.

 

O | 그 공연이 나름 오래 쉬었다가 복귀한 작품이고 몸담았던 극단에서 완전히 벗어나 모르는 사람들과 만들었죠. 그때의 느낌이나 기억이 궁금해요.

 

M | 그 작품의 오디션 자체도 사실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어요.

예전에 국립극단 오디션때 했던 레퍼토리를 가지고 연습실을 하루 빌려서 연습하고는 오디션 봤어요. 공연에 캐스팅 되고 보니 공연연습도 1주일에 세 번씩, 네 시간? 이렇게만 했고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극단에서는 거의 매일, 하루 종일 연습하는 날이 태반이었거든요. 공연도 3일 했어요. 예전의 나에 비추어 보면 열심히 안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공연으로 인해 배우로서 너무 많이 성장했고 공연 만족도가 스스로 너무 컸어요. 극단 활동할 때는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했거든요. 서로 경쟁하고 더 나은 장면 만들어 가야 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O | 극단활동 하실 때 작품에서는 어떤 독기가 보였어요. 그런데 그 작품에서 아 저 배우가 저런 표정이 있고 몸을 저렇게 쓰는 사람이구나하고, 배우님을 처음 본 느낌이었어요.

 

M | 맞아요. 그 경험을 하고 나니 연기라는 게 내가 막 미친듯이 한다고 그게 정답이 아니구나 라는 걸 깨달았달까요. 물론 극단에서의 작업과 프리랜서 시절의 작업 스타일이 여전히 묻어 있겠죠. 하지만 1년에 7작품씩 해서 느는 게 연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돈 벌려고 연기를 하는게 아니고 나의 성취를 위해서 그리고 조금의 명예를 바라고 사람들이 나를 배우로서 인정해 주는 것, 이 같은 것들 때문에 계속 연기를 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할 때에 그 지점들이 성취된 거예요. 분명한 성취감이 있었던 거죠. 내가 무대를 씹어 먹었다, 이정도는 아니었지만요. (웃음) 이제 난 대 배우가 되었다! 이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이 내 연기를 봤을 때 괜찮다, 라고 말할 정도까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은 죽을 동 살 동 해가며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닌, 적당히 열심히 했는데 말이에요.

 

O | 편안하게 연습하셨다고 했고, 연습 기간도 길지 않았죠?

 

M | 공연 연습은 한 달 조금 넘게 했어요.

그 한 달 동안 공연팀끼리 MT도 가고 바다도 보러 가고 놀 거 다 놀면서 연습했어요. 연출님이 저를 굉장히 존중해 주셨어요. 연출님이 이런 스타일이셨어요. ‘너 방금 뭘 했어, 너 그걸 봤어. 내가 봤어!’ 나도 몰랐는데 내가 무언가를 봤고, 어떤 것을 했다고 말해주는 연출 방식이었어요. 극단에 있을 때는 내가 100개를 준비해 가면 연출가가 2개 정도 봐요. 그렇게 되면 점점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그런데 이 연출가는 내가 1개를 하면 7개를 봐주는 분이셨어요. 배우로서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죠.

연출님이 저의 약점도 잘 알고 있었어요. 본인이 어떻게 배우의 약점을 상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시더라고요. ‘너 이런 약점이 있어, 넌 이거 고쳐야 돼가 아니라내가 어떻게 하면 너의 모자란 부분을 덜거나 부각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셨죠.

 

O | 그 공연을 마치고 또 푹 쉬었어요. (웃음) 하지만 예전처럼 불안하지 않다고 했어요.

 

M | 믿음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맞는 것 같아요. 나에 대한 믿음.

내가 좋은 배우라면 오디션을 봐서든 누군가가 날 찾든 작업은 계속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에는 일이 끊기면 어떡하지,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이 끝도 없었거든요.  그 불안이 지금도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때처럼 불안이 나를 잠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O |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긴 믿음인 것도 같죠? 실례되지 않는다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M | 이제 서른 다섯이요.

 

O | 청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M | . 청년이죠.

근데 법적으로 청년인 만 39세도 좀 더 숫자가 높아져야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드네요. 39세 다음은 그럼 중년이잖아요. 근데 요즘 누가 40대를 중년으로 생각할까요.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곧 법적 중년이 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고요. (웃음)

저는 아직까지도 다르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요. 저는 중년을 다르게 살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갑자기 외국을 나가서 산다거나 직업을 바꾼다거나 하는 가능성이 적은 나이를 중년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이 180도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청년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제가 아직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는 배우만 하고 배우 공부만 하면서 살아왔지만 작게는 연출이나 작가를 꿈꿀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르게는 갑자기 사업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다 때려 치우고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 가서 살 수도 있겠죠. 전 그게 가능한 게 청년이라고 생각해요. 중년에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질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만 39세라고 하니까 얼마 안 남은 것 같네요 정말.

 

O |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하는 사람, 평생 그럴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M | 예전에 제가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 워라밸을 지키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요. 저는 딱히 영상연기에 큰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고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무대라는 공간 자체, 연극 작업이 좋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극단에 있었을 때처럼 작업하고 싶지 않아요. 꾸준히 계속 하고 싶어요. 때문에워라밸이 있는 삶을 원해요. 연극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 나의 삶 자체도 충만했으면 좋겠어요. 뭐든 하면서, 이것저것 하면서요. 삶의 충만함을 놓지 않으면서 동시에 일에 충실한 것이 저의 최종 목표예요.

 

O |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본인을 청년예술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까?

 

M | 저는 아직 예술가가 아닌 것 같아서, 청년인 배우입니다. 아직 청년 예술가는 아닙니다.

 

O | 언젠가 될 존재로서 청년예술가인가요?

 

M | 한때 청년예술가였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더라도요. 극단에 있었을 때,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하고 있던 시기. 그때는 청년예술가였던 것 같아요.

 

O | 지금은 잠시 휴지기인 거네요. 청년예술가로 복귀할 때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마지막의 마지막 질문 하나 드릴게요.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M | 캠핑이요!

시간이 나면 어디든 가요. 늘 남편과 함께 가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갈 거예요. 혼자서 캠핑을해 본적이 없어서 조금 무섭기는 한데 꼭 해보고 싶어요.  요즘 캠핑을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은 남편과 대화를 많이 한다는 거예요. 집에 있을 때는 TV 보면서 밥 먹고, 인스타그램 보다가 잠 들고 그러거든요. 물론 그래도 되죠. 매일매일 어떻게 의미 있는 얘기들만 나누겠어요. 그런데 캠핑 가서 전자기기, SNS 다 내려놓고 육체노동에 의존하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맛있는 술 마시고 그러면 별 쓸 데 없는 얘기가 다 나와요. ‘도라지가 어떻게 생겼더라? 저 구름 이름이 뭐지?’ 이런거요.

 

O | 청년예술가의 워라밸이 있는 삶을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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