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진 '숨은참조'/말한다

[말한다] 포스트예술대학 9월 공론장: 예술교육과 위계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3. 1. 9.

<포스트예술대학 9월 공론장: 예술교육과 위계>

 

사전/본공론장 발제자 :이은,  장소현

스케치원고 : 장소현

 

예술교육과 위계

1학년 전담 지도교수 면담이 있던 날, 늦잠을 이유로 30분을 지각한 교수가 본인 사무실에서 처음 꺼낸 말은 ‘담배 피워도 되지?’였다. 나는 왜 괜찮다고 했을까? 2학년 전공 수업에 지각 했을 때 전담지도교수는 ‘너 정신이 있는 애야, 없는 애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하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3학년, 학과사무실에서 ‘전담 지도교수가 추천했으니 현 장실습 참여 확인을 위해 개인정보를 보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현장실습은 분명 일정 기간 공고를 두고 지원 신청을 받고 선정하는 절차가 있다고 했는데?

위 상황들은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라는 개별 건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예술대학에서의 위계 폭력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예술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문화예술계 내에서 이것이 위계라고 명명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확실히 부당하고 이상하다고 여겼던 경험들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은 물리적 폭력, 언어적 폭력 에 그치지 않으며 장르 또는 개별 조건들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봉사, 스펙 쌓기로 둔갑하여 교수 작품 또는 공연에 학생을 강제 동원하여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 대가에 대 한 창작 비용을 갈취하는가 하면 교수 사생활을 수행하거나 학생 사생활을 침해하고 학내 문 제에 무관심하거나 방조하는 것도 위계폭력에 해당된다. 이 같은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은 학 생의 학습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청년예술인의 안전한 문화예술계 진입을 방해한다.

예술교육과 위계를 주제로 한 9월 공론장에서는 위계라고 인식되거나 인식될 수 있는 여러 개 인적 경험을 사례로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침묵이 유지되고 종용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해 파악하고 대안적 방향을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 일시: 2022. 09. 22 (목) 16:00 ~ 18:00
  • 참여: 서울청년예술인회의 권연화, 김나예, 신민준, 이강선, 이기화, 이은, 장소현, 정수인

 

#위계폭력 양상과 대물림

“예고에서부터 쭉 이어져 오는 건데, 교수님이 하는 공연에 가서 인사하고 선물 드리는 게 일 종의 관례에요. ‘내 사람이 내 공연에 힘이 되어준다’는 뉘앙스로 설명하시고요. 선물은 보통 롤케이크 3만 원 이상 사 가야 하고요. 그게 어릴 때부터 반복되다 보니 공연을 보러 갈 때는무조건 일정 금액 이상 선물을 사야 할 것만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지인 공연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만약 교수님 공연에 안 가겠다 하면 교수님이 하는 말들은 이런 거예요. ‘네가 꼭 왔으면 좋겠다. 안 오면 우리 연 끊기는 거다’ 그 사람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 도 그 말을 들으면 너무 무서운 거죠.”

“학교에서 이런 위계폭력을 답습한 경우에 학생 간에도 위계 구조가 형성된다고 봐요. 선후배 간에 일어나는 위계폭력 문제도 심각하고요. 새내기 군기 잡는다는 이유로 춤, 노래를 시키는 경우도 뉴스에서 정말 많이 보잖아요.”

“학교 앞에 와플집이 있었는데 1학년이 거기에 가면 선배들이 집합을 시키는 거예요. 감히 1 학년이 와플을 먹느냐 그런 거죠. 그래서 1학년 때 와플은 거의 목숨 걸고 먹으러 가야 하는 거였어요.”

“음악 분야 중에서도 클래식의 경우에 이런 위계가 특히 심하다고 생각해요. 학교 지나다니다 가 복장만 봐도 클래식 전공이구나 알 수 있는 정도니까요. 실제로 클래식 전공 선배들이 ‘네 가 저기 거지같이 옷 입는 미대생들이냐?’ 이런 말을 하기도 하고 복장 때문에 집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추어와 전문가 예술인

“예술대학 준비부터 예술대학 졸업까지 긴 시간 동안 예술 활동을 했지만 스스로를 예술인이 라고 말하는 건 여전히 어색해요. 예술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나에게 주어졌는지 반문 하게 되고요. 이게 어디에서 기인하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학교에서 학생은 아마추어로 인식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역할에 놓이잖아요. 선배 또는 경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고요. 그리고 그런 태도가 실제 성적으로 까지 이어지다 보니 더욱 교수자의 예술 표현 방식이나 강의 내용을 의심 없이 그대로 따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라인과 카르텔

“통상적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이유는 예술대학 배지 때문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학교에서 라인을 잘 타거나 인맥을 잘 쌓아야 앞으로도 계속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니까요. 예술을 하겠다 마음먹었을 때 그 길에 도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으로 예술대학 진학만이 정답인 양 제시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게 현실이기도 하고요.”

