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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말한다

[말한다] 미래를 여는 예술문 ⑤ 검열의 작동구조 : 국가가 쏘는 별 풍선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1. 7. 28.

검열의 작동구조 : 국가가 쏘는 별 풍선

 

우희서

 

나는 흔히들 MZ세대라 일컬어지고, 타인을 인식하는 시선이 ‘우리와 적’이라는 이분법에서 ‘나와 타인’으로 바뀐 세대이기도 하다. 행정 기관과, 공공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예술-표현의 검열은 ‘우리와 적’이라는 과거의 이분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가 단위의 블랙리스트 사건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많은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검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일련의 경험을 통해 체감하였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예술-표현 검열은 미래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검열구조를 끊어 내고 미래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더욱 치밀해진 현재의 검열 작동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개인 시점으로 설명한 현 상황을 통해 외부의 시스템, 제도의 역할을 논하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예술가들 더 나아가 예술계 생태계 그리고 예술을 바라보는 외부의 인식에 미친 영향을 연결지어 현재를 서술하려 한다.

 

Question!

예술, 표현 검열이 가능했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이 물음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다수의 동료 예술가들과 공유하고 있는 질문이자 의문이다.

그건 아마도 ‘돈’ 때문이 아닐까. 예술가들도 돈이 필요하다.

개인의 자유를 선택해서 없애겠다는 국가의 가치관을 전제조건으로 작품을 실체화를 할 수 있는 자본이 예술가 본인에게서 비롯되지 않았기 때문에, 검열이 가능했다는 가설을 세워본다.

 

Question!

국가의 가치관이 바뀔 수 있는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Question!

그렇다면 ‘돈’ 즉 ‘자본’이 예술가 본인에게서 비롯되면 검열의 구조가 끊어질까?

자본은 유한하고 자본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가치 증명을 하고 돈을 쟁취하는 것인데 개인의 자유를 선택해서 없애겠다는 가치관을 가진 국가는 시장에 개입 할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검열이 가능할 것이다.

 

데드라인 앞 예술가

안일하게도 민주주의의 혜택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자본주의의 승자가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왔던 지난 n년 동안 실상으로는 나의 예술을 실체화 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합의된 사회적 기준들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분기별, 사이트 별 마다 지원 사업들을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지원 사업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글을 써서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게 해야 할 일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작품을 과장하거나 언급하지 않을 내용들을 스스로 선별하는 것이 이제 제법 익숙하다.

지원을 하고 지원을 받고 활동을 수행하고 마지막으로 주최, 주관 로고가 박힌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여 데드라인을 지켜낸 나는 어느새 바뀐 계절을 한탄하며 예술 용역은 하지 않을 거라고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고 내 작품에 집중할 거라고 다짐을 분기마다 주기적으로 한다.

 

지원: apply. support . aid

과거 귀족, 종교의 후원 속에 꽃 피우던 예술의 역사가 국가의 지원제도 속으로 옮겨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곤 했다. 현재 많은 예술가들이 국가라는 후원자의 존재로 예술을 실체화한다.

산업사회 이전, 예술에 대한 후원과 지원이 당연했던 특정 계층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돈’으로써 하는 예술 지원 사업이란 무엇인가? 이는 개인적인 회의감 혹은 국가 주도하에 존재하는 지원 사업의 당위성에 대한 이중적인 의문문이기도 하다.

먼저 ‘지원’이라는 행정적 용어를 다의적으로 해석하고 내부, 외부에 끼치는 영향을 예측하여 당위성을 구체화한다. 3가지의 해석이 현재 실제 예술계 상황과 부합되는가를 고려하였고 우려 지점 또한 설정해 보았다.

이를 통해 국가의 지원 사업은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내부적인 측면에서 지원 사업을 인식하는 예술가 개인의 의견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apply / 내가 지원한다.

