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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활동내용

미니살롱 2회차 운영기록 : 진상 월드컵

by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 11. 18.

미니살롱 2회차 <만나서 즐거웠고 다신 보지말자>

진상 월드컵

✍ 최서윤

 

제 2회 미니살롱의 제목은 ‘만나서 즐거웠고 다신 보지말자’이다. 참여자를 모집하기 위한 홍보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 얘기는 아닌데요... 최근에 같이 일하는 동료 예술인이 자꾸 밤 12시에 톡을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자니...? 안 자면 이것 좀 봐봐...' 하고요. 구남친도 아닌데 왜 자꾸 밤에 연락하죠? 영감은 밤에만 떠오르나요? 정말 정말 제 얘기는 아닌데, 제 친구가 힘들 것 같아요. 원래 예술인들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일하나요?

이게 또 제 얘기는 아니고, 제 친구 얘기거든요? 지금 예술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팀 리더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자꾸 제가 아니 제 친구가 내용을 요약정리해서 회의하려고 하면 무슨 회의가 이렇게 딱.딱.하냐며, 조금 편하게 하자면서 회식자리를 자꾸 만드시더라고요. 제가 MBTI를 좀 아는데, INTP와 ESFP는 상극이거든요. 아무리 봐도 이 작가님은 ESFP 같아요. 이런 분하고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 걸까요?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프로젝트에서 크고 작은 갈등으로 고민하는 분들 없나요? 만나서 함께 속 한번 개운하게 풀어보고 싶네요. 조언도 좀 듣고요! 하… 정말 만나서 즐거웠고 다신 보지 말자.

그리하여 2022년 9월 26일 월요일 오후 4시, 총 11명이 모여 이야기 나누게 됐다(기록 담당 제외).

2회차 진행의 시작은 1회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약속문의 골자를 다 같이 읽은 뒤, 타로카드를 한 장 뽑아 해당 카드의 그림과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결지어 자기소개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한 참여자는 “타로를 믿게 될 것만 같다”며 본인이 꼽은 연인들에 대한 카드가 자신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많은 사람들의 시를 엮어 책자 ‘주머니시’를 만드는 제작자인데, 사람들이 그의 책을 보며 시를 전해주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경향이 크고, 그것이 ‘연결고리’가 되는 것 같다고 밝히며 이와 관련해 그 자리에서 지은 본인의 닉네임 ‘고리’를 소개했다.

다른 참가자들 역시 각자의 관심사와 고민거리를 나누었다. 마차와 관련된 카드를 뽑은 참가자는 책임감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예술가의 삶을 선택했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나이를 들며 ‘내 선택이 자유로운가’, ‘내가 말이라면 내 뒤에 수레가 쌓인 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식하게 된다며 본인의 닉네임을 ‘책임’으로 소개했다.

이런 식으로 십 여명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시각적 준비물이 있어서인지 참여자들이 흥미를 느끼며 자기소개를 한다고 느꼈고, 이것이 계속 된다면 미니살롱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상형 월드컵? 진상 월드컵

다음 순서는 ‘본인이 만난 최악의 상황’에 대한 사례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전 안전한 이야기의 공유를 위해 다음과 같은 안내가 있었다.

  • 가능한 이야기 공유 전 “제 얘기는 아니지만”을 앞에 붙입니다.
  • 특정 신원을 밝히는 것은 최대한 지양합니다.
  • 오늘 나눈 이야기는 가십으로써의 외부 유출을 지양합니다.
  • 작성자를 밝히기 원치 않으실 시 작성자란을 공란으로 두시면 사회자가 대신 사연을 읽어드립니다. 

이를 기반에 두고 각자 나누고 싶은 사례를 쓰는 시간을 10분간 가졌다

다음 진행방식은 일종의 토너먼트였다. 과거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활용한 ‘이상형 월드컵’의 형식을 차용했다. 사람들이 써서 모인 사례를 화이트 보드에 1:1로 나란히 붙인 뒤 더 많은 사람이 ‘최악’이라고 생각하며 손을 들은 것을 다음 라운드로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종래에는 시간이 부족해 참가자들의 동의를 얻어 한 번에 네 가지 사례를 붙이고 그 중 ‘왕 중 왕’을 선정하게 되었다.

결승전에 오른 네 사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협업하지 않고 외주처럼 대하는 대표
  2. ‘노쇼 인간’- 시간관념 없고 책임감 없는 사람
  3. 기획일의 크레딧
  4. ‘빌런 팀장’ - 이게 모두 한 사람이라니?