 “예술계로 진입하려면 라인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사실이 아닌 것 같아요. 졸업 후에 교수님 제안으로 전시를 하거나 좋은 기회를 잡는 주변 경우들을 봤고 요. 그런데 졸업하고 나니 정말로 그런가? 싶은 생각이 점점 더 들어요. 어떻게 교수님이라는 한 명의 사람이 내 인생과 창작 활동을 책임질 수 있지? 싶은 거죠.”

“관례 또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위계폭력이 마치 감수해야 하는 것 정도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한테 밉보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잖 아요. 실제로 본인의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예술계 진입에 본인이 상당한 결정권을 지니고 있 는 듯한 발언을 일삼는 교수들도 있고요.”

“특히 예술대학은 전임교원 비율이 낮아서 학과에 교수가 1-2명인 경우도 있어요. 교수 사이 에 파벌이 있는 경우에 교수 라인에 따라 학생 사이에 파벌도 생기는 경우가 있었어요. 교수 님들도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요. 너 내 라인 타면 졸업 후에 활동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 저 교수가 나에게 욕설을 했으니 내 편에 서서 네가 증언을 좀 해달라 이런 식이에요.”

 

#권한의 독점과 참여의 부재

“오랜 시간 그 분야에서 권력자로 군림하는 예술인이 소수일 때, 그게 지금의 문화예술계 위계폭력의 원인 중 하나로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소위 말하는 위에 있는 사람이 안 바뀌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없는 데다가 문화예술계 자체도 그 사람의 제자 또 그 사람의 제자,이런 식으로 이어져있으니까.”

“교수를 임명하는 권한도 각 학과 교수님들에게 있다 보니까 학과 전임교수가 전공필수 수업 에 전혀 관련 없는 교수를 꽂는 경우를 봤어요. 교수 자리가 대체 뭐길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들어온 교수님은 OO대학 교수라는 이름에 프라이드가 상당한 것 같았어요.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이 본인 말에 호응하면 마치 점수에 반영되는 것처럼 호응한 학생 이름 을 기록하기도 하고요.”

“학교 행정 부처의 장도 결국 교수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학교 행정에 말해도 교직원의 민원처리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학교 행정의 결정권한이 일부 인원들에게 몰려있으니까 문제를 개선하고 변화를 도모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학교 행정 절차 과정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기구나 제도가 있기는 해요. 그런데 학생 참 여는 그냥 상징적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우린 학생들의 의견도 듣는 민주적인 절차를 따른다, 학생들을 위한 학교다, 뭐 이런 거죠. 학교본부의 위원회에 참석한다 해도 학생 위원 배석 자체가 무척 적고 사실상 결정기구라기보다는 의견 수렴 정도에 그치니까요. 그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도 거의 없고요.”

 “학교에서 인권침해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인권센터, 교원징계위원회가 열리긴 했어요. 그렇지 만 그 기구들의 실질적인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인권센터는 후속 조 치에 대한 결정 권한 자체가 없어서 결국 교원징계위원회로 넘어가는데, 교원징계위원회의 경 우에는 문제가 발생한 후에 교수 징계를 결정하는 역할 정도인데다가 그마저도 위원 구성이 교수로 이루어져있어서 교수의 권한이 강해요.”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거나 제3자의 눈으로 교내 위계 문제를 평가할 수 있는 인물 또는 단체가 있으면 좋겠어요. 예술대학 졸업생과 현장 진입시기의 예술인이 얘기 하지 못하는 불이익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체인 거죠. 예술대학생이 당장 교수에게 부당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우니 이 입장을 대변하고 지금의 교수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단체가 학교 내에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여러 민간단체와 지역단체와 주기적으로 협업하면 어떨까 싶어요. 학교 안에만 있으면 정확 히 어떤 게 문제인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잖아요. 외부 단체와 협업하면서 이게 개인의 개별 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인 걸 인식할 수 있게 서로가 정보를 주고받는 활동을 해보는 거죠. 학교가 인권센터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니까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재학생 또는 졸업생이 교내 인권센터에서 인턴십이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연계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예술교육

“애초에 예술대학 교수가 학생 교육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교수라는 타이틀이 주는 권위 정도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싶어요. 교육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이 없으니까 문제라고 생각해요. 전임교수와 시간제 강사의 수업 태도 차이에서도 그게 나타난다고 봐요.”

