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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숨은참조'/듣는다

[듣는다] 현장인터뷰 ② ✍ 옥민아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0. 10. 5.

 

현장 인터뷰 ②


✍ 옥민아

 

 


현장 인터뷰 소개글

글로, 말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오해의 연속입니다.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키워드를 가지고 ‘당신’을 만나겠노라, 다양한 ‘당신’께 요청을 드렸습니다.

한 사람의 삶과 예술관을 키워드 몇 개에 담겠다는 시도는 무모하고 건방진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수의 ‘당신’에게서 길어낸 다양한 키워드는 어느 한 지점, 한 사람을 가리킬지도 모릅니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서 우리가 이제껏 오해하고 있었던 익명의 ‘당신’을 새롭게 만나려는 시도입니다.

신중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당신’은 청년예술가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청년예술가입니까?


 

현장인터뷰 2차 <세부 사항>

장소: 마포구 합정동 
시간: 19:00 ~ 22:00
인터뷰어: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위원, 작가 옥민아
인터뷰이: 공연예술인 K


 

#주로 배우 
#공연예술인

 


공연 예술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한다고 하면 연극배우로 한정되니까 공연예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연극, 거리극, 아주 약간 전통 연희 분야에 발을 얹고 있기도 해요. ‘주 업’으로는 배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군대 전역하고부터 연극을 시작했어요. 이제 7~8년 되었네요.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에 비해 시작이 좀 늦은 편이죠. 내가 내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던 거겠죠. 군대 다녀와서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 ‘내 마음을 잘 들어봐야겠다’ 싶었어요.

결심이 서자마자 바로 연기 학원에 등록했어요. 제대하고 유학 갈 생각이었는데 비행기 취소하고 유학원 등록금 돌려받아서 생긴 300만 원으로요. 학원비가 월에 60만 원 정도 했어요. 당시 스물셋이었고 입시 전까지 7개월 정도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돈이 부족하잖아요. 학원 원장님께 가진 게 이거밖에 없다며 300만 원을 통으로 드리면서 잘 협의를 했죠. 입시는 떨어졌고요. 

대학을 멀리 다니고 싶지 않았고, 자취할 여건도 되지 않았어요. 경쟁률이 높은 대학만 지원했죠. 입시에 실패하고 기존에 다니던 학교로 다시 돌아갔어요. 원래 전공은 천문학이에요. 연기, 연극과 그나마 맞닿은 지점이 있는 국문학과로 전과했고 부전공을 영화예술학과를 택해 공부했죠.

 

#결심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에, 제 마음은 1초도 바뀌지 않았어요.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거든요.

중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으로 산다는 느낌이 굉장히 궁금했어요. 연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시작지점은 비슷할 것 같아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 이것이 컸어요. 나름 길게 고민한 것 같고요. 어쩌면 고민했다기보다는 마음 깊이 숨겨놓고 보지 않으려 노력하다가 나의 내면을 마주하게 됐을 때, 더 큰 힘이 생긴 걸 거예요.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둘 이유도 없었어요. 

필드에 나온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엄청 차곡차곡 돈이 모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밥을 굶은 적도 없었어요. 여행도 다니고, 생각보다 할 거 다 하며 살아졌죠. 연기와 상관없는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요.

 

#직업인 
#노동자

 


배우로서의 내적인 만족감은 연습이 힘들면 그게 너무 좋다는 거예요. 
어떤 작업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나를 덮쳐서 밤잠을 못 이뤄요. 그 당시는 너무 괴롭고, 몇 주 뒤의 공연과 그때 올 관객들이 두렵죠. 그런데 저는 저 자신을 믿는 부분이 있나 봐요. ‘어떻게든 난 이겨낸다’ 이런 생각으로 버티고 나면 동료들도 괜찮았다고 하고, 연출도 별 소리 안 하고요. 내가 나를 마주하는 작업이 좀 힘들잖아요. 저는 그런 작업과 대면하는 것이 좋은 거죠. 나의 끝장을 나나 내 동료들이 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공연에 임하면 극장을 나올 때의 느낌이 좋아요. 극장을 나서면서 몇몇 관객을 다시 만나게 되거든요. 그때 그 사람들의 눈을 보는 게 좋아요. 그리고 자그마한 페이를 받는 것도 좋고요. ‘나는 이제 돈 받고 무대에 서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걸 취미라고 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죠.

올해 결혼을 했어요. 파트너는 제 공연을 보고 나면 보통 이런 말을 많이 해요. ‘너만 잘하면 되겠다’ 그런 말이요. 안 좋은 얘기 많이 해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해요. 와중에 정말로 큰 도움이 되는 마음의 지지를 주기도 하는 사람이에요. 가끔 이런 고민이 들 때가 있거든요. ‘내가 일하는 건가? 나도 노동자인가?’ 연습실에 있다가 집에 늦게 돌아가면 “아유, 일하느라 고생 많았네!” 하고 얘기해줘요. “당신은 가서 일하고 있는 거다. 노력하고 있는 거다, 터무니없는 페이를 받아도 네가 노력해서 일한 돈이다”라는 표현을 해줘요. 

