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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말한다

[말한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 ④ 미래를 여는 예술문, 미지의 세계 속에 놓여진 예술가들 (feat. CORONA19)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7. 28.

미래를 여는 예술문

미지의 세계 속에 놓여진 예술가들 (feat. CORONA19)

 

이강호

 

메르스나 신종플루처럼 강력한 바이러스는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지는 못했다. 메르스나 신종플루와 같이 일시적일 줄 알았던 코로나19는 과장해서 말하자면 빙하기처럼 우리에게 찾아왔다. 일상의 대부분이 ‘잠시 멈춤’이라는 슬로건 아래에 우리를 얼린 것이다. 심지어 4차 대유행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수도는 셧다운이 되었다.

‘잠시 멈춤’ 아래에 나라는 예술가 또한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공적 모임’에 해당하는 연극 연습을 하더라도 연습실 주변 주민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연극예술가라는 직업이 대중에게는 직업이 아닌 취미나 동아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일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노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시대에 예술 노동을 하기란 주변 사람들에게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여차저차 코로나19 이후 예술계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4차 산업혁명의 현장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전부터 디지털과 예술 그리고 가상 세계에 대한 연구를 해온 예술가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가 코로나19에 등 떠밀려 가상세계라는 미지의 세계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우리가 디딜 수 있는 땅을 찾아야 했다. 2021년 지금, 가상세계 속에서 어떤 예술가들은 나름의 생존 방식을 터득하고 있고, 어떤 예술가들은 허허벌판에서 길을 찾고 있으며, 어떤 예술가들은 그 세계를 거부하며 기존의 세계에 굳건히 서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차이는 장르, 연령, 경험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근본적으로 코로나 이전의 예술은 ‘만남’에서 발생시키는 심미적 가치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공연장, 미술관 등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물리적 공간이 해체되고 있는 지금, 예술가들은 새로운 예술의 가치를 발견해가는 과정에 있다. 이제는 NTF, 메타버스, 유튜브 등 가상세계를 통해 창작물을 유통시키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일례로 미국의 트레비스 스캇(Travi$ Scott)이라는 랩퍼가 포트나이트(Fortnite)라는 게임 공간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캐릭터로 가상 콘서트를 열었는데 동시접속자가 1,230만명에 이르면서 메타버스라는 가상매체의 대중성과 실현 가능성을 시사했다. 내가 처음 트레비스 스캇의 공연을 메타버스로 관람하게 되었을 때, 마치 미래의 어떤 순간에 잠시 다녀온 듯했다. 캐릭터 스킨의 실제와 유사성, 자유로운 공간 변화와 무대 효과는 극장에서 공연만 하던 나에게 무력감까지 선사하였다.

 

Youtube : Travis Scott and Fortnite Present: Astronomical (Full Event Video)

 

‘이대로 시대에 뒤처져버리는 건 아닐까?’

2020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공연예술이 영상으로 송출되었다. 혹자는 공연예술계에서 2020년만큼 아카이빙이 잘 된 해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가상세계까지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이대로 시대에 뒤처질 수 없던’ 우리들은 코로나 시대에서 안전과 예술을 생각한다. 그리고 안전과 예술이 함께 하는 ‘시대에 걸 맞는’ 예술은 또 다른 질문들은 양산한다.

 

‘무엇이 공연예술인가?’ ‘어디까지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연예술’의 사전적 정의는 무대에서 공연되는 모든 형태의 예술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무대’의 사전적 정의는 노래, 춤, 연극 따위를 하기 위하여 객석 정면에 만들어 놓은 단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가 만들어 놓은 단은 모바일이나 PC 속에 있는 가상세계가 되고 객석은 관객이 있는 지금, 그곳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끈질기게 질문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정말 이게 최선일까?

가상세계로의 전환이 동시대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갈등을 해결해줄 수 있는가. 생각보다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가상세계 속에서는 실존하는 세계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가능하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예술 작품 또한 더 다양한 수요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 만들어져서 가상세계 속에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될 때도 있고 예술 작품의 가상세계화 하는 데에 수반되는 비용 또한 동시대 예술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도 허다하다. 명확한 사실은 가상세계는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이다. 대면 없는 예술, 안전한 예술. ‘안전’은 동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되었지만, 가상세계를 통한 ‘안전한 예술’은 ‘온전한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답은 예술가마다 다르겠지만, 현재 나에게는 그 가능성이 미지수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코로나19 이후에 수많은 공연 영상송출이 가능했던 것은 다양한 공공기관에서 예술 작품을 온라인으로 송출 혹은 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 제도를 쏟아낸 덕분이다. 2020년 지원 제도만 보더라도 공연의 영상송출을 위한 지원사업, 영상 촬영을 위한 지원사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거나 기존 지원사업 중에서도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며 지원자금이 예술 작품의 온라인화로 편중된 것이 사실이다.

지원 제도의 편중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먼저, 창작물의 다양성이 희미해질 수 있다. 실존해야만 향유자에게 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작품의 경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지원 제도 밖에 있는 작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로, 예술작품의 맹목적인 온라인화를 초래할 수 있다. 단순히 지원 제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예술 작품을 온라인에 맞춰서 설계하게 되고 애초에 존재했어야 할 예술관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놓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겪었던 검열 사태 재발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지원제도에 의존하는 만큼 검열은 언제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지원 제도의 방향성이 명확해지고 편중되고 있는 만큼 그 위험성은 더욱 우리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의 우리를 생각해야 한다. 미지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지, 기존의 세계에서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지킬 것인지. 이분법적일 수 있지만, 기존의 세계의 가치를 다시 한번 재고해보고 그 다음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한 후에 미지의 세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그 세계에 단순히 ‘놓이지 않고’,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소개

이강호는 극단 신세계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거버넌스 활동을 통해 현장 예술가들의 관점을 행정에 투여하고자 한다. 예술계의 악습들을 배척하기 위해 이 시대가 불편해 하는 것들을 직시한다. 주요 출연작으로 연극 <파란나라>, 연극 <공주(孔主)들>, 연극 <생활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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