“애초에 제도권 예술이라고 하는 게 문이 좁기도 하고, 예술활동이라는 게 그런 제도권 예술 활동 영역만 있는 것도 아닌데, 대학에서 예술교육을 받을 때는 그게 마치 유일하고 순수한 예술활동인 것처럼 배웠어요. 다양한 예술활동의 범주를 배우기보다는 예술의 기술적인 면, 예술 아우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치중되어 있는 예술교육도 예술대학 내 위계폭력 문제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위계폭력은 참아야 하는 관습 관례 정도로 인식되니까요.”

“수업방식의 다양화가 필요해요. 학생이 수업을 이끌어가는 방식도 있으면 어떨까 싶어요. 각자가 주제를 발제하고 워크숍 진행까지 담당하는 거예요. 일방향의 지식 전달이 아닌 서로 의견을 확인할 수 있는 토론 비중을 교육 과정에서 더욱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함께 학습 하고 노동하는 협력 관계로 교수-학생 관계를 새롭게 설정을 해볼 수 없을까요? 그러기 위해 서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교수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에 따라 교과과정 내에도 관련 수업을 편성하고 관련된 예술교육을 실시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방식도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서로 토론하고 중요성을 스터디하는 방식이면 좋겠어요.”

 

#표현의 자유와 검열

“예술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수업 중에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가 심각해요.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작업하라고 말하는 교수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학교에서 퇴출된다 하더라도 문화예술계 차원의 처벌 제도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학교를 나가도 문화예술계 판에서는 여전히 활동하는 경우가 많고요. 개인의 창작물이나 업적에 따라서 위계폭력 등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분위기도 있고요. 학생들에게는 졸업 후에도 다시 마주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작업을 했었는데요. 이런 작업 하지 말라는 일종의 협박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학교 곳곳에 포스터를 붙였었는데 내가 이런 작업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 말 안 듣고 뭐 하는 짓이냐 윽박지르는 전화를 받았어요. 실제로 그런 말을 들으니까 위축되더라고요. 수업 시간에 앞으로도 작가 생활하면서 종교, 성, 사회문제 이런 주제로는 작업하지 말라는 교수님 말을 들은 적도 있고요.”

 

#평가방식 변화의 필요성

“친구들끼리도 서로 몇 등이냐, 몇 점이냐 물어보면서 견제하는 경우를 예고 때부터 많이 봤어요. 지금의 평가 시스템 자체가 서로를 경쟁 상대로밖에 보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예술을 정말로 점수나 등 수 같은 숫자로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에요. 학교 수업에서 성적 을 매기는 것도 교수니까 교수자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개입될 수밖에 없잖아요. 성적 산출 이라는 게 대학에서 불가피하다면 교수자가 단순히 숫자나 알파벳으로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 라 교수와 학생이 상호 피드백을 주고받고 그런 의견들이 성적에 반영되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지금의 교수평가는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교수평가는 결국 좋게 해도 나쁘고, 나쁘게 해 도 나쁘다고 들은 적도 있어요. 교수 평가 점수가 낮으면 그 학과 점수도 같이 깎여요. 학과 점수가 낮으면 학과 예산을 삭감한다 던지 하는 방식으로 결국 학생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 오는 거죠.”

“교수평가에 서술형 평가 항목이 있기는 하지만 피드백이 다음 학기 수업에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못 봤어요. 오히려 교수님들이 누가 평가한 건지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은근히 압박하는 경우도 있고요. 익명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워낙 수강생이 적기도 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묘사하는 내용이나 서술형 항목 말투를 보고 누가 작성한 건지 다 안다고 하더라고요.”

“강사의 경우에는 평가에 따라 계약이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면 교수의 경우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교수평가를 성적이랑 거래하는 경우 도 봤어요. 교수가 학생에게 교수평가를 잘 써주면 F 학점은 면하게 해주겠다고 하는 거죠.”

“등수를 매기는 게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방식으로, 커리큘럼에 따른 개인의 역량 변화를 중심으로 평가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학생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과정 자체가 결국 본인 창 작 과정에서도 더 중요할 거라 생각하고요. 작가노트를 쓰거나 개인 프로필을 작성하는 데도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쌍방향 평가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교수와 학생이 서로 평가를 해 보는 시간인 거죠. 한 학기 동안 어떤 수업을 들었고 그 수업을 듣기 전과 듣고 난 후의 변화를 토론해 보는 거예요. 어떤 능력을 발전시켰고 도달했는지, 또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서로 의 생각을 나누는 방식으로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