저 스스로 나는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나도 이제는 이것이 내 일이라고 명확하게 인식했으면 좋겠고. 그래서 예술인들을 고용보험에 등록하겠다는 움직임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하거든요. 사회 안에서 내 위치와 내가 할 일과, 내 생각이 이 안에서 나름대로 존중받는다는 인정이요. 남들이 다 ‘저게 뭐야’ 하는데 나 혼자 ‘이게 내 길이고 내 예술이야’ 하는 것보다 사회 속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야 불안하지 않아요.

다만 그 가치는 좋게좋게 해석하는 편이에요. 쉽게 말하면 일정한 예술활동을 했을 때 나에게 지급되는 돈이 나를 증명하는 하나의 가치인데, 만약 두 달을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해서 30만 원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그 30만 원의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해석의 여지가 있죠. 아르바이트를 2달간 풀타임으로 하고 30만 원을 받으면 악덕이다 싶잖아요? 그런데 제가 속한 극단은 1부터 10까지 극단의 모든 정산상황을 연말에 단원들과 공유하고 있어요. 그 30만 원을 퍼센티지로 따져 보면 내 가치를 존중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자기 모순적인 마음이 있어요. 저 스스로 ‘저는 배우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 싫고, 그렇게 말하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지 않아요. 내가 배우가 아니라는 것은 아닌데 그 단어가 제게는 본래의 뜻 이상으로 소중한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연기를 해야겠다고 무대에 선 순간 배우가 되지만, 그때부터 그냥 배우일까? 모르겠더라고요. 배우 자격증이 발급되는 것도 아닌 일이라서요.

진짜와 만나려고 하는 노력이 나를 배우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들을 할 때 진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요. 무대 위에서 내가 만나는 그 어떤 순간들을 관객들 역시 만날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을 저는, ‘배우가 되었다’라고 기꺼이 받아들일 것 같아요. 연기는 그런 것을 행하는 일이니까요. 

 

#결혼
#예술인주택

 


데이트가 지겨웠어요. 좋은 의미로요. 9년, 10년 만나다가 제가 그랬죠. “내가 언제까지 너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고 해야겠니? 또 언제까지 우리가 맨날 밖에 나가서 돈 쓰고 술을 먹어야겠니? 집에서 먹자.”

저에게 결혼이란 ‘이 사람이랑 같이 사는 삶이 궁금하다’에 가까워요. 결혼은 너무 거대한 말이잖아요. 무서운 느낌도 들고요. 저와 제 파트너가 합의한 결혼에 대한 가치는 같이 살아보는 것에 대한 의미를 함께 찾아보자는 것이었어요. 서로 농담처럼 “10년 연애했으니까, 일단 10년 같이 살아보고 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 그러고 있어요.

집은 성북구에 있는 예술인주택이에요. 배우생활을 하다 보니 본가에서 나와 자취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여자친구였던 파트너와 논의 끝에 ‘그럴 바엔 둘이 같이 지내보자’는 결론이 났죠. 마침 예술인주택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저희는 신혼부부 전형으로 지원했어요. 이게 덜컥 선정되어서 결혼 전에 혼인신고를 먼저 했어요. 예술인주택의 신혼부부 전형인지라 일단 들어가서 살고, 결혼식은 살면서 한 거죠. 

예술인 주택에 처음 들어가면 반상회 같은 걸 해요. 자기소개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예술인 주택에는 배우분들도 꽤 많이 사시더라고요. 

 

#극단
#소속감

 


소속감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극단에 들어가야겠다’ 결심했죠.
저는 복수전공자로서 연기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잘 지내왔고 졸업 공연도 무사히 잘 끝냈고 아직까지 연락도 자주 하지만 그럼에도 그 집단 내에서 소외감을 많이 느꼈어요. 아마 전공자가 아닌 탓이었겠죠. 그러면서 서서히 나도 연극집단에 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가령 연기 전공자들은 기수가 쌓이면서 선 후배가 생기는데 제 위치는 애매하더라고요.  학교의 행사가 있을 때 저는 복수전공자이기 때문에 어떤 역할로 행사나 공연에 참여해야 하는지 불분명해지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서로 조심하고 신경을 쓰고, 몇몇은 좋은 배려의 느낌이었지만 시기와 질투도 있죠. 특히 졸업 공연 때는 주인공을 맡게 되면서 그게 더 심하게 느껴졌고요. 

또 다른 이유는 제가 복수전공으로 연기를 배웠지만 졸업하고 나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대학로에 있는 극장에 갈 수 있는지 몰라서였어요. 극단에 들어가는 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었죠.

신입 단원이 되고부터는 눈치 보고 어리바리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최대한 눈치 안 보는 척하려고 노력했어요. 공연 있으면 스태프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모든 게 처음이라 정신없고 바빴죠. 