협업하지 않고 외주처럼 대하는 대표에 대해 참가자들은 “저런 사람이 아닌 대표를 만난 적 있나? 나는 저렇지 않은 대표를 만난 적이 없다”는 경험과 “회사생활 동안 반은 저렇고 나머지 반은 수평적인 소통을 하는 대표였다”는 경험으로 나뉘었다. “대표는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내는 자리인데 너무 수평적이다 보면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의견과 “스타트업 성장 전에는 대표의 아이디어를 밀고가는 게 중요하고 기업이 커져갈 때는 수평적인 게 중요하다. 창업 멤버들이 점점 제 역할을 못하고 썩어져가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이어지며 결승전에서는 0표를 획득했다.

‘노쇼 인간’은 중요한 업무 당일에 참가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거나, 자주 일정을 변경하는 사람에 대한 사연이었다. “노쇼는 너무 심각하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비즈니스를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일적으로 ‘손절’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며 여러 사람들의 격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손절반대론자'도 있었는데, 그는 “일반기업은 더 이런 일이 용납 안 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장마다 다를 것 같고 예술계는 관계망 속에서 일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비슷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왜 그랬냐고 물어본 경우가 있었고 설득력 있는 답변을 들었을 때는 같이 일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해당 사례를 공유한 사람은 시간관념 없고 책임감 없는 사람과 협업해야 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고 물었고, 이에 대해 “마감, 원고 등 호흡이 긴 작업일 때 마감기간을 앞당겨 말하는 식으로 대처한다. 하지만 광고 촬영 같은 경우 갑자기 두 시간 전 노쇼하는 경우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 “중간중간 체크를 한다. 그런 사람은 전화를 안 받는다든지 등 중간에 징후를 보낸다. 회신이 온다면 계속 함께할 수 있지만 대개 노쇼할 사람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다른 이들의 경험 공유가 있었다. 해당 사례는 결승전에서 최악의 사례로써 1표를 얻었다.

‘기획 일의 크레딧’은 지원사업과 연계된 문화예술기획, 교육을 하는 사람들의 크레딧 표기에 대한 고민의 공유였다. 같이 만든 사업인데 결국 ‘참여자’로 들어가는 그림이 발생하는 상황을 소개하며 “성장을 위해 이 정도는 내줘야 하나?”라는 기획자의 고민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최악’의 사례로써는 2명의 지지를 받았다. 

‘빌런팀장’은 자기 약점을 가리기 위해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해당 사연의 공유자는 “지인이 기술협업 및 영업 업무를 하고 있는데 제대로 하려면 프로세스를 이해하기 위해 3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기에는 교육에 치중하는데, 6~12개월까지도 교육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팀장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했다. 다른 입사 동기들은 바쁜데 지인 혼자만 사무실에 멍하니 있었다. 팀장은 회사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없다 보니 지인에게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고, 동료들도 그를 다 싫어했다. 지인이 나가야 팀장이 타격이 있으니 팀장이 나가기를 바라는 다른 회사 동료들이 지인에게도 차가웠다. 3~6개월 지나고 상황 파악이 됐고 그때부터 회사생활이 상처가 됐다. '회사는 무서운 곳'이라는 깨달음으로 퇴사하고 예술가로서, 개인으로서 일하게 됐다”고 말했고, 비록 그의 얘기가 아니고 지인의 얘기라지만 발화자가 전하는 고통과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생생히 느껴져 많은 이들(6명)이 해당 사연이 최악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참여 소감

“이 얘기를 실제로 하게 될지 몰랐는데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 얘기도 들으며 사이다를 느낄 수 있었다.”

“팀원을 대신해서 왔지만 속이 좀 시원해졌다. 3년 전 얘기였지만 지금이라도 속 시원히 말한 게 도움이 됐다고 느낀다.”

“현장이 모두 엉망인 것 같다. 사례 중 하나라도 경험하지 않은 게 없었다. 다들 같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는 구나, 그것을 새삼 확인했다.”

“만드는 '과정'도 업무라고 자각하고 받을 대가를 요구할 수 있어야겠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거절은 인생의 기본이라는 생각과 힘을 갖추게 됐다. 다들 이미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여러 분들께 다시 강조하고 싶다.”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 저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당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너무 자책하지 말자”

“약간 자조모임 같았다(웃음). 즐거웠고, 다음에는 행사 시간이 더 길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세 시간 정도 돼야 하지 않을지…(웃음). 그런데 저녁에 이 행사를 할 의사는 없는가? 다양한 시간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자 참여 소감을 전한 뒤 ‘주머니시’의 제작자 고리님이 다른 참여자들에게 모두 주머니시를 선물하며 따뜻한 마무리가 되게 도왔다. 각자의 것을 나누고 연결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낀 자리였다. 

행사가 끝난 뒤로도 서울청년예술인회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사람 두 명이 남아 담당자에게 열띤 질문을 던졌는데, 서울청년예술인회의의 외연을 넓히고자 하는 미니살롱의 취지가 통했다는 방증 같아 기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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