‘지원한다’의 신청개념의 용어는 ‘지원받고 있다’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능동의 개념의 동사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예술가 개인이 결정 주체로 바꾸어 줄 수 있고 ‘돈’ 은 단순한 도구로 지급되는 것이며 예술가의 역할과 권리가 공고히 보장 될 것이다.

하지만 당선이 된 소수의 지원자들의 결과가 예술의 우위를 가리고 특권적인 지위를 점유하게 해 줄 수 있다. 능력제에 따른 혜택이 다른 지금 현 상황도 적용되는 우려 지점 이기도 하다.

 

support / 너를 지지한다.

예술, 문화 다양성을 지지. 사유의 가치를 인정받고 예술을 실체화를 할 수 있는 기회로의 돈은 특정 예술, 가치가 지지받을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이런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예술가 개인과 예술의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알맞은 예술 생산만을 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 기술의 발달이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자기만족, 쾌락을 동반한 창의적인 행위가 직업으로써 받아들여지고, 잉여 활동의 의미와 가치가 점점 더 힘을 얻어 강해지고 있다. 예술 소비, 후원의 범위가 국가에서 개인으로 번져 국가의 자본 힘이 약해지는 이때 변화하는 국가의 행정적인 검열의 구조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aid / 너를 지원한다.

도움이라는 일종의 복지 개념이 담겨 있는 인상을 준다. 멸종 위기종처럼 존재하는 예술 장르들과 가치들을 가진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할 수 없고 그런 우리를 조롱하듯 자본주의는 너무 유연하게 계속 바뀌고 살아남는다. 예술은 자본보다 유연하지 못하고 시대의 전복만을 기대하는 중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본을 정복하려는 모순된 목표와 바람이 공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한 예술은 현재 생존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예술은 가난해야 진정한 예술’이라는 사회의 비아냥에 더욱 힘을 실어주어 빈곤을 다시 강요받곤 한다. 복지로서의 ‘돈’은 최악인 경우에서 비로소 작동하지만, 최전선에서 개인의 최소한의 안전망을 보장해준다.

 

법과 제도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사회 안에서 최소한의 개인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추어 변모하는 것,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는 것, 최선이 아닌 차선 어쩌면 차악일 수도 있는 것. 예술 관련 제도와 법이 많아지고 세분화되고 있는 것은 현 예술 생태계와 산업 체계에 많은 절망적인 목소리가 넘친다는 반증일 것이다. 예술 관련 모든 법과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제도와 자유를 말하고 요구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안일하거나 사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법과 제도 속에서 개인이 그 자체로 순수하게 존재하고 이해와 존중을 기반으로 지켜지길 바란다.

 

우리는 나쁜 파랑새 :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발자국이 닿지 않은 곳에 발자국을 내고 싶어 하는 개척자들. 무형인 생각조차 나만이 유일한 새로움 이길 바라는 이들은 사회의 극단적인 것을 포함하여 세계의 다양한 면모를 뒷면 옆면 가릴 것 없이 발견하여 소유하려 한다. 자신의 소유를 공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다양한 면모를 많은 다수에게 빠른 속도로 실어 나른다. 동시에 자유롭지 못함을 문득 알게 된다.

당연한 인식으로 자리 잡아 사실이 된 의식주보다 중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예술의 가치가 현재 우리의 사유와 언어가 공공의 이름으로 ‘나쁜 것’이 되지 않기를. 나빠서 삭제되었다는 너무 심플한 이유에 대해서 한 번쯤은 반문할 줄 알아야 하며 창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나쁜 파랑새가 되는 것을 감수하는 파랑새가 있으므로

 

필자소개

우희서는 미술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굉장한 착각으로 진로를 미술로 정하여 이제는 그 누구보다 ‘말’을 많이 하고 있는 시각작가이며 기획자이다. 많은 쓸모없는 ‘말’을 생성하는 중이지만 이것이 곧 ‘정말 해야할 말’을 찾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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