단원생활을 연초에 시작했는데 마침 극단에 대극장 공연이 잡혀 있어서 동기들과 스태프로 참여하며 공연과 관련된 전반적인 일들을 배웠어요. 우리 극단은 워크숍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 와중에 신입 단원 공연도 같이하면서요. 단원 생활 첫해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무대에 서게 됐으니, 비교적 빠른 기간 내에 극단 소속 배우로서 무대에 오른 편이에요. 이제 극단 3년 차가 되었네요. 

 

#수입
#생계

 


극단생활 첫 연차에는 교통비, 식비 등을 계산해서 나 하나 건사하는데 매달 70만 원이 필요하다는 답이 나왔고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오후 2시부터 연습이라고 하면 오전 7~8시부터 오후 1시 정도까지 하는 일을 잡는 거죠. 노량진에 연습실이 있으니까 주변 학원가에서 데스크를 본다든지, 입시 강의도 나가고 검정고시 학원에서도 일했어요. 겨울에는 대리운전을 주로 했는데 대리운전도 꽤 오래 했고요.

요즘엔 아르바이트를 쭉 안 하고 있어요. 지방 공연을 다니기도 하고 올해 처음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파견예술인 활동을 하고 있어서 최근 1년 동안은 제 기준에서 아주 잘 벌었거든요. 제 기준이 사회의 평균치와 꽤 거리가 있기 때문에 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교류
#시너지

 


지방공연을 하고, 거리극도 하고,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그래서 좋고. 예를 들어서 제가 파견예술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극단에 가잖아요? 그러면 시너지가 생겨요, 저한테. 그리고 그 느낌을 가지고 거리극을 하러 가면 또 어떤 새로운 감상이 생기고, 그 감각을 가지고 또 다른 곳에 가서 활동을 하면 다른 생각, 다른 시선이 생기고요. 그러니까 저는 연극만 하지 않아서 더 좋아요. 오히려 내 연극이 더 잘되는 느낌이 생겨요. 

극단 신입 단원으로 꼬박 2년을 지내면서 극단에서만 연극을 하다가 작년 여름부터 조금씩 외부활동을 했어요. 거리극이나 전통 연희가 결합한 공연이었어요. 이 같은 외부활동을 3개월 하고 극단에 돌아왔는데 나에게 무언가 다른 것이 생겨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때문에 오히려, 내가 하는 예술만 하지 않는 것이 예술가로서 더 건강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다양한 것들을 접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연극이 내 인생의 숙명 같다고 자신할 수 있거든요. 다른 장르, 다른 일을 하건 결국 연극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연극을, 연기를 정말 잘하고 싶고요. 

아 숙명은 취소할게요. 말하다 보니까 좀 오바한 것 같아요. 

 

#숙명

 


초등학생 때 어머니께서 대학로에서 포장마차를 하셨어요. 아버지도 포장마차 일을 도우시며 두 분 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니까 저는 PC방에 자주 갔죠. 축구게임을 하는데 게임 속의 선수를 내가 움직이는 건지 컴퓨터가 알아서 조종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더라고요. 재미는 있는데 이게 과연 내가 지시해서 움직이는 건지, 컴퓨터가 알아서 움직여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버튼을 누르면 캐릭터 위에 불빛이 딱 들어오면서 그때부터 내가 그 선수를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더라고요.

연기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내 인생에 그런 불빛이 들어왔어요. 내 머리 위에 불빛이 딱 들어온 느낌. 살면서 그런 명확함을 가져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의 명확함이 생겼어요. 내가 내 인생을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 연기를 하면 그 불빛이 내 머리 위에 계속 켜져 있어요. 연극이 내 숙명이라는 말, 취소하지 않을게요. 오그라들지만 번복하겠습니다.

 

#나와 나 사이

 


저는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예술 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분리할 생각이 없어요.
아직은 에너지가 넘치나 봐요. 더운 여름에 수영장 가면 좋잖아요? 수영장 가기 위해 미리 숙제도 하고 맡은 일도 해치우고 하다 보면 땀은 삐질삐질 나는데 난 이게 찝찝하지 않아요. 조금 있다가 수영장 들어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직장인에게는 종종 일이 개인적 삶의 영역에 들어올 때 침해받는다는 개념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내 개인적 삶과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일의 특성상 그렇기도 하고 사실 전 분리되지 않는 그 지점이 너무 좋아요. 한두 달 연습해서 어떻게 한 인간을 무대 위에서 제대로 연기할 수 있겠어요? 제가 인터뷰어분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한 달 분석하고, 무대 위에서 그 행세를 하는 건 알량한 짓이잖아요.

물론 한두 달의 연구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작업도 있어요. 그런 공연은 되도록 하고 싶지 않죠. 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지만요. 공연의 앙상블인데 너구리 역할, 지나가는 역할, 그것을 한두 달 내내 내 삶을 도려내 가면서 할 수는 없잖아요? 

모든 역할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이건 내가 해야겠다’는 역할과 만났을 때는 수영장에 퐁당 